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 일 (2019. 05. 21. 화) : 수허고성
7시경에 일어나 씻고 2층의 호텔식당에서 뷔페를 먹었다. 호텔 규모에 비해 오는 사람들이 본토인들이 많은 까닭인지 음식이 다채롭지 못하다. 내 개인적 취향으로는 아침식사엔 베트남의 쌀국수가 제일 좋았는데 그 이유는 전날의 과음으로 지친 위장을 풀어주는 해장의 역할과 함께 밀가루에 많은 글루텐 성분이 없어 소화도 잘 되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는 밀가루 국수는 많으나 쌀국수는 없는 경우도 많았다.
황선생은 6시에 나가 1시간 산책 후 돌아오고 10시쯤 되어 안선생과 황선생 두 사람이 다시 산책을 가서 1시간 놀다왔다. 어딜 그리 다니느냐고 했더니 사방가(四方街)로 갔다가 물이 샘 쏟는 구정용담을 거쳐 청룡교, 용천로로 해서 호텔로 왔다고 한다. 이제 나가면 전부 볼 텐데 부지런하기도 하다. 게으른 나는 침대에 누워 구글 지도에서 어느 집이 맛집인지 검색해 보았지만 막상 어느 집에서 식사를 할지는 가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보름 정도씩 여행을 하면 제일 어려운 일 중에 하나가 숙소 주변의 식당을 골라 그 식당까지 찾아가는 일이고 그 식당에 들어가 메뉴판 음식 중 어느 것이 맛있을지 판단해 얼마나 주문할지 결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메뉴판 사진을 자주 찍어와 연구하는 편인데 그러면 적어도 음식의 재료가 무엇이며 조리방법이 어떤지 정도는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2시 쯤 해서 호텔을 나와 산책 겸 식당을 물색하기 시작했는데 간판들이 참 재미있다. 간판마다 저처럼 동파문자를 써두었는데 자세히 보면 한자의 수효와 동파문자의 수효가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이는 한자 또한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글자 하나가 하나의 의미를 보여주는 동파문자와 성격이 상통하기 때문이리라.
< “만국풍정여박”이란 업소인데 위에 적힌 동파글자가 재미있다. 나라를 뜻하는 글자는 집 안에 사람이 들어 있는 모양으로 보아 국가는 백성을 보호해주는 집과 같아야 한다는 뜻일까? 풍(風)자는 바람이 부는 모양을, 그리고 정(情)자는 사람이 꽃인지 무언지를 주는 것 같은 모양을, 특히 나그네를 뜻하는 려(旅)자는 모자를 쓴 사람 같다. 박(拍)자는 사진을 찍는다는 뜻인데 가운데 동그라미는 카메라 렌즈인가? >
< 다른 과일들은 대강 알겠는데 뒷줄 왼쪽 두 번째 긴 땅콩같이 생긴 것은 자주 보았는데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 옆에 있는 푸른 것은 덜 익은 망고 같은데 파파야인지도 모르겠다. 맨 끝의 것은 수박이다. 사실 나의 관심은 두 종류의 복숭아인데 아마 먹으면 분명히 청도복숭아에 길들여진 나의 미각들이 반란을 일으킬 듯해서 사고자 하는 욕구를 억눌렀다. >
< 이 과일은 얼른 보기에 화학적으로 만든 것 같은 비현실적 색채를 지니고 있다. 실제 과일이 아닌 듯해서 사지 않았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중국은 과일 옆에 그 과일의 잎을 두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과일도 현실적으로 보이는 실제의 잎이 있었다. 설마 과일을 가짜로 만들까하는 생각과 그렇게 인공적으로 과일을 만드는 것이 더 비싸게 칠 것이란 생각이 들어 뒤늦게 한번 못 사 먹어본 것이 후회스럽다. 나의 이런 몹쓸 의심병의 출발은 과거 중국에서 가짜 계란을 만들어 판다는 뉴스를 본 후 생긴 것이다. >
< 수허고성은 시가지 중앙을 맑은 시내가 가로질러 흐르고 있어 한결 풍정을 더했다. >
점심은 시내 옆에 자리 잡은 식당에서 하기로 했다. 나는 5월의 나른한 햇살 아래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할 일없는 오후를 즐기기로 했다. 40년 가까이 늘 할 일을 끼고 살던 사람에게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엄청난 축복인가? 일부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무슨 일을 자꾸 하려는 타성에 젖어 무엇에 쫓기는 듯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한다. 낭비할 시간이 있다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부유하지 않으면 누릴 수 없는 호사스런 일이기에 나는 알 수 없는 미래는 던져두고 다만 지금의 주어진 현실을 즐기기로 했다.
