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만이」 시 위에 겹쳐 보이는 권정생 선생님
박경선
학기말이다. 새내기 교사 백선생님이 결재를 맡으러 교장실에 와 옆에 앉았다.
“올해는 시집가야 할 텐데?”
결재판의 공문을 넘기며 한 소리 했다.
“교장선생님, 결혼하려니 어떤 사람이 좋을지 모르겠어요.”
새내기 선생님의 망설임에 마침 책상 위에 쌓여 있던 『권정생 이야기 』1을 빼내서 책표지를 보여주었다.
<이철지 엮음, 권정생 이야기 1, 한걸음 >
“백 선생님, 요즘 내가 다시 읽고 있는 책인데 참 마음에 드는 시가 있어요. 한 번 들어볼래요?”
백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나는 책장 한 귀퉁이를 접어두었던 171쪽을 펼쳐 <구만이>를 읽어내려갔다.
<구만이>
누가 뭐라 해도
누가 뭐라 흉을 봐도
내사 구만이 그
머시매가 좋더라
말씨가 뚝배기 같고
행실이 말구루마 같다지만
구만인 홀어머니 모시고 사는
효자란다.
해진 청바지 둥둥 걷어 부치고
맥고 모자 삐닥하게 쓰고
빗물처럼 흘러내리는 땀을
씻지도 않고
얼굴이 볕에 그을러 시커멓고
팔뚝이 굵고
그러나 구만이는
책을 읽는단다
한용운의 시를 읽고
신채호의 역사책을 읽고
구만이는 경운기도 잘 끌고
강물에서 헤엄도 잘 친단다.
가금씩 들국화 피는 언덕에
쭈구리고 앉아 하늘을 쳐다보는
구만이
남들은 구만이가 가난하다고
천수답 한 뙈기 없는
가난뱅이라고 하지만,
길례는
자꾸만 자꾸만
구만이가 좋단다.
-이 시는 지식산업사에서 나온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179쪽에도 실려 있다.-
“나는 이 구만이가 바로 권정생 선생님 모습 같아요. 백 선생님은 권정생 선생님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
“안동에서 종지기 하셨다는 정도요.”
“이 구만이는 어떤 사람 같아요?”
“음~ 효심 있고 신체 건강하게 일 잘하고 겉 멋 안 부리고 책 읽기를 좋아하니 학구파? 그런데 가난한 게 좀 흠이네요.”
“이 시 속 길례는 구만이가 좋다는데 백 선생님 이상형은 어때요?”
“딱히 조건은 없어도 가슴 떨림 있는 멋있는 사람요.”
“하하하, 한창 연애할 나이라서 그렇군요. 지금은 황금메달이지만 자칫 혼기 놓치면 동메달 될 수 있어요. 그러니 연애 기분 버리고 봐봐요. 이 시의 구만이 같은 사람이면 심신이 건강한 믿음직한 결혼 상대인 것 같은데요. 잘 봐봐요. 효심 있는 사람이면 인간 기본이 되어있고 따스하게 정 나누며 살아서 성격이 원만할 거예요. 뭐니뭐니해도 성격을 첫째로 봐야지요. 제 아무리 돈 많은 재벌이요. 권력 높은 집안이면 뭐해요. 그런 집안에 시집가면 모두 행복하게 살던가요? 열심히 일하고 책으로 인품과 생각 키워가는 사람, 가끔 들국화 피는 언덕에 쭈구리고 앉아서 하늘 쳐다보며 감사할 줄 아는 자연 같은 사람 구만이! 선생님이 사귀고 있는 사람도 선생님이니 이런 성실과 진실과 감성을 중심에 두고 살펴보면 어때요?”
“호호호, 교장선생님이 오늘 제게 구만이 중매하시는 기분이에요.”
“그랬어요? 구만이같이 진실된 사람 만나 결혼하면 크리스탈 패에 축시도 써줄게요. 찬찬히 살펴보세요.”
퇴근해서 돌아오는 길에 「구만이」 시 위에 권정생 선생님이 자꾸 겹쳐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의 삶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녹여져 탄생하는 것이 작품이기에. 권 선생님이 애정어린 눈으로 마음에 담아 본 그 사람이니 바로 구만이가 권선생님 모습이지 뭐.
