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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장 음탕한 남매 (1)
이제 제희공의 둘째 딸인 문강(文姜)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해보도록 하자.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문강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오라비인 제양공과 문강에 관한 얘기라고 해야 옳겠다.
이 일화는 오라비와 여동생 간의 사랑 이야기이다.
일반적으로 해서는 안 될 사랑을 사련(邪戀)이라고 한다.
사련은 비극적인 요소를 수반한다.
그래서 종종 애틋함을 불러 일으킨다.
이 일화 역시 비극적으로 끝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여느 사련(邪戀)처럼 전혀 애틋하지가 않다.
오히려 추잡하고 혐오스럽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사건이 곧장 춘추시대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패공 제환공(齊桓公)과 명재상 관중(管仲)의 등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8대조부터의 원수국 기(紀)나라를 치려다 실패하고 그 분을 이기지 못해 세상을 떠난 제희공은 생전에 여러 아들과 딸을 두었다.
아들로는 지금의 군주인 제양공 제아(諸兒)를 비롯하여 공자 규(糾), 공자 소백(小白), 공자 팽생(彭生) 등을 두었고, 딸로는 앞서 얘기한 위선공의 부인이자 공자 석(碩)의 아내가 된 선강(宣姜)과 둘째 딸 문강(文姜), 그리고 애강(哀姜), 숙강(叔姜)등이 있었다.
언니인 선강도 절세미인이었지만 그 동생인 문강(文姜)도 천하절색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빼어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문강은 총명하기까지 하여 고금의 서적을 읽지 않은 것이 없었다. 특히 그녀는 글을 잘 썼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대로 아름다운 문장이 되었다. 그녀의 이름이 문강(文姜)이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제희공 재위 시절의 일이다.
큰아들 제아(諸兒)는 세자였지만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호색한이었다.
어릴 적부터 여자를 몹시 밝혔다.
제아(諸兒)와 문강은 이복 남매간이었다. 문강(文姜)이 제아보다 서너 살 아래였다. 그들은 어릴 적부터 궁중에서 함께 놀고 함께 다니며 자랐다.
문(文姜)강은 나이가 차면서 더욱 아름다움을 뽐냈다. 입과 눈가에 요염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열다섯 살이 넘으면서 문강(文姜)은 자신의 내면에 변화가 오고있음을 직감했다.
멋지게 생긴 사내만 보면 가슴이 뛰고, 정신이 몽롱해지는 기분에 자주 사로잡혔다. 어떤 때는 아랫배로 묘한 열기가 올라와 자신도 모르게 사타구니를 옥죄이는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런 여동생의 변화를 어찌 20세의 청년 제아(諸兒)가 눈치채지 못할 리 있겠는가. 그는 언제부터인가 남몰래 여동생 문강을 훔쳐보며 머릿속에 엉뚱한 그림을 그려보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별궁의 후원을 거닐던 중 제아(諸兒)는 기화요초가 피어 있는 화원 속에 문강이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문강(文姜)은 수정처럼 맑은 두 눈을 한 곳에 고정시킨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제아(諸兒)는 자신도 모르게 주위부터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그는 문강이 앉아 있는 화원 속으로 들어갔다.
문강은 제아(諸兒)의 출현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문강의 뒤로 돌아가 장난질하듯 그녀의 두 눈을 손으로 가렸다.
"어머!"
문강(文姜)은 놀라며 몸을 틀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우연인가 고의인가.
공교롭게도 그 순간 제아(諸兒)의 손이 미끄러지며 문강의 앞가슴에 가 닿았다. 뭉클하는 감촉이 손바닥에 여실히 느껴졌다. 제아도 문강도 모두 놀랐다.
특히 문강의 놀라움은 형언할 수 없으리만큼 컸다.
상대가 제아(諸兒)라서가 아니었다.
생전 처음 가슴에 와 닿은 타인의 손 - 아찔한 쾌감이 순간적으로 그녀의 내부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이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전울이었다.
"놀랐잖아요."
문강(文姜)은 자신이 웃었다고 생각했다.
그 웃음소리가 제아(諸兒)에게는 하나의 교성으로 들렸다.
그의 손은 여전히 문강의 가슴에 닿아 있었다.
그는 문강의 비음 섞인 웃음에서 참을 수 없는 욕정을 느꼈다. 손에 힘이 가해졌다.
"아 -!"
문강(文姜)은 단 한 번의 손길에 몸과 마음이 커다란 파도에 휘말리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내칠 수 없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문강......"
제아(諸兒)는 문강이 보여준 뜻밖의 반응에 한결 대담해졌다.
그는 다른 한손으로 문강의 허리를 껴안으며 그대로 꽃밭 속으로 엎어졌다.
문강 역시 제아(諸兒)의 등을 감싸안으며 그대로 그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생각 외에는 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마침내 아무도 없는 별당 후원에는 거센 폭풍우가 몰아쳤다. 꽃가지들이 마구 흔들렸다. 벌과 나비들도 그 격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인가.
여느 때와 달리 날개짓이 거칠고 요란했다. 적어도 그 두 사람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 날 이후 문강(文姜)은 심하게 아팠다.
병상에 누운 채 밥도 물도 먹지 않았다.