< 우리가 시킨 음식인데 먹던 중간에 사진을 찍어 미안하다. 이 사진을 굳이 여기 올린 이유는 음식 주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함이다. >
< 품명 첫째 것은 초패가자에서 가자(茄子)란 가지를 뜻하리라 생각했고, 두 번째는 단(蛋)이란 알을 뜻하니 계란을 의미하고 세 번째는 철판포장두부에서 두부를 보고 주문을 했는데 대강 먹을 만 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찬구(餐具)인데 밥그릇과 수저를 뜻하고 그 단가(單價)가 2위안에 수량이 3으로 총액 6위안이라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
< 돌아오는 길은 일부러 골목을 택했는데 꼬불꼬불한 길이 정겹고 간판에 적힌 동파문자 구경을 하며 어슬렁어슬렁 돌아왔다. >
저녁은 식당가의 야외식탁에 앉아 주문해 맥주 2병과 거의 실패가 드문 요리인 오리구이와 배추두부탕, 그리고 가지고 간 고추 장아찌로 식사 겸해서 술 한 잔을 했는데 맞은 편 남자 친구와 함께 온 중국 아가씨는 백주(白酒)인 강산백(江山白) 700cc 짜리 병을 큰 잔에 부어 마시고 있다. 남자 친구보다 더 자주 잔을 비우는 걸로 보아 대단한 주량이다. 수허고성에서는 신혼부부가 멋진 드레스를 입거나 소수민족들의 전통 복장으로 예식사진을 찍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아마 고성의 분위기가 고즈넉해서일 것이다. 신부들은 모두 꾸밀 대로 꾸며 모두 아름다운데 신랑 될 남자들은 이상하게도 하나같이 작달막한 키에 튀어나온 배가 돋보여 촌스럽게 보인다. 이건 아마 나의 질투심 때문일 것이다.
< 전통 복장으로 차려 입고 촬영하는 신혼부부. >
< 아예 조명 담당, 의상 담당, 촬영 담당 등 전문 촬영 팀이 있어 밤에도 촬영은 이어진다. >
식사 후 휴대폰에서 바이두(百度) 지도를 실행해 사방청음(四方廳音)이란 곳을 찾아 갔다. 넓은 광장에 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추는 군무를 구경하다가 방으로 돌아와 술을 한 잔했다. 황선생이 두 번이나 술을 사러 갔다 올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오늘도 역시 취하여 쓰러져 잤다.
♠제 8 일 (2019. 05. 22. 수) : 수허고성 → 다리고성
어제 제법 과음했음에도 오늘은 이동하는 날이라 긴장해서인지 일찍 잠에서 깨었다. 샤워하고 호텔 조식을 마친 후 8시 50분에 체크아웃하고 전기차로 고성 입구에 왔다. 택시로 리장고속 터미널에 도착하니 요금이 17위안이 나왔다. 기다리다가 10시 30분 고속버스로 다리고성 입구에 도착했는데 며칠 간 다리에 있었지만 여긴 처음 보는 낮선 곳이다. 일단 식사부터 해결하기로 했는데 이 식당은 요리 재료를 보고 주문하는 곳인데 말도 통하지 않고 영어를 안다는 젊은 놈이 오더니 붕어를 보여주며 “피쉬, 피쉬”라는 말만 했다. 하는 수 없이 옆에 식사하는 사람들 음식을 가리키며 저것처럼 달라고 했더니 돼지고기 야채볶음과 채소요리에 밥을 주는데 양이 엄청나게 많아 3/4을 남겼다.
< 나중에 보니 식탁 위에 종이로 된 메뉴판이 보였고 쌀국수도 있었다. 주변을 잘 살폈으면 이런 형편없는 요리를 먹고 바가지를 쓰지 않았을 터인데 항상 서두르는 것이 문제다. >
그리고는 118위안을 지불했는데 우리 숙소까지 택시를 불러 달라고 했더니 60위안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아 음식 값도 바가지를 쓴 것이 분명했다. 한스가 적어준 메모를 툭툭이(삼륜차) 기사에게 보이니 이 사람은 글자를 모르는 것 같았다. 다른 기사를 불러 우리 객잔 주인과 통화하게 했더니 20위안을 내라고 해서 툭툭이를 타기로 했다. 생각보다 훨씬 먼 거리를 가길래 이 사람이 객잔의 위치를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할 즈음 다 왔다고 차를 세우는데 길 건너편에 객잔 여주인이 마중 나와 있었다.
체크인 후 1박에 180위안, 3박에 540위안을 지불하고 쿤밍가는 기차표 예매를 부탁했더니 자기 휴대폰으로 예약해 주었다. 이 사람은 흑룡강 근처에서 살다가 대리로 왔다고 하는데 그래서 자가용 번호판도 흑룡 *****라 되어 있었다. 그 먼 거리를 차를 몰고 오려면 아마 며칠 걸렸으리라. 키 크고 목소리도 저음에, 영어 발음도 좋았다. 나는 이 사람이 우리를 마중 나온 여자와 부부 사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첫날 우리를 얼하이 호수에 태워 준 안경 쓴 마른 남자, 아마 동생 같아 보이는 남자와 부부 사이였다.
