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과정에서의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정책 과제: 스토킹 등 2차 피해를 중심으로
-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1. 관계 해소를 위한 핵심적인 법적 수단이자 보복의 기회이기도 한 이혼 과정
가정폭력은 단순한 부부갈등이 아니라 상해·폭행·감금·협박·살인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적 범죄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힘들면 이혼하면 된다는 식의 인식이 보편적이며, 이는 이혼 과정이 오히려 피해자에게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되는 시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결과다. 이혼은 가정폭력 관계의 해소를 위한 핵심적인 법적 수단이지만 동시에 이혼 절차가 진행되는 기간은 가해자가 면접교섭, 가사조사 등 제도적 절차를 활용해 피해자를 통제하고 보복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혼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토킹·위협·감시 등의 2차 피해는 피해자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며 가족법과 가사사법제도가 단순한 분쟁조정 장치가 아니라 피해자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인권적 장치로 재설계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2. 이혼과정에서의 2차 피해 양상과 피해자에 대한 영향
- 이혼 절차 단계별 스토킹 유형
이혼 과정에서의 스토킹은 절차 단계에 따라 그 유형과 경로가 달라진다. 조정·가사조사 단계에서는 법원 출석일을 이용한 대면 접촉 시도, 법원 주변 미행과 감시, 반복적 연락과 심리적 압박 등이 발생한다. 면접교섭 이행 단계에서는 자녀 인도 과정을 통한 피해자의 주거지 · 직장 · 보육기관 탐색, 자녀를 매개로 한 협박과 재결합 강요가 나타난다.
보호시설 퇴소 전후에는 면접교섭을 빌미로 보호시설 위치를 파악하려는 시도, 자녀의 학교 · 보육기관을 통한 간접 추적 등이 이어진다. 이는 이혼이 단순한 관계 종료가 아니라, 폭력의 형태와 전개 방식이 달라지는 새로운 단계임을 보여준다.
3. 현행 법 · 제도의 한계
- 조정 전치주의와 대면 중심 절차의 위험
재판상 이혼에서 채택된 조정전치주의는 가정폭력 사건에서 중립적 대화의 장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피해자를 압박하고 통제할 공식적 기회를 제공하는 절차로 작동할 수 있다. 실제 사례에서는 가사조사 과정에서 가해자와의 대면조사 강요, 가사조사관의 편향적 발언, 화해 종용 등이 지적되었다. 가해자의 폭력이 지속됨에도 피해자 안전보다 가족 구성의 형식적 유지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가 반복된다는 점은 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가정폭력을 이유로 이혼을 청구한 피해자에게 가해자와 마주 앉아 화해할 것을 종용하는 구조는 사법 절차가 오히려 재피해를 제도적으로 방조하는 역설을 낳는다.
- 자녀면접교섭 사전처분과 '양육권 스토킹'
면접교섭권은 자녀와 부모 간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설계되었지만, 가정폭력 사건에서는 가해자가 자녀를 매개로 피해자에게 접근하고 감시와 통제를 계속하는 통로로 활용될 수 있다. 이른바 '양육권 스토킹(custody stalking)'이다.
가해자는 면접교섭권 · 양육권이라는 법적 권리를 주장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전 배우자 감시 · 협박 · 재결합 강요 · 주거니 노출을 목적으로 자녀를 이용한다. 현행 제도가 가정폭력 위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아 가해자의 접근을 사실상 허용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 관련 특별법의 보호 공백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피해자보호명령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접근금지 조치는 가사소송 절차와의 연계가 미흡하다. 가정법원이 면접교섭 사전처분을 결정할 때 피해자보호명령이나 접근금지 조치의 존재를 체계적으로 확인 · 반영하는 제도적 장치가 부재하여, 한편에서는 가해자 접근을 금지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면접교섭을 통해 접근을 허용하는 규범적 충돌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4. 해외 입법례의 시사점
주요국은 양육권 · 면접교섭 결정 시 가정폭력을 핵심 고려 요소로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 영국, 캐나다 - 세 국가의 공통된 시사점은 첫째, 면접교섭을 부모의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안전이 담보될 때에만 허용되는 조건부 권리로 재정립했다는 점, 둘 째, 가정폭력 개념을 강압적 통제까지 확대하여 비신체적 2차 피해도 포착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 셋째, 사법 종사자의 가정폭력 전문성을 제도적으로 강화했다는 점이다.
5. 입법 및 정책 과제
- 면접교섭 사전처분 예외 규정 마련
피해자가 보호시설에 입소 중이거나 보호명령을 받은 경우에는 면접교섭 사전처분을 원칙적으로 배제하거나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직접 대면 방식은 금지하고 필요 시에도 감독 면접 · 비대면 방식 등 안전장치를 전제로 하여 가정법원이 면접교섭 결정 전 피해자보호명령이나 접근금지 조치의 존재를 의무적으로 확인하도록 절차를 정비해야 한다.
- '자녀의 복리' 판단 요소에 가정폭력 명시
양육권 · 친권 · 면접교섭 결정 시 가정폭력의 존재, 반복성, 강압적 통제 여부, 자녀의 직 ·간접 피해, 피해부모의 안전에 대한 영향 등을 명시적 판단요소로 법률에 규정해야 한다.
- 가사조사 · 조정절차의 안전규범 정비 및 부부상담 권고 배제
가정폭력을 사유로 하는 이혼 사건에서 분리조사 · 비대면 조사 원칙을 도입하고 가사조사관이 초기에 위험을 선별하여 조사방식 · 대기동선 · 출석시간 · 연락방식을 달리 정하는 세부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조정절차 역시 가정폭력 사건은 원칙적으로 조정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가정폭력이 이혼사유로 주장되는 사건에서는 부부 공동삼담 권고를 원칙적으로 배제하고, 피해자 개별상담 · 자녀 심리상담 · 법률지원 연계 중심으로 전환하여 안전한 분리를 정책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출처: 여성과 인권 이슈브리프 2026 제2호 <가정폭력 피해자의 안전권 확보와 자립권 실현을 위한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