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의 테크 드라이빙] “자동차 배터리가 방전됐어. 발전기 상태도 안 좋다고 하더라. 그래서 모두 아주 싼 거로 교체했어. 솔직히 엔진 시동이나 라디오를 들으려고 배터리와 발전기에 수 십 만원을 쓸 필요가 없잖아?” 날씨가 급격하게 추워지자 자신의 차에 배터리가 방전됐다며 투덜거렸던 A 씨의 주장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완전히 틀렸다. 최신형 자동차에 전기 장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자제어 장치가 그만큼 많이 사용되고, 깊숙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 같은 최신 전자장비에서 전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면 쉽게 이해가 된다.
전기 회로(電氣回路, 전기가 도는 길)를 쓰는 기계 장치의 기본 원리는 전류가 순환하면서 작동한다. 하지만 아주 작은 전구가 아닌 이상, 단순히 전기가 공급되는 것으론 부족하다. 특정 장치가 목표한 성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전압(전기 회로에 전류를 흐르게 하는 능력), 전력(단위시간 동안 전기장치에 공급되는 전기에너지) 같은 조건이 필요하다. 쉽게 말해 전류가 흐르는 과정에 따라서는 기계의 성능이 더 좋아지거나 혹은 나빠질 수 있다는 뜻이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배터리 성능이 떨어지고, 발전기가 노후화되면 곧바로 이상 증상이 나타난다. 엔진은 아이들 상태에서부터 불안하게 떨리고, 엔진을 고회전으로 쉽게 회전시키기 어렵다. 당연히 최고 출력을 뽑아낼 수 없다. 정밀한 연료제어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연비는 떨어진다. 최신형 자동차에서 전기 시스템이 불안정할 때는 이것보다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 요즘 차는 운전자 몸에 지닌 키를 인식해서 문도 열어준다. 그뿐인가? 시동을 걸고, 움직이고, 회전하고, 정지하는 모든 움직임에 전자제어 장비가 사용된다. 가속/감속 페달뿐 아니라 조향 보조 모터나 변속기 레버, 주차 브레이크 버튼도 모두 전기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엔진 속 크랭크축은 연료를 태우는 힘으로 회전한다. 하지만 적정한 회전수에 정확하게 연료를 넣는 것은 컴퓨터(ECU)나 전자식 인젝터의 몫이다. 자세제어 장비가 차의 움직임을 안전하게 제어한다. 네바퀴굴림에 동력을 배분할 때도 동력 제어 클러치에 달린 전기 모터를 쓴다. 헤드라이트, 에어컨 팬, 오디오, 내비게이션처럼 아주 기본적인 전자 장비뿐 아니라 요즘 자동차는 아주 근본적인 부분까지 전기를 사용한다. 그러니 내연기관 자동차라고 해서 좋은 연료를 넣고, 엔진 오일 교체에만 신경 쓴다고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자동차의 전력은 12~14V(볼트)를 쓴다. 배터리가 중심에 있다. 이론적으론 2.1V를 내는 셀 6개 직렬로 연결되어서 12.6V를 발휘한다(12~13V). 발전기는 13.5~14V, 차대와 배터리는 12.5~13.5V를 유지한다. 자동차의 배선 구조는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 단선식으로 만들어진다. 단선식이란 전원의 (-)선을 차체 또는 프레임에 직접 연결하고, 전원의 (+)선을 전기장치에 연결하는 마이너스(-)접지 방식이다. 쉽게 말해 자동차는 전기를 발전하고 전압을 유지하고, 전류를 흐르게 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그래서 균형이 중요하다. 발전을 과하게 하는 것은 효율이 떨어지고, 소비를 과하게 하는 것은 시스템에 부하를 가져온다.
이렇게 자동차에 사용되는 전자 제어 장비가 나날이 증가하면서 일부 제조사들은 48V 배터리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기존 12V에서 전압을 4배 가까이 상승시킨다는 의미다. 전압이 높아지면 같은 전기부하에 대해서 전류를 1/4로 줄일 수 있는 효과도 있다. 그런데 왜 하필 48V일까? 전압을 더 높일 수도 있지 않을까? 가장 큰 이유는 안전 때문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50V가 넘는 시스템에서 사람이 감전(누전 등)되었을 때는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위협적이라고. 물론 전기차의 고압 배터리는 400V 이상을 쓰지만, 일반 자동차와는 전기를 쓰는 방식이나 목적이 다르기에 더 위험하다고 할 수는 없다.
어쨌든, 내연기관에 사용되는 48V 시스템은 자동차에 사용되는 전자 장비의 종류가 늘어나면서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주목 받고 있다. 48V는 모터로 충전과 출력을 지원하는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구할 수 있어서 연비 개선과 배출가스 절감에도 큰 도움을 준다. 이미 메르세데스-벤츠의 경우 E클래스 일부 모델을 비롯해 새로운 AMG 53 라인업에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사용 중이다. 새롭게 등장한 AMG CLS 53의 경우 V6 트윈 터보 엔진과 전기 모터를 결합한 구성이다. 여기에 EQ 부스트 스타터-알터네이터가 핵심 기술로 꼽힌다. 이 시스템이 기존 마일드 하이브리드와 다른 것은 시동 모터와 발전기가 하나로 결합해서 전류가 모터와 발전기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다. 결론적으로 훨씬 효율적이고 유연하게 전기를 관리하고 사용한다.
수입 브랜드뿐 아니라 국산차 회사에서도 전기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기술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현대모비스 같은 글로벌 부품회사들이 현재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 개발에 열을 올린다. 실제로 앞으로 등장할 기아 스포티지, 쏘렌토 부분 변경 모델에도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사용될 것이라는 소식이다. 이처럼 내연기관 자동차조차도 화석 연료에만 의존하는 시대는 지났다. 더 좋은 효율성을 위해 낡은 기술은 사리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