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각
극락전
소대앞에 모셔진 지장보살님
소대(燒臺)란 각종 재의식(齋儀式)을 마치고 의례(儀禮)에서 사용한 여러 가지 장엄구를 소각하는 대입니다. 여기서 영가천도 마지막 단계인 소전(燒錢), 봉송(奉送), 회향(廻向)을 끝으로 모든 재의식이 끝나게 됩니다.
약사전(보물 제179호)
약사전은 대웅보전 서쪽에 위치하는 건물로 대웅보전과 거의 같은 양식의 건물입니다. 조선 중기 다포계열의 정면 3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장대석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약한 배흘림이 있는 기둥을 설치하였으며, 정면 각 기둥 위에는 공포를 배열하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공간포(기둥과 기둥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공포)를 설치하였습니다.
내부 천장은 중앙 부분에 우물천장을 두고 주위에는 빗천장을 만들었으며, 거기에 돌아가면서 화려한 연화당초문을 그려 놓았습니다.
대웅보전과 함께 지붕을 수리했다는 기록 말고는 다른 기록이 없어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습니다.
약사전(藥師殿) 편액
건물의 겉모습이나 내부 장식도 대웅보전과 비슷합니다. 고려 말기나 조선 초기에 석조로 조성한 약사여래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약사여래는 중생의 질병을 고쳐 주는 약사 신앙의 대상이 되는 부처를 말한다. 약사여래불은 최근 금박으로 개금되어 있습니다.
약사여래불 후불탱화(藥師如來佛 後佛幀畵) (인천유형문화재 제44호)
약사전 후불탱은 그림 중앙에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坐像)과 좌우협시인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을 배치하고 상하좌우에는 사천왕(四天王)을, 약사불 뒤에는 가섭 존자(迦葉尊者)와 아난 존자(阿難尊者)를 그린 병렬식 구도의 그림으로 고종 21년(1884)년 혜과(慧果) 스님이 그렸습니다.
주존불인 약사여래좌상은 왼손에 약합을 들고 있으며 자비스러운 표정입니다. 육계(肉髻)에는 정상계주(頂上髻珠)와 반달계주를 갖추었으며 녹색의 이중광배를 띄고 있습니다. 붉은 해와 흰 달을 보관에 이고 있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은 변형된 윤왕좌(輪王坐)로 손을 무릎에 대고 있으며 몸에서는 파상문신광이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약사전 석불좌상(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
석불좌상은 돌로 만든 앉아 있는 모양의 불상입니다. 이 불상은 고려 말 조선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약사여래상인데, 배꼽 부근에서 두손으로 약그릇을 들고 있는 모십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사람들은 약사여래가 모든 중생의 질병을 고치고 수명을 연장해주며 재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음식과 옷을 제공해준다고 하고 믿습니다.
약사여래불
약사여래불 석불좌상(藥師如來佛 石佛坐像)은 선정인(禪定印)을 하고 계시는데 그 속에 보주(寶珠)가 있습니다. 전체적인 양식은 고려 말 내지 조선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약사여래불
현왕탱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
현왕탱은 사람이 즉은 지 3일이 된 망자를 심판하는 현왕과 권속을 그린 불화입니다. 전등사 약사전 현왕탱은 약사전 불단 왼쪽에 자리한 영단에 걸려 있습니다.
화면 하단에는 '고종 21년(1884)에 승려 화가인 진철과 긍벙이 그렸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명부전
약사전 옆의 서남쪽에 세워진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종(高宗) 17년(1880년) 효월(孝月) 스님이 명부전 후불탱과 시왕상 보수하였고, 고종(高宗) 21년(1884년) 효월 스님과 경운(慶雲) 스님이 지장탱을 개금하고, 시왕탱을 봉안하였고, 불기 2460년(1916년) 창환(昌煥) 스님이 시왕전을 증축했다고 합니다. 불기 2462년(1918년) 지영(智永) 스님이 지장보살 개금하고, 시왕상 보수. 8월에 명부전 새로 짓었다고 합니다. 불기 2463년(1919년) 명부전 단청하였고, 불기 2521년(1977년) 월탄(月灘) 스님이 명부전 해체 이전하여, 불기 2523년(1979년) 명부전을 중건했다고 합니다.
