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신문 인터뷰]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의 가치
- 박공숙 경기민요 명인
민요는 민속음악이다. 삶의 애환을 담아 구비전승되던 우리의 음악으로 공동생활이 시작되던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최초의 민요라 할 수 있는 노동요는 다양한 민요를 파생시킨 시원(始原)이다. 민요는 공동체와 더불어 변화·발전·전승되고 있는데 전문적인 수련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장르라 판소리와 다르다고 했지만, 지금은 생활상이 많이 바뀌어 민요 가창은 이제 일반 대중에게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가 되었다.
민요는 경기, 남도, 강원, 경상, 제주 지역에 따라 독자적인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중 경기민요 서울·경기·충청 일부 지역까지 불리고 있는데, 맑고 깨끗하고 경쾌하면서도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서경적이거나 혹은 서정적인 긴 사설을 비교적 조용하고 은근하게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것이 대부분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된 경기민요는 긴 형식의 노래를 앉아서 부르는 느린 장단 12잡가(十二雜歌)를 말한다. 잡가(雜歌)는 음악적인 세련미와 문화적 수식을 더한 노래로 서울·경기 지역의 12잡가는 잡가가 널리 불리며 종목이 늘어난 것이다.
파주에는 한국무형문화유산인 ‘민요’ 중 ‘경기민요 명인’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 등재된 박공숙 명창이 있다. 박공숙 명인을 만나 민요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나누어 보았다.
- 국가무형문화재를 예전에는 인간문화재라고 불렀었지요? 명인으로 선정된 것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987년 경기민요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36년만인 2020년 선정되었습니다. 이은주(본명 이윤란), 묵계월(본명 이경옥), 안비취(본명 안복식) 세 분이 당시 경기민요 3인방으로 명성을 떨칠 때였는데, 저는 이은주 선생님께 배우기 시작해 경기민요 12잡가 완창으로 이수자가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98세로 2020년 돌아가셔서 매우 슬펐지만, 그래도 명인으로 선정되어 특별히 아끼고 사랑해주시던 선생님께 보답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기뻤습니다.
선생님께 민요란 무엇인가요?
어머니 등에 업혀 늘 듣고 흥얼흥얼 따라부르던 경기민요는 언제나 저와 함께였으니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섯 살에 사고로 척주를 다친 후, 가슴과 등이 휘어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업고 다니며 치료에 전념했으나 차도가 없었고, 그때 유일하게 위로가 된 게 어머니가 들려준 경기민요입니다. 밖에 나가면 친구들이 놀려서 집에 혼자 있는 날이 많았고, 그때마다 노래를 실컷 불렀습니다.
이제는 주변에 많은 사람이 민요를 배우고 싶다며 찾아옵니다. 어느 날 지역 분들과 관광을 다녀오는데, 버스에서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저도 노래 한가락을 했는데 반응이 정말 좋았고, 배우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대에 섰을 때 장애 때문에 한복이 안 어울린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더 불쌍하게 보여 신경 쓰지 않고 내 갈 길을 걸었습니다. 꾸준히 걷다 보니 산꼭대기에 올라 온 기분입니다. 내려가는 길은 더 조심해야겠지요.
민요를 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이제 저 혼자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후학들을 양성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힘 다할 때까지 알려 줄 생각입니다. 전수자도 나오고, 이수자 준비생도 있고 무엇보다 함께 공연하며 우리 민요를 널리 알리는 것이 보람되고 좋습니다. 가지가 많고 키 작은 보득솔 같았던 제가 쑥쑥 자라서 솔향을 풍기는 명인이 된 것처럼 후학들도 그렇게 컸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16살 때부터 전축을 틀어놓고 독학으로 남도 민요를 공부했습니다. 당시 호흡 때문에 죽을 거라며, 집에서 편하게 지내라고 했는데 그럴 수 없었습니다. 나이를 좀 더 먹고 서울로 상경해 이은주 선생님께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면 물 한 병, 인절미 한 봉지 들고 도봉산에 올라 소나무 아래 바위에 앉아 세 시간씩 연습했습니다. 소리를 했기에 제가 살 수 있었습니다. 후학들을 키우며 인생 2모작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공연할 때마다 매번 소중한 기억으로 남겠지만, 그중에서도 꼽아본다면 어떤 공연이 있을까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파주시민회관에서 청소년국악한마당에서 한 첫 공연입니다. 노랫가락, 청춘가, 태평가, 뱃노래를 했는데 가운데 서는 선배들처럼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겨 더 열심히 했습니다. 산에서 소리 공부를 했기 때문에 고음인 목소리가 맑고 깨끗하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파주에서 정기 공연을 9회까지 했는데, 9회까지는 지원금을 받아서 했었고 그 이후엔 코로나 때문에 몇 년 동안 공연을 못 했다. 올해는 큰맘 먹고 공연을 준비하는데, 지원을 못 받은 상황이라 힘들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KBS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무형문화재 이은주 선생님 제자들이 선생님과 함께 출연했습니다. 그때 선생님의 배려로 배 위에서 나 혼자 춤을 추는 독무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장애가 있고 키도 작아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무대에 설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선생님은 특별히 예뻐해 주셨습니다. 선생님과 제자들이 아래서 뱃놀이 노래를 부를 때 배 위에서 춤을 출 때 ‘이건 선생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98세로 돌아가시고 유품 중 사진과 공연 CD를 구할 수 있었는데 다시 보니 감개무량하고 생각할수록 선생님 제자가 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살면서 고마웠던 사람이 많겠지만, 잊지 못할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당연히 이은주 선생님입니다. 평상시엔 참 좋은 분이지만, 민요를 가르칠 때는 단호하고 무서운 분이 되었죠. 그래서 제자들이 어려워했습니다. 저도 물론 어렵고 늘 존경하는 마음으로 선생님께 배웠는데, 열심히 하는 모습을 기특하게 여기셨습니다. 선생님은 사적인 자리에서 저한테 러브샷을 하자고 자주 그러셨어요. 모르긴 몰라도 선생님과 그렇게 해 본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제 인생에 소리가 없다면 내가 없는 것이고, 이은주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저도 없습니다.
