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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들의 실력을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첩자 나부랭이 주제에 너
무 설쳐대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느냐? 화운문이 네놈들에겐 그렇게
만만하게 보였나 모르겠지만.. 실수한 거야. 화운문은 결코 너희 쥐새
끼같은 놈들이 넘볼 수 있는 그런 만만한 곳이 아니다! 내 스스로 증
명해 보이도록 하지. 하압! “
냉소적인 어조로 말을 끝마친 사도명이 기합을 내지르자 그의 소매가
부풀러 오르기 시작했다.
살갗으로 스며들어오는 지독한 살기에 추남은 긴장을 했지만 오히려
한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자신이 뒤로 물러난다면 강운이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화린 역시 추남의 그런 의도를 눈치 채고 한걸음을 내딛었다. 둘의 검
에서는 어느새 화염이 이글거리는 검강이 생성되어 사도명을 노리고
있었다.
부풀어 오른 소매가 터질지경이 됐을 때 사도명은 소리 없이 쌍장을
휘두르며 추남과 화린을 향해 신형을 솟구쳤다.
-펑!
하지만 화린의 존재를 그렇게 신경 쓰지 않고 공격을 감행한 사도명은
엄청난 손실을 입어야만 했다. 그녀 혼자만의 내공이 5갑자에 달했고
추남 역시 2갑자가 넘는 내공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그들을 상대로
정면충돌을 감행했으니 사도명의 내부가 멀쩡할 리가 없었다.
한번의 충돌 후 추남과 화린이 약간 뒤로 밀려난 것에 비해 사도명은
한참이나 더 뒤로 물러나며 가까스로 중심을 잡긴 했지만 심한 내상
을 입은 듯 보였다.
입으로 튀어나오려는 피덩어리를 극한의 인내력으로 다시 삼켜버린
사도명이었지만 본인 스스로도 입가를 타고 흐르는 미약한 혈선을
눈치 채지 못했다.
자신만만한 사도명이 생각 없는 한 번의 충돌로 인해 입은 피해는 상상
이상으로 막심한 듯 했지만 내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냉소적
인 웃음이 더 짙어진 것은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크하.. 이거 정말 웃기는 군. 천하의 사도명이 쥐새끼들한테 이런 낭
패를 당하다니 말이야. 크하하! 네놈들은 지금 이겼다고 기뻐하고 있
겠지? 쿨럭! 하지만 기뻐하긴 아직 일러.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
격정에 못이겨 말을 내뱉던 사도명이 참고 있던 피덩어리를 쏟아냈지
만 이제는 그런 것에 연연해 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개운하다
는 표정을 지으며 검을 뽑아 든 사도명은 화염검을 들고 있는 추남과
화린을 바라보다가 그 뒤에 서있는 강운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저런 놈들이 튀어나왔을까? 마교의 실력이 이 정도로 엄청났
다는 말인가? 빌어먹을! 그 힘은 웬만하면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젠 어쩔 수 없겠군.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 일반적인 화운문의 무
공으로는 저 둘을 이겨낼 수 없으니.. 젠장! 빌어먹을!! ‘
본문의 제자들은 알게 모르게 사도명의 이중성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별다른 느낌이 없었지만 본문과의 연락이 끊긴 채 분타에서 직접 교육
을 받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움 자체였다.
음침한 괴소를 흘리며 피 덩어리를 토해내고 있는 그의 모습 어디에
서도 화운문의 대제자의 기도는 보이지 않았다.
‘상관없어. 어차피 걸리적거리는 놈들은 죄다 죽여 버리면 그만 아닌
가? 크하하! 그래.. 어차피 화운문은 내 손에 무너지게 되어 있으니! ‘
사도명은 애검을 쓰다듬으며 아직껏 그 누구에게도 써본 적이 없는 자
신의 잠재된 힘을 끌어올렸다.
검붉은 기류가 사도명의 검을 타고 흘러들어가며 점점 검강의 형상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는데 그것을 딱히 검강으로 보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는 듯 보였다.
그것은 검강이라기 보다는 사도명의 검이 검은 안개에 휩싸여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뚜렷한 형체가 있는 검은 안개는 사도명의 의지에 따라 지금은 검강의
형상을 취하고 있지만 언제라도 그 형태를 바꿔 상대에게 치명적인
암기 또는 무기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이다.
