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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예루살렘 성전 미문이라고 하는 곳에서 평생 일어나 보지 못했던 앉은뱅이를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켰습니다. 오늘 이것이 초대교회 최초의 이적 미라클입니다.
그런데 이 기적을 기점으로 초대 교회와 그리고 사도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초대교회가 박해를 받게 된 이유는 몇 가지 있는데 하나는 자기들이 십자가에 잡아죽인 예수가 부활했다 예수 부활 소식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그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이 기적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들어있어요. 이 기적을 통해서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임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 안에 예수께서 현존하고 계시다고 하는 증거가 이 기적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예수님의 약속이죠.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받고 예루살렘과 온유다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게 주님이 약속하셨는데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셨어요.
그러나 그건 받은 사람만 알아요. 그런데 지금 이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가 일어남으로 성령이 권능으로 임하셨음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를 잡아 죽였던 이 예루살렘의 당국자들은 당황한 것입니다. 우리가 죽인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 허무맹랑한 말 같았는데 그것을 지금 제자들이 퍼뜨리고 있는데 그들을 통해서 예수가 살아계실 때 나타났던 그 능력이 그들을 통해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을 이루고 있어요. 교회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고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의 제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통해서도 초대교회의 이 이적이 예수님이 지상에 계셔서 육신으로 계시면서 활동하실 때의 그 능력이 우리에게도 나타나는 것이 정상이에요. 그렇게 함으로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저와 여러분의 인생, 그리고 우리 교회에 현존하고 계시다. 먼 곳에 계신 분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그분이 내 인생에 함께 계시다고 하는 것을 우리도 체험하고 그것을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에 이 성령으로 인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이적이 충만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게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이에요. 베드로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어떻게 해서 이런 역사가 일어났을까? 첫째는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에요. 이적은 기도의 사람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1절에 제 9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성전에 올라갈새. 헬라어로 헬라어 문법에서 미완료 과거형, 습관적인 과거의 행동을 표현하는 습관적인 행동을 표현하는 과거형입니다. 불어에서는 앵박회 같은 거예요. 한 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과거에 반복적으로 일어난 일을 표현할 때 그 문법 동사 변화를 사용하죠. 지금 요한과 베드로가 한 번 성전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늘 그러는 것처럼 정해진 시간에 하루 세 번 기도하러 올라갔는데 오늘도 그 시간을 따라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굳이 지금으로 말하면 3시에 오후 3시에 기도하러 올라갔어요. 사람들이 볼 때 우리가 생각할 때는 하루에 세 번 그것도 오후 3시에 참 할 일도 없는 사람이다. 일해야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들에게는 이 시간이 일보다도 어 어떤 중요한 약속보다도 더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시간,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 이것보다 사도들에게 더 소중한 것은 없었습니다. 이 기도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적이 나타납니다.
지금도 저와 여러분들이 기도한다면 우리가 기도를 안 해서 문제지 기도한다면 하루에 세 번 이 사람들 사도들처럼 기도하고 우리가 많은 시간 호흡하듯이 우리가 기도의 삶을 유지한다면 저와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도 사도들에게 있었던 이런 능력과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에요.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찾고 계시고, 하나님은 지금도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기도는 하늘 문을 여는 열쇠예요. 기도는 하늘 창고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하늘 창고 여러분 은행에 도대체 얼마나 있습니까? 은행에 많은 돈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늘 든든하죠. 언제든지 뺏을 수 있죠. 하늘창고는 비교할 수 없는 곳이에요. 거기는 도둑이 빼갈 수 없는 곳입니다. 풍성한 곳입니다. 넘치고 넘치는 곳입니다. 그 하늘 창고에 있는 모든 보화가 사실은 저와 여러분의 것이에요.
우리는 예수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사람들입니다. 아직은 아직은 내가 아직은 그것을 내 손에 넣지 못했지만 법적으로 크리스천이 돼서 하나님 자녀가 되는 순간 하늘의 것이 다 내 것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 그렇게 계획하셨어요. 이 땅에 있는 동안 다만 이 땅에 있는 동안은 그것을 부분적으로 사용하는 겁니다.
