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기 정창영
“형님 내일 스케줄 없으면 같이 쇼핑하러 가시죠?”
설 당일 모든 일정을 끝내고 집에서 쉴 때쯤이었다. 교회 동생이 전화 왔다. 친척 보러 먼 지방에 가지 않는 사람, 딱히 할 일 없는 사람들끼리 백화점 가자는 것이었다. 사실 난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걸 꺼렸다. 하지만 한동안 독서라든지, 글쓰기, 심지어 운동까지도 집에서 해왔던지라, 일상의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 가자”
다음날 집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정오에 동생과 대연역에서 만났다. 지하철을 타고 센텀으로 향했다. 또 다른 교회동생은 친척댁에 들린 후 오겠단다. 오케이. 영화처럼 상영 시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니깐. 동생과 난 센텀 역 플랫폼에 내린 후 지하를 통하여 백화점에 들어갔다. 회전문을 통하여 실내로 공간이 열리는 순간 기압으로 온갖 진열된 상품들의 냄새가 공기를 타고 코를 때렸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마치 SF영화 속 파일럿이 여러 장애물을 요리조리 피해가듯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녔다.
층마다 다른 주제로 다양한 브랜드의 매장이 늘어져 있었다. 세밀하게 본다면, 한 층에 한 시간 정도는 걸릴 듯했다. 우리는 특별히 무언가를 사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었기에 대충 눈으로 흘깃거리며 지나갔다. 무언가 눈에 흥미로운 것이나, 예쁜 것, 멋진 것이 있으면 ‘오 괜찮네’ 뿐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맨 위층까지 올라가면서 구경하고, 다시 내려가면서 구경하다가, 잠시 카페에 들려 커피를 마시며 다리를 풀었다. 그리고 별관이 생겼다는 동생의 말에 경악 하기도 했다.
확실히 눈에 혹할만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저걸 사면 어떨까?’, ‘저걸 사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에 눈이 호강 하는 상품이 있는가 하면, ‘저걸 주면 좋아하겠지?, ’저걸 드리면 참 기뻐하시겠지?‘ 라는 생각에 서글퍼지는 무언가도 있었다. 그러다가 홀린 듯이 입 밖에 이런 말을 되뇌었다.
“돈이 많으면 좋긴 좋겠구나”
너무 크게 말했는지 옆에 있던 동생이 웃으면서 맞장구쳤다.
“그렇죠”
하지만 그런 생각과 함께 하나의 주마등처럼 떠올려진 과거의 장면이 머릿속에 나타났다. 6년 전 남 아프리카의 가나라는 나라에 촬영차 간 일이다. 가나로 향하는 하늘길이 멀어서 두바이에 경유를 했었다. 당시 산유국으로 부유한 나라에다 막대한 자금으로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도시라는 사실을 한국에서 여러 매체로 익히 들은 바가 있어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여기에 들어선 김에 얼마나 좋은 곳인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하루 정도 관광을 했었다.
마침 그날이 라마단 기간이라 자국인이든 외국 관광객이든 할 것 없이 모두가 금식 해야만 했다. 그리고 시간대가 햇볕이 내리쬐는 뜨거운 오후 때인지라, 거리마다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높다란 빌딩 숲에는 시끌벅적한 소음에 익숙한 나로서는 그곳은 현실적이지 않은 생기가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 모이는 곳을 찾아다녀야 했다. 그래서 간 곳이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센터인 두바이 몰이었다.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 알 것만 같았다. 소문처럼 건물 크기는 컸지만, 크면 무엇하랴 어차피 속 안은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상품들 아닌가. 한 시간 정도 걸었을까. 다리가 아파지면서 돈 내고 고생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밴치에 주저앉았다. 질려버렸다.
후에 오후에는 사막을 구경했다. 지프를 타고 인근 사막으로 달렸다. 사막 한가운데 도착 후, 모래 언덕을 밟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상누각. 막대한 자본으로 지어진 그 도시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한낱 모래밭처럼 바람에 휩쓸려 사라질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밟고 있는 모래도 한때는 인간이 세운 찬란한 건물이 무너져 오랜 풍파에 깎여진 것이리라. 나는 저 멀리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지평선 끝자락을 보며 이 모래를 위해서 잃은 것에 울고 얻은 것에 웃고 빼앗아 상처 주고 뺏겨 미워하지 않았나 생각해보았다.
실망감을 안고 최종 목적지인 가나를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이륙 후 하늘 위에서 모래 위의 도시를 보았다. 그리고 아쉬움 없이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가나는 사뭇 달랐다. 화려하고 높다란 쇼핑몰은 아니지만, 시장통 곳곳마다 생기 넘치는 사람들로 붐볐다. 이곳 사람들은 라디오를 통해서든 손바닥으로 치는 북소리든 음악 소리만 들리면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춤을 추었다. 무엇이 그리 기쁜지 춤추면서 웃고, 노래하면서 웃고, 먹으면서 웃고, 얘기하면서 웃었다. 아이들은 거의 맨발이거나 형들에게 물려받은 샌들을 신었고, 옷차림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통 옷을 입거나, 아니면 남루하고 헤진 옷차림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생동감이 있었다. 나에게도 그들에게서 오는 생명력을 느꼈다. 그리고 힘을 얻었다. 그들 생활상 자체로 나는 감동을 하였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아부메마을" 인근 강변 )
물질로 누군가에게 마음을 얻고 감동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물질을 사기 위해서 대부분 시간을 상처를 주거나 아픔을 주지 않았을까. 혹여, 주는 것의 목적이 받기 위해서 아니었을까. 아니면 인정을 받기 위해서일지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이와 같지 않았었나 반성해본다. 세상의 방식에 익숙해서 하나님을 대할 때 그릇된 방식이지 않았는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내가 가진 것 없어도 진실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때 나 또한 가나 사람들처럼 기뻐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춤을 추며 기뻐하는 그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그리고 돈이 많았으면 하는 마음은 이내 사라졌다.
“형 이제 가실까요?”
나는 최면에 걸린 듯 제각기 목적지를 행해서 나아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동생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이어진 아이쇼핑. 정오부터 저녁 6시까지 둘러 다녔다. 발바닥 근육이 당겼다. 나는 앞서가는 동생 뒷모습 보며 속으로 말했다.
“이럴 거면 여자친구와 가지, 너랑은 안 간다!.”
첫댓글 사진과 글 너무 좋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액자 소설을 읽은 듯 합니다. 거기에 사진까지 첨부하니 더 구체적으로 실감나네요. 글, 사진 재밌게 잘 봤어요^^
와우!!!
사막ㅎ 글은 여운이 오래 남고 사진은 여운을 정확히 집어 주는군요
백화점에 갔다가 여행을 만나고 옵니다^^
백화점과 여행, 두바이와 가나, 참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글
너무 좋았습니다. 특히 사진이 들어가니깐 더 깊게 와닿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