약사전 옆의 서남쪽에 세워진 명부전도 정확한 창건 연대는 밝혀지지 않는다.명부전에는 지장보살상을 비롯해, 시왕·귀왕 등 모두 29존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대개 명부전은 지장전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죽은 이를 재판하는 시왕이 있는 곳은 명부전, 지장보살을 모셨을 경우에는 지장전이라고 부릅니다.
명부전(冥府殿) 편액
이 전각은 죽은 사람들이 49일이 지나 재판을 받을 때까지 그들의 넋을 위해 치성을 드리는 곳입니다.
지장보살은 모든 중생이 극락을 가기 전까지는 결코 성불하지 않겠노라는 원을 세운 보살입니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녹색의 머리를 깎고 주장자를 짚은 채 지옥 문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이처럼 명부전에는 부처님 원력으로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제사의 공덕으로 극락을 가라는 정성어린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본존불인 지장보살(地藏菩薩)과 좌우 협시로 도명존자(道明尊者), 무독귀왕(無毒鬼王)을 봉안하였습니다.
지장보살
도명존자
무독귀왕
좌측의 홀수 시왕(十王) 다섯 분과 시동(侍童) 녹사(錄事) 판관(判官) 등
제1대왕 진광대왕(秦廣大王)
제3대왕 송제대왕(宋帝大王)
제5대왕 염라대왕(閻羅大王)
제7대왕 태산대왕(泰山大王)
제9대왕 도시대왕(都市大王)
판관(判官)
판관(判官)
녹사(錄仕)
녹사(錄仕)
우측의 짝수 시왕(十王) 다섯 분과 시동(侍童) 녹사(錄事) 판관(判官) 등
제2대왕 초강대왕(初江大王)
제4대왕 오관대왕(五官大王)
제6대왕 변성대왕(變成大王)
제8대왕 평등대왕(平等大王)
제10대왕 오도전륜대왕 (五道轉輪大王)
판관(判官)
녹사(錄仕)
감로탱화
감로탱화(甘露幀畵)는 일명 고혼탱화(孤魂幀畵)라고도 합니다. 감로(甘露)란 천신(天神)들의 음료, 또는 하늘에서 내리는 단 이슬이라 합니다. 경전에 감로란 말이 많은데 이는 부처님의 교법을 감로에 비유하기 때문입니다.
마애불
마애불
이영섭(1963년~ )은 대한민국의 조각가입니다. 세계 최초로 발굴 기법을 고안하였으며, 그의 작품은 소박미, 고졸미, 졸박미 등을 특징을 보이는 한국적인 미를 선보입니다.
전등사에는 보물 제393호로 지정된 전등사 철종과 근래에 만들어진 범종 등 두 개의 종이 있습니다.
이 두 범종을 보관하기 위해 종각과 종루로 이름을 달리하여 두 개의 범종각을 세웠습니다.
전등사 철종 (보물 제393호)
대웅보전 앞마당에서 극락암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왼쪽에 있는 종각의 범종은,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종과는 그 형태가 아주 다르다'고 합니다.
중국 북송(北宋)나라 때(1097년) 회주(懷州) 숭명사(崇明寺)에서 무쇠로 만든 중국종입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병기를 만들려고 부평(富平) 병기창에 갖다 놓은 것을 광복 후에 이곳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종의 정상부에는 두 마리 용으로 이루어진 종고리가 있습니다. 몸통 위 부분에는 8괘(八卦)가 있으며, 그 밑으로 종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 8개의 정사각형을 돌렸습니다. 이 정사각형 안에는 명문(銘文)을 새겼는데, 중국 하남성(河南省) 백암산(白巖山) 숭명사(崇明寺)의 종이라는 것과 북송(北宋) 철종(哲宗) 4년(1097년)에 주조 되었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종은 일제 말기 군수 물자 수집에 광분한 일제가 공출이란 명목으로 빼앗아 가는 바람에 한때 전등사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광복 이후 부평 군기창에서 발견되어 다시 전등사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극락전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비교적 근래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진 극락암 건물은 전등사 조실이었던 서운(瑞雲. 1903~1995) 큰스님과 상묵(象默. 1937~2000) 큰스님이 열반할 때까지 머무신 곳입니다.
극락전(極樂殿) 편액
초정 권창륜((艸丁 權昌倫)이 쓴 글씨입니다.
