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악산 흘림골-주전골
<단체기념사진>
Ⅰ. 개황(槪況)
1. 일 시 : 2014. 8. 7. 08:00
2. 장 소 : 설악산 흘림골 - 주전골
3. 참석인원 : 23명
4. 등산코스 : 흘림골공원지킴터 - 여심폭포 - 등선대 - 등선폭포 - 십이폭포 -
용소폭포 - 주전골 - 오색주차장
5. 교통정보
- 빠른 길 찾기 정보
▶ 검 색 지 : KBS춘천방송총국 ➠ 오색분소
▶ 거 리 : 115,2km
▶ 소요시간 : 2시간15분
- 다녀온길 : 중앙고속도로 춘천JC - 서울춘천고속도로 동홍천IC - 성산교차로 - 철정교차로 - 한계삼거리 - 설악로 - 오색분소
- 동원차량 : 강원 70바 1742 유 문 옥
6. 날씨상항
◆ 주간날씨예보
- 2014. 8. 4. (월) 06:00 발표 기상전망 : 기압골의 영향으로 7일 중부지방과 경상북도에 비가 오겠고, 북상하는 제11호 태풍 할롱(HALONG)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8일 제주도를 시작으로 9~10일에는 남부와 강원도영동에 비가 오는 곳이 있겠으며 그 밖의 날은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들어 구름많겠다고 전망하였다. 기온은 평년(최저기온 : 20~25도, 최고기온 : 27~32도)과 비슷하겠습으며 강수량은 평년(강수량 : 4~21mm)보다 강원도영동과 남부지방, 제주도는 많겠고, 그 밖의 지방은 비슷하겠다고 하였다.
◆ 오늘의 날씨
7. 활동상황
○ 08:00 --- KBS춘천방송총국앞 출발(설악휴게소 경유)
○ 09:53 --- 흘림골공원지킴터주차장 도착
○ 10:00 --- 단체기념사진촬영 및 일정안내
○ 10:02 --- 들머리진입
○ 10:26 --- 여심폭포
○ 10:42 --- 능선안부쉼터갈림길
○ 10:49 --- 등선대
○ 11:14 --- 능선안부쉼터원점회귀
○ 11:26 --- 등선폭포
○ 11:50 --- 십이폭포
○ 12:06 --- 주전골갈림길
○ 12:07 --- 용소폭포팀 합류
○ 12:13 --- 주전바위
○ 12:14 --- 용소폭포
○ 12:30 --- 점심식사
○ 12:57 --- 금강문
○ 13:15 --- 선녀탕
○ 13:26 --- 독주암
○ 13:31 --- 성국사
○ 13:47 --- 오색약수
○ 14:00 --- 오색주차장도착
○ 14:30 --- 오색주차장출발
○ 15:17 --- 속초시 장사동 도착 자유 투어
○ 16:53 --- 장사동출발
○ 19:10 --- KBS춘천방송총국 앞 도착(설아백담휴게소, 철정휴게소경유)
Ⅱ. 지역특성
<남설악산하>
1. 지역유래
- 군 소재지 서부에 위치한 면이다. 관내에 설악산국립공원 남설악이 있다. 면소재지가 있는 수상리를 비롯하여 범부리·수리·북평리·공수전리 등 20개 법정리가 있다. 『여지도서』에 의하면 서면에는 공수전리(公須田里)·영덕리(盈德里)·서림리(西林里)·청대리(靑臺里)·오색리(五色里)·상평리(上平里)·장생리(長牲里)·수동리(水洞里)·웅전리(熊田里)의 9개 마을이 속하여 있다. 『해동지도』에는 박달령(朴達嶺)·서면(西面)·오색령(五色嶺)·정족산(鼎足山)·조침령(阻枕嶺) 등이 표기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북평리[北坪里, 아래곰밧]·수동[水洞, 물꼴]·상평리[웃드루]·서선리[西仙里, 괘목기]·가라피리(加羅皮里)·공수전리[공수왓치]·미천동(米川洞)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세는 산악이 전면적의 90% 이상을 점하고 있으며 수다곡심(水多谷深)하여 주민의 생활은 극히 빈곤(貧困)하여 과거 병자년 홍수를 당하여 인명손실과 전토유실(田土流失)이 상해[桑海 : 상전벽해의 준말]의 참화(慘禍)를 보았다. 그러나 지하자원만은 무진장(無盡藏)의 보고(寶庫)로서 자철(磁鐵)의 매장량이 많아서 우리나라 유일의 자철광산인 양양광업소가 성황을 이루었던 지역이다. 인구의 밀도는 희박(稀薄)하나 장수고령자가 많음을 볼 때 산수의 서기(瑞氣)가 아닌가하는 감(感)도 있다. 한 나무에 오색화(五色花)가 피어서 연유되었다는 오색리에는 약수가 변함이 없고, 오색령 일대의 사시절(四時節)의 가경(佳境)을 가히 소금강이라 칭하며, 99곡의 구룡령은 홍천과의 중요통로가 된다. 1945년 광복 후 38°선 이남에 위치한 다섯 개 마을[서림리, 갈천리, 황이리, 명지동, 조개리]은 강릉군 신서면에 속하였다가 1954년 11월 행정이양과 함께 본군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73년 7월 조개리는 홍천군 내면에 편입되었다
- 오색1리(五色1里) : 본래 명칭은 가라목(加羅木)이 많으므로 가라피리라고 하였으나 행정수복 후에 오색1리로 편입되었다. 옛날 주민들은 갈대와 가라목피로서 짚신, 삿갓, 갈자리 등을 만드는 수공업으로 생업을 삼았었다.
