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 신비주의와 불교
김은규
성공회대학교 구약학 교수
* 본 논문은 (사)한국불교학회 2014년도 추계학술대회 “불교와 세계종교의 신비사상과의 대화”에서 발표된 내용을 수정·보완한 것임.
Ⅰ. 머리말
이 글은 유대교 신비주의의 기원을 기원전 6세기 중엽 구약의 묵시문학에서 찾으며, 중세의 카발라와 근세의 하시디즘의 신비주의 전통의 맥락을 살펴보며, 불교의 신비사상과 관련지어 연구하는 것이다.
유대교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뿌리가 되는 종교로서, 지금부터 약 3,200여 년 전에 태동했다. 고대 유대인들은 지금의 팔레스틴 지역에 위치해 살았는데, 이 지역은 소위 4대 문명이라고 하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제국과 이집트 제국의 틈바구니에 있는 매우 작은 땅이었다. 지정학적인 이유로, 제국들은 항시 주변 약소국가들을 전쟁으로 점령하거나, 포로, 봉신으로 억압했다. 또한 팔레스틴 지역은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만나는 길목이며, 서쪽으로 지중해와 동쪽으로는 거대한 사막이 펼쳐짐으로 해서, 전쟁과 척박한 자연과 기후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사면초가의 현실에서 출발했다. 이러한 지정학적 역사는 그들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들을 주었고, 유대인들은 2,500년 동안 나라가 없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점까지 역사적, 사회적, 그리고 종교적 고통을 감내하며 민중으로 생존해 왔다. 이러한 인종적, 사회적, 종교적인 박해의 배경 속에서 신비주의가 나왔다. 본 연구는 유대교 신비주의와 불교의 신비주의 사상을 관련지어 모색하는 것이다.
II. 신비주의 : 불교, 유대교
먼저 신비주의에 대한 개념을 보기로 하자. ‘신비’(Mystic)는 그리스어로 ‘눈과 귀와 입을 닫는다’는 종교적인 의미로, 절대자, 무제한 자, 신과의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접촉 체험에 기초하고 있다. 기독교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cquinas)는 신비주의를 “cognitio Dei experimentalis,” 곧 체험을 통한 하나님의 지식이라고 했다. 그는 하나님 또는 신비적 실재와 직접 접촉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자아에서 근본적인 경험을 해야 한다고 한다.
신비주의에 대해 게하르트 베르(Gerhard Wehr)는 세 가지 유형을 제시한다.
“첫째는 황홀경(ekstasis)으로, 자아의식이 초개성적인 것에로 개방됨을 뜻한다. 도취적인 탈아 상태로 의식이 침몰하는 혼미함이 아니라, 영적인 잠재력의 각성이다.
두 번째는 합일(enosis)로, 절대자, 혹은 어떤 더 높은 차원의 존재와 경이로운 느낌으로 하나가 되는 체험이다. 세 번째는 비존재(me-on)로, 인간이 존재를 넘어서 순진한 無에 이르는 체험을 말한다. 신 자체는 상상이나 그 깊이에서 우리가 존재를 동일시함으로써 파악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마이스터 에카르트(Meister Eckhart)도 ‘신에 의해 인간이 변화된 상황으로 들어가는 유일무이한 체험’을 강조했다. 잉게(W. R. Inge)는 신비주의 개념을 “사상과 감정을 통해서 영원한 것 속에 유한적인 것이 존재하고, 유한한 것 속에 영원한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려는 시도”라고 규정했다. 신비주의는 일상적인 것에서 벗어난, 자기 초월성을 가지며, 신 또는 궁극자와의 합일을 경험하며, 유한자가 무한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을 가져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신비주의에 대한 또 하나의 다른 견해는 성직자라는 중재자 없이 직접 신성을 체험하고자 기존 전통적 교리를 넘어서고자 시도한다. 전통적 교리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신의 직접 계시 체험을 얻고자 한다. 필자의 견해로 이것은 종교권력, 성직자 권력에 대한 실망으로 일반 종교인들이 직접 신, 또는 절대자와의 체험을 원하는 것에서 나왔다고 본다.
한편, ‘불교와 유대교 신비주의’에 대한 연구는 김용표가 선불교와 유대교의 신비주의인 하시디즘을 비교하면서, 공(sunyata) 사상이 실천과 수행의 형태로 중국에 들어와 唯心思想, 無爲思想, 현세사상, 인본사상 등과 융합되어 형성되었고, 후에 絶對無(absolute nothingness)의 개념을 불교의 신비주의 사상과 연관 지은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신비주의에서 만남은 궁극적 실재와 깊은 합일을 성취하는 것으로 보고, 無心으로 표현되는 자신의 참된 자아인 자성과의 깊은 합일을 의미한다. 이러한 학문적 연계의 시도를 보면서, 불교 사상의 기본원리와 철학을 신비주의 입장에서 재조명해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두 종교 모두 신비주의와 신비 체험이 모두 궁극성과 수행에 있기 때문이다.
불교는 수행을 통해 도달한 궁극적 경지를 解脫(Vimoksa)이나 涅槃(Nirvana)이라고 표현하는데, ‘해탈’은 결박이나 장애로부터 벗어난 해방, 자유 등을 의미하고, 寂滅의 세계인 ‘열반’은 번뇌의 뜨거운 불길이 꺼진 고요한 상태를 의미한다. 불교의 기본적 수행법인 十業說의 궁극적 경지는 貪·瞋·癡의 三毒이 사라진 상태이며, 四聖諦說의 궁극적 경지는 八正道의 수행이 궁극에 이르러 삼독이 사라진 상태로 본다. 삼독이 영원히 끊어진 상태를 ‘열반’이라고 한다. 해탈은 五蘊이나 十二緣起에 실체가 본래 없음을 봄으로써 知的으로 해탈하는 慧解脫과, 팔정도의 正定을 통해 마음에서 번뇌를 완전히 없애는 心解脫의 두 가지가 있어서, 열반은 두 가지 해탈이 갖추어질 때 비로소 실현된다. 불교 수행의 최고의 경지를 표현하는 열반은 無貪, 無碍, 無癡의 세 가지 선업이 발생하며, 이러한 세계관의 전개, 생명의 약동을 의미한다. 위의 불교의 기본적인 원리와 궁극적인 경지를 볼 때, 신비주의적 합일과 깨달음과 체험을 자연스럽게 연관 지을 수 있겠다.