< 오후에는 좀 쉬다가 할 일도 별로 없고 해서 다리고성 산책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 하나는 밤에 한잔할 때 안주로, 하나는 기차 예약에 도움을 준 객잔 주인에게 선물하려고 과일을 다듬어 파는 도시락 2개를 샀다. >
저녁은 한스와 같이 몇 번 간 적이 있는 백족농가식당에 가서 벽에 붙은 사진과 요리 이름을 열심히 연관해 요리 맛을 상상해 주문했는데 가장 만만한 것이 두부와 계란 요리이다.
< 저녁은 철판구이 두부와 계란 요리에 탕(湯) 하나, 그리고 밥과 맥주 3병까지 113 위안이니 점심때는 맥주를 마시지 않았으니 30위안 정도 바가지를 쓴 것 같다. >
오늘 밤도 몇 개의 캔과 백주 한 병을 섞어 마심으로써 규칙적 생활을 했다.
♠제 9 일 (2019. 05. 23. 목) : 다리고성, 창산(蒼山)
오늘 일정은 대리의 주산(主山)인 창산(蒼山)에 오르는 것이다. 아침은 다소곳한 백족 부부가 운영하는 동네 식당에서 쌀국수로 대강 먹고 대리 남문에서 20위안을 주고 택시로 창산 케이블카 하부 정류장에 도착했다. 창산풍경구 입장료가 1인 35위안, 케이블카 비용이 80위안으로 우리 돈으로 치면 약 2만 원 정도이다. 창산은 윈링산맥 남단에 있는 주봉이며, 19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모두 3,500m 이상의 높은 산이다. 최고봉은 마롱봉으로 4,122m이며, 이 산으로부터 흐르는 시내들과 폭포의 물이 모여 얼하이 호수를 이룬다. 창산에는 세 군데의 삭도(索道)가 있는데 감통사란 절 입구에서 출발하는 감통삭도(感通索道)와 세마담(洗馬潭)까지 올라가는 세마담삭도, 중화사(中和寺)까지 가는 중화(中和)삭도가 그것이다. 이 중 세마담(洗馬潭)삭도가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고 감통삭도와 중화삭도는 길이가 비슷하다. 우리가 타려는 것은 감통삭도로 세계에서 가장 큰 장기판과 청벽계(淸碧溪)란 곳으로 유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장기판을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고 또 그게 무어 자랑할 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까이 가본 사람들의 평가로는 장기 알은 배를 건조할 때 쓰는 FRP로 만들어졌고 중국 사람이 만든 것답게 그 솜씨가 매우 졸(拙)하다고 한다.
< 그냥 두면 좋았을 자연을 훼손하면서까지 저런 거대하고 기괴한 조형물을 만드는 이유는 자신이 지닌 보잘것없이 작은 것에 대한 열등의식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두지도 못할 장기판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고 폭포와 대강의 풍경은 이미 케이블카에서 보았기에 굳이 힘들여 저 아래 보이는 풍경을 향해 내려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나는 다만 불어오는 바람에 땀이나 식히고자 시원한 그늘을 찾아 앉았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안선생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높은 베트남 사파의 3,143m 판시판 산 케이블카를 정복한 이후로 며칠 전 옥룡설산 3,800m 높이의 모우평 상부 휴게소를 정복하고도 여전히 고소 공포증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2,523m 높이에 위치한 휴게소에 거의 리프트 수준의 빈약한 케이블카를 타고 30분이나 걸려 올라올 때 오늘도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이미 심신이 피곤한 지경에 이르러 내 곁에 앉아 쉬기로 한 모양이다. 결국 황선생 혼자 들려오는 물소리와 푸른 풍경 속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 내려가는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대리(大理)시의 모습. 멀리 5월의 햇살 아래 펼쳐진 얼하이호가 보인다. >
< 케이블카를 내려와 감통사란 절이 유명하다고 해 가 보기로 했는데 절 입구로 들어가야 할 것을 남들이 가길래 그냥 왼쪽 오르막길로 한참 따라가다가 오르막이 계속되기에 힘들어 포기하고 내려오니 그제서야 절 입구로 들어가는 정상적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
< 감통사에서 내려오는 길에 사피과(蛇皮果)란 처음 보는 과일을 보았다. 이름처럼 껍질이 뱀껍질을 닮아 그 맛이 매우 궁금했는데 며칠 후 먹어보니 이름처럼 쇼킹한 맛이 아니라 별로였다. >
갈 때 택시 값이 20위안이었기에 30위안 달라는 택시기사에게 20위안으로 흥정하다가 결국 5위안 더 주기로 하고 고성 남문에 도착하니 벌써 점심때가 되었다. 여행 다니다보면 왜 그리 밥 때가 금방 닥치는지 알 수가 없다. 다니면서 식당을 선택하고 또 음식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결국 아침에 갔던 부부식당에 다시 가기로 했다. 계란볶음밥과 북경 짜장면, 그리고 물만두를 주문했는데 모두 34위안이다. 우리 돈으로 6,120원이니 1인당 2,040원이다. 짜장면은 달달한 우리나라 짜장면과 달리 좀 짠 편이고 물만두는 피가 조금 두꺼워 씹는 맛이 있다. 볶음밥과 같은 밥 종류를 주문할 때는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바로 양(量)이다. 1인분 주문에 거의 2인분을 준다.