또 한 분은 송달용 전 파주시장님입니다. 워낙 인품이 좋은 분이라 그분은 별 뜻 없이 하신 말씀일지는 모르지만, 저에게 “작은 거인”이라며 늘 “대단하다.”라고 해주셨습니다. 파주에서 공연도 하고 경기민요를 가르칠 수 있도록 응원해주신 것이 언제나 마음속에 든든한 기둥처럼 자리 잡아 저를 버티게 해주었습니다.
이평자 당시 사회복지과 과장님도 정말 고마운 사람입니다. 법원읍에 살다가 금촌으로 이사하려고 할 때 자기 일처럼 함께 고민하고 이사할만한 곳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시시때때로 챙겨주고 도움을 줘서 자리를 잡고 월세로 시작해 전세도 지나고 이제 자가로 살만큼 자리를 잡았습니다.
어디 그분들뿐이겠습니까. 이제껏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도움 주신 많은 분이 계시기에 제가 지금 이렇게 ‘명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살아온 세월을 뒤돌아본다면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박공숙 성공했구나’ 생각합니다. 녹록지 않은 삶에 찌들어 있다가도 종로에 가서 민요 공부를 하고 오면 행복했습니다. 처음 소리를 배울 때, 나중에 농촌에서 농부들한테 경기민요를 가르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후학들을 가르치며 함께 공연도 하고 있으니 꿈을 이룬 것이죠.
그리고 잘 자라준 딸 혜림이가 제게는 금메달입니다. 딸이 있어서 더 반듯하게 열심히 살았던 것 같습니다. 야무지게 혼자서 책도 잘 읽고 공부도 잘해서 아이가 보는 책을 사고 싶다는 문의도 많이 받고 ‘장애인 자녀 교육 특강’ 강사로 여러 곳에 초빙되기도 했습니다. 법원여중, 파주여고 다닐 때부터 장학생이었고, 연세대학교 법대 4년 장학생이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엄마처럼 어려운 사람들의 대변인이 되고 싶다면 법학을 전공한 딸입니다. 워싱턴으로 어학연수도 다녀왔고 얼마 전 멋진 사위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존재만으로도 내 삶이 행복합니다.
-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후학들과 함께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공숙의 날갯짓 ‘날개’ (2022년 10월 29일(토) 오후 7시 시민회관 소공연장)입니다. 많은 분이 오셔서 우리 민요를 함께 즐겨주셨으면 하고 바랍니다.
우리나라 노래, 악기, 춤이 모두 민요에 들어있습니다. 그런 민요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그런데 제가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명인’으로 선정되고, 아직 공연을 하지 못했습니다. 조만간 준비해서 ‘명인창단식’ 공연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박공숙 명인은 장애를 갖게 되었지만, 장애는 특별함일 뿐 꿈을 실현하는데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장애인 국악 합창단’을 20년 전부터 계획했는데, 연습 장소가 없어서 아직도 시작을 못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물론 파주에는 장애인종합복지관이 있지만, 접근성이 떨어져 특히 장애가 있는 분들이 편하게 자주 이용하기에는 힘들다고 한다. 지금 운영하는 학원은 지하라 장애가 있는 분들이 사용하기엔 어려움이 있어서 사용할 장소를 마련하면 꼭 이루고 싶은 꿈 중 하나라고 한다. (사)한국경기소리보존회 파주지부를 겸하고 있는 학원에서는 경기민요반, 장구병창반, 가락장구반, 민속춤반을 운영하고 있다. 경기민요에 관심 있거나 배우고 싶은 사람은 010-4278-2721로 문의하면 된다.
민중들과 함께 호흡할 때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의 가치가 더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로 공연문화가 많이 침체한 상황에서도 우리의 소리를 널리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는 박공숙 명인과 한국경기소리보존회 회원들이 준비한 공연이 성황리에 개최되기를 기원한다.
인터뷰 작가 김선희 汀彬
kimsunny020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