유대교 신비주의의 뿌리는 앞서 언급한 기원전 6세기경에 유대 왕조가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하여 포로로 잡혀가는 역사적, 민족적으로 고난받던 시기에 나온 黙示的 체험과, 십자군 전쟁 때 유대인들이 겪었던 사회적, 종교적 고통이 13세기에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에서는 ‘카발라’(Kaballah, 전통)라는 신비주의 운동으로 일어났다. 이후에도 14세기 초에 스페인에서는 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은 유대인과 이슬람에 대해서 대대적인 학살을 지속적으로 했고, 14세기 말에서 15세기에 걸쳐 가톨릭이 종교재판소를 만들어 유대인들에게 이단이라는 이유로 구금, 직업박탈, 재산 몰수, 화형 등으로 혹독한 박해를 가했다. 이러한 배경이 17세기에 카발라 전통을 이어받은 하시디즘(Hasidism) 신비주의로 발전했다. 이렇듯 유대교는 2,500여 년 넘는 유대인들이 겪었던 외부적 환경의 고통이 개인의 신비주의 사상과 체험에 집약되어 표현되고 있다고 하겠다.
Ⅲ. 구약의 묵시주의 : 유대교 신비주의의 기원
유대교 신비주의의 기원에 대하여, 대부분 유대인 학자들은 기원후 2세기경부터 보고 있으나, 필자는 기원전 6세기까지 소급하여 보고자 한다.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黙示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묵시 환상, 신화, 하늘과 땅을 다루는 우주적 질서, 이원론, 숫자풀이, 거짓 환상, 익명성, 비밀, 창조, 악의 문제, 빛과 어둠, 선과 악, 사탄, 죽음 이후의 삶 등을 말한다.
‘묵시’(apocalyptic)는 그리스어로 apokalypsis 즉 ‘계시’라는 의미에서 나왔다. 묵시 책들은 짐승, 유성, 지진, 괴물, 하늘과 땅, 신비스런 말-인간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니까 신의 계시 사건을 우주적이고, 초자연적이고 신비스러운 상징들을 통해 전달하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표현들은 기원전 2세기에 활짝 꽃을 피웠고, 기원후 2세기까지 지속되다가, 신비주의 전통으로 바통을 넘겼다.
이 묵시문학의 기원을 사회학적으로 밝힌 폴 핸슨(Paul D. Hanson)은 기원전 6세기 후반 경으로 포로기 이후 페르시아 제국 시대의 예언으로 위치시켰다. 고대 이스라엘은 기원전 1,000년경 다윗 왕에 의한 통일국가를 이룬 후, 922년 국가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된 채로 진행되다가, 기원전 587년 바벨론 제국이 유다를 침략하여, 멸망시킴으로써 왕정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으며 사회생활도 급격하게 붕괴시켰고, 일부는 포로생활을 해야 했다. 왕정 기간에는 예언자들이 나타나, 사회의 불의와, 심지어 왕과 제사장들, 재판관의 권력, 그리고 주변 제국들까지 비판하며 정의를 세우고, 사회적 약자를 변호했다. 하지만 유다가 멸망하고 강력한 페르시아 제국이 통치하는 상황에서 계속해서 비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쇠퇴하고, 묵시주의자들이 등장하면서, 현실적인 고통을 야훼(Yahweh)의 우주적 의지라는 용어로 변화시켰고, 그것은 환상(vision)으로 표현되었다.
스가랴 1장 8-11절
지난 밤에 내가 환상을 보니, 붉은 말을 탄 사람 하나가 골짜기에 있는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고, 그 사람 뒤에는 붉은 말들과 밤색 말들과 흰 말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천사님, 이 말들은 무엇입니까?" 천사가 대답하였다. "이 말들이 무엇을 하는지, 내가 너에게 보여 주겠다." 그 때에,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는 그 사람이 말하였다. "이 말들은 주께서, 온 땅을 두루 다니면서 땅을 살펴보라고 보내신 말들이다." 그리고 말에 탄 사람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는 주의 천사에게 직접 보고하였다. "우리가 이 땅을 두루 다니면서 살펴보니, 온 땅이 조용하고 평안하였습니다."
구약성서의 포로기 문헌에는 이런 꿈, 환상이 자주 발견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하는 현실적 고통에 대리로 응징하고 심판해 줄 것을 자신의 신에게 요청하는 표현이라 하겠다.
핸슨에 의하면, “묵시는 현재 질서가 희망이 없고, 타락한 혼란한 상태에 빠졌을 때 투쟁의 힘에 의해 나온 문학”이라고 한다. 그래서 야훼 주권의 우주적 환상을 보임으로써, 현실에 동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예언자들이 현실에 대한 개혁의 가능성을 보고 비판한 것은 낙관주의를 가졌지만, 묵시 상황은 국가를 잃은 상태에서 박해와 억압과 깊은 좌절에서 나온,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현실 도피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를 이겨내기 위한 유대인들만의 내면적인 회복과 위로, 그리고 희망을 담아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현실의 고통을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 가질 수밖에 없었고, 새 창조, 새 하늘, 새 땅에 대한 기대를 신화적 언어로 사용했다. 묵시주의자들은 위기와 박해와 두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이 유대 백성에게 주는 확신들을 묵시를 통해 주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것은 종말적 희망이며, 해방의 신학이었다. 그 후 유대 신비주의 전통은 기원후 1~2세기 때 로마제국의 박해시대, 십자군 전쟁 시대, 중세와 근세의 기독교의 유대교 박해시대로 이어진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구약성경을 경전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묵시적 환상의 체험을 알고 있었고, 자기들이 현재 겪는 사회적 종교적 박해와 고통, 그리고 인종적 차별을 내면화 시키면서 신비주의로 이어갔다.