- 오색2리(五色2里) : 오색석사는 계곡의 오색암석에 연유된 명칭이라고도 하나 한편 한 나무에 5색 꽃이 피었다하여 명명한 지명으로 1937년 양양군수로 부임한 전재우군수는 오색리에서 3색 꽃이 피는 나무를 파서 이식하였으나 꽃이 피지 않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8·15광복 후까지 3색 꽃이 피던 고목이 관터 입구 근방 도로변에 있다가 노목으로 썩어 없어졌다. 본래 현 오색2리 지역만을 오색리로 불리었다.
2. 흘림골 살펴보기
<탐방로안내>
- 남설악자락 오색 주전골 - 흘림골은 2004. 9. 20.자로 20년 만에 자연휴식년제가 해제된 계곡이다. 특히 한계령이나 오색분소에서 접근성이 좋고 트레킹코스로 이용될 만큼 난이도가 무난하다. 전 구간에 걸쳐 폭포와 기암과 소 등 비경으로 이어지는 점에서 천불동계곡의 축소판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 양양과 인제를 가르는 한계령에서 오색까지 8km를 구비 구비 돌고 돌아 내려가는 44번 국도는 남설악의 웅장한 풍경이 장관이다. 한계령 서쪽에 위치한 남설악의 점봉산 깊은 계곡인 흘림골은 워낙 숲이 짙고 또 깊어서 그곳에 들면 늘 날씨가 흐린 듯 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한계령 정상의 휴게소에서 내다본 남설악의 풍광이 아름다웠다면, 그 아름다움의 중심으로 향하는 길이 바로 흘림골 탐방로다. 한계령 휴게소의 전망대에서 우측으로 눈에 들어오는 기기묘묘한 암봉들의 칠형제봉과 만물상이 있다. 그 칠형제봉과 만물상의 한가운데 바로 흘림골이 있다. 흘림골은 흘림골입구에서 30여분 거리의 여심폭포와 만물상 중심에 있는 등선대의 전망대가 압권이다. 여심폭포는 20m의 작은 폭포로 규모는 작고 물줄기가 약하지만 아름다운 폭포이다. 의자바위라고도 불리는 등선대는 의자모양의 암봉이다. 십이폭포를 거쳐 주전골에 이르면 용소폭포, 금강문 선녀탕 등의 비경이 있다. 주전골은 여름에도 선선함을 느낄 수 있는 완만한 계곡이다.
Ⅲ. 산길여정
<남설악산하>
- 매년 여름 혹서기를 넘기면서 계곡트레킹은 우리 모두산악회 연례행사로 자리매김한지 오래이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특히, 오늘 흘림골에서 주전골로 이어지는 트레킹코스는 2010. 8. 26 이후 매년 어김없이 단골메뉴로 5년을 이어왔다. 산과 계곡과 바다를 하루 일상으로 부담 없이 아우르는데 있어 이만한 코스가 별로 없지 싶다. 매년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정에 식상하신 분들 다수가 계신 것으로 기억되었지만 접근성, 난이도, 소요거리, 소요시간, 자연경관, 주변볼거리, 먹거리, 등을 종합해 볼 때 하루 일상으로 놀고, 먹고, 보면서 즐기는데 있어 부족함이 없는 위락환경을 갖춘 곳으로 판단되는 곳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오늘도 이견은 없다. 한마디로 남녀불문, 노소동락 할 수 있는 여가조건을 갖춘 명소 중 명소로 판단하였기 때문에 올 해도 흘림 - 주전골을 부담 없이 선정하였다.
- 오늘 정기산행은 삼복 중 세 번째 복인 말복과 더불어 입추가 겹친 날이다. 말복은 삼복(三伏)의 하나로서 삼복(三伏) 중 마지막으로, 중복(中伏) 열흘 뒤에 온다. 가장 더운 날이며 입추가 지난 뒤의 첫째 경일(庚日)이기도 하다. 입추(立秋)는 일 년 중 가을이 시작된다는 날이다. 이십사절기(二十四節氣)의 하나로 대서와 처서 사이에 있다. 춘분점을 기준으로 하여 태양이 황도(黃道)의 135도(度)에 이르는 때로 통상 양력 8월 8일 경이다. 그러나 오늘은 입추와 겹쳤다. 입춘을 지난지가 엊그제 같았는데 아니 벌써 란 얘기가 절로 터져 나왔다. 어느새 입추를 맞이하고 보니 인생의 절기에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씁쓸한 웃음을 머금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내 나이가 어때서? 산행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라고 고함이라도 치면서 강변하고 싶은 충동을 자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섭리를 거스르지 아니하고 순응한다는 평소의 지론에 압도되면서 인간아! 얼 차리고 산행안내준비나 잘 해, 넵! 이란 넋두리 속에 수다의 막을 내렸다.