사용할 권리는 우리에게 있어요. 어떻게 사용해요? 기도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온갖 좋은 것이 거기에 있어요. 정말 엄청난 능력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사용해야 돼요. 우리가 엎드려 기도할 때, 기도에 무릎을 꿇을 때 하늘 문이 열리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선택은 내가 해야 돼요.
하늘에 풍성한 보화가 있는데 그거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거짓처럼 살다 갈 거냐 아무 능력 없는 무능력한 사람처럼 늘 원망하고 불평하다 갈 거냐 아니면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이 땅을 돌파하면서 문제들을 돌파하면서 최고의 삶을 살다 갈 것인가 기도할 것인가 말 것인가 결심하셔야 돼요. 제가 아무리 여기 목이 터져라 외치고 제가 울면서 여러분들에게 호소해도 안 하기로 작정하면 소용없는 거예요.
신앙은 실제적인 겁니다. 기도하셔야 돼요. 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엘리아는 구약의 최고의 능력 있는 선지자였어요.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엘리아의 특징, 구약의 선지자의 대표 주자, 그리고 가장 능력 있는 마지막에는 불말과 불병거로 타고 하늘로 승천한 최고의 지도자. 그 사람의 특징을 이렇게 기록해요.
야고보서 5장 17절에
엘리야는 우리와 성경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즉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않고 다시 간절히 기도했더니 비가 왔더라.
엘리야의 비결은 기도에 있었어요. 야고보는 그것을 간파하였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가 아니라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예요. 나중에 예루살렘 교회에 최고의 권위자가 됩니다.
그런데 이 야고보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낙타무릎이라고도 해요. 너무 엎드려서 기도해서 무릎이 무릎에 이 굳은 살이 먹여서 제 별명이 낙타 무릎 기도의 전문가입니다. 이분이 구약의 엘리야 선지자를 연구를 했더니, 엘리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뭐냐? 기도의 사람이었다. 간절히 기도함에 간절히 기도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셔서 공생애를 보내는 동안 그의 삶에는 매일같이 기적이 일어났어요. 병든 자가 나음을 얻고, 귀신이 쫓겨나고, 눈 먼 자가 눈을 뜨고, 앉은 매가 일어나고, 귀머거리가 듣고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고 죽은 나사를 일으켜 세우셨어요.
예수님도 기도의 사람이었어요. 예수님은 늘 기도하셨어요. 하나님과 교통하셨어요. 새벽에 기도하시고 밤을 지새며 기도하시고, 또 기도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물리시고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 마태복음 14장 23절.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가셨다. 저물며 거기서 혼자 계시더니 예수님도 기도하셨다.
예수님의 능력의 비결이 뭐냐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늘 영적으로 교통하는 사람에게는 능력이 있어요.
초대교회는 어떤 교회였어요?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의 여러 특징들이 있죠. 그중에 하나가 기도였어요. 그들은 모여서 기도했어요. 목숨 걸고 기도했어요. 그랬더니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고 그 능력이 초대교회에 흘러넘쳤어요.
초대교회만큼 기적이 많은 교회가 없었어요. 사도행전 4장 31절에
비기를 다함에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의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예루살렘 교회가 모여서 기도했더니 모인 곳이 진동했다. 여러분 지진을 경험해 보셨어요? 우리나라는 지진이 없어요. 근데 제가 어렸을 때 제 충청남도가 고향인데 홍성이라는 곳에서 지진이 일어났어요. 간의 지진입니다만 제가 어렸을 때 막 깜짝 놀랐어요. 흔들리는 것을 제가 경험했어요. 푹 흔들리는 거예요. 아니 기도했더니 땅이 흔들렸대. 이렇게 야 이런 일도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16장 25절 26절에는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신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이건 큰 지진이에요. 그래서 옥터가 움직이고 막 땅이 움직이는 거예요. 그리고 문이 다 열려버려. 그리고 사람들을 메고 있던 모든 이 착고가 다 풀어져버리는 거예요.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난 것이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경험한 거예요.
여러분 기도는 이런 역사를 일으킵니다. 그 초대교회의 기도와 오늘날 우리의 기도가 다르지 않아요. 다 똑같은 성령을 힘입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겁니다.