Ⅳ. 중세 시대의 카발라(Kabballah)
1. 유대교 신비주의 이전의 경전들
유대인들은 1천여 년에 걸쳐 만든 탈무드(기원전 135년~기원후 1035년), 미쉬나(Mishna)를 통해 성서를 재해석했고, 農法, 종교절기와 축제, 결혼과 이혼의 가정생활, 형법과 민법 등을 다루는 법률들을 반복하여 가르쳤다. 할라카(Halakah)도 종교, 윤리, 민법, 형법 등의 율법을 다루고 있다. 아가다(Agadah)는 ‘전승지식’ 또는 ‘전설’을 뜻하는데, 신학적 사고, 전설, 민속, 도덕, 윤리, 기도, 꿈 해석, 인간과 우주에 관한 철학 등이 담겨있다. 이렇듯 유대 신비주의자들은 탈무드의 가르침을 신비적 체험의 교리와 실천으로 삼았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신비주의와 신비체험을 유대교 안에서도 분리시키지 않고 한 부분으로 여겼다.
카발라는 바로 이 전통에서 나왔다. 위에 언급된 책들은 대부분 초기 유럽사와 중세까지 수백 년에서 천여 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어쩔 수 없이 팔레스틴을 떠나 지중해 지역과 유럽 전역으로 흩어진(diaspora) 유대인들은 구약성서를 핵심으로 지키면서, 이를 확장시켜, 다양한 사상들과 철학, 그리고 해석의 자유를 가졌다. 그것은 새로운 곳에 가더라도 그 지역의 사상과 문화들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가종교가 된 이후 성경 이외의 다른 사상과 문화와 종교를 배척하며 중세, 근세, 현대까지 이르는 것과는 완전히 대조가 된다.
16세기의 카발라 신비주의가 번성하게 된 배경에는 11~12세기와 15세기에 디아스포라 유대인에 대한 대박해가 있었다. 바로 이 시기에 죽음의 공포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에게 희망을 보여준 자들이 바로 카발라 신비주의자들이었다. 카발라는 히브리어 ‘받아들인다. 수용한다’는 의미의 어근을 갖고 있는데, 카발라는 ‘전통’(tradition)이라는 의미로 본래 후손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가는 종교적 가르침을 말한다. 카발라는 유대의 율법들의 코드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서 무엇을 원하는지에 관해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카발라는 더 깊게 들어가 하나님의 본질을 체험하려는 것이다.
카발라 신비주의는 경전들을 연구하여 언어 속에 숨은 뜻을 발견하여 신의 본성을 탐구하기 위해 명상 기도와 무아경 기도를 실현코자 했으며, 토라를 심리학적으로 해석하였다. 유대교 신비주의자들은 토라와 사회의 구조적인 불의를 비판하고 개인과 사회의 도덕성을 회복하려는 예언서, 지혜를 가르치는 성문서를 기본으로 하여, 이들 문자에 집중하여, 개인의 실존과 신의 계시를 추구했다. 카발라 신비주의는 다양한 주문과 마법공식과 의식을 행했다. 특히 12~13세기경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에서 카발라 신비주의가 부흥했고, 이집트, 독일, 프로방스와 스페인에서 널리 퍼졌다.
13세기에는 카발라가 유대교 신비주의와 동일시될 정도이었다. 그래서 세대에서 세대로 내려가면서 신비적 비밀들은 계속해서 ‘수용되었다.’ 하지만 가톨릭은 이 카발리즘의 마법을 악마적인 것으로 다루었고, 유대인들이 행하는 마법도 신성모독으로 보았으며, 이것을 약점으로 삼아 가톨릭의 종교권력은 종교재판을 통해, 유대인들이 마법을 행한 죄로, 박해와 화형을 시켰다.
2. 카발라 신비주의 사상
카발라는 어떤 개인의 통찰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다양한 이야기들과 성인들이 어떻게 삶과 궁극적인 가치들을 추구했는지를 신비적인 체험들 또는 환상들, 그리고 여기에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기반으로 모은 책들이다. 그래서 카발라의 가르침은 통전적이며, 전통적인 종교관을 확대하고 발전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카발라 신비주의자들은 오직 카발라 상징세계의 신비를 터득한 사람만이 토라의 진실 되고 깊은 내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카발라는 존재론과 우주론을 담은 감각의 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통찰력에 기반을 둔 사색적인 철학이 아니며, 인간의 이성에서 나온 이론도 아니다. 카발라는 신성, 그리고 하나님과 그의 창조물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이다. 카발라는 생명, 창조, 영혼의 비밀들이 여러 층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벗겨내는 과정이다. 카발라 신비주의자는 신의 궁극적인 계시를 담고 있다고 보는 토라를 파고들어, 그 내면적 의미와 목적, 영향 등을 밝히면서 해법들을 찾고자 했다. 몸은 영혼 없이 기능할 수 없듯이, 영혼도 몸이 없이는 효과를 가질 수가 없다.
이런 방식으로 토라의 영혼(토라의 마술적인 부분들)도 토라의 몸(율법, 십계명, 실천 계명들)과 떨어질 수 없다고 보았다. 이렇게 권위 있는 신비주의는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지식과 이해를 추구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으며, 동시에 하늘 위에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땅은 無(there is nothing else)로 여겼다.