추남과 화린은 사도명이 피덩어리를 토해내는 모습을 봤을 때 이미
그가 심한 내상을 입은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내상을 입은 몸으로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지독
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검강을 만들어 내는 그의 모습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잔뜩 긴장한 채로 사도명을 경계하는 추남과 화린의 뒤에
는 어느 때보다도 심각해 보이는 강운이 서 있었다.
[운아.. 저건? ]
[잠깐.. 백호 너는 가만히 있어. 저 정도 힘이라면 너라고 해도 위험
해. 역시.. 생각대로 저놈은 암흑계의 하수인이었어. ]
연신 광기가 서린 괴소를 흘리고 있던 사도명의 표정이 순간 이상하
게 변했다. 자신과 대치중인 추남과 화린의 사이를 뚫고 강운이 앞으
로 나서려고 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운아! 너 지금 뭐하는 거야? “
“형하고 누나는 아까 싸워서 힘들잖아. 그러니까 이번에는 내가 상대
할게. “
팔을 걷어붙이며 앞으로 나서려는 강운의 앞을 막아선 추남은 약간은
화가 난 듯한 어조로 차갑게 쏘아붙였다.
“강운! 장난하지 말고 빨리 뒤로 물러나! “
“그래 운아.. 지금은 상황이 별로 안 좋으니까 오라버니 말 들어.. “
화린 마저 추남을 도와 강운을 뒤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강운은 둘을
향해 혀를 살짝 내밀어 보이며 앞으로 나갔다.
“장난 아니거든. 내가 해결할게. 누나하고 형이나 뒤로 물러나 있어.
위험할지 몰라! “
추남이 앞을 막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강운은 누가 말릴 사이도 없
이 벌써 앞으로 나가 있었다.
뒤늦게 강운을 잡기 위해 앞으로 나가려고 하던 추남과 화린은 마치
투명한 장막이 생긴듯 앞을 막아서는 어떤 벽 때문에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사도명이 추남과 화린을 향해 달려들 것을 대비해 미리 보
호막을 쳐 두었던 것이다.
허공을 때리며 제자리에서 바둥거리고 있는 추남과 화린 그리고 그 둘
을 지나쳐 유유히 자신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강운을 바라보는 사도명
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괴소가 걸렸다.
“너는 나랑 한판 붙자! “
강운 사전에 존대라는 말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누군가에게 완전히 하대를 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암흑계의 하수인 사도명에게는 저절로 하대가 튀어나왔다.
“네까짓 놈이 감히 이 몸하고 말이더냐? “
비웃음을 흘리며 실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사도명을 향해 강운은 가
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펑!
사도명의 몸이 뒤로 크게 휘어지며 넘어질 듯 보였지만 간신히 균형
을 잡아 몸을 똑바로 세울 수 있었다.
“크흑.. 뭐, 뭐냐? “
“까불지 말고 덤벼. “
강운은 한 번의 가벼운 토닥거림으로 사도명이 검붉은 피를 흘리며 괴
로워 하는 모습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사도명 자신도 모르고 있겠
지만 그가 암흑계의 힘을 사용할 때 마다 육체와 영혼이 동시에 점점
썩어 들어가 종국에는 파멸의 결과밖에는 없을 것이다.
‘갈수록 고통이 더 심해질 텐데 차라리 내가 지금 편안하게 보내주는 게
저놈한테는 좋은 일이겠지. 하지만 지금 저놈을 해치우면 사부의 행방
을 알아내는 게 힘들어질 거야. 암흑계 놈을 끌어내기 전까지는.. ‘
괴로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숨을 헐떡거리고 있던 사도명은 강운과
시선이 마주치자 울컥 분노가 치솟아올랐다.
“그렇지. 네놈은 사술을 잘 부렸었지. 크큭! 그렇게 죽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 무기를 꺼내라. 악랄한 암기 따위나 쓰지 말고 정정당당하
게 승부하자! “
검을 곧추세우며 이글거리는 눈빛을 빛내고 있는 사도명을 향해 강운
은 어깨를 살짝 들썩여 보였다.