< 특히 볶음밥의 양이 많아 보인다. 결국 1/3은 남겼다. >
호텔로 돌아와 쉬다가 쉴 줄 모르는 황선생은 한식당(韓食堂)인 계수나무 식당을 찾으러 갔다. 컵라면으로 저녁을 대신하고 산책 겸 나갔다가 대리고성 과일가게에서 3사람의 한 끼 식사대에 해당하는 36위안에 과일 한통을 사고 오는 길에 백족식당에 들러 어제 먹은 피단 한 그릇을 포장해 달라고 하니 이제 남자주인은 우리가 무얼 말하는지 잘 알아듣는다. 식당 앞 초시(超市 - 슈퍼)에서 칭다오 맥주 3캔을 사 호텔로 돌아와 오늘도 규칙적 생활을 했다.
♠제 10 일 (2019. 05. 24. 금) : 희주고진(喜洲古鎭)
오늘도 백족 부부식당에 가 3그릇의 죽과 소룡포 1접시로 아침을 간단히 먹기로 했다. 우리가 며칠 계속 가니 이젠 낮이 익어 오늘 처음으로 차(茶)를 대접한다. 지금까지는 물도 주지 않았는데 장족의 발전이다. 이에 감동한 안선생이 1위안으로 무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1위안을 옆에서 학교 가기 전 아침을 먹는 이 집 아들에게 주니 받지 않으려 해 겨우 주었다. 아이는 밥을 놀기 반 먹기 반하여 엄마 속을 썩이지만 엄마는 연신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아이를 달랜다.
< 이 죽은 소미죽(小米粥)이다. 대미죽(大米粥)이 쌀죽인데 이 죽은 좁쌀죽이다. >
오늘 주요 일정은 소수민족 중 백족이 모여 사는 시저우(喜洲)고진까지 노선버스를 이용해 방문하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계수나무 식당에 들러 오랜 만에 한식(韓食)을 먹는 것이다. 우선 고성 남문으로 가 서문까지 택시를 탔더니 8위안의 요금이 나왔다. 소형버스가 기다리고 있어 얼위안으로 가는 버스가 맞는지 몇 번 확인 후 1인 6위안을 주고 탔다. 차장에게 우리는 시저우에 가니 그곳에서 내려달라는 부탁을 몇 번 하고서야 마음이 놓여 겨우 차창 밖 풍경이 보였다. 중국도 휴대폰이 일반 국민에게 거의 보급되었지만 휴대폰 예절은 제대로 보급이 안 되었는지 아줌마가 고함지르듯 큰소리로 통화를 해 타고 가는 모든 승객이 강제로 그녀가 처한 상황을 공유하게 되었다.
큰 사거리에 있는 시저우 입구 정류소에 내려 아파트와 현대식 공장 건물을 거쳐 한참을 걸어가니 시저우 고진 입구가 나타났다. 마침 “熙洲古鎭遊客中心”이란 간판을 단 여행객 정보 센터가 있어 들어가 보니 전기를 아끼려고 그러는지 불을 몇 개만 켜서 어두컴컴했다. 정면에 밝은 빛을 향해 가니 탱자탱자 놀고 있던 아가씨가 난데없는 외국인의 출현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내가 영어를 못하는 것인지 아가씨가 못 알아듣는지 제대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도만 한 장 가지고 나와 앞의 마차를 흥정하니 엄청 비싸 포기하고 20위안의 툭툭이를 탔다.