불교의 禪의 세계를 보면, 선은 자기 존재의 본성을 꿰뚫어 보는 기술이며, 속박으로부터 자유로 향하는 길을 가리키며, 선의 궁극적 목표는 깨달음이라는 체험에 있다. 깨달음이란 비정상적인 마음의 상태나, 황홀경 상태도 아니다. 깨달은 사람은 이 세계에 대하여 마음이 열려 있고 상응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에 더 이상 집착하기를 그만두고 공으로 되어 순응하는 태세로 되기 때문에, 마음이 열린다. 곧 실상에 대한 전체적 인격의 완전한 깨어남을 의미한다. 깨달은 사람은 탐욕이나 두려움과 같은 왜곡됨이 없이 대상을 보는데, 궁극적인 사항을 관찰함으로써 지식과 지혜가 혼융 일치되는 진리의 세계가 곧 정신궁극의 세계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불교의 궁극적인 단계는 흔히 유대교를 포함한 종교들의 신비체험에서 나타나는 황홀경 체험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깨달음을 보게 하는 점이 차이라 하겠다.
유대교 신비주의자는 진리에 대한 지성적인 확신을 가졌고, 인간 능력의 한계도 알았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전지전능함도 가능하면 지식과 이해를 갖는 감각으로 깊게 이해하고자 했다. 카발라는 우주와 세계를 여러 층으로 보았다. 유대인 철학자 마이모니데스(1135~1204)는 하나님은 ‘끝이 없다, 무한함’이라는 뜻의 ‘아인 소프’(Ein-Sof)라는 말을 찾았다. 중세시대에 카발리스트들은 아인 소프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했다. 아인 소프는 인간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곳을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인 소프에 이르기 위한 단계들을 왕관, 이해, 자비 등의 용어로 말하고, 인간의 명상과 도덕적 행위를 요구한다.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조차도 제한적인 신으로, 무한한 신인 아인 소프에 종속되어 있다고 보았다.
김용표는 유대교 신비주의의 최고 정점에 있는 ‘아인 소프’에 대해 “모든 존재에 편만한 신의 偏在性과 現存性을 믿는 데서 시작하여, 정신 집중과 자아의식의 無化와 消滅을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무한자(Ein-sof)와의 만남을 지향하는 종교”로 규정한다. 그는 이어 선불교와 유대교 신비주의의 철학적 배경에 대하여, “궁극적 실재와 궁극적 체험의 不二性이라는 특성이 있는데, 선불교의 절대무와 유대교 신비주의의 무한자(Ein-sof) 는 궁극적인 것의 불이성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모두 우주적 활동과정”으로 보았다.
카발라는 히브리어 문자의 신비적인 가치에 중점을 두는 실천적 카발라와, 철학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사변적 카발라로 나뉜다. 특히 전자는 마법적 지배를 목적으로, 영적 세계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데 관심을 가지고 신과 그의 천사들의 이름과 역할을 활용하여 힘을 불러낸다.
1) 실천적 카발리즘
‘메르카바’(Merkavah) 신비주의는 초기 유대교 신비주의의 중요한 흐름이었다. 메르카바 신비는 신성한 왕관, 또는 전차(merkavah)는 구약 에스겔서의 첫 장에 나온다. 이 유형의 신비주의가 랍비문학(탈무드와 미드라쉬)에 영향을 주었다. 메르카바는 신의 보좌, 신의 전차라는 의미로 에스겔 1장26~28절에, 예언자가 신을 체험하는 것을 묘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하늘이 열리고, 내가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다. 나는 북쪽에서 강한 폭풍이 불어오고, 큰 구름이 밀려오고, 불빛이 계속 번쩍이며, 불 속에서 금붙이의 광채와 같은 것이 반짝이었다”(1:4)고 표현한다. 그리고 예언자는 신의 전차와 신의 권좌를 말한다.
메르카바의 신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일곱 하늘을 통과해야 하고, 천상의 홀, 천궁 일곱 개를 통과해야만 한다. 그 여정은 금식을 하고, 찬송과 기도를 반복, 암송하는 것이다. 무아경의 상태에 도달하면, 악마 또는 악령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부적과 마법의 주문들을 암송한다.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어려운 주문들을 하며, 죽음의 위협까지도 받는다.
메르카바 신비주의는 유대 신비주의에서 가장 단순한 황홀경의 신비주의 형태이다. 거의 천년 동안, 성서의 한 구절을 굳게 믿고, 오로지 신성을 만나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몸과 마음을 바쳤다. 그래서 이들은 찬연한 신성을 경험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우주의 불 속으로 자신을 내던졌기에, 이들의 신비주의는 교리보다는 영적 발전과 완성에 집중하였다.
실천적 카발리즘은 더 이상 신비가가 신의 보좌에로 상승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 대신 기도에 전념하였다는 점이다. 이 실천적 카발리스트들은 일정한 용어의 신비적인 의미에 관심을 가졌으며, 그래서 이들의 기도문과 찬송문에 들어있는 모든 단어들을 數로 생각했다. 핵심적 교의는 첫째, 신은 너무나 높이 고양되어져 있어서 인간의 마음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신의 성스러움과 위대함은 정형(定形)이 없고, 만물 속에 감추어진 신의 존재로만 이해된다. 그러나 인간과 천사들이 신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신은 그의 영광이 신성한 불 또는 빛의 모습으로 형상을 취하게끔 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예언자나 신비가들 만이 체험할 수 있다고 하였다. 비록 신에게 직접 다가갈 수는 없지만, 신비가는 자신을 신의 영광(Kavod)과 합일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실천적 카발라는 유대의 율법들의 코드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서 무엇을 원하는지에 관해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카발라는 더 깊게 들어가 하나님의 본질을 체험하고자 했다. 그 코드란 다름 아닌 히브리어 문자와 숫자의 조합이다. 유대교 신비주의는 에덴동산(천국)에 들어가려는 방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랍비들은 지혜의 신비한 통로를 32개로 보았는데, 그것은 22개의 히브리어 문자에 10개의 정점을 합한 것이다. 이들은 우주는 無로부터 나온 창조의 결과가 아니라, 아인 소프로부터 방출된 속성, 즉 세피로트(Sefirot)에 의해 이루어진 복합 작용의 결과라고 보았다. 세피로트는 유한한 우주와 무한한 신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세피로트는 히브리 알파벳 22자를 신성한 도구로 보고, 만물의 기초라고 보았다.
