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혁명 _ 불평등 해소의 새로운 길 _ 박세길 지음
서 문
촛불시민혁명은 장구한 ‘한국혁명’의 시작이다!
참으로 오랫동안 품어온 의문이 있었다. 그것은 의식의 심연 속에 꿈틀 거리는 자존심과도 깊이 연관된 것이었다.
세계사를 공부하다 보면 수많은 혁명들이 등장한다. 시간 순으로 나열하면 미국혁명, 프랑스대혁명, 러시아혁명, 중국혁명 등이 있다. 제3세계 나라들 사이에서도 혁명은 줄을 잇는다. 멕시코혁명, 알제리혁명, 쿠바혁명, 베트남혁명, 리비아혁명, 이란혁명……. 항일투쟁에서 북한정권 수립까지를 아우르는 조선혁명도 있다. 모두가 자랑스럽게 혁명 앞에 나라 이름이 붙어 있다.
한국현대사에도 민주화 대장정을 아로새긴 빛나는 투쟁들이 있었다. 1960년 4월 혁명, 1979년 부마항쟁,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민주항쟁 등이다. 하나하나가 더없이 소중한 역사의 일부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세계인이 기억할 만한 나라 이름이 붙은 혁명은 없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공한 나라라는 사실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한 자부심은 충분히 근거가 있는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간직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혁명을 경험하지 못한 것 또한 분명하다.
혁명이 지상목표이거나 모든 것의 판단 기준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혁명은 전혀 새로운 가치와 질서, 문화를 탄생시키는 고도의 창조적 과정이다. 제대로 된 혁명이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창조적이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창조하고 이를 통해 세계사를 선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날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지배한 것은 추진전략이었다. 구미 선진국과 일본은 우리가 부지런히 뒤쫓아 가야 할 대상이었다. 그들처럼 선진 산업국가, 선진 민주국가를 만드는 것이 이 나라 백성을 지배한 꿈 이었다. 그러다 여차하면 앞질러 보자는 의욕도 발휘했다.
분명한 것은 그동안 우리들은 남들이 걸었던 길을 허겁지겁 뛰다시피 뒤쫓아 갔다는 사실이다, 우리 자신이 만든 길을 걸어간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혁명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촛불시민혁명! 그것은 추진전략에서 벗어나 미지의 영역에 뛰어들어 새로운 것을 일구어내는 창조전략으로의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남들이 걸었던 길을 뒤쫓아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집단의지의 표명이었다. 장구한 ‘한국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이런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인가. 세 가지 근거를 들 수 있다.
첫째, 수많은 징표들이 혁명의 불가피성을 알리고 있다. 기존 체제 안에서는 더 이상 답을 찾을 수 없음이 확연해지고 있다.
본문에서 자세히 다뤘지만, 간단하게 예를 들면 이렇다. 한국은 R&D 투자 세계 1위이지만 생산성, 경쟁력, 경제성장률 모두가 바닥을 기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그 해법으로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추구해 왔지만 결과적으로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을 뿐이다. 4차 산업혁명이 밀려오면서 2025년경 노동자의 70%가 위험에 처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다. 모두가 기존의 틀 안에서는 더 이상 답을 찾을 수 없는 경우들이다.
둘째, 촛불시민혁명은 새로운 미래를 열 수많은 요소들을 잉태했다. 촛불시민혁명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다.
촛불시민혁명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주체 세력이 역사 앞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무대였다. 동시에 새로운 사회의 구성 원리를 선보인 무대이기도 했다. 기묘하게도 촛불시민혁명의 특성과 그 주역인 청년세대의 속성 그리고 자연 생태계를 관통하는 원리가 일치한다. 더욱 흥미롭게도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사회의 구성 원리 또한 앞서의 것들과 일치한다. 과연 이러한 일치는 단순한 우연의 결과일까? 아니면 역사적 필연이 빚어낸 것일까?
촛불시민혁명은 때로는 직설적으로 때로는 수수께끼로 다가올 미래를 예고했다. 이제 이를 제대로 판독하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그 과제를 푸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임무이다.
셋째, 혼미를 거듭하는 세계정세는 한국이 인류사의 등불이 되어야 할 운명에 처하도록 했다.
트럼프 현상과 브렉시트 등에서 볼 수 있듯 미국과 유럽은 저열한 포퓰리즘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중동 지역은 민주화 이후 혼미한 사태를 거듭하고 있다. 한때 좌파 벨트를 형성했던 남미 역시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배회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터진 한국의 촛불시민혁명은 각별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주변 열강의 지배와 간섭으로 지난 한 세기 동안 숱한 시련을 겪었지만 동시에 인류사에 많은 빚을 진 나라이다. 이제 그 빚을 갚을 때가 되었다. 바로 한국혁명으로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이다.