< 한자 아래 영어로 번역해 두었는데 희주(喜洲)는 중국식 발음대로 “Xi Zhou”라 해두고 고진(古鎭)은 “ancient town”라 제대로 번역을 했는데 문제는 우리말 번역이다. 그냥 “희주고진 여행객 센터”라 하면 될 것을 “희”는 의역을 해 “기쁨”이라 하고 “주”는 음역, 그리고 “고”는 다시 “오래”로 의역한 후 “진”은 번역이 어려웠는지 생략해버렸다. 한국을 높이 평가해 영어 다음으로 번역해준 것은 고맙지만 이왕 번역을 시킬 것이면 학자에게 시키고 그걸 다시 다른 사람에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충고를 해주고 싶다. >
< 몇 군데 관광명소를 툭툭이로 둘러보다가 목각하는 곳에서 안선생이 200위안의 코끼리 조각을 사는 동안 마당에 핀 부겐빌레아 꽃 색깔이 너무 고와 사진을 찍었다. >
마침 고진 입구에서 하관 가는 소형버스가 있기에 올 때보다 1위안 더 비싼 7위안에 타고 고성 서문에 내렸다. 서문 앞 지도를 참고해 계수나무 식당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을 향해 한참을 걸어 드디어 어제부터 고대하던 식당에 도착했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해물탕으로 각각 다르게 점심주문을 했다. 그러나 종업원들도 세련되었고 식당도 깨끗하고 음식도 정갈했지만 아직 나는 그렇게 한식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그런지 감동할 정도의 음식 맛은 아니었다.
< 108위안이니 아침에 먹은 부부식당의 식대 19원의 5배 이상이다. 한식은 베트남에서도 그랬지만 중국에서도 상당한 고가의 음식이다. >
황선생은 걸어서 숙소로 가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도착해 쉬다가 낮잠에 빠져 일어나니 거의 저녁이 다 되었다. 백족식당에 가 평소 먹고 싶고 궁금했던 소고기 철판볶음, 야생버섯 탕에 밥과 맥주에 백주까지 곁들여 한상 그득 주문했다. 그리고 청포묵을 포장해 달라고 하여 반주를 곁들인 식사를 했다. 식사 후 황선생은 또 대리고성으로 산책 가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청포묵을 안주로 백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며 10시 40분이 될 때까지 놀다가 어제와 마찬가지로 쓰러져 잤다.
♠제 11 일 (2019. 05. 25. 토) : 대리 → 쿤밍
< 공처럼 둥근 것이 마구(麻球). 공갈빵처럼 속이 빈 것은 아니고 찹쌀 반죽을 튀긴 것이라 담박하면서도 쫄깃한 맛이 있다. >
일찍 일어나 씻고 짐정리를 한 후 부부식당에서 대미죽(2그릇), 녹두죽(1그릇), 소룡포(1접시)와 마구(麻球 - 둥근 공 같은 찹쌀 튀김) 2개로 아침식사를 했다. 그래봐야 22위안이다. 9시 55분에 객잔 주인이 자가용으로 거의 1시간 거리의 대리역에 데려다 주어 택시 값 정도의 비용을 지불했다. 4번 창구에서 실제 승차권과 바꾸어 대합실에서 기다리다가 11시 36분발 고속철(D)을 타고 2시간 10분 정도 걸려 13시 50분에 쿤밍역에 도착했다. 최초로 우리끼리 중국 기차를 이용한 것이다. 시간이 이미 점심때를 넘겨 역 주변의 식당에 가서 소고기 쌀국수(우육미센) 3그릇을 시켜 먹고 택시로 한스 집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간단히 씻고 좀 쉬었다.
베트남의 재래시장에서 진열된 재래종 돼지의 기가 막힌 삼겹살 부위를 본 후 늘 재래종 돼지고기로 수육을 한번 해 먹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한스가 부엌 사용을 허락해서 돼지 수육을 한번 해 먹기로 했다. 그래서 주변의 재래시장인 용수촌(龍壽村)에 가 돼지 생고기 목살부분과 상추, 마늘, 양파 등을 구입한 후 돌아와 요리를 시작하니 한스가 연길에서 조선족이 파는 것을 택배로 주문했다는 바짝 마른 된장도 찾아주었다. 냄비는 작고 삶아야할 고기는 많아 겨우 익었다 싶을 때 꺼내어 써니 재래종이라 그런지 육질은 좀 질긴 편이되 육미는 대단히 좋다.
< 냉장고가 아닌 상온에 바로 진열해서 파는데 껍질이 얇고 비계도 얇아 씹는 맛이 좋아 보인다. >
< 번들거리는 돼지고기의 비계가 입맛을 돋운다. 저녁 겸 술 한잔을 마시는데 한스 부인이 마련한 죽도 한 그릇 얻어먹었는데 상당히 솜씨가 있다. 연잎에 싸인 재료는 장모(丈母)님이 마련해준 것이라고 한다. 한스는 아마 사랑받는 사위인 모양이다. >
식탁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현지사정에 밝은 한스에게 우리의 여행계획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모레 토림(土林)투어를 부탁한 후 우리 방으로 돌아와 한잔 더하고 9시경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제 12 일 (2019. 05. 26. 일) : 운남 민족촌
6시에 일어나 씻고 아파트 건너편 청화에서 쌀국수로 아침식사를 한 후 숙소로 돌아와 마침 거실에 있던 한스와 차 한잔했다. 8시 40분에 버스정류장에서 번호가 A1인 버스를 기다리다 탔는데 2층 버스였다. 우리는 당연히 2층에 올라가 맨 앞에 앉아 시내 구경을 했다. 돌아올 때 보니 노약자는 2층에 올라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있었다. 버스는 1시간 정도 시내를 거쳐 종점인 운남민족촌에 도착했다.