2) 사변적 카발리즘
사변적 카발리즘은 12세기의 프랑스의 프로방스에서 나와 14세기에 스페인에서 그 절정에 이르렀다. 독일의 유대인들이 억압과 고통스러운 농노 생활에서 그 도피처로 신비주의에 몰입했다면, 이 기간 동안 프로방스와 스페인의 유대인들은 훨씬 덜 고통받았고, 그만큼 사치스러운 사변을 향유할 수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상태를 변화시키기 위하여 부적이나 황홀경 체험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다. 이들은 신이 세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顯現(드러냄, 발출)하고 있다고 이해했다. 그들은 토라의 배열과 조직에 창조 세계가 반영되었다고 보았다. 이를 근거로 신적인 우주와 세계를 四界로 구분하였다. 제1계는 태초에, 감추어진 신이 토라를 매개로 자신을 原形의 형태로 현현한다. 세피로트는 신이 현현하고 머무는 세계이다. 여기에는 신의 무한한 에너지가 원형적 표현 형식 안에 존재계 상의 만물에 대한 모델이 된다. 이때 히브리 알파벳의 자음들이 일련의 모든 가능한 조합과 순열로 존재했다. 신이 혼돈의 질서 속에 현현했다.
제2계에 신은 혼돈들과 함께 고착했고, 브리아(briah)로 불리는 창조계로서 세피로트의 빛으로부터 형상을 취한다. 여기에는 경건한 순수 영 (spirit)들과 우주에서 가장 높은 등급의 천사들이 거주한다. 제3계는 에트시라(yetsirah)로 불리는 10개의 천사 군단이 등장한다. 말라킴, 아렐림, 카오트 등의 이름을 가진 천사들은 ‘세계의 왕자,’ ‘존재의 천사’로 메타트론의 지휘를 받는다. 영혼들을 분류하는데, 영혼의 최고 단계는 네샤마 (Neshama, 영 spirit, 영혼 soul)라 하였고, 그 아래의 루아흐(ruah, 바람, 영)는선과 악의 본질을 결정짓는 도덕계, 그 아래는 동물적 삶과 욕망에 해당 하는 네페쉬(Nefesh, 생명, 숨, 호흡)로 보았다. 제4계는 물질과 감각의 세계로 보았다. 토라가 현재의 모습으로 된다. 아담이 4계에 등장하는데, 그는 에덴동산에서 인간의 원형으로, 빛의 옷을 입고 등장한다. 여기서 아담은 추방되어 사막을 떠도는 아담이 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무한에서 유한으로 일련의 점진적인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박해받고 유랑할 때마다, 신이 내 안에 내재한다는 의미의 쉐키나(Shekina)가 자신들과 함께 했다고 여겼다. 이 쉐키나는 네샤마(neshamah), 즉 인간의 혼(soul)이기도 했다.
카발리즘의 두 분파인 실천적 카발리즘과 사변적 카발리즘은 1280~1290년사이에 스페인에서 조하르(Zohar)로 통합하여 편찬했다. 그리고 조하르는 영지주의와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일반 주석가들은 토라의 율법과 이야기를 해석하지만, 신비주의자들은 우주의 비밀스런 법칙들과 하나님의 비밀까지도 밝히려고 상징들의 체계를 해석하려고 했다. 유대인들은 스페인에서 추방되었을 때, 조하르를 가지고 갔다. 이후 2 백여 년이 흐른 후, 사변적 카발리즘은 신이 만물에 내재해 있다는 스피노자의 범신론에 영향을 미쳤다.
3) 카발라 교리
카발라 교리는 ‘하나님은 지혜롭다, 선하다’라는 표현은 인간적인 표현이며, 인간의 경험 밖의 영역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카발라 신비주의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그 감추어진 신비(비밀)에 도달한다고 보았다. ‘호크마’(지혜)와 ‘비나’(이해)와 지식(다아트), 자비(헤세드), 용기(그브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카발라 신비주의자는 인간은 10개의 정점(쓰피로트)의 내용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 자비로우면 그는 자비의 정점을 향해서,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하게 된다고 본다. 그러나 10개의 정점이 10개로 분산되는 것은 아니며, 하나로 집중됨으로써 신비의 경험을 한다. 이들이 합쳐져서 가운데로 이어지는 정점이 ‘티페레트’(아름다움)이다. 오른쪽은 남성, 하나님의 심판, 왼쪽은 여성,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눈다. 맨 아래의 말쿠트는 하나님의 왕국이 세상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지혜의 실천, 기도, 토라 공부, 진리의 실천을 통해 각 정점에 도달한다. 인간은 부정한 악령의 껍데기가 있어, 이를 벗겨 내거나 쓰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거룩한 정점에 이르러 악령을 물리친다고 본다.
카발라 사상의 핵심은 ‘아인 소프’(Ein Sof), 열 세피롯(the Ten Sefirot), 그리고 카발라의 생명나무를 말한다. ‘아인 소프’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하면, “끝이 없는”(without end)의 의미를 갖는데, 카발라에 따르면, 하나님의 본질은 묘사할 수 없는 초월성으로 시간과 공간의 경계들의 범주로는 도달하지 못하는 영역을 말한다. 그 우주 영역과 직접 상호 교류할수 없기 때문에 열 발산을 통해서 우주와 소통이 가능하다. 이것을 열 세피롯트(the Ten Sefirot)라고 부른다. 그리고 커다란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질적인 것에 대해 응답을 보인다. 이것은 하위 질서로, ‘왕관’(Keter), ‘지혜’(Chokhmah), ‘직관, 이해’(Binah), ‘자비’(Chesed), ‘훌륭함’(Gedulah), ‘용기’(Gevurah), ‘미’(Tiferet), ‘승리’(Netzach), ‘토대’(Yesod), ‘주권’(Malkut)으로 배치했다. 열 세피롯트는 남성과 여성을 포용하며, 카발라는 하나님의 여성적인 측면들에 크게 관심 갖고 있다. 세피롯트는 우주, 그리고 인간 안의 모든 것과 연결하고 있다.