초대교회는 믿고 기도했고요. 오늘 우리는 그냥 종교적 기도를 하는 거죠. 우리가 참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으로 엎드려서 초대교회와 같은 심정으로 기도하면 우리 삶에도 이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믿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첫마디를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인도해 주세요. 이게 다 기도예요. 길을 가다 가다가 기도할 수 있어요. 괜히 멍 때리고 가지 마세요. 그러다가 어디 부딪혀가지고 정신 바짝 차리고 그 시간에 기도하세요. 메트로 타고 가다가 기도하세요. 요즘 마스크도 끼고 다니니까 마스크 끼고 기도하면 남들이 알아보지도 못해요. 그리고 요즘은 얼마나 감사한지 모두 다 여기다 이어폰 끼고 말을 하기 때문에 막 사람들이 다 혼자 다니면서 중얼거려 무슨 좀비가 돌아다니는 것 같아 가만히 보면 전화하는 거예요. 우리가 가면서 방언으로도 기도하고 시간 때때로 걸어다니면서 특히 파리는 다녀봐야 누가 한국 사람들을 한국말을 알아듣겠어요?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오늘 역사해 주세요. 내가 지금 학교 갑니다.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시라.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멘 간절히 기도해야 됩니다.
간절이가 뭔지 알아요? 간이 저리도록 간 절여봤어요. 간 저리도록 그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이 역사가 일어나는 거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임하여 기적이 일상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면 된다니까요.
금년은 기도 대행진의 해예요. 표어만 딱 정해놓고 그건 뭐 목사님이 알아서 대신 해주겠지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각자 여러분들이 해야 될 기도의 몫이 있어요. 자기 건 자기가 해요.
그러면 정말 놀라운 삶이 펼쳐집니다.
저는 우리 교회 목회 20년 하면서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고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였어요. 여기까지 어떻게 왔겠어요? 엎드려서 기도할 때 하나님이 자로 잰 듯이 너무나도 정확하게 은혜롭게 인도해 주셨어요.
두 번째로 베드로의 모습은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4절에 보면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주목하여 이르되
지금 베드로와 요한이 이제 기도하러 딱 올라가는데 거기에 앉은뱅이가 앉아 있었어요. 이 사람은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날 거기 앉아서 하루 일당 누가 던져주는 거 받으면 오늘 재수가 좋구나. 오늘은 참 좋은 날이네. 그날 조금 수입이 적게 들어오면 오늘은 참 재수가 없는 날이네. 그렇게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았어요. 국어라는 것이 그의 운명인 줄 알았어요. 노숙자 같은 인생이에요. 소망도 비전도 없어요. 살아야 되는 의미도 없어요.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사는 거예요. 세상에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남에게 의지해서 사는 거예요. 누군가가 던져주지 않으면 굶어야 되는 인생 참으로 비참한 인생이 베드로와 요한이 지나가고 있었어요. 뭐 어떤 놈이 지나가는지 나는 상관없다. 오늘 심유로만 던져다오. 뭐 그런 마음으로 별 소망 없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베드로가 지나가다가 놀라운 일을 행한 거예요.
그 사람을 주목했다. 보통은 다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어떻게 휙 지나가죠? 휙 투명 인간 보듯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휙 지나갈 수 있는 일이 모든 사람이 그렇게 지나갔어요.
그런데 갑자기 지금 이 순간에 베드로는 이 사람을 주목하기 시작한 거예요.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베드로에게도 그동안 여기 늘 드나들었지만 그냥 지나가는데 그날은 왠지 성령께서 감동하신 겁니다. 주목했어요. 자세히 쳐다본다는 뜻이에요. 그냥 본 것이 아닙니다. 자세히 본 거예요. 그의 형편을 살핀 거예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어. 그냥 투명인간으로 유령처럼 생각하고 지나갈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까 이 사람도 사람인 거예요.
이 사람도 처음에 태어났을 때는 누구에겐가 소중한 아들이었던 거예요. 이 사람 마음속에 있는 상처도 보였어요. 절망도 보였어요. 그리고 그도 하나님께서 이마고데이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한 하나님의 소중한 피조물임이 보였어요. 그때부터 기적이 일어나는 겁니다. 이 사람도 하나님의 백성이로구나, 이 사람도 하나님의 사람이로구나 이 사람도 이 은혜의 복음을 경험해야 될 사람이구나 하는 마음이 베드로에게서 일어난 겁니다.