< 2층 버스에서 바라본 쿤밍의 도심지. 앞에 보이는 붉은 기와 입힌 문이 금마문(金馬門)으로 이 지역이 쿤밍의 핫 플레이스이다. >
인구 640만(나무위키 2019년 6월 기준)의 쿤밍은 운남성의 성도이며 예전부터 주요한 두 교역로, 즉 서쪽의 미얀마로 가는 길과 남쪽의 인도차이나로 가는 길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기 때문에 교통의 요지로서 항상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위도 상으로는 아열대에 속하지만 해발 고도가 1,900m나 되어 여름에도 그리 덥지 않고 겨울에도 기온이 8°C 이하로 내려가지 않아 “꽃의 도시”, 혹은 “봄의 도시”라 불리는 것으로 보아 아마 베트남의 달랏과 성격이 같을 것 같다. 그래서 숙소에 에어컨은 고사하고 그 흔한 선풍기도 없었다.
< 이 민족촌은 운남에 사는 소수민족 중 스물여섯 민족의 주거환경과 생활풍속, 문화를 재현해놓은 민족촌인데 소수민족들의 의복, 의식, 춤 공연 등을 볼 수 있는 대형 민족촌이다. >
중국 민족 구성은 한족(漢族)이 92%이고 나머지 8%가 소수민족인데 그 수가 쉰여섯이나 된다. 베트남 국경지역의 광시 장족(壯族), 닝샤의 후이족(回族), 만주일대의 만족(滿族), 신장 위구르의 위구르족, 중국 남부의 묘족(苗族), 티베트지역의 장족(藏族), 몽골족 등이 그래도 쪽수가 많은 편이고 조선족은 인구로 볼 때 14위라고 한다.
입장권을 끊기 위해 매표소에 도착했더니 입장료가 90위안이다. 우리 돈으로 16,000원이니 용인 한국민속촌 입장료인 20,000원에 거의 맞먹는다. 이때 안선생이 뭘 자세히 보더니 60세 이상 70세 미만은 반액 할인이 된다고 한다. 모처럼 안선생이 한 건했다. 그래서 45위안에 입장했는데 처음에는 이것저것 사진도 찍고 이 집 저 집 기웃거리기도 했는데 우린 대륙의 스케일을 잠시 잊고 있었다. 가고가도 무슨 소수민족이 그리 많은 지 그리고 민족촌은 얼마나 넓은지 중간에 공연도 보고 쉬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어디로 갈지 길을 잃기도 하고 결국 지치고 말았다. 나오는 길에 장족(藏族) 마을이 있어 들렸더니 젊은 남녀들이 무엇을 축하하는지 원을 그리면서 춤을 추고 있다.
< 장족의 젊은이들은 티베트 족이라서 그런지 남녀 모두 키 크고 콧대도 쭉 곧고 높아 인물이 다 좋다. 오른쪽 아가씨는 서구적 미모에 손발이 가늘고 길며 몸매가 늘씬하여 미인이라 할 만하다. 게다가 직업적으로나 의무적으로 추는 춤이 아니라 흥에 겨워 추는 춤인 듯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
내가 민속학자가 아닌 바에야 모든 소수민족의 생활을 의무적으로 다 볼 이유는 없지 않은가? 나중에는 대충 보는 듯 마는 듯하다가 12시 조금 넘어 민족촌을 나와서 식당에 들러 두 사람은 고기볶음밥을 시키고 나는 볶음면을 주문해 먹었다. 지금까지 선물을 산 적이 없었기에 뭐 살 것이 없는가 하고 기웃거렸는데 이곳이 차마고도의 시작점인지라 보이차(普洱茶)가 유명한데 차는 가져가 봐야 요즘 거의 마시지 않으니 별로 손이 가지 않는다. 마침 커피를 볶아 파는 곳이 보여 중국 커피는 어떤지 궁금해 가서 보았더니 운남에서도 커피가 나는 모양인데 그 가격이 뭘 믿고 저런 가격을 붙였는지 의심할 정도로 비싸게 가격을 매겨 놓았다. 그래도 사 가는 중국인이 있는 것을 보니 이 사람들은 아직 커피를 몰라 바가지를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 커피 품명은 아라비카 종인 것 같고 산지는 운남의 보산(保山)이라니 운남도 커피 산지인 모양이다. 문제는 500g에 180위안이라는 가격이다. 그럼 100g에 36위안, 6,500원이다. 200g에 우리 돈으로 13,000원이니 베트남 커피 200g에 2,500원인 것에 비교하면 거의 5배의 가격이다. 베트남 커피보다 좋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비싼지 모르겠다. >
< 앞의 마패 모양도 보이차를 압착해 만든 것 같다. 뒤에 탑처럼 쌓아둔 보이차는 과연 사 가는 사람이 있을까? >
민족촌에서 나와 버스를 타려 길을 건너니 운남 민족박물관이 보였다. 보지 않았으면 모르겠거니와 이왕 본 바에야 문화를 사랑하고 역사에서 삶의 지혜를 들여다보는 지식인으로서 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날씨는 더웠지만 모든 박물관은 시원하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열심히 걸어갔더니 지식인을 알아보는 모양인지 무료입장이다.