Ⅴ. 근세 시대의 하시디즘(Hasidism)
1. 하시디즘의 기원과 배경
히브리어로 ‘하시드’(hasid)는 경건한 사람이란 뜻이다. 기원전 6세기 이스라엘이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당한 후, 많은 수가 포로로 잡혀갔는데, 그 이후, 유대교에서는 ‘경건한 사람들’(Hasidim)이란 이름을 가진 공동체가 거듭 형성되었다. 기원전 2세기경 로마제국에 저항하여 마카비 혁명을 일으킬 때는 언제나 충실하고, 가르침을 위해서 싸우는 민중을 가리켰고, 18세기까지 메시아 왕국을 위해서 1500명이 고행 속에 성지 순례를 하는 사람까지도 ‘하시딤’이라 불렀다.
그 후 하시디즘은 중세의 카발라가 꽃을 피운 것에 근거를 갖고, 18세기와 19세기에 동유럽에 거주한 유대인에 의하여 확산되었는데, 신적 체험이 기존의 특권층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기도로 못 배운 대중들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일종의 봉기였다. 이 하시디즘 신비주의자들은 학자들의 궤변적 논쟁으로는 신의 존재 앞에 우리를 데리고 갈 수 없으며, 지식을 쌓으면 쌓을수록 경건해지기가 어렵고, 깊이가 없고, 마술적인 사람들에게는 보잘 것 없는 마술로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즉 하시딤은 과거 카발리즘의 한계를 비판하며, 일상의 경건한 삶 속에서 신의 모습을 찾으려 했다. 이것이 하시디즘 (Hasidism) 신비주의의 시초가 되었다. 즉 ‘신은 특권계층의 독점물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것이다’라는 민주주의적 사상을 표상했다. 하시디즘은 전통적 유대 율법주의자에 의한 가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동유럽의 유대인에게 급진적으로 파급되었다.
이러한 점은 신라시대 불교가 귀족화하고, 승려계급이 특권의식으로 왕과 상류층을 위한 종교로 변했을 때, 원효가 민중 속으로 파고들며, 대승불교의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다 준 것을 상기시킨다. 김용표는 “선불교도 세속과 열반을 둘로 보지 않는 대승불교의 정신을 체현하려 한다. 하시디즘도 성과 속의 영역을 근본적으로 분리하여 보지 않는다. 이것은 현세적 삶의 중요성과 세계와 인간이 본래 성스러움과 밝음으로 가득하다는 긍정의 인생관이다.”라고 비교한다.
2. 하시디즘의 범신론적 신관
대화 철학에 앞장선 마틴 부버(Martin Buber)에 의하면, 하시디즘은 일생 생활을 탈피한 신비주의가 아니라, 일상생활을 거룩하게 만드는 신비주의라고 한다. “사람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신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시디즘이 가르치기 때문이다. 부버는 ‘하시디즘으로 가는 나의 길’(1918)을 통해 하시디즘을 체계화시켰고, 이를 통해 유대교의 갱신을 가능하게 했다. 부버는 하시디즘에 관한 전설, 설화, 격언 등을 광범위하게 수집했으며, 이들의 형태, 상호 관계, 맥락을 정리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경건을 생활 속에서 신적인 것과 관련시켜 신중하게 생각하며, 신학적인 진리나 예배의 실행에 자신이 만족하려고 하지 않고, 인간 상호의 공동생활을 세우려고 하였다. 하시디즘의 가르침은 신은 개개의 사물 속에서 보여 질 수 있으며, 온갖 순수한 행위를 통해 포착될 수 있다. 그러나 이 통찰은 범신론의 세계관으로 동일시되는 것이 아니지만, 온 세계가 신의 입에서 나왔기에, 이 세상의 가장 하찮은 것이라도, 그 속에서 진심으로 신을 찾는 사람에게 신이 자신을 보여준다고 보았다. 모든 사람이 순수하게 행위하고, 온전히 신을 향하고, 집중하고 수행할 때, 사물에서 신의 불꽃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시간이나, 어떤 특정한 말이나 몸가짐을 가지고 신을 섬기는 방식이 아니라, 모든 생활을 가지고, 온갖 일상적 생활사를 가지고, 전체 현실 속에서 신을 섬겨야 한다. 인간의 구원은 세속적인 것에서 자신을 멀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거룩히 그리고 신적인 의미로 성별하는데 있다. 인간의 활동과 식사, 휴식, 가정, 사회의 건설을 떠나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모든 피조물, 모든 사물에 대한 신의 사랑을 확증하는데서 발생한다. 그래서 하시디즘은 하나의 커다란 민중 공동체의 사회적 형태를 취한다. 세상과 격리된 생활을 하는 교단이나, 입회 조건이 까다로운 단체가 아니라, 모든 정신적 사회적 다양성 속에 있는 온갖 잡다한 집합성을 띤 민중 공동체를 가리킨다.
김용표는 불교의 선과 유대교 하시디즘이 모두 신비적 합일적 힘과 그 실천의 현재화와 일상화를 지향하고 있는 차안(此岸) 중심적인 종교로 보고, “선불교는 마음의 집중과 적정을 유지하는 소극적이고 정태적인 초기 불교와 달리, 일상생활 그 자체를 선으로 보는 동태적인 종교로서, 定慧不二, 見性體驗, 知行合一, 動靜一如, 그리고 평상심 속의 수행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한다.