- 요즘은 본인 주변 상황이 너무나 힘겹고 시련에 들게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런저런 사연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마음을 가다듬기 어려울 정도의 심난에 시달렸다. 그럴 즈음 우리 카페 2014. 8. 5 자 자유글방을 들러보니 휘암님께서 “좋은 글 중에서” 옮겨 주신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귀가 올라 있었다. 비록 처음 듣는 얘기는 아닐지라도 오랜만에 다시 접하면서 느끼는바 컸기에 함께 음미하면서 모두가 친절하고, 겸손하고, 사랑을 나누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는 뜻에서 다시 옮겼다.
나이 들면 인생은 비슷비슷 합니다
30대에는 모든 것 내가 제일이라 으스대지만
40대에는 미모의 평준화가 이루어지고
50대에는 지성의 평준화가 이루어지며
60대에는 물질의 평준화가 이루어지며
70대에는 건강의 평준화를 이루고
80대에는 자손의 평준화가 되고
90대에는 목숨의 평준화(집에 있으나 산에 있으나)
30대까지는 세상의 모든 것이 불공평하고
사람마다 높은 산과 계곡처럼 차이가 나지만
나이가 들면서 산은 낮아지고
계곡은 높아져 이런 일, 저런 일
모두가 비슷비슷해 진다는 것입니다
많이 가진 자의 즐거움이
적게 가진 자의 기쁨에 못 미치고
많이 아는 자의 만족이 못 배운
사람의 감사에 못 미치기도 하여
이렇게 저렇게 빼고 더하다 보면
마지막 계산은 비슷하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교만하거나 자랑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친절하고 겸손하고 서로
사랑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좋은글중에서 -
- 밴덕이 죽 끓듯 하는 날씨 때문에 산행일정을 일찌감치 포기하신 분들이 의외로 많았다. 흘림 - 주전골은 산행능력에 따라 선택의 폭이 넓기 때문에 다양한 고객층이 형성된 단골메뉴이었기에 지난주에 이어 빈자리 없이 꽉 채울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기도 했었다. 그러나 기대는 어이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우리 카페를 통하여 “2014. 8. 6. 08:00기준 양양군 서면일원 날씨예보는 오전 06:00경 1미리 정도 비가 내리는 것으로 예보하고 있습니다. 날씨 걱정하시는 모두님들 걱정 뚝 하시고 흘림 - 주전골과 동해안 바닷바람 쏘이러 가십시다요 ~~~.” ”내일 정기 산행일정 정상 운영합니다.“ 란 문구가 등장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흘림골지킴터>
- 설악휴게소를 경유하였을 당시만 해도 원경으로 보이는 한계령일원은 운무기 짙어 오늘도 시원한 조망을 틀렸구나 하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었다. 그러나 기우에 그치는 영광을 누렸다. 장수대를 지나고 한계령을 넘으면서 두텁게 형성됐던 구름층은 간곳없고 산행하기 딱 좋은 환경으로 변모해 있었다. 한계령에서 양양(오색)방면으로 내려가면서 자동차운전면허시험장 S코스를 방불케 하는 굽이 길은 현기증이 날 정도이었다. 흘림1교, 흘림2교, 흘림3교, 흘림4교를 연이어 지나면서 흘림5교에 이르렀다. 흘림5교 지점 흘림골공원지킴터가 오늘 산행기점이다. 오색에서 한계령으로 올라오는 44번국도의 7부 능선쯤에 위치한다. 들머리 계곡은 중장비가 동원되어 정비공사가 한창이었다. 친환경공법으로 석축을 쌓아 물길을 바로잡고 있었다.
- 오늘 흘림골에서 주전골로 이어지는 계곡트레킹은 흘림골공원지킴터에서 시작해 여심폭포, 등선대, 등선폭포, 십이폭포, 주전자바위, 용소폭포, 선녀탕, 금강문, 독주바위를 거쳐 주전골 오색지구에 이르면서 막을 내린다. 이 구간은 들머리에서 등선대 능선쉼터갈림길까지 1,2km, 능선쉼터갈림길에서 오색주장까지 5km, 총 6,2km이다. 전체 탐방길 중 1,2km구간만 오름길이고 나머지 5km는 줄곧 내리막길이다. 이점이 이 코스의 매력 중 매력으로 꼽힌다. 그래서 이 코스는 남녀불문, 노소동락할 수 있는 트레킹코스로 각광받는다. 더욱이 흘림골 진입에 부담을 갖는 분들은 흘림골입구 하류에 있는 용소폭포탐방지원센터 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당일 컨디션에 따라 입맛대로 골라 즐길 수 있는 코스로 꼽힌다.
- 빠른 길 찾기 정보에 따라 10:00경 오늘 들머리인 흘림골공원지킴터주차장 도착을 예상했었는데 예상대로 딱 맞아 떨어졌다. 오늘은 흘림골입구 진입에 부담을 갖으시는 분들을 위해 용소폭포탐방지원센터 들머리를 병행하여 융통성 있게 운영할 요량이었는데 흘림골팀 13명, 용소폭포탐방지원센터팀 10명으로 자연스럽게 2개 팀으로 제대가 편성되었다. 주전골팀에게 흘림골팀합류를 권고해 보았지만 부담 없이 즐겨보겠다는 심산이 큰 듯 싶었다. 주전골갈림길에서 합류하여 점심식사를 함께할 것과 14:00까지 오색주차장 하산을 예고하고 들머리에 들었다.
