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대머리 귀신형용 : 판소리의 모든 것>
국악 연구자 송혜나의 <숙대머리 귀신형용 : 판소리의 모든 것>를 읽었다. 최근 판소리 완창 CD를 들으면서 판소리를 흥미롭게 소개한 개론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많은 책들이 전문적인 분야에 대한 소개나 특정 영역에 대한 설명에 치중한 것에 반해 이 책은 이야기를 풀어내듯이 판소리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주어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판소리는 조선 후기 사회경제적 변화와 문화적 욕구와 맞물려 등장한 대표적인 문화예술로서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도 등록되었다.
판소리에 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1754년 유진한의 <만화집>에 등장하는데 이 기록과 후대의 연구를 참고하면 17세기 말경에 전라도 지역의 무속의식에서 불려지지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판소리는 원래 12마당으로 불리었지만 중인 출신 신재효에 의해 19세기 6마당으로 정리되었고, 신재효는 소리꾼에 대한 후원과 교육을 통해 판소리를 체계화시켰다. 신재효가 활동하던 19세기부터 그 후 20세기 초까지가 우리나라 판소리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귀성을 가졌다는 대표적인 소리꾼들이 등장했고 흥선대원군과 고종을 비롯한 고위층들이 판소리를 좋아했기 때문에 소리꾼들은 벼슬까지 제수 받으며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소리꾼들의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것은 20세기 초 축음기가 도입되고 부터이다. 20세기 초까지 활동하면서 현대 국악계의 거목들을 배출한 ‘근대 5명창’의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1930년대 들어서 일본제국주의는 더욱 악랄한 방식으로 우리의 문화를 말살시켰으며 이런 과정에서 소리꾼들은 ‘아편 중독’으로 모함받거나 양속을 해친다는 구실로 활동이 금지되었고 해방 후 1970년대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살아날 때까지 오랜 침체를 겪어야 했다. 판소리의 부흥은 1980년대 우리 것을 찾으려는 시대적 분위기와 88올림픽을 계기로 외국에 소개할 한국적 특징을 찾기 위한 노력을 통해서 활성화되었다.
판소리는 북한에서는 배제 대상이라고 한다. 판소리가 민중에 대한 양반 계층의 영향력 속에서 만들어진 영역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실지로 판소리 사설은 수많은 중국 고사나 한문 구절이 등장한다. 서민들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은 것이다. 이것은 신재효의 판소리 정리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신재효 활동 당시 판소리는 12마당이었지만 신재효가 정리한 판소리는 6마당에 불과하다. 성적인 내용이나 민중들의 솔직한 감성이 표현된 작품은 제외되었고 유교적 관념에 적절하거나 중국과 연관된 작품들만 선정된 것이다. 양반층들이 판소리를 좋아함으로써 판소리가 중흥된 점은 바람직하지만 이 과정에서 판소리에 담겨진 민중들의 솔직한 목소리가 사라진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판소리 소리꾼의 목소리는 대부분 탁하고 거친 성음을 지니고 있다. 이런 목소리는 서양 성악의 아름답고 부드러운 벨칸토 창법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판소리에서 가장 중시되었던 것은 아름다움보다는 ‘힘’이었다. 뱃속 단전에서 뽑아져 나오는 소리를 통해 인간이 지닌 슬픔과 한 그리고 뜨거움을 표현하는 것이 판소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판소리에서 가장 좋은 소리는 강한 쇳소리를 내는 ‘철성’이며, 탁하고 강하면서도 힘있는 ‘수리성’이었다. 소리꾼들은 이런 목소리를 갖기 위해 수많은 수련을 통해 목을 단련하였고 목의 혹사를 통해서 ‘득음’할 수 있었다. 신재효는 소리꾼, 즉 ‘광대’의 조건을 네 가지로 보았는데 하나는 인물치레이며, 둘째는 사설치레, 셋째는 득음, 넷째는 동작과 관련된 너름새(발림)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은 득음이었으며 소리꾼의 터져 나오는 한의 목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은 열광하였던 것이다.
판소리 완창에 관한 흥미로운 정보를 접할 수 있었는데, 과거 판소리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목을 중심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완창을 제대로 시도한 소리꾼은 바로 박동진이었다. 그는 판소리의 진정한 맛을 보여주고, 서양 예술과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는 우수한 판소리의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판소리 완창 무대를 시도하였고 이러한 도전은 관객들의 찬사를 이끌어냈던 것이다. 과거 소극장에서 들었던 박동진의 판소리 완창에 대한 감흥은 아직도 생생하다. 박동진의 시도 이후 완창은 수많은 소리꾼들이 자신의 기량을 과시하는 무대로 활용되었으며, 완창은 소리꾼의 실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였다.
창극은 판소리가 한 사람이 모든 배역을 맡아서 하는 것과는 달리 극의 흥미를 높이기 위해 역할에 따라 배역을 정하고 거기에 해당하는 소리와 아니리 그리고 발림을 행하는 것이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창극 공연은 소리꾼들의 또 다른 창작적 시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창극에 대하여 부정적인 소리꾼도 많았는데 이들은 판소리의 순수한 정신을 오염시킨다며 창극에 참여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근대의 소리꾼이 임방울이었다. 창극를 전통의 변형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분명 창극은 판소리를 더욱 대중화하는데 기여했다. 창극 무대에 많은 관객들이 모여들어 울고 웃으며 우리의 소리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창극 무대는 80-90년대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TV에서도 정기적으로 공연하였다. 인물치레가 좋은 조상현의 시원스런 목소리와 활기찬 연기 모습이 지금도 기억난다.
판소리 완창 CD를 들으면서 궁금했던 점은 소리꾼마다 판소리 사설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신재효가 판소리 대목을 정리했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불렀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실재 판소리 내용은 소리꾼 각자의 개성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어떤 대목에서 한 소리꾼은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는 반면, 다른 소리꾼은 긴 사설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소리꾼마다 다른 이유는 소리꾼들은 판소리를 부를 때 자신의 개성을 첨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더늠’이라고 한다. 이렇게 첨가된 부분은 제자들이나 다른 소리꾼들이 받아들이면 하나의 판소리 사설로 정립되는 것이다. 기본적인 이야기 틀 속에 이렇게 다양한 소리꾼들의 개성이 모여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수확이었다. 판소리가 지닌 열린 무대의 특징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번 독서를 통해서 판소리를 즐길 수 있는 최소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굿음악의 치열함과 민요의 아스라함이 녹아져 있는 판소리 가락은 매력적인 예술영역이다. 익숙하고 단순하다고 느꼈던 판소리의 내용 전개는 다양한 소리꾼들이 뽑아내는 세부적인 사설의 매력에 의해 새롭게 다가온다. 이야기 전개 속에서 빛나는 다양하면서도 매력적인 삶의 각가지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은 판소리를 직접 들었을 때에만 얻을 수 있는 선물이었다. 특정 대목에 대한 선호를 넘어 전체적인 줄기 속에서 표현된 판소리 대목은 우리 소리의 맛을 더욱 깊게 느끼게 해주었다. 부분은 전체와의 관련 속에서 그 의미를 갖게 되며, 전체 속에서 파악된 부분만이 독립적으로 접했을 때 진정한 깊이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첫댓글 판소리만의 매력에 빠질 때도 있지...
우리만의 소리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