대승불교는 사성체와 팔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육바라밀이라는 독자적인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팔정도가 자기완성을 위한 항목만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利他를 위해서는 충분하지 않으며, 포시와 인욕과 같은 대사회적인 항목을 포함하고 있는 육바라밀이 보살의 수행법으로 맞다고 보는 것이다. 대승불교는 개인의 견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보시를 통해 일상생활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하시디즘이 유대 신비주의의 발전에 공헌을 한 측면은, 신성의 세계에 대해 인간과 신 사이를 분리시키고 있는 장벽은 우리가 자기 자신의 자아 속으로 침잠함으로 넘어설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하시딤 신비주의 속에 포함된 카발라 교의들은 정확하게 심리학의 분석 체계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3. 하시딤의 개념들
1) 의인
하시디즘에서 중심적 신관은 범신론에서 부분적으로 도입해 온 자디키즘(Zaddikism)인데, 자디크(Zaddik, 의인) 개념은 어떤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신과 합일 또는 연결되어 있어서 신비를 아는 사람을 가리켰다. 그는 신으로부터 사랑받는 자이며, 어떤 경우에도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는 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예언의 능력을 가졌고, 기적적인 치유의 힘도 있어서, 병자나 허약자 또는 임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축복을 받기 위해 그들에게 몰려들었고, 그 대가로 돈이나 물건을 시주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결국 자디킴에게 부의 축적을 가져왔고, 풍요로운 생활을 하게 했다. 결과적으로 자디크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켰고, 전체 랍비들로부터 반감을 사기도 했다. 하시디즘 운동도 인간의 한계를 보게 하는 부분이다.
2) 황홀경
하시디즘에서 황홀경 체험은 가장 우선순위에 있다. ‘황홀경’(Hitlahavut, ecstasy)은 ‘불타오르게 한다’는 뜻으로, 세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갖게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모든 가르침과 모든 계명을 지켰으나, 환희와 불타오르는 감정을 경험하지 않는다면, 그가 죽거나 세상을 떠날 때, 낙원에 가기는 하지만, 그곳에서도 환희를 느끼지 못한다”고 하여 황홀경 체험을 강조하고 있다. 황홀경은 모든 장소와 모든 시간에 나타날 수 있다.
황홀경 속에 있는 사람은 거룩함 속에 있다. 그는 세상 속에서도 신과 더불어 있다. 황홀경은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한 걸음씩 무한히 올라간다. 그리하여 황홀경은 “자연 위에, 시간 위에, 사상 위에” 올라서며, 온갖 슬픔과 억누르는 모든 것을 던져 버린 단계로 승화한다. 황홀경의 최고의 순수한 형태는 춤이다. 춤을 통하여 온몸이 일으켜진 혼을 섬기고, 춤을 통하여 혼의 솟음과 굽이침이 수많은 운동의 물결에서 만나는 황홀경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황홀경의 최고 단계는 그 자신이 황홀경을 초월하는 것으로, 정지(suspension)를 통해 스스로 완성된다. 황홀경은 모든 한계를 넘어서 삶을 고양시키며, 혼을 모든 것에로 확장시킨다. 황홀경은 모든 것을 無에 이르게 한다. 하시디즘에서 황홀경은 신비적 체험그 자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무와 창조, 진리, 깨달음, 슬픔으로부터 환희 등 삶의 전체적인 변화를 말하는 경험이다.
3) 意圖(Kavana)
카바나, 의도는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혼의 신비이다. 의도는 의지가 아니다. 하지만 목표들(goals)은 없고, 하나의 정해진 목표(goal)만이 있을 뿐이다. 거짓이 아닌 한 목표, 새로운 길로 가지 않는, 한 목표만이 존재한다. 모든 길이 이 유일한 목표로 통하고, 이 목표 앞에서 영원히 떨어져 나갈 수 있는 샛길이 있을 수 없다. 이것이 구원이다. 부버는 “신의 영광으로 인해 인간의 모든 껍질이 벗겨져, 신과 완전히 결합하는 것이다. 그리고 메시야가 나타난 온갖 존재를 자유케 할 것이다.”고 그 의미를 해석한다.
불교에서 화두를 붙잡고, 일생 정진 수행하는 것을 본다. 목표를 정하고 그것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이다. 불교는 불립문자라고 하여, 언어를 통한 진리 표현을 하지 않고, 마음 그 자체를 가리킨다, 즉 직지인심을 통해 견성하고 성불하는데, 깨달음과 마음의 속성에 대한 긍정논법들이 가득하다. 그것은 모든 것의 근원이며, 평등무차별하고 모든 더러운 것에서 떠나있고, 무한한 공덕을 지닌 개념으로, 여래장과 불성을 향하는 것일 수 있겠다.
4) 겸손
개인은 신을 보고 신을 포용한다. 개인이 좀 더 순수해지고 좀 더 완전해질수록 자신이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더욱 잘 알게 되며, 실존의 공동체를 통해 더욱 활성화시키는데, 이것이 겸손의 신비이다. 사람이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거나, 세상을 향해 풍부한 복을 전해주는 것을 잊을 때 그것은 겸손이 아니다. 이것은 부정한 겸손이다. 거만한 자의 혼은 所産도 본질도 없다. 힘써 날뛰고 힘써 일하나 그에게는 축복이 없다. 그의 참된 의도가 깊은 생각에서 나온 결과라야지, 잔재주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림자(허상)일 뿐이다. 자신의 내면을 자아로만 채우는 사람은 신을 위해 준비된 방을 갖지 못한다.
어떤 구도자가 은둔생활로 들어갔고, 단식과 기도생활에 전념했지만, 의식적 목적을 벗어나고, 그의 행위에 대한 자부심으로 채워졌을 때,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자만심으로 변하여, 다른 의도로 채워질 수 있다. 그래서 겸손이란 의도적으로 실현하는 덕을 가리키지 않는다. 겸손이란 내면에 있는 존재, 느낌, 표현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겸손에는 자기 비하, 자제, 스스로 하는 결실 같은 것이 있을 수 없다. 겸손은 어린아이의 눈빛 같은 것이고, 단순한 꾸밈없는 아이의 말과 같은 것이라고 가르친다.