휙 지나갈 때는 몰라. 자세히 보면 마음이 일어나요. 우리 말에도 견물생심 뭘 보면 마음이 생긴다고 하잖아요. 자세히 보는 습관을 가져야 돼요. 그러면 보는 우리가 한 5초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움직입니다. 마음의 감동. 부부 간에도 5초만 들여다보고 있으면요. 눈과 눈을 마주쳐라. 지금 하라곤 안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근데 마주치면 5초를 못 보는 경우가 있어요. 갑자기 막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막 순식간에 마음에 어떤 새로운 마음이 일어납 아닌 것 같으면 옆에 부부를 한번 쳐다보세요. 눈 이렇게 쳐다보며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주목해서 볼 때 마음이 움직여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다니까 집에 가서 보세요. 집에 가서 우리 한번 봅시다 하고 보라고 마음이 움직여요.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떤 것을 볼 때 주목해서 자세히 보는 습관을 가져야 돼요. 그러면 이 감동이 일어나면서 때로는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오기도 해요. 우리나라 유명한 시인 가운데 나태주 시인이 있습니다. 풀꽃이라는 시예요. 저는 처음에 그 시를 벌써 한 10년 정도 전에 봤던 것 같은데 이 짧지만 더 너무 정말 감동적인 시였어요.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짧은 이게 우리 한국 사회에 얼마나 감동을 많이 줬는지 교부 문교에서 교부 문교에서 이 시를 선택해서 딱 입구에 해놨어요. 최고이십니다. 그리고 또 이 정도는 나도 할 것 같잖아요. 나도 할 것 같은 근데 원래 그런 시가 좋은 시입니다.
나도 할 것 같은 게 잘 되지는 않죠. 저는 개인적으로 이 나태주 시인을 잘 몰라요. 근데 너무 씨가 소박하면서도 너무 이 가슴에 와닿아서 이분에 대한 걸 탁탁 시간 있을 때 찾아서 유튜브까지 다 방송에 나온 것까지 다 봤어요.
근데 이분은 첫째는 크리스찬입니다. 그 부인 때문에 예수를 믿었어요. 그 사모님이 아주 신실한 교인인데 남편을 위해서 기도해서 이분이 크리천이 된 거예요. 교장 선생님이기도 하고 그러고 바로 우리 앞동네 사람입니다. 제가 우리 집에 가가지고 이렇게 보면 우리는 배산임수 그래가지고 뒤에 산이 있고 저희 집 지대가 높은데 쫙 들판이 펼쳐지면서 고 냇가 시냇가 앞동네가 기산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거기서 태어나셔가지고 어릴 때 우리 뒷동네 시초라는 동네로 이사를 와서 살았더라고 아마 어쩌면 지나가다 한 번쯤 봤을지도 몰라요.
어쨌든 중요한 건 아닙니다만. 근데 이분이 이 시를 쓰게 된 동기가 있대요. 초등학교 애들을 가르치다 보니까 여러분 맨날 걔네들 붙들고 그 어린애들 요즘 애들이 어린애들이 또 얼마나 말을 안 듣습니까? 우리 어릴 때는 그래서 선생님이 무서웠거든요. 선생님 모든 선생님이 다 멍둥이 하나씩 들고 들어왔어요.
우리 시골은 그랬어요. 정신봉이라고 그래가지고 뭐 숙제가 점수 떨어졌다고 맞고 숙제 안 했다고 맞고 단체 기합 또 다 잘했는데 또 연대 책임을 물어서 막고 그래가지고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군대 가서 맞은 것보다 초등학교부터 쭉 학교 다니면서 맞은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통제가 얼마나 쉬웠는지 몰라. 근데 저도 이렇게 어릴 때 돌아보면 초등학교 때 참 시골에서 개구장이들이 많아요. 우리가 진짜 우리가 학교 끝나고 얼마나 개구장이로 놀았는지 학교 앞에 있는 어느 그 묘에 가서 다 거기서 싸우고 거기서 씨름하고 밤날 그러고 저녁 때 들어가고 그러니까 나중에 그 묘 주인이 학교를 찾아왔어요. 꿈에 조상이 나타나가지고 시끄러워서 못 자겠다고 이놈들 좀 쫓아달라고 아니 선생님한테 그랬다는 거예요. 귀신을 믿는 건 아니지만 하여튼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런 개구장이들을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사랑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말 안 듣고 막 사랑 내 자식도 사랑이 안 돼요. 말 안 들으면 박 지우고 받고 싶고 그런데 어떻게 걔네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근데 이분이 그 개구장이 아이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화도 나고 여러 가지 감정이 있는데 걔네들을 그냥 우리 이 시대로 자세히 봤더니 이쁜 구석이 있더라는 거예요.
