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통하여 볼 때 개혁은 항상 교회 밖에서 시작되었다. 매우 드물지만 개혁이 교회 안에서 시작된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교회의 지도자가 경건하고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고 있었던 때였다. 예를 들어 모세의 때는 지도자인 모세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경건하고 진리를 올바로 이해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개혁을 교회 안에서 시작하실 수 있으셨다.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말은 교회라는 조직이 부패해서 스스로 개혁할 수 없는 상태에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개혁은 항상 교회 밖에서 시작되게 된다.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유대교회의 대제사장인 엘리를 버리시고 한나의 아들인 사무엘을 택하셔서 새 신앙을 이스라엘 안에 일으키셨다. 하나님께서는 개혁자 중에 가장 큰 개혁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내리실 때에도 유대교회의 대제사장의 아들이나 왕족을 택하지 않으셨다. 유대교회에서 전혀 주목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무슨 선한 자가 나오랴고 한 그 나사렛의 목수 집안을 예수 그리스도의 집안으로 선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개혁의 시작을 교회의 밖에서 시작하기로 결정하셨던 것이다. 침례 요한 역시 교회가 그에게 개혁의 자리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에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그의 개혁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교회나 교단이 부패하여 영적으로 몰락되어 갈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조직 밖에 있는 사람들을 일으키셔서 당신의 개혁 사업을 시작하신다는 것은 참된 개혁의 진위를 판가름하는 역사의 중요한 법칙이다. 16세기 종교 개혁 사업에도 역사의 이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었다. 옥스포드 대학의 개혁자 위클립도 아니고 이태리 명문가 자제인 개혁자 사보나 롤라도 아니며 물론 교황의 집안 사람도 아니고 독일 퉤링겐의 깊은 산 중에서 가난하고 정직한 생애를 보낸 광부 한스 루터의 장남으로 태어난 마틴 루터를 통하여 유럽의 종교 개혁은 이루어졌던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와 반복되는 교회의 역사 루터의 개혁은 독일의 평민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개혁이란 어떤 종류의 개혁이든지 간에 항상 평민들로부터 시작된다는 또 하나의 역사의 법칙이 있다. 귀족으로부터 시작되거나 교회의 지도층에서 시작된 개혁은 언제나 그 힘이 미약했으며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실패하였다는 것이 역사가 말해주는 교훈이다. 그들은 개혁을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현실에 안주하고 말았다. 그러나 루터는 평민을 지도했고 그 평민을 대표해서 당시 유럽 전체를 주도하던 교회에 맞섰던 것이다. 이러한 루터에 의해서 로마교회의 신학과 미신적 가르침은 산산조각이 났으며 그의 부패의 진상이 드러나게 되었다.
역사는 목적 없는 혼란한 사건의 흐름이 아니다. 루터가 태어나기 오래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실행되어 왔다. 루터가 태어나기 30년 전,즉 1453년에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어 터키의 손으로 넘어가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로 인하여 로마교회는 외형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또한 이 사건은 르네상스로 인한 문예부흥을 한층 활발하게 만들었다. 루터가 태어난 해에 콜럼버스는 세계 일주의 계획을 세워 스페인으로 갔다. 1453년에는 구텐베르크에 의하여 인쇄술이 발명되어 라틴어 성경 전체가 처음으로 인쇄되는 역사적 사건이 생겼다.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실현이다. 루터의 개혁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을 드러나게 하심으로써 루터의 글과 책자들과 번역된 성경이 온 세상으로 쉽게 퍼져나갈 수 있는 기초를 놓으셨다. 또한 콜럼버스로 하여금 신대륙이라는 거대한 땅 덩어리를 발견케 하심으로써 개혁의 결과로 일어나는 교회의 핍박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를 마련하셨다. 위대한 장군이 세운 전략과 같이 하나님의 섭리가 정확한 때에 맞추어 역사적 사건들이 하나씩 이루어졌다. 루터와 콜럼버스와 구텐베르크는 비록 태어난 곳이 다르고 사업의 종류가 다르고 종교를 달리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뜻 안에서 그들 모두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세상에 보내신 바된 사람들이었다. 콜럼버스가 발견한 미국이라는 거대한 신대륙은 유럽으로부터 피신하는 청교도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제공하는 피난처가 되었고 루터의 개혁과 정신을 분명하게 실현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셨다.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계 12:16,17).
모든 사건은 루터의 개혁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일어나고 존재하였지만 어두움에 속해 있던 교회는 교회 밖에서부터 비추어 온 빛을 이해할 수 없었다. 교회는 루터와 함께 서있던 하나님의 사람들을 향하여 핍박과 반대의 정신을 드러내었다. 지난 역사 속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거대한 교회는 언제나 개혁을 반대한다는 역사의 법칙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의 법칙들을 통찰력 있게 꿰뚫어 보는 사람만이 마지막 시대에 존재하는 혼돈과 기만에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