단채 신채호 선생은 혁명의 모색기였던 1923년 ‘조선혁명선언’을 발표함으로써 혁명은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실천적으로 모색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지금 우리는 그와 같이 한국혁명을 기획하고 모색해야 할 때이다.
오늘날 불평등 해소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이슈로 떠올라 있다. 만약 불평등 해소를 위해 사용되었던 전통적 해법들이 큰 문제없이 작동한다면 그다지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전통적 해법들이 모두 무력화되어 있다는 데 있다.
이론적 기초를 기준으로 볼 때 불평등 해소의 전통적 해법은 마르크스주의와 케인스주의로 대별된다.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추구했던 마르크스주의 해법은 사회주의 실험의 역사적 실패와 함께 설득력을 상실한 지 오래이다. 재정 수단을 통한 불평등 완화를 추구했던 케인스주의 역시 곳곳에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한국혁명은 마르크스주의와 케인스주의 모두를 뛰어넘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불평등을 해소시켜 나갈 것이다.
한국혁명은 촛불시민혁명으로부터 출발하여 다양한 영역에서의 구조적 변화를 포괄할 것이지만 핵심 공정은 ‘경영혁명’이다. 경영혁명은 사람 중심 경제로의 전환을 통해 다양한 경제 주체들 사이에 수평적 협력 관계를 형성 시킨다. 그 과정에서 불평등을 원천적으로 해소시켜 나갈 것이다.
미리 밝혀 두지만 이 책은 경영혁명에 대해 하나의 아이디어로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1, 2, 3,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역사의 필연임을 논증할 것이다.
촛불시민혁명은 많은 깨달음을 안겨 주었고 해답의 실마리를 풍성하게 제공했다. 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숱한 영감을 샘솟게 했다. 한동안 나의 머리는 끝없이 솟아나는 영감으로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광장은 최고의 교과서였고, 시민들 모두가 위대한 스승이었다.
나름대로 통찰력 있는 사람이라면 촛불시민혁명 속에서 한국혁명의 단초들을 찾아내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촛불시민혁명으로부터 시작된 한국혁명은 이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유형의 혁명이다. 새로운 사유 체계와 방법론에 의거하고 있으며 좌우 구도를 완전히 넘어선 지점에서 전혀 새롭게 펼쳐진다. 결코 좌파 혁명의 연장선에 있지 않고 구조적 모순에 대한 근본적 해결을 추구하면서도 폭넓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과거 혁명들을 특징지었던 격렬함은 예술적 부드러움으로 대체된다. 촛불시민혁명이 보여준 모습 그대로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시대교체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누구나 직감하듯이 현실은 이미 새로운 시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혁명이 만들어 낼 새로운 시대의 모습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자신의 삶을 역사의 진행 방향과 일치시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특히나 역사의 변곡점을 통과하는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촛불시민혁명은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거대한 등불이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 주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거듭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촛불시민혁명에 함께 한 모든 시민들에게 바친다.
2017년 3월
박세길
“한국혁명 _ 불평등 해소의 새로운 길 _ 박세길 지음” 중에서 일부 발췌 편집한 글
첫댓글 촛불 시민혁명에 함께한 모든 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누가 주인인지 우리가 알게 된것도 가장 큰 성과물중에 하나로 봅니다.^^
이제 혁명은 이루었고 지켜내는 것만 남았습니다.
김영하의 <퀴즈쇼>에는 청년세대(N포세대)가 자신들의 처지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묘사하는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 전자제품도 레고 블록 만들 듯 다루는 세대야. 안 그래? 거의 모두 대학을 나왔고 토익 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자막 없이도 할리우드 액션영화 정도는 볼 수 있고, 타이핑도 분당 300타는 우습고, 평균 신장도 크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고. 맞아. 너도 피아노 치지 않아? 독서량도 우리 윗세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아.
@중년학생 우리 부모세대는 그중에서 단 하나만 잘해도, 아니 비슷하게 하기만 해도 평생을 먹고 살 수 있어.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놀고 있는 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대한민국이 작년말부터 올해까지 걸쳐서 만든 촛불혁명은 정치혁명이라 할수 있지만 결국 경제혁명으로 이어져야 의미가 있겠죠. 다만 거대자본이 거대자본을 만드는 자본주의라는 프레임 안에서 과연 어떤 뾰족한 방법이 있을지는 걱정이 됩니다. 사실 대한민국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봐도 이젠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인류를 지속가능하게 번영시킬수 있는지는 대단히 의심이 가거든요.
그동안 산업혁명과 함께 전세계가 급격한 발전을 하면서자본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었는데 그런 세상의 프레임을 바꾸는게 불가능해 보이거든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새로운 시스템의 구축을 간절히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고운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