저렇게 개구장이도 그리고 오래 쳐다봤더니 이쁘기만 한 게 아니고 사랑스럽더라는 거예요.
이 진리 같은 것을 깨달은 겁니다. 그리고 너도 그렇다. 모든 사람이 그런 거죠. 정말 감동적인 시예요. 우리가 세상을 볼 때도 그런 게 필요합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보고 휙 지나가지 말고 우리가 누군가를 만날 때도 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근데 기왕 만나려면 마음을 열어놓고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만나면 거기서 역사가 일어납니다.
치유도 일어나고 회복도 일어나고 기적도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주목하여 봐야 합니다. 베드로가 지금 그렇게 봤다는 거예요. 주목해서 보니 불쌍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갑자기 하나님 마음이 아버지 마음이 오는 거예요. 자세히 봤더니 사랑스러운 거예요. 더 자세히 봤더니 하나님이 이 아들을 위하여 자기 아들을 희생시킨 존재라는 것이 보이는 거예요. 이런 감정이 순식간에 베드로에게 일어났을 것으로 상상을 하는 겁니다.
예수님도 기적을 베푸실 때는 그랬어요. 마태복음 14장 14절에 보면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보셨더니 불쌍한 마음이 된 거예요.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주시니라.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면 기도하게 되고 그 사람을 위해서 움직이게 되고 그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그런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다음에는 그 기도하고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고 그걸로 기적이 일어나는 건 아닙니다. 마지막이 종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해서 6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주느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아멘 베드로가 주목하여 본 다음에 처음에 먼저 한 얘기는 나를 좀 봐라.
우리를 보라. 그때 이 병인에게 어떤 마음이 생겼을까요? 누구도 말을 걸지 않았어요. 돈만 좀 던져주고 갔어요. 그걸 기대하고 있었어요. 누구나 이 사람을 투명인간 취급해서 인격적 대우를 하지 않았어요.
근데 갑자기 우리를 보라 대화를 시도하는 거예요.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이게 이 사람이 뭐지? 이게 도대체 무슨 시추에이션이야? 이 사람이 나를 사람 취급하네. 이 사람은 특별히 더 많은 돈을 주려고 하는가? 아마 순식간에 그런 생각이 들었을 거예요. 그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라. 뭐가 없다고 이 사람이 기대한 건 은과 금이잖아요. 내게 있는 것을 내게 주노니.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돈이나 줄 것이지 사람 놀리는 거야. 원하는 건 안 주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주는 거예요. 기대하지도 않았어요. 원하지도 않았어요.
그럴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내가 원하는 게 있어요. 내가 원하는 것은 돈 몇 푼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더 놀라운 걸 주십니다. 미련한 사람은 내가 원하는 거 못 받았다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시험 들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더 놀라운 축복입니다. 이 사람은 갑자기 일어나서 걷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의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난 거예요. 운명이 바뀐 거예요. 나는 평생 이렇게 살다가 죽는구나 라고 운명적으로 받아들였던 자기 인생이 뒤집어져 버렸어요. 다리에 힘이 들어오더니 베드로가 잡아 일으키니까 여러분 평생 한 번도 펴 본 바가 없는 다리가 펴진다는 게 여러분 상상이 갑니까?