그녀는 자는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몽롱한 하루를 보냈다.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따금씩 창으로 비쳐드는 눈부신 봄햇살을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목말라 고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그랬다.
그 해의 봄햇살과 함께 열다섯 살의 소녀 문강(文姜)은 변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겪어야 할 그 변화.
그녀는 그동안 자신을 가두어 두었던 껍질을 뚫고 여인이라는 새로운 생명체로 거듭 태어나고 있었다. 다만, 그 상대가 자신의 오라비인 것이 저주스러우리만큼 한스러울 뿐이었다.
제아(諸兒) 또한 그 날의 격정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접해 본 여인들과는 전혀 달랐다.
천하절색의 미모에 여동생이라는 혈연관계가 그를 더욱 걷잡을 수 없는 마성(魔性)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문강(文姜)이 병상에 누웠다는 소식을 들은 제아(諸兒)는 문병을 핑계로 매일 규중(閨中)에 드나들었다.
주로 밤 깊은 시각에 문강의 방을 찾았다.
"네가 이토록 아프니 내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는구나. 차라리 내가 아픈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하겠다."
문강의 이마를 짚어보던 제아(諸兒)의 손이 어느 틈에 가슴으로 내려가 있었다. 그럴때면 문강은 또 다른 열기에 젖어 눈을 가늘게 뜨곤 하였다.
입술사이로 뜨거운 숨결이 터져나왔다.
그것은 제아(諸兒)와 문강에게 또 하나의 비밀스런 열락(悅樂)이었다.
아버지 제희공이 문강(文姜)의 방에 들렀다가 침상 앞에 앉아 있는 제아를 발견하고는 엄하게 꾸짖었다.
"남매간이라고는 하지만 자리는 구별해야 하지 않겠느냐. 차후로는 궁인을 보내어 문병하고, 이 방에는 일체 들어오지 말라."
뭔가 낌새를 눈치챘음인가.
얼마 후 제희공은 제아(諸兒)를 위해 송나라 공녀를 맞아들여 아내로 삼게 했다.
동시에 사자를 노나라로 보내어 노환공(魯桓公)에게 청혼했다.
"과인에게 나이 찬 딸이 하나 있습니다. 마침 노후(魯侯)께서 내실이 비었다고 하니, 혼사로써 두 나라의 돈독한 우의를 맺음이 어떠신지요?"
노환공(魯桓公)은 즉위 당시 나이가 많았으나 그때까지 정부인을 두지 않았다.
노나라 공실은 다각적인 검토 끝에 제희공의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이때가 노환공(BC 709년).
송나라 태재 화독이 공보가와 송상공을 살해하고 송장공을 군위로 올린 다음해의 일이기도 하다.
문강(文姜)이 노나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세자 제아(諸兒)는 마음이 여간 싱숭생숭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행위가 한때의 불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문강에게 전달해주고 싶었다.
여러 날을 고민하다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시 한 수를 지어 꽃 한 송이에 숨겨 문강(文姜)에게 보냈다.
복숭아나무에 핀 한떨기 도화꽃
그 찬란함이 아침 햇살 같구나.
창가에 피었건만 끝내 꺾지 못하고
바람에 나부끼는 꽃잎
아득히 먼곳으로 날아가는구나.
아, 이를 어쩔꼬, 어쩔 것인가.
문강(文姜)은 제아의 편지를 받고 역시 가슴이 메어지는 듯 아팠다.
비록 맺어질 수 없는 오라비였지만 첫사랑이 아닌가.
침상에 엎드려 한없이 울다가 화답하는 시를 지어 제아(諸兒)에게 보냈다.
복숭아나무에 핀 한떨기 도화꽃
그 아름다움 산뜻도 하여라.
오늘 꺾지 못하더라도
어찌 오는 봄에 다시 피지 않으리까.
잊지 마세요. 모쪼록 잊지 마세요.
제아(諸兒)는 그 시를 읽고 문강 역시 자신을 잊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래, 오늘은 너를 떠나보내지만 다음에는 기필코 너를 찾아오리라.'
이런 제아(諸兒)를 뒤로 하고 문강은 이웃나라 노환공에게로 시집을 갔다.
다음다음해, 문강(文姜)은 아들을 낳았다.
노환공은 아들의 이름을 동(同)이라 지었다.
태어난 날이 자신의 생일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문강(文姜)은 한 번도 제나라에 가지 못했다.
당시 여인들은 다른곳으로 시집가면 일 년에 한 번 근친이 허용되었다.
그것도 부모가 살아 있을 경우에 한해서였다. 부모가 죽으면 일체 근친이 허용되지 않았다. 노(魯)나라는 예의와 풍속이 엄한 나라였다. 아버지가 살아 있음에도 그들은 공녀(公女)라는 이유로 문강에게 근친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그녀는 더욱 오라비 제아(諸兒)를 그리워하였다.
그러는 사이, 제희공이 죽고 세자 제아(諸兒)가 군위에 올라 제양공이 되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를 잊지 못했다.
- 잊지 마세요. 모쪼록 잊지 마세요.
제양공(齊襄公)은 틈만 나면 문강이 남기고 간 시 구절을 읊조렸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