“나는 그냥 맨손으로 할 테니까 신경쓰지 마. “
“흥! 치사하게 암기 따위나 쓰는 놈이었군. 좋다. 덤벼봐라! “
사도명이 유독 암기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을 하자 상황을 지켜보
던 화운문의 여러 제자들이 술렁거리며 강운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도명의 두 사제들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저런 쳐 죽일 놈이 있나. 어째 사형께서 피를 토하시나 했더니 치사
하게 암기를 썼었군. 사제 우리가 나서야 되지 않겠는가? “
예의 간사해 보이는 청의인이 물음을 던지자 그의 사제는 무거운 표
정을 지키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될 말씀이십니다. 대사형께서 비록 암기에 당하셨다고는 하
지만 아직 승부가 가려진 것이 아닙니다.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는 것
이 좋을 듯 합니다. “
언제나 다른 두 사형들과 의견이 엇갈리는 막내 사제였기에 청의인은
불편한 심기를 들어내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갑작스럽게 주변이 어술렁거리며 자신을 향해 욕과 함께 손가락질을
해오는 화운문의 제자들의 모습에 강운은 미간을 좁히며 살짝 인상을
찡그렸지만 그다지 신경을 쓰는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분이 언짢
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 진짜 시끄럽네. 그냥 한대씩 다 두들겨 팼으면 좋겠는데.. 추남형
한테 가서 칼 뺐어올까? 나한테는 무슨 특별히 무기라고 할만한 게…
응? 가만 아.. 그게 있었지! ‘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사도명은 주변의 변화에 대해서 세심한 관심
을 쏟고 있었는데 강운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 그는 자신의 두 사제들
과 원로들이 나타난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대부분의 장로들과 사도명은 워낙 사이가 안 좋았기에 단 2명의 장로
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문주를 보필하라는 명목하에 중원출정에 동
참시키지 않았다. 사실 문주가 폐관에 들어간 시점에서 그를 보호하는
일은 사대호법이 있었기에 별다른 인원이 더 필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도명은 총 10명의 장로 중 1명은 억지스러울 정도로 서열을
강등시켜 버렸고 그래도 죽이 잘 돌아가는 2명의 장로는 함께 중원
출정의 책임을 맡는 중책을 맡겼다. 7명의 장로들을 본문에 남겨둔 채
사도명은 그들을 대신해 원로원에 도움을 요청했다. 현 문주조차 원
로들에게는 함부로 명령을 내리기가 거북했음에도 사도명은 중원이
마교로 인해 피바다로 변해버렸다는 말을 하며 교묘한 술책으로 그들
을 끌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심산에 조용히 은거하며 무공을 연마하던 원로들의 무공 수위는 사도
명으로서는 감히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고 현재 암흑계의 힘
을 얻은 상황에서도 감히 쉽게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힘은
엄청났다.
그런 원로들에게 화운문의 대제자인 자신이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였
으니 사도명은 앞으로 자신의 위치가 하향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
을 느꼈던 것이다.
곁눈질을 하며 원로들의 동태를 살피던 사도명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
며 무언가를 찾는지 보따리를 뒤적거리고 있는 강운을 바라보았다.
‘멍청한 늙은이들! 네놈들이 그 잘난 무공만 믿고 설치다가는 큰 코가
다칠 날이 올 것이다. 그놈..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아나는 그놈에게 더
많은 힘을 얻게 된다면 너희들 쯤이야.. 크하하! 근데 저놈은 뭘 저렇
게 뒤적거리고 있는 거지? ‘
한참동안 자신의 보따리를 뒤적거리던 강운은 마침내 찾으려던 물건
을 찾았는지 탄성을 내질렀다.
“아! 여기있네. 아무튼 사부는 좀 덩치 나는 것 좀 줄 것이지. 별로 티
가 안 나니까 이런 게 있었는지도 까먹고 있었잖아. “
강운은 보따리에서 웬 단검하나를 꺼내서 이리저리 돌려보며 투덜거
리고 있던 중 검집에 새겨진 이상한 문양의 글자인지 그림인지 구분이
안가는 표식을 보고 의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거 뭐라고 써 있는 거지? 추남형한테 배운 글자하고는 틀려보이는
데.. ‘
신비스러운 문양이 새겨졌지만 전체적으로 투박한 느낌의 검집에서
단검을 뽑아낸 강운은 검집을 왼손에 쥐고 단검을 오른손에 쥐었다.
단검 역시 검집과 마찬가지로 전체적으로 투박해 보이는 모습이었는
데 전혀 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검의 양면이 각각 적색과 청색을 띄고 있고 검면에는 예의 신비스런
문양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어디서나 흔하게 구입할 수
있는 단검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사부가 주는 게 다 이 모양이지! ‘
사부를 생각하며 한참을 투덜거리던 강운은 단검에 미약한 자연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단검이 자신의 힘에 어느 정도까지 버텨낼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
한 일종의 실험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