< 운남 민족박물관 입구. 건물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바로 옆에 버스 종점과 붙어 있다. >
여러 민족들의 다양한 가면과 나시족 사제의 동파문자, 그리고 성기를 노골적으로 강조해 묘사한 섬뜩한 창을 든 남녀 목각 인형, 그리고 석조 사자상과 섬세한 목각 제품들. 몽골족의 화려한 장식의 월금(月琴)을 비롯한 피리와 장족의 물고기 모양의 북과 포의족(布依族)의 죽현금(竹弦琴) 등의 악기. 그리고 각종 도자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글자를 적어 넣거나 자연의 산수를 도자기 표면에 그린 작품의 경우 고온의 불에 구워 만들어낸 작품이란 생각을 하니 그 제작기법이 놀랍고도 궁금했다. 다만 소수민족 작품이라 그런지 전체를 이어주는 역사적 흐름 같은 것이 없이 그냥 단편적 작품들을 종류 별로 진열해 둔 듯해서 아쉬웠다.
< 남성 성기와 여성 음부를 특히 상세히 목각을 했으면 생산과 풍요를 기원해야 정상인데 왜 창을 들게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
< 고온의 열에도 바탕색과 다른 몇 가지의 글자와 그림이 어떻게 저렇게 선명하게 나왔는지 놀랍다. >
< 나시족의 동파(東巴)사제가 장례 때 쓰던 길이 14m의 신로도(神路圖)로 죽은 이의 영혼이 귀신계, 인간계, 자연 천국(natural paradise)을 거쳐 천계(天界)에 이르도록 한다는 것으로 나시족의 영혼불변 생사관과 착한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윤리관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문에 적혀 있다. >
3시 40분경에 다시 A1 버스를 탔지만 이번에는 2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이제 내려야 할 정류장도 알고 어제 간 시장도 알고 제법 지리에 익숙해졌다. 숙소로 와 씻고 좀 쉬다가 한스에게 근처 맛집을 물으니 “외할머니(外婆)집”이란 곳을 소개해 주며 몇 가지 메뉴도 추천해 주었다. 숙소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걸어 5분 정도의 거리였는데 우리가 아침에 쌀국수를 먹는 청화(靑和)식당과는 격이 다른 고급식당이었다.
<외파미도(外婆味道)란 간판에 4층 건물이었는데 종업원도 많고 손님도 많았다. >
< 6시 반에 나가 소고기 볶음, 마파두부, 데친 갓 요리와 밥을 주문해 먹었는데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그래도 요리인데 가격도 훌륭하여 전부 73위안밖에 안 했다. >
오늘도 방에서 소맥 한잔한 후 11시 조금 안 되어 취침했다.
♠제 13 일 (2019. 05. 27. 월) : 원모 토림(元謀 土林)
일어나 식사하러 가다가 황선생은 대리에서 먹어본 마구(麻球) 만드는 옆 식당으로 가고 우리 둘은 청화에서 꾸준히 8위안짜리 쌀국수를 먹었다.돌아와 한스 부인이 운전하는 SUV를 타고 8시 50분에 토림(土林)으로 출발했다. 곤명(쿤밍)에서 토림까지는 232Km로 휴게소에 한 번 쉬고 토림 입구 마을에 도착하니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날씨는 지나치게 맑아 자외선이 피부를 뚫는 것이 느껴질 정도이다. 여긴 지역이 다른지 너무 더워 선풍기 없으면 안 될 지경이다. 식당은 각종 요리 재료를 진열해 두고 그 재료를 보고 어떤 재료로 어떤 방식으로 요리를 해달라고 주문하는 중국식이다. 그래서 당연히 주문은 한스 부인이 했는데 돼지고기는 뼈째 썰어 맵게 튀겨내고 공심채 볶음에 새싹 나물을 곁들여 한 상 차렸는데 먹을 만하다. 4명의 식대는 80위안.