<여심폭포>
- 10:26 여심폭포 경유
- 흘림골지킴터에서 여심폭포 전망대까지 24분정도 걸렸다. 며칠 전부터 오락가락하던 비 때문에 그나마 수량이 적당하게 불어난 듯 싶었다. 수량이 많지 아니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본인 소견으로는 수량이 적을 때의 감흥이 더 컸다. 지금까지 열손가락으로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여심폭포를 경유하였으면서도 탐방로를 이탈하여 근거리까지 접근한 경우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옮겨졌던 것이다. 女深에 홀렸는지 아니면 호기심의 발로인지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오늘은 특별한 체험을 한 날로 기억되리라본다. 여심이시여! 나무라지 마소서! 그 무렵 부회장님께서 대장님! 왜 하필 거기까지 올라가십니까? 라는 호통에 놀라 부회장님! 여기가 금남의 구역입니까? 란 우답을 남기면서 발길을 돌렸다.
- 여심폭포는 가녀린 한 가닥의 물줄기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폭포로서 바위와 물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모양이 여성의 깊은 곳을 연상케 한다고 하여 여심폭포(女深瀑布) 또는 여신폭포(女身瀑布)라고 이름 붙여졌다. 옛날 속설에는 여기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고 해 신혼부부들의 필수코스였다고 한다. 높이는 약 20여m에 이른다. 폭포 상류 수원은 가늠할 수 없었지만 계절에 따라 보는 이에게 감흥을 불러일으키게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女深 이나 女身은 사전에 올라있지 아니한 단어이다. 한자 뜻으로 풀이하여 女深은 여성의 은밀한 곳, 女身은 여성의 몸 중 특정부분정도로 의미를 해석해 보았다. 폭포 중단 움푹 팬 곳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면 영락없는 그 곳이다. 폭포 이름 한 번 잘 지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폭포수가 많았을 때 보다는 적었을 때의 감흥이 더 새롭다. 음양설(陰陽說)은 음과 양의 이기(二氣)를 우주 만물의 생장 변화의 근본 원리로 하는 설이다. 陰氣는 음양설(陰陽說)에서, 음(陰)의 기운을 이르는 말이다. 여심이든 여신이든 음기가 강한 곳이라면 양기를 상징하는 남근석을 세워 음기와 양기의 균형을 꾀해야 한다고 들었다. 아마도 아무도 발길하지 아니한 은밀한 곳에 음기를 조화시킬 남근 형상의 바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기도 하였다. 수석취미분야에서도 음석과 양석이 있다. 여심폭포가 음기가 서려있는 폭포라면 아마도 양석과 함께 연출하여 음양의 조화를 이뤘을 것이다.
- 여심폭포에서 등선대 안부 갈림길까지 다소 가파른 오르막길로 이어진다. 여심폭포전망대에서 15분 남짓 오르면서 갈림길 쉼터에 이르렀다. 여기서 등선대에 올랐다가 다시 이 지점까지 되돌아 내려 온 다음 등선폭포방향으로 진로를 잡아야 한다. 이 지점에 여심폭포 0,3km, 등선폭포 0,4km, 약수터입구 5km, 용소폭포입구 2,8km, 흘림골입구 1,2km를 안내하는 이정표와 나무테크로 된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등선대>
- 10:49 등선대 도착
- 등선대는 해발 1,014m이다. 등선대갈림길 능선안부에서 등선대까지 6분 남짓 걸렸다. 이미 다른 지방에서 오신 두 팀이 명당을 선점하고 아침식사인지 점심식사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식사 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본인도 이곳을 선점하려고 죽기 살기로 허겁지겁 올라왔는데 아쉽게도 명당을 빼앗기고 말았노라고 너스레를 떨자 우리도 이곳을 차지하려고 서울에서 아침도 안 먹고 04:00에 출발하여 올라왔다고 즉각 응수하였다. 곧이어 금방 방을 뺄 터이니까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주문이 날라들었다. 아닙니다요. 저희 일행 분들은 12:00를 넘겨 주전골갈림길에서 점심식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천천히 드십시오, 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저씨 참 멋있다. 어디서 오셨어요? 라는 질문공세가 펼쳐졌다. 네, 저는 춘천에서 온 오빠입니다. 라고 응수하자 이내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썰렁한 개그가 서울 선남선녀에게도 통하였던 것이다.