그런데 에너지가 들어오더니 잡아일으키니까 모든 이 근육과 신경이 쫙 원위치가 되면서 벌떡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예요.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가 원하는 걸 주시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막으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시 그분이 주시는 것이 최고예요. 그걸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돼요. 그런데 그때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느냐?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났어요.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능력의 이름이고 그 이름은 권세 있는 이름이에요.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시는 동안 그 이름으로 일하셨어요.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거룩하신 이름을 내게 주셔서 내가 그 이름으로 일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예수님이 다른 천사들, 천사들보다 탁월하게 되심은 훨씬 뛰어나심은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받으셨으니 예수님이 이 땅에서 그 많은 사역을 하신 중요한 키워드가 뭐냐 예수의 이름이라는 거예요. 그 이름을 주님은 제자들에게 주셨고 지금 베드로가 그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그 이름을 저와 여러분에게도 주셨어요. 사용하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이 소중한 이름을 뭘 위해 사용합니까? 겨우 식사 기도할 때 밥 잘 먹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걸로만 쓰는 거예요. 이 이름은 주님이 사용하셨던 이름, 사도들이 사용하셨던 이름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으로 못할 일이 없는 하나님의 뜻에 합한 일이면 이 이름으로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역사하시는 거예요. 마치 황제의 직인 것 같은 거예요. 그게 딱 박히면 그건 그냥 일사천리로 실행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이 이름을 사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이 이름을 사용하는 크리스찬이 있는가 하면 사용하지 않는 크리스찬이 있어요. 이 이름을 믿고 사용하십시오. 그러면 베드로에게 일어난 역사가 우리에게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는 아무 능력이 없는 사람이에요. 저와 여러분이 똑같습니다. 베드로와 우리가 똑같은 거예요.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기적이 일어나고 어떤 사람은 늘 무능하게 살아가고 예수 이름을 정말 믿고 사용하느냐 아니냐 오늘부터 여러분 그냥 이걸 종교적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영적 실제예요. 우리가 종교 그러면 차라리 저기 그 수도원에 들어가거나 불교인들처럼 돌을 닫거나 뭐 이런 게 멋있지 기독교는 그냥 단순한 종교가 아닙니다.
이건 영적 실제예요. 그 말씀이 그대로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러면 내가 이루리라 이걸 믿는 거예요. 그리고 그 삶에서 그걸 실천하고 그걸 경험하는 삶이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들 예배 끝나고 어떤 분들은 나 너무너무 아파요. 그렇게 해서 오는 분들이 있어요. 지금 주일날은 약국도 없고 당장 걸을 수도 없고 이런 일들이 있을 때 기도해 달라고 하면 인간적으로는 참 난감합니다. 내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이렇게 좀 나눠주면 좋겠고 뭐가 좀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근데 그냥 나잖아요. 그래도 기도해달라고 하니까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해 줄 때가 있어요. 단 한 가지 저는 믿습니다. 주님의 이름이 역사하신다는 걸 그리고 그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걸 그리고 만약에 안 이루어지면 내 책임이 아니라는 것도 믿어요. 진짜 그러니까 굉장히 뻔뻔하게 기도를 해줘요. 근데 상당한 경우에 하나님의 역사가 그 즉각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렇다고 내가 뭘 뭐가 있는 게 나간 것도 아니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내가 이렇게 싸놓고 좀 주고 약 주듯이 우리에게는 그런 게 없어요. 우리에게 있는 것은 베드로에게 있었던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용해서 기도하고 어떤 상황에 적용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런 권세를 주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시고 긍휼의 마음을 품으시고 자세히 보셔야 돼요. 상황을 그리고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초대교회는 기적이 일상화된 삶이었어요. 누구든지 기도하면 역사가 일어났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초대교회나 지금이나 다른 게 하나도 없어요. 기적이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예수의 이름을 믿고 사용하는 사람을 통해서 일어나야 정상입니다. 응답이 와야 정상인 거예요. 만약에 우리가 이렇게 믿고 기도하고 성령 충만해서 움직이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게 기적이야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게 이상한 일 아니겠어요?
여러분 지금까지 신앙생활하면서 나는 기도 응답받은 적도 없고 뭐 그런 역사가 한 번도 없었다. 그 사람은 기적의 사람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참 그런 기적 말고 정말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가 우리의 삶에서 빼곡하게 차고 넘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부르셨어요. 금년 한 해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 특히 이 디아스포라로 이민자로 해외에서 사는 삶이 힘들고 어렵지만 그럴수록 하나님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그런 역사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넘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