< 주문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식욕을 돋운 건지 상당히 맛있다. >
입장권은 경로할인을 받아 반값인 35위안이다. 입구에 전기차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그걸 타면 제일 위에 갔다가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내려온다는 가이드북 신봉자인 안선생의 말을 듣고 우리는 엄청난 자외선의 폭포를 향해 두려움 없이 전진했다. 그리고 곧 우리는 엄청난 풍경 앞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육체적 나약함에 무릎을 꿇고 말았으니 자연은 우리에게 왜 이런 경이로움을 보여주는지 그 저의가 선의(善意)인지 악의(惡意)인지 의심스럽다.
< 하늘을 배경으로 시간이 만든 작품이기에 신전 같은 위엄이 느껴진다. 그러나 너무 더워 나머지는 황선생에게 맡기고 둘은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
< 황선생은 끝까지 가서 이런 절경을 찍어 왔다. >
표 파는 곳으로 돌아오니 옆에 휴게소가 있는데 아무도 없이 텅 비어있다. 그래서 웃옷도 좀 풀어헤치고 신발도 벗고 창문을 활짝 여니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 좀 낫다. 화장실에 가 우선 땀을 좀 씻어 내고 옆 가게에 가 아이스크림을 사와 부족한 당(糖)을 보충하니 이제 정신도 들고 살만하다. 옛날에는 더운 여름에도 그렇게 땀을 많이 흘리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갱년기인지 웬 땀이 그리 많이 나는지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이다. 머리부터 시작해 얼굴에 세수하듯 흘러내리니 손으로 땀을 훔치면 방울져 주르르 흐른다.
< 마당에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기에 무슨 나무인가 했더니 망고나무다. 청도 감나무처럼 집집마다 이런 식으로 망고를 기르니 망고가 흔할 수밖에. >
황선생도 돌아오고 휴게실에서 좀 더 쉬다가 기다리고 있는 한스 부인의 차를 타고 2시 25분에 출발했더니 집에 도착하니 5시 25분이다. 본격적으로 씻고 땀흘린 것밖에 한일이 없지만 엄청 피곤해 또 쉬었다. 저녁은 한스가 김치찌개를 끓이고 밥해서 한 끼 대접을 받았다. 방에 돌아와 식탁에서 못 다 채운 알코올을 보충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제 14 일 (2019. 05. 28. 화) : 쿤밍
원래 오늘은 홍토지에 가려고 했지만 한스가 어제 일기예보를 보더니 비가 올 것 같으니 홍토지는 불가(不可)하다고 해서 일정이 없는 하루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제법 소리 내며 내린다. 청화식당에 가 쿤밍에서의 마지막 쌀국수를 먹고 오전 내 방에서 빈둥거렸다. 점심은 “외파미도”에서 오리고기와 마파두부, 채소와 낮부터 맥주까지 주문해 먹고 얼큰한 김에 다시 잠들었다. 그 동안 황선생은 부근에 있는 화조(花鳥)시장에 다녀오고.
< 점심 식단 : 중국에서 오리고기는 닭고기보다 실패할 확률이 적다. >
< 저녁 식단 : 삼겹살 찜에 화결 비슷한 밀가루 빵이 따라와 속에 끼워 먹으니 먹을 만하다. 오징어 튀김은 너무 바싹해 별로 맛있는 줄 모르겠다. 오른쪽 수박주스는 참 잘 시켰다. >
저녁도 “외파미도”에 가서 삼겹살 찜과 오징어 튀김, 데친 갓 요리, 수박주스에 맥주까지 주문해 먹어 138위안을 지불했는데 이는 이번 여행 중 최고가(最高價)의 식대이다. 내일 새벽에 출발해야하기에 미리 짐을 챙겨 가방을 꾸렸다. 9시 쯤 되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제 15 일 (2019. 05. 29. 수) : 쿤밍 → 상하이 → 부산 → 청도
4시 50분에 일어나 5시 15분에 한스와 인사한 후 한스 부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쿤밍공항에 도착해 체크인했는데 수하물은 부산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7시 45분 쿤밍공항을 출발해 11시 상하이 푸동공항에 도착해 국제선 환승통로를 통해 출국심사대로 갔다. 출국심사와 보안검색 후 면세구역으로 들어와 과자 1상자와 물 1통을 산 후 할 일이 없어 쉬었다.
< 이번 여행 마지막 기내식. 뭔가 많이 든 것치고 맛들이 따로 놀아 할 일도 없고 해 그냥 입 안에 넣었다. >
오후 1시 55분 푸동공항을 출발해 오후 4시 50분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경전철과 3호선을 타고 구포역에 도착해 부전식당에서 돼지수육과 소주 2병으로 귀국주를 대신했다. 황선생은 동대구로 가고 안선생과 청도에 내리니 사모님이 마중 나와 그 차로 집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힘든 여행이었다.
※ 항공권(324,000원) + 예약금(100,000원) + 비자(55,000원) + 여행생활비(7000위안 = 1,250,000원) - 남은 돈(200위안 = 36,000원)
∴ 15일 여행비 약 17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