- 오늘 등선대 주변상황은 지금까지 한여름 흘림골 산행 중 최고의 날로 기억된다. 매번 운무에 휩싸여 조망을 아예 포기하다시피 했었는데 오늘에 와서야 드디어 안타를 친 셈이었다. 대청봉에서 안산에 이르는 서북능선 마루금만 운무에 가렸을 뿐 남설악산하가 한 눈에 거침없이 잡혔기 때문이다.. 신선(仙)이 오른다(登)고 해서 등선대(登仙臺)란 이름이 붙은 바위봉우리는 흘림골 산행의 백미 중 백미로 꼽힌다. 등선대는 신선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뜻을 지녔다. 神仙이란 중국의 신선 사상(神仙思想)과 도교(道敎)에서 이상(理想)으로 여기는 인간(人間) 즉 인간계를 떠나 산속에 살며, 선도(仙道)를 닦아서 도통(道通)하여 도술을 부리고, 장생불사(長生不死)한다는 사람을 말한다. 등선대는 기암괴석들이 사방으로 펼쳐져 만 가지 모습으로 보인다고 하여 만물상이라고 한다. 바로 그 중심에 등선대가 있고 그 등선대 중심에 오늘 하루 신선이 된 모두님들이 발자취를 남겼다. 여기서 칠형제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서고 멀리 동북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대청봉이며 귀때기청봉, 끝청 까지 설악의 서북주릉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 등선대에서 흘림골팀과 작별을 고하였다. 등선대안부갈림길 쉼터까지 원점회귀한 후 회장님을 뒤로하고 발길을 서둘렀다. 용소폭포팀과 용소폭포 합류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이후 위 갈림길에서부터 주전골갈림길까지 2,8km 구간에서 나 홀로 산행이 되고 말았다.
<등선폭포>
- 11:26 등선폭포 경유
- 등선폭포는 등선대 갈림길에서 0.4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해발 811m 높이에서 그 위용을 뽐내고 있어 한여름 이곳을 지날 때면 한기를 느끼는 곳이다. 신선이 하늘로 오르기 전 이 곳에서 몸을 깨끗이 씻고 올랐다 하여 등선폭포라고 한다. 이 폭포의 높이는 30여m로서 낙차가 크다. 수량과 주변 암반이 조화를 이뤄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하였다.
<십이폭포>
- 11:50 십이폭포 경유
- 점봉산자락에서 발원하여 주전골의 비경과 함께 열두 번 굽이굽이 흘러 폭포를 이루었다 하여 십이폭포라 한다. 12단 12폭의 비단 폭같이 굽이치는 계곡을 따라 물보라를 일으키며 흘러내리는 누운 폭포(와폭포)로서 S자 형태로 계류를 이뤄 길게 늘어진 모습이 장관이다. 폭포로 볼 것인가? 계류로 볼 것인가? 헷갈리기도 하였다. 아무튼 계류형 폭포로 분류해 보았다. 지금까지 접해 본 계류형 폭포 중 단연 엄지로 꼽혔다. 전형적이 모습에서 한 점 수석을 연상해 보기도 하였다. 수석에서도 계류형과 계류형폭포석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주전바위>
- 12:06 주전골갈림길 경유
- 12:00을 넘기면서 주전골갈림길에 이르렀다. 이 지점에 이르면서 금강굴 직전 숲속에 밥자리를 잡고 점심식사중인 용소폭포팀 일행 분들과 합류하였다. 용소폭포에서 합류해 볼 요량이었지만 한 걸음 늦었던 것이다. 등선대에서 시간을 벌지 못하고 지체한 것이 화근이었다. 여기서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듯 한 분위기에 고무되기도 하였다. 합류하자마자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얼음맥주, 과일, 견과류 등 먹거리 세례를 받느라 정신 줄 놓는 줄 알았다. 한 손에 맥주, 나머지 한 순에 과일, 견과류는 처리할 손이 모자랐다. 손대신 입이 역할을 분담하였다. 맥주와 안주를 동시에 처리하는 입이 분주하였다. 당시 즐거웠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여러분 사랑합니다! 라는 얘기가 절로 나왔다.
- 주전골갈림길에서 용소폭포방향으로 접어들어 계곡 교량구간을 지나면서 주전바위를 지나간다. 주전바위에서 용소폭포가 시야에 잡힌다. 주전바위는 마치 동전을 쌓아 올린 듯 한 모양을 하고 있어 주전바위라고 불린다. 또한 시루떡을 쌓아 놓은 모양과 비슷하여 시루떡바위라고도 불린다. 주전바위는 판상절리를 이루고 있다. 땅속 깊이 묻혀있던 암석이 침식을 받아 땅 표면에 드러나면 암석이 받치고 있던 하중이 제거되면서 균열이 발생하는데 이 균열은 지표에 평행하게 배열되며 그 간격은 지표에 가까울수록 좁고 지표에서 떨어질수록 넓어진다. 이것을 판상절리라고 한다.
- 점봉산에서 발원하여 십이폭포를 내려온 물은, 용소폭포 물과 이 지점에서 합류하여 몸집을 불린다. 여기서 흘림골은 끝나고 주전골의 시작점인 셈이다. 흘림골은 등선대를 넘어 십이폭포 아래까지를 말하고, 용소폭포에서 오색지구 계곡길은 주전골이다. 외설악의 천불동, 내설악의 가야동과 함께 설악산 3대 단풍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용소폭포>
- 12:14 용소폭포 경유
- 용소폭포 팀이 잡아 놓은 점심식사 장소에서 융숭한 환대를 받은 후 그곳에 배낭을 벗어 놓고 용소폭포로 향했다. 흘림골 팀 도착 전 막간을 이용해 다녀올 요량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용소폭포 정면 접근을 시도해보고 싶었지만 남의 이목을 고려해서 다음으로 미루고 눈 팅 하는 선에서 마음에 그려 놓고 발길을 돌렸다.