초정 권창륜(艸丁 權昌倫. 1943~ )은 1943년 경북 예천 출생으로 중앙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였는데, 대학 재학 시절에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顯)선생에게 사사를 받았습니다.
국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장을 역임, 한국서예가협회 회장 역임한 서예가입니다.
어린왕자
어린왕자 조각상
세계 최초 '발굴 기법' 작가인 이영섭은 땅을 거꾸로(음각으로) 조각해 거푸집을 삼고 그 안에 혼합재료를 부은 후 굳으면 이를 캐냅니다.
그리곤 최소한만 매만져 작품을 마무리합니다. 이 같은 작업 방식은 작가만의 독자적인 창작 방법으로, '발굴 작가'로 불립니다.
출토된 작품은 표면에 풍화된 흔적이 남으며 오래된 시간성과 현대적 세련미를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느티나무
수령 : 400년, 수고 : 20m, 나무둘레 4.6m
수각
종루
정족산전등사 범종
적묵당
적묵당이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불기 2462년(1918년) 지영(智永) 스님이 적묵당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고, 불기 2517년(1973년) 원광(圓光) 스님이 적묵당을 보수하였고, 불기 2552년에 해체 및 신축복원을 완료했다고 합니다. 이 건물은 'ㅁ자' 건물로 각면 6칸으로 건축된 건물로 스님들이 참선하던 선원이었는데, 지금은 스님들의 숙소와 종무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적묵당(寂默堂) 편액
전등사(傳燈寺) 편액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 ) 선생의 글씨와 죽농 안순환(竹儂 安淳煥 1881~1950)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런 형태의 현판은 당시 전국 31본산(本山) 사찰에 모두 써 주었다고 합니다.
해강과 죽농은 위와 같은 형식으로 조선불교 31본산 사찰현판을 모두 썼다고 합니다.
전등사는 제4본산으로 강화, 김포, 교하, 장단, 개성, 풍덕, 고양 등 34개 말사를 거느렸던 사찰이었습니다.
유천희경(遊天戱浭) 편액
완당(阮堂. 秋史 金正喜 1786~1856)의 글씨입니다.
완당 김정희는 산숭해심(山崇海深) 유천희해(遊天戱海)를 즐겨 썼다고 합니다.
그 기상이 웅장하고 그 뜻이 깊으며 자재롭게 소요하는 심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山崇海深(산숭해심) 산은 높고 바다는 깊도다.
遊天戱海(유천희해) 하늘에서 노닐고 바다에서 즐긴다.
템플스테이관 월송요(月松寮)
월송요(月松寮) 편액
서울법대 교수 정종섭(鄭宗燮 1957~)이 2020년에 쓴 글씨입니다.
무설전
전면에서 보면 지하 축대에 불과합니다. 그 위에는 템플스테이 수련관이 자리 잡았고 있습니다.
무설전은 법당이면서 법당이 아닙니다. 법회 장소가 되기도 하고, 음악회나 강연회도 가능합니다. 또 갤러리이기도 합니다. 요즘 말로 복합공간이자, 종교와 예술이 만난 융합의 공간입니다.
무설전(無說殿)
서울대 법대 정종섭(鄭宗燮 1957~) 교수가 2012년에 쓴 글씨입니다.
무설전 어린왕자
죽림다원
다로경권(茶爐經卷) 편액
차와 난로와 책이 있는 공간이라는 것 같은데 사실 안에 책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학정 이돈흥(鶴亭 李敦興, 1946~2020) 선생의 글씨로 학정은 봉은사 '하심문(下心門)', 용흥사 일주문, 천은사 보제루의 '방장산천은사', 백양사 사천왕문의 '고불총림백양사', 강화 보문사 '극락보전' 등을 쓴 명필입니다.
어린왕자 조각상
이영섭 작가의 작품입니다.
은행나무
수령 : 250년, 수고 :20m, 나무둘레 : 4m
은행나무
수령 : 700년, 수고 :24m, 나무둘레 : 6.5m
전등사가 특이한 것은 따로 일주문이나 산문이 없이 성문이 일종의 일주문 역할을 하는 절이라는 점입니다. 일주문 치고는 아주 오래되고 견고한 일주문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이 남문의 종해루는 영조 15년(1739)에 삼랑성을 중수하면서 건립한 문루라고 합니다.
종해루(宗海樓) 편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