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33 바벨탑 사건인가? 바벨성 사건인가? 그들이 범한 죄의 본질은 무엇인가?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창 11:4~8)
홍수가 끝나고 방주는 아라랏 산에 머물렀다. 노아의 가족들은 거기서부터 이동을 시작하다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인 시날 평지를 만난다. 거기서 그 땅의 통치자인 니므롯을 만난다. 그리고 그의 주동으로 건축을 시작한다. 저 유명한 '바벨' 사건이다. 이후 이 사건은 하나님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간 교만(hubris)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데 사실 이 사건은 많이 잘못 알려져 있다. 이제 그 정확한 내용을 확인해 보자.
이 사건은 흔히 '바벨탑'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바벨성 사건이다. 본문에 그 사실이 명백히 나타나 있다. 본문은 그들이 건설하려던 것이 '성'이나 '탑' 중 어느 하나가 아니라 성읍과 탑(히, 이르와 믹달)을 함께 건설하려 했다는 것을 두 번이나 강조한다(1-5절). 그러나 본문의 기사가 마칠 때에는 '바벨'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은 '탑'이 아니라 '성읍 곧 '도시'임을 분명히 한다.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히, 이르)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였더라"(8~9절). '그 이름'(its name)의 '그'가 가리키는 선행사는 바로 앞에 언급된 '도시이다. 즉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명사마다 성(性)이 있는 히브리어 문법으로 보면 더욱 확실하다. '도시'(히,이르)가 여성 명사이고, 그것을 받는 대명사 '그'에게 여성 단수 접미어( )가 붙어 있다. 그러니 문법적으로 표현하면 its name이 아니라 her name이다. 고로 이 기사의 정확한 제목은 '바벨탑'이 아니라 '바벨성'이어야 한다.
앞에 두 번이나 성읍과 탑’이라고 언급되었지만 기사의 끝에서 ‘탑’은 언급되지 않고 '도시'만 언급되었다는 것은 중요한 포인트이다. 그것은 이 사업의 주 목적이 '탑 건축보다는 '도시 건설'에 있었음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성읍과 탑'(히, 이르와 믹달)이란 구에서 접속사 ‘과’(히, )의 기능은 뒤의 단어를 강조하는 강세 와우(waw-augumentativum)가 아니라 뒤의 단어를 보조로 앞의 단어를 충분히 설명해 주는 이어일상(二語一想, hendiadys)이다. 다시 말해, '성에 있는 탑'이란 뜻이 아니라 '탑이 있는 도시'란 뜻이다. 이것은 이 건축물이 수많은 주석가들이 설명하는 바벨론 신전탑인 지구랏(Ziggurat)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개념은 '탑'의 기능을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이곳에서 '탑'이라고 번역된 믹달은 종종 도시의 방어 기능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면서 '망대'라고 번역되었다. 그리고 그런 기능을 강조하기 위해 '높은 망대'(사 2:15), '큰 망대(느3:27) 혹은 '견고한 망대'(삿 9:51)로 표현되었다. '망대'는 도시가 완전히 점령당한 이후 주민들이 마지막까지 피한 곳이기도 했다(삿 9:50~57), 최후의 도피처로서 요새화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믹달'은 종종 지명에도 사용되었다. 많은 도시들이 예를 들어 “에델 망대" (창 35:21), “믹달 갓" (수 15:37), “세겜 망대" (삿 9:46, 49) 등으로 불려졌다. 이러한 용법은 모두 이 믹달이 신전이 아니라 도시의 방어 기능과 연관되어 있었음을 나타낸다. 창세기 11장에서 사람들이 건축하려고 했던 '성읍과 탑'도 단순히 '신전탑이 아니라 높은 망대와 성곽으로 두른 요새화된 도시였다. 그러므로 '탑', 즉 '망대'의 꼭대기가 하늘에 닿을 건물이란 모세의 12정탐꾼들이 말한 것처럼 "성읍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는"(신 1:28) 그런 높고 견고한 성을 의미한다.
그러면 그들은 왜 그런 도시를 건설하려고 한 것일까? 그들은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하였다. 이들의 말에서 진정으로 건축의 목적을 나타내는 말은 무엇일까? 아니,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탑 꼭대기를 하늘에 낳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자"는 것일까? 아니면 "흩어짐을 면하자"이었을까? 해답은 하나님께서 문제 삼으신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면 밝혀진다. 잘 알려진 대로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어 일을 중단시키셨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시기 위함이었다. 이 기사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9절)로 마무리된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보신 그들의 문제는 "흩어짐을 면하자"였다.
이게 왜 문제가 되는가? 창조에서부터 답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고 명령하셨다. 소위 문화 명령이다. 홍수 이후에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 그 명령을 반복하셨다(창 9:1). 바벨 성 건립자들은 그 명령을 거역하고 한 장소, 즉 시날 땅에 머무르기로 결심하였다. 다시는 홍수를 내리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무지개 언약을 불신하고 높은 망대로 이루어진 견고한 안전 도시를 건설하여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한 국가를 건설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들은 니므롯의 주동 하에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정치적 '연합'을 도모하였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흩으심'으로 징벌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성을 '바벨'이라고 명명하셨다. 요한계시록에는 '큰 성 바벨론'의 무너짐에 대한 기별이 반복되어 있다(계 14:8; 16:19; 18:2, 21). 그것은 이 창세기 11장의 바벨성 사건을 원형으로 한 기별이다. 엘렌 G. 화잇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들은 이곳에 도시를 건설하고, 그 도시 안에 세계의 경이가 될 굉장히 높은 탑을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이 사업은 백성들이 각지에 널리 흩어지는 것을 막고자 계획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온 땅에 흩어져서 땅에 충만하고 그것을 정복하도록 지시하셨었다. 그러나 이 바벨탑 건설자들은 그들의 공동 사회를 한 단체로 연합시켜서 결국 온 세계를 포함할 한 왕국을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면 그들의 도시는 세계적 제국의 수도가 될 것이며, 그 영광은 온 세계의 칭찬과 존경을 자아낼 것이며 건설자들은 명성을 얻을 것이었다. 하늘에까지 닿을 굉장한 탑은 이 탑 건설자들의 명성을 후대에 길이 보존시키면서, 저들의 능력과 지혜의 기념비로써 서 있게 하고자 의도되었다(부조,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