- 용소폭포는 일명 대왕폭포라고도 한다. 龍沼는 폭포수가 떨어지는 지점에 깊게 패어 있는 웅덩이를 일컫는다. 남설악의 만학천봉에서 모인 물이 흘러내려 절벽의 암석위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면서 이 계곡 산중 제일 큰 폭포를 이뤘다. 높이 50여m에 이르는 풍부한 수량에 펑펑 쏟아지는 굉음을 내는 물소리는 장관이었다.
- 용소폭포는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용이 되려다 못되고 물속에 산다는 전설상의 큰 구렁이)의 한이 깃든 폭포이다. 이무기 암수 두 마리가 이곳에서 천년을 살다가 같이 용이 되어 승천하기로 하였는데 천년이 되어 승천하기로 한날, 암놈 이무기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수놈 이무기도 같이 승천을 못하게 되었다. 이무기 두 마리는 한이 맺혀 바위로 변하였는데, 용소폭포 위쪽의 용머리 형상 바위와 용 발자국 형상은 이 이무기 두 마리가 변하여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금강문>
- 12:57 금강문 경유
- 점심식사 장소에서 하산 후의 일정에 대해 의견수렴과정을 거쳤다. 바닷가에 나가서 단체로 먹팅을 할 것인가? 아니면 자유 투어 형식으로 일정시간을 주고 말 것인가? 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였다. 점심식사 직후의 먹팅이 매력을 잃었던 것이다. 내년에 다시 기회가 온다면 출발시간 조정을 염두에 두었다.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하고 버스로 이동 중 다시 의견을 수렴하기로 하고 금강문으로 향했다. 점심식사장소에서 곧바로 금강문으로 이어졌다. 금강문을 빠져나오면서 “아들 하나 점지해 줍쇼.” 혼잣말처럼 들리는 모 일행 분의 간절한 소망을 듣는 순간 어머나! 그럴 나이가 아닌데? 하고 화들짝 놀라는 일행 분들의 모습이 더 우스꽝스러웠다. 여기서 찬스를 놓칠 리 없는 본인이 “오전에 흘림골팀이 들려온 여심폭포 물을 받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 는 속설이 있어 신혼부부들이 단골로 찾던 때가 있었다는 얘기를 곁들이자 그 얘기는 너무 야하다는 핀잔 아닌 핀잔을 듣기도 하였다.
- 주전골의 중심부에 위치한 이곳을 지나면 십이폭포, 용소폭포 등 주전골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하여 이곳을 금강문이라 부른다. 예로부터 불교에서는 가장 강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하였다. 金剛은 불교에서 모든 금속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뜻, 어떤 것도 깨뜨릴 수 있고 어떤 것에도 깨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또한 대일여래(大日如來)의 지덕(智德)이 견고하여 일체의 번뇌(煩惱)를 깨뜨릴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나, 밀교에서 쓰는 도구의 하나로 번뇌를 분쇄하는 보리심(菩提心)의 상징으로 풀이한다. 금강산에는 여섯 개의 금강문이 있다고 한다. 오늘 이 금강문을 통과하였으니 가장 강한 선남선녀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선녀탕>
- 13:15 선녀탕 경유
- 선경에 사는 여자 신선을 仙女라고 한다. 선녀탕은 흘림골에서 주전골로 이어지는 옥같이 맑은 물이 암벽을 곱게 다듬어 소를 이뤘다. 노천 목욕탕같이 깨끗하고 아담한 소를 이룬 모습에서 모두가 선남선녀가 된 듯 한 착각에 빠져보기도 하였다.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서려있다. “밝은 달밤 선녀들이 내려와 날개옷을 반석위에 벗어 놓고 목욕을 하고 올라갔다” 하여 선녀탕이라 부른다고 한다. 마음 같아서는 주변 의식하지 아니하고 탕 속에 몸을 풍덩 담구고 선남이 되어 뭇 선녀가 하강하기를 기다려 보고 싶은 충동을 자제할 수 없었다.
<독주암>
- 13:26 독주암 경유
- 독주암은 설악산의 비경을 한껏 뽐내고 있는 외설악 천불동 계곡의 축소판인 주전골 입구에 우뚝 서 있다. 정상부 위에 한 사람만 겨우 앉을 수 있다 하여 독주암이라 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한 때 미륵봉으로 불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예전에는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요즘은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사다리 놓고라도 올라가라고 하였다. 비록 한 사람만 겨우 앉을 수 있다 하더라도 로프를 띠우고 차례로 한 사람씩 모두 올려 보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주전골>
- 13:30 주전골 일정 종료
- 독주암을 지나 성국사 경내로 접어들면서 오늘 일정을 사실상 마감하였다. 여기서 주차장까지 10여분 남짓 걸린다. 그러나 하산예정시간 중 남은 시간 30여분은 눈팅, 쇼팅, 먹팅 구간으로 보고 자유 투어 시간으로 돌렸다. 옛날 도적들이 이 골짜기에 들어와 위조 화폐(鑄錢 : 돈을 주조함. 또는 그 돈)를 만들다가 붙잡힌데 서 유래한 이름이다. 시원한 폭포와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오색 주전골은 양양8경중 제4경이다. 남설악의 오색은 주전골 암반이 다섯 가지 빛을 내고 옛 오색석사에 봄이면 다섯 가지 색의 꽃이 피는 나무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온천과 약수가 유명한데 오색약수는 위방병과 빈혈 등에 효험이 있다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다. 주전골은 망대암산과 오색령으로 이어지는 깊은 골에서 흘러내려 오는 맑은 물에 의해 잘 발달된 계곡으로 계곡을 미끄러지듯 따라 오다 여러 곳의 폭포를 만나면서 함몰하는 곳이다. 대청봉을 오르는 등산로 중 가장 빨리 올라갈 수 있는 코스로 등산객이 비교적 많이 애용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Ⅳ. 주요(주변)볼거리
- 오늘 주변볼거리 편은 오색령(한계령), 성국사, 오색약수에 대해 간추려 보았다. Ⅲ. 산길여정 편에서 다루고자 하였으나 이미 여러 차례 다룬바 있어 주요(주변)볼거리 편으로 넘겼다.
