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희
여름이 익어가고 있다. 남가주에는 2주 전부터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미국에서 더위로 20명이 넘게 사망하였다고 한다. 더위를 이겨내려는 선조들의 지혜였을까? 한 여름이 시작되면 초복, 중복, 말복을 맞아 여름철 보양식으로 삼계탕을 먹는 풍습이 있다. 닭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복날에는 삼계탕을 먹는다.
청화대와 개천을 사이에 둔 우리집은 마당이 넓었다. 부모님은 닭을 키우셨다. 어미닭이 알을 품으면 마술처럼 예쁜 병아리가 된다. 내가 아침마다 닭장에 들어가 계란을 꺼내오면 아버지는 젓가락으로 아래,위에 구멍을 내어 드셨다. 어린 시절 넓은 마당에서 뛰노는 닭을 쫓아다니며 뜀박질도 하고 물 한모금 쪼아 먹고 하늘을 향해 머리를 드는 닭을 흉내내서 나도 하늘을 보며 닭을 친구삼아 놀았다.
어느 날, 아나운서였던 외삼촌이 집에 오니 아버지가 도망가는 닭을 붙잡아 수돗가로 갔다. 나는 놀랐다. 어린 마음에도 불길해 두려웠다. 잠시 후 저녁 식탁에 맛있어보이는 닭복음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분명 나와 함께 뛰어다니던 내 친군데... 그날 이후 나는 닭을 먹지 못했다.
직장을 다니며 동료들의 권유로 조금씩 먹기 시작하였다. 붉은 고기보다 몸에 좋다는데 닭요리를 보면 어린 시절이 생각나 멈칫 하곤 했다. 걸혼 후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복날이 되면 시장에 가서 닭을 사다 삼계탕을 끓였다. 해를 거듭하니 이제는 당연히 복날에는 삼계탕을 먹어야 여름 한 철 건강하게 보낸다며 식구들에게 먹인다.
땀을 흘리며 닭을 손질하고 끓이는 내게 남편은 힘들어보인다며 나가서 한그릇 사 먹고 오자고 권했다. 그 해는 유난히 더워 가든그로브 삼계탕 전문 식당이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갔다. 몸에 좋은 한약재를 넣고 끓인다는 주인 말에 주문을 하고 기다렸다. 헌데 서빙을 하는 사람이 나이 지긋한 남자였다. 부부가 종업원도 안 두고 아내는 주방에서 남편은 서빙을 하며 장사를 하는데 왠지 마음이 짠했다. 허나 반찬을 내려놓는 남자의 투박한 손을 보니 입맛이 달아나 다시는 갈 수 없었다.
딸이 결혼 한 후에는 복날이 다가오면 사위를 먹이려고 더위도 잊고 닭을 손질하여 정성껏 끓였다.
5마리를 사서 우리 부부가 2마리를 먹고 3마리를 딸에게 보냈다. 예전에는 아이들에게 한 입이라도 더 먹이려고 내가 한 마리를 다 먹지 못 했는데 이제는 당당하게 한 마리를 다 먹는다. 그렇게 아무리 더워도 나의 의무라도 되는 양 복날에는 삼계탕을 끓였다.
몇 년 전, 우연히 마켙에서 포장된 삼계탕을 본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더운데 땀 흘리며 애쓰지 말고 이것 사서 먹어보자" 나는 왠지 성의없어 보여 망설였다. 재차 권하는 남편 말에 두팩을 사와 끓였다. 남편이 맛있게 먹으니 합격이다. 나도 그런대로 먹을만하고 힘들지 않아 괜찮았다. 그 후 그렇게 복날 땀흘리던 내가 편하게 삼계탕을 가족들에게 먹이며 만족하고 있다. 모든게 편하고 좋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복받은 세대라는 생각이 든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세탁기,냉장고, 전자레인지같은 전자제품이 없는 시대에 살아내시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제가 초복이었다. 좋은 세상에 살고 있음에 복날이 와도 걱정이 없다. 마켙에서 사 온 봉지를 뜯어 끓이며 올 해도 모두 건강하게 여름을 보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을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