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5일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심각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십여년전 우리의 남대문이 화염에 휩싸이면서 기와장이 무너질 때 제 마음도 같이 무너지던 그순간을 떠올리며 노트르담 대성당을 살펴봅니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Cathedrale Notre-Dame de Paris ; 파리의 우리 귀부인=성모 마리아) 은 프랑스의 수호성인인 성모 마리아를 모시는 파리의 대주교좌 성당입니다
파리 시내의 시테섬에 있으며 프랑스 후기고딕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이죠
노트르담 성당하면 자연스럽게 파리의 성당으로 이해하지만 프랑스 국내와 유럽의 여기저기 심지어 프랑스 식민지였던 나라에서도 노트르담이라는 이름의 성당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성모마리아 성당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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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살펴봅니다
그 자리에는 로마시대부터 쥬피터 신전이 있었던 걸로 추정합니다 그 이후 초기 기독교 시절에는 바실리카성당으로 사용되었고요
당시 파리교구장인 모리스 드 쉴리는 있던 성당을 허물고 새로 크게 짓기로 결심합니다 경쟁적으로 큰 성당을 짓던 대성당시대를 상징하지요
182년동안 기둥과 벽돌을 쌓아 올려 1345년 완공합니다
이는 고려왕조 18대 의종왕 시절 정중부 이의방 등이 일으킨 무신정변 즈음에 시작하여 29대 충목왕 시절에 완공된겁니다 공민왕 즉위 6년전이죠
이백년 가까운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건축가가 지휘하고 기술의 변화에 따라 여러가지 건축양식과 기법들이 적용됩니다
아치 모양의 높은 천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rib vault 기법이 사용되고 건축 초기에 구상한 건물벽의 두께가 건축물이 높아짐에 따라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자 최초로 벽날개 (flying buttress) 라는 기법을 적용합니다
여기서 수많은 역사적인 행사를 치룹니다
필리프4세는 삼부회를 이 성당에서 개최하고 잉글랜드의 헨리6세왕의 프랑스왕 즉위식 스코틀랜드의 메리1세 여왕과 프랑수와2세와의 결혼식 나폴레옹1세의 프랑스 황제 즉위식도 여기서 가집니다 잔 다르크의 화형 이후 489년만에 성인으로 선포하고 샤를 드골 프랑수아 미테랑 등의 추모미사를 가지기도 합니다 프랑스혁명이 휩쓸 때에는 많은 약탈과 함께 심각하게 파손됩니다 심지어 창고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후 수십년동안 볼품없이 변해버린 성당 건물을 두고 철거하자는 의논까지 나옵니다 이때 프랑스의 문학가 빅토르 위고는 성당 보존을 주장하면서 '파리의 노트르담 (=영어제목 노트르담의 꼽추)'을 발표합니다 1831년입니다
이 한권의 소설이 프랑스 국민들의 비상한 관심을 일으킵니다 성당을 보존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기금도 모읍니다
결국 철거하는 대신 복구하는 방향으로 계획이 바뀝니다 1845년부터 20년 동안 복구공사를 하면서 성당을 상징하는 첨탑도 이때 세워지죠
그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부분적인 복구작업은 계속됩니다
장미창이라 불리는 스테인글라스와 함께 파이프오르간도 유명합니다 1403년 처음 설치된 이후 유명한 오르가니스트들에게는 8000개 이상의 파이프를 다루는 가장 명예로운 자리이기도 합니다
성당의 종도 유명하지요 10개의 종은 지금도 행사때 마다 울리고요 그중 13톤이 넘는 엠마뉴엘 종은 그 엄청난 무게 때문에 프랑스혁명이라는 혼란기를 무사히 넘겼다고 합니다
1911년 '파리의 노트르담'이라는 제목의 무성영화가 처음 나온 이후 많은 영화가 뒤따릅니다 그중 안소니 퀸이 주연한 1956년 '노트르담의 꼽추'가 가장 많이 알려지죠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1998년 파리에서 열광적으로 데뷰합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루브르박물관과 에펠탑 방문객을 다 합친 만큼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합니다 파리의 센강 유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지요
불의의 화재로 많은 손상을 입었지만 파리시민들의 밤을 지새는 간절한 기도와 함께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하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