사자들의 갈기의 색과 형태는 상당히 다양해서 이것을 바탕으로 많은 아종들을 서술할 수 있었지만 대다수의 사자들은 종류에 상관없이 갈기색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그것만가지고는 그것의 분류학적 형태를 구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추정할 수 있었던 몇몇사자들이 있었고 이 중 두 종류의 아종이 절멸했다.
남아프리카 대부분의 사자들은 케이프사자 혹은 케이프의 흑갈기사자라고 불리는 아종이었다. 이 사자의 외관은 오늘날의 남부와 동아프리카에 살던 사자들과 많이 다르다. 연구자들은 멸종된 케이프사자들이 정말로 다른 아종인지 아닌지에 대하여 확언하지 못하고 있다.
케이프 사자들은 사하라 이남의 사자들 중에서 가장 크고 가장 어두운 빛의 사자였다. 수컷들은 얼굴 주위의 갈색 앞머리를 제외하고는 흑색에 가까운 매우 길고 무거운 갈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또한 복부부분에도 흑빛의 잘 자란 갈기들이 나있었다.
케이프사자들의 서식지는 불분명하나 남아프리카의 동부지역, 케이프 지역에 살았다고 여겨진다.
이들은 주로 영양, 얼룩말, 기린, 물소와 같이 큰 사냥감을 먹었다. 그들은 또한 당나귀를 사냥했고 유럽정착자들이 사육했던 소무리를 공격하기도 했다. 어윈 하그너의 말을 따르면 사람을 먹었던 사자들은 일반적으로 나쁜치아를 가진 늙은 사자들뿐이라고 그의 저서 "남아프리카 포유류"에서 밝혔다.
케이프 지역이 최초로 유럽식민지가 된 것은 1652년 4월 6일 네덜란드인에 의해서였다.
17세기에 네덜란드인이 케이프를 식민지화 시키기 위해서 케이프 사자들은 뉴질랜드에 보내졌다.
이 사자들은 17세기말까지 흔하게 케이프타운 근처에서 살았던것으로 기록이 나와있다. 18세기에도 케이프사자들은 다소 그 수가 줄긴 했지만 케이프타운 근처에서 보기드문 존재는 아니었다. 1795년에 최초로 영국이 케이프 식민지를 점령하기 시작했고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케이프타운 근처, 특히 카루와 유텐헤이그 지역에서 사냥꾼에 의해 살해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케이프사자들의 수는 줄어갔고 결국 사라져버렸다.
케이프사자의 정확한 멸종시기는 알려져있지 않지만 1858년에 케이프지역에서 살해당하는 것을 보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최후의 아종이 1865년 나탈의 한 지역에서 사냥당했다는 기록도 나와있다.
케이프사자는 유럽인과 접촉하면서 급격하게 감소되었다. 네덜란드와 영국 이주자들, 사냥꾼, 스포츠맨들이 그것을 멸종으로 몰아넣었다. 또한 시민들은 케이프사자들의 중요식량 대부분을 제거해버렸기 때문에 케이프사자들은 더욱더 그 수가 줄어들수 밖에 없었다.
남아프리카동물원 디렉터 존 스펜스는 케이프사자의 후손을 찾아 다녔다. 스펜스는 소수의 케이프사자들이 남아프리카 밖의 어딘가에서 살고있을꺼라 믿고 있다. 그는 케이프사자의 몇몇의 새끼들이 유럽밖으로 빠져나갔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케이프사자와 비슷하게 생긴 동물을 조사하기 위하여 싱가폴을, 서커스나 동물원을 찾아보기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케이프사자와 유사해보이는 많은 사자들을 보았지만 정확히 그것은 아니었다. 2000년 1월, 유럽 친구들이 스펜스에게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동물원에서 찍은 특이한 사자사진을 보냈다. 시몬이라 불리는 짙고 윤이나는 흑색의 갈기에 넓은 얼굴, 튼튼한 다리, 그리고 큰 체형의 사자였다.
시베리아 동물원에 다녀온 뒤 스펜스는 시몬의 새끼들, 루스티슬라브와 올가를 아프리카로 데려왔다. 그 두마리사자는 지금 타이거벅 동물원에 있는 자신들의 우리안에서 살고 있다. 그 새끼들은 이미 많이 커서 그 동물원의 다른 사자들의 성장체보다 더 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