<오색령(한계령)>
- 오색령(한계령)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양양군 서면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해발 고도는 네이버 지도에 의하면 1,004m이고, 고갯마루 경계지점에 있는 안내판에는 920m로 표기되었다. 인제군 북면 한계리에서 양양을 잇는 44번국도 오색령 고갯길은 1981년 포장되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떠오른 길이다. 도중에 하늘벽, 옥녀탕, 장수대, 오색 온천 등이 자리 잡고 있어 볼거리도 풍부하다. 한계리에서 정상까지는 경사가 완만하고 굴곡도 심하지 않지만, 고개를 넘어 양양으로 가는 길은 경사와 굴곡이 심하다. 오색령은 설악한 최고봉인 대청봉까지 오르는 최단 코스의 등산로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남설악 점봉산 정상으로 갈 수 있는 등산로도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양양군과 인제군의 경계인 해발 950M의 오색령은 내설악과 남설악의 경계에 있어 두 지방을 잇는 산업도로로서, 그리고 관광도로로서 길손들이 이용하고 있다. 정상에는 절벽 위에 절묘하게 자리잡고 있는 휴게소가 있는 앉은채로 설악산의 깊은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이곳을 지나는 차들은 꼭 쉬어간다.
- 오색령(한계령)은 이중환의 택리지에 강원도 지역에서 여섯 개의 령을 손꼽았는데 그 중에서도 으뜸이 오색령(한계령)이라 했다. 또한 오색령(한계령) 삼거리에서 서북능선을 따라 끝청, 중청을 거쳐 설악산의 제1봉인 대청봉에 이르는 등산코스의 시작점이기도하다. 정상에는 절벽 위에 절묘하게 자리 잡고 있는 휴게소가 있어, 앉은 채로 설악산의 깊은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인제와 양양, 내설악과 남설악의 경계에 있어 두 지방을 잇는 산업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오색령(한계령)은 오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신라시대 때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안고 피눈물을 흘리며 이 고개를 넘었다고 하고, 고려시대 때는 퇴각하는 거란군을 김취려 장군이 뒤쫓아 이 골짜기에서 섬멸했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오색령(한계령)은 1968년 육군 공병단에서 인제와 양양을 잇는 44번국도 공사를 시작해 만들어졌다. 이 고갯길에 오르면 좌우에 펼쳐지는 오색찬란한 숲과 계곡, 깎아지른 바위능선들의 절경으로 과연 우리나라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힌다는 것이 실감날 것이다. 인근에 하늘벽, 옥녀탕, 장수대, 오색온천 등이 있어 볼거리도 풍부하다.
<성국사>
- 성국사 또는 오색석사(五色石寺)라고 전해지는 절터로 창건 연대와 그 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지만 현재 남아있는 건물터와 석조물들로 볼 때 9세기 후반에 창건된 사찰로 보인다. 설악산은 도의선사에 의해 선종이 처음으로 뿌리를 내린 진전사가 있고 인근에 있는 선림원 한계사도 모두 비슷한 때에 창건된 사찰이었다는 점에서 같은 선종 계통의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중요한 절터이다. 현재 절터에는 신라말기의 주춧돌들이 그대로 남은 금당(중심건물)터와 돌사자 연꽃이 새겨진 불상대좌 등 많은 석물들이 당시의 융성했던 사찰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 탑은 쌍탑 중 서탑(西塔)으로 2중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일반형 석탑이다.(동탑은 기단석등 일부부재만 남아있음) 하층기단의 면적은 4매의 긴 돌을 붙여서 만들었는데 양쪽에는 모서리 기둥(隅柱)을 두고 그 사이에 1개의 버팀기둥을 두었다. 위에는 하대갑석을 두었는데 약간의 경사를 주어 빗물이 잘 빠지도록 하였다. 탑신의 몸돌은 양쪽에 모서리 기둥만을 두었는데 1층에 비해 2,3층의 높이를 3분의1 정도로 줄여서 안정감을 갖도록 하였다. 지붕들의 추녀는 수평이나 네모서리가 살짝 들려서 경쾌한 모습이다. 이 탑은 1945년 전후의 사회가 혼란하였을 때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 쓰러졌던 것을 1971년에 원형을 복원하였는데 부분적으로 파손된 곳이 많다. 탑을 복원할 때 1층 몸돌에서 사리를 모셨던 4각형의 구멍이 발견되었으나 사리 장엄구는 남아있지 않았다.