불교에서도 겸손은 결국 지혜의 깨달음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번뇌 (asava)를 제거하는 일이다. 지혜는 모든 번뇌를 없애는 마음(citta)의 도구이다. 이런 과정들이 진행되면서, 겸손은 자연스럽게 실현될 것이다. 지혜로써 연기법과 사성제와 오온은 무아라는 것과 감각 기관들은 영원하지 않으며, 따라서 고통스럽고 자아가 없다는 것과, 무지와 이 어둠의 몸이 철저히 열정 없이 멈추면 평안함이 오고, 이 평안함은 모든 업을 쌓는 마음의 行이 평정된 것이고, 모든 윤회의 근원이 소멸되는 것이고, 애착을 소멸시키는 것이고, 냉철함이며, 윤회가 멈추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열반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상에서 실천적, 사변적 하시디즘을 보았다. 하시디즘을 따르는 사람은 신과의 굳은 결합을 목적으로 하지만, 거기에 이르기 위해 현실적 지상의 생활을 내던지는 것이 아니라, 신이 부여한 본성을 통하여 땅 위의 생활을 긍정하고, 신에게 그 생활을 바칠 수 있도록 수행하는 것을 추구 한다. 하시디즘은 汎神論이 아니다. 하지만 하시디즘은 신의 절대적 초월성을 가르치지만, 신의 내재성과 결부시켜 가르친다. 그리고 사물과의 거룩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사물을 성스런 방법으로 사용함으로써 인간의 의도가 그렇게 하는 가운데, 신의 초월성을 향하여 있게 될 때 구제가 가능하다. 신이 내재한다는 것이 인간의 겉껍질을 벗기게 한다.
불교의 마음 이론의 패러다임은, “내 마음이 부처로, 긍정적인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깨달음은 마음에 대한 참다운 인식, 즉 마음이 부처임을 보는 인식의 전환을 갖고, 마음의 부정적 요소를 제거해가는 과정”을 말한다. 불교도 초월성을 향하는 것과, 내면의 참다운 깨달음을 인식할 때, 인간의 겉껍질을 벗기는 것이라 하겠다.
세계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고립된 신과의 관계, 곧 그 자신의 혼의 신일뿐이다. 그러므로 세계를 사랑하는 것과, 신을 사랑하는 것은 함께 가는 길이며, 언제나 반복해 걸어가야 한다.
Ⅵ. 맺는 글
유대교 신비주의는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흩어진) 백성으로 유럽과 북아프리카와 중동, 인도 등을 유랑 생활을 하며, 온갖 박해를 이겨낸 내면적인 지혜의 결과라고 본다. 그들은 집 밖을 나가면 차별을 받아왔기 때문에(14세기 중엽부터 이탈리아에서 유대인은 별표를 가슴에 달고 다니도록 법제화했다), 가정교육과 이들이 모이는 유대교 회당에서 교육과 신앙적 체험을 가장 소중하게 여겼다. 그 교육이란 고전을 무조건 암기하는 방식이 아니라, 해석의 자유를 주어 다양한 해석과 신비적 체험들을 경험하며 지성적인 만족을 가질 수 있었다. 유대인들은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그 지역의 종교와 사상 그리고 문화와 가치관들도 수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자기들 경전의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외부의 사상들을 수용하는 개방적인 자세를 가졌다. 바로 이러한 점은 유대교 사상을 풍부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소수의 약한 무리이었기에, 외부(적)를 향한 물리적 저항보다는 종교의 내면적 성찰(지혜)로 승화하는 방식으로 인내하며 이천 년간 전통으로 이어왔다. 반면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종교로 성서 책 한 권만을 정경으로 삼고, 배타적인 유일신과 우상숭배 금지라는 교리에 근거하여 타문화와 종교와 사상들을 무조건 배척했다.
유대교 신비주의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그들의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신성시했다는 것이다. 국가도 없는 백성들이 자기들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언어와 혈통이다. 유대인들이 히브리어 문자를 신성시했고, 숫자와 조합을 하여 인간 내면의 성찰을 유도했기에 이를 버린다는 것은 곧 신을 포기하는 것으로 여기며 지켰다.
유대교 신비주의에서 신적인 '아인 소프'의 세계는 ‘끝이 없는’ 또 다른 신을 말한다.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절대 무’(absolute nothingness)의 세계를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그리고 땅의 세계는 ‘무’(無, there is nothing else)로 여겼다. 유대교 신비주의는 황홀경의 체험을 요구하는데, 이 역시도 단순한 체험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 신과의 합일을 경험하면서, 자기의 명상과 수행을 통해 지혜와 겸손으로 내면을 성찰하며, 세상에서 긍정적인 가치관과 구원을 경험한다.
불교는 명상을 통한 깨달음의 차원에 이르는 발전 단계를 세 단계의 길로 분류한다. 첫 번째 見道는 가르침을 배우고 사유하며 믿음에 기반해서 그 가르침에 대한 확신을 얻는 단계이며, 두 번째 수도는 가르침에 대해 명상하고 선정을 통해 그것을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으로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단계다. 마지막으로 깨달음의 단계로서 더 닦을 것이 없는 無學道에서는 믿음에 기반해서 받아들였던 것을 ‘직접적인 경험’으로 확인한다. 개인의 경험이 일상 경험 차원에서 깨달음의 차원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유대교와 불교는 우주적 차원의 궁극성(신과 절대 무의 세계)과 명상과 수행, 그리고 대중을 향한 실천에 있어 유사한 점들이 많이 있음을 본다. 유대교 신비주의 사상을 통해서 얻는 교훈은 성직자가 타락했을 때, 신자들은 성직자를 거치지 않고 직접 신적 체험을 추구한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종교가 물질주의로 인해 부패로 쇠퇴하는 경향인 때, 신도들의 개인적 영성 훈련과 체험 경향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끝으로, 현대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과거 2천여 년 넘게 민중으로 살아온 것을 잊고, 팔레스틴에 우리나라 휴전선보다 더 긴 콘크리트 장벽을 쌓고, 민간인들에게 무차별 폭격을 가하고, 집을 파괴시키고, 외부와 격리시키는 인권유린을 자행하고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그들이 사회적 종교적 박해를 받으면서도 인내하고 쌓아온 유대교 신비주의의 모습을 실망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