- 성국사 3층석탑은 보물 제497호로 지정되었다. 오색약수에서 주전골방향 약 1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은 이 탑의 건립연대는 9세기 후반께로 추정된다. 아무런 장식은 없지만 전체적으로 단아한 모습을 보여주는 탑으로 현재 총 높이는 약 5m이다.
<오색약수>
- 오색약수는 설악산 대청봉에서 남서쪽으로 약5,5㎞, 한계령에서 남동쪽으로 약5㎞쯤 떨어진 설악산의 주전골 입구에 있다. 오색천(양양남대천의 지류) 아래에 있는 너럭바위 암반의 3군데 구멍에서 약수가 솟아나며, 1일채수량은 1,500ℓ 정도이다. pH 6.6인 알칼리성으로, 유리탄산, 칼슘 이온, 마그네슘 이온, 철 이온, 나트륨 이온 등이 골고루 함유되어 있으며, 물맛이 특이하다. 위쪽의 약수는 철분의 함량이 많고, 아래쪽 2개의 약수는 탄산질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가재나 지렁이를 담그면 바로 죽어버릴 만큼 살충력이 강하고, 밥을 지으면 푸른 빛깔이 도는 특이한 약수로도 유명하다. 빈혈·위장병·신경통·기생충구제·신경쇠약·피부병 등에 효과가 있다. 조선 중기인 1500년경 성국사의 승려가 약수를 발견하고, 성국사 후원에 5가지 색의 꽃이 피는 신비한 나무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도 하며, 약수에서 5가지 맛이 난다고 해서 오색약수라 불렀다고도 한다. 약수터에서 서쪽으로 500m 지점에 양양오색리3층석탑(보물 제497호)이 있으며, 북쪽으로 3㎞ 정도 올라간 곳에 오색온천이 있다. 남설악 등반의 주요입구이며, 오색약수를 중심으로 주위 8㎞ 이내에는 물줄기가 끊이지 않는 풍치절경지대이다. 발폭포·용소폭포·십이폭포·무명폭포·여심폭포·선녀탕 등의 크고 작은 폭포와 연(淵)이 있는 외설악 다음의 경승지이다. 또한 약수터 앞 골짜기는 불상 1만 개가 늘어서 있는 듯하다 하여 만불동계곡이라고도 하는 주전골과, 높이 200m가 넘는 기암절벽인 만경대 등이 있다. 양양에서 서쪽으로 20㎞ 지점에 있으며, 한계령을 잇는44번 국도변에 있어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남설악관광 호텔을 비롯한 숙박시설이 약수터 부근에 있다.
-오색 약수의 전설 : 옛날 병풍바위 밑에서 일곱 선녀가 옷을 벗고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몰래 뒤 따라 온 선관이 가장 예쁘게 생긴 두 선녀의 옷을 감추어 버렸다. 옷을 잃은 두 선녀는 끝내 승천하지 못하고 한탄하다 지친 나머지 한 선녀는 [옥녀 폭포], 그리고 다른 한 선녀는 [여심폭포]가 되었다고 한다. 선관은 그 선녀들이 폭포로 변한 것을 까맣게 모르고 두 선녀를 찾아 "대청봉"을 향해 혼자서 전력을 다해 계곡을 올라가다가 끝내는 힘에 겨워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독주계곡]과 [독주폭포]이다. 이때 선관이 감추었던 선녀들의 옷은 물에 흘러 흘러 지금의 남설악 {오색]앞에 와서 [치마폭포]와 [속치마폭포]가 되었다고 한다. 오색 약수터에서 약 200m 정도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좌측에 보이는 [탕건바위]와 [감투바위]는 선관의 탕건과 감투가 변해서 된 것이라 하며 선녀가 목욕하다 변한 선녀탕에서 약수계곡까지 흐르는 물을 陰水라 하고 독주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을 陽水라고 한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Ⅴ. 특기사항
- 속초시 장사동 자유 투어 : 현장 하산행사를 생략하고 바닷가 눈팅, 쇼팅, 먹팅 시간을 갖았다.
* 단체먹팅 : 코리아횟집, 16명(1인당 20,000원)
* 개별먹팅 및 쇼팅 : 장사동일원 7명
Ⅵ. 산행을 마치고
- 오늘은 비가 내릴 것 이라는 노이로제에서 자유롭게 해방되는 행운을 얻은 날이다. 날씨예보가 딱 맞아 떨어지는 바람에 쾌재를 불렀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좋은 산행환경 속에서 일상을 즐겼다. 비록 적은 인원이 두 팀으로 갈라지기는 했어도 당일 각자 컨디션에 맞춰 코스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융통성 있게 운영의 묘를 살리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 코스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 셈이다. 모두님들 어디 이런 코스 또 없나요? 란 얘기가 절로 터져 나올 지경이었다. 매년 같은 코스를 반복하여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싫증내거나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분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혹자처럼 거기 갔다 왔는데 또 가? 라는 반문이 많을 것을 염려했었는데 아무튼 결과는 대 만족이었다. 일정운영에 협조해 주시고 도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면서 흘림 - 주전골트레킹 일상정리를 여기서 마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