권 선생님 모습을 떠올려본다.『몽실 언니』를 읽어 권정생 선생님 향기를 한껏 느끼고 있었는데 처음 뵌 것은 한국글쓰기회에서였다. 20년 전? 30년 전 쯤? 어느 해, 어디서의 모임인지는 가물거리지만 잠바를 입고 뒤쪽에 서 계시는 분이 권정생 선생님이라고 누가 일러주었다.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는데 사라져버렸다. 연수가 끝나기도 전에. 그 후 이오덕 선생님과 통화하는 중에 가끔 권정생선생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대충 20년 전 쯤이었을까? 권오삼 선생님이 안동 권정생 선생님 뵈러 가는 길에 대구 우리 집에 들렀을 때가 기억난다. 나도 따라 붙이고 싶었는데 건강이 안 좋아 아무나 잘 만나주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런데 지식산업사 김경희 사장님은 권정생 선생님을 만나고 와서 내게 전화하셨다. 권정생 선생님 댁에 갔더니 박경선의 “신라할아버지” 동화책이 있더라고. 그래서 이런 저런 분들에게전해 들은 이야기들로 검소하게 사시는 모습, 생명을 귀히 여기며 사시는 모습에 존경심이 컸지만, 마음 한 켠에는 안타까운 마음도 컸다. 왜 좀 더 편하게 사시지 않으실까 싶은..... . 혼자 선생님을 뵌 것은 대구 가톨릭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였다. 병실에서 고통 속에 누워 계실 줄 알았는데 일어나 앉아 계셨고 간병인도 있고 얼굴도 너무 평온하셔서 내 맘도 따라 평온해졌다. 어떻게 알고 왔냐고 해서 지식산업사 김경희 사장님께 들었다고 했다. 별 이야기도 못 나누고 병원비에 보태라고 봉투를 침대 밑에 밀어 넣었는데 한사코 도로 가져가라 하셔서 도망쳐 나왔다. 2007년 5월 초였던 것 같다. 스승의 날이 있는 5월달이라 나는 내 맘 속 스승의 큰 얼굴을 학인한 것 같았다. ‘돌아가시면 안 되요. 도와주세요. 하느님!’ 얼마간 징징거리며 하느님께 매달렸다. 혼자 뵌 것은 그렇게 병원에서 잠시 뵈온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래도 선생님이 살아오신 삶의 모습을 얼핏 얼핏 느껴왔기에 그런 근거에서 말할 수 있다. 선생님 삶의 모습이 「구만이」 시 한 편에 농축되어 담겨 있는 것만 같다고.
집에 가서 빨리 『권정생 이야기』2 책을 찾아보고 싶었다.(2002년도에 한걸음출판사에서 『권정생 이야기 』1,2권을 한꺼번에 내었는데 나는 학교와 집에 책을 흩어놓고 보는 편이라서 한 권은 학교에 한 권은 집에 있었다.)
집에 돌아와 책장에서 해묵은『권정생 이야기』2 책을 찾았다. 이현주 목사님이 권정생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 “나는 껍질이고 권정생은 알이었다.”는 평을 하신 말이 기억에 남아있다.
‘첫 인상에서 뭣땜에 기가 질렸다고 했더라? 그리고 그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왜 「구만이」같은 「재운이」를 떠올렸을까?’
기억을 되찾으려고 그 부분을 찾아 읽어보았다. 301쪽이었다.
“어떻게 된 심판인지 그를 볼 때마다 나는 한없이 부끄럽다. 처음 만나던 날(이하 줄임), 뼈다귀 뿐인 두 손으로 포동포동 살찐 내 손을 그냥 꼬옥 잡아 쥤을 때부터 그는 알이요 나는 껍질이었다. 제 1회 아동 문학가 상을 받으러 상경했을 때였다. 틀림없이 장터 행상에게서 샀을 허름한 코트를 목이 긴 샤쓰 위에 걸치고 고무무릎이 벌쭉하니 나와 종아리가 다 드러난 검정 바지에 검은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그것은 빳빳한 와이셔츠 깃 아래 어지러운 무늬의 넥타이를 매고 윤이 나도록 손질한 가죽 구두를 신은 서울 촌놈에게 통쾌한 일격이었다. ”
그래 바로 이래서였구나. 양복을 한껏 빼입고 나섰던 이현주 목사님도 권정생 선생님의 순수한 영혼, 고결한 가치관을 알아봤기 때문에 자신이 오히려 한갓 초라한 껍질이라고 깨달았던 것이다. 권정생 선생님 본인도 고무신을 신고 시상식장에 나타나도 떳떳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재운이는 다르다. (「재운이」는 1984년에 인산사에서 나온 윤동재 시집에 실려 있던 시이다.) 운동회 총 연습날 체육복도 못 입고 운동화가 아닌 고무신을 신고도 총알같이 달리기를 신나게 하다가 정신 이상자인 듯한 교장이 아이들 보는 앞에서 뺨을 때려서 운동회날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시 속 재운이는 교직자로 사는 내 가슴에도 늘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지만 그 시를 권정생 선생님도 읽었던 모양이다. 그 느낌을 지식산업사에서 나온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책 99쪽에 “고무신 3-재운이네 동무들에게”라는 시로 쏟아내어 놓았다.
“재운이는 왜
운동회날 결석을 했을까?
(줄임)
재운이는 벌써 전부터
깜둥 고무신으로 외톨이가 되어 가면서
얼마나 참고 살았을까?
한 벌뿐인 옷으로
일 년 내내 견디면서 살아온 재운이 “
이 시의 재운이도 옷이 한 벌 뿐이었지만 사람들은 권정생 선생님도 옷이 한 벌 뿐이라고들 했다.
“재운이는 교장 선생님께 맞은 볼때기가
언제까지 아플까?
어른이 되도록
할아버지가 되도록
낫지 않을 지도 모를 게다.“
재운이는 재운이를 비롯하여 우리 모두 가슴에 슬픈 울림으로 남는다. 하지만 권정생 선생님 가슴에는 더 큰 울림으로 담겼으리라.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아버지는 청소부를 하는 집안에서 자라며 병마와 싸워야했기에 재운이 못지않은 가난을 뼈저리게 겪었던 분이었으니. 게다가 생명 하나하나를 누구보다 고귀하게 여겨온 선생님이었기에 그 가슴에 더 애닯게 담겨 있었으리라.
「구만이」나 「재운이」나「재운이네 동무들에게」나 시 한 편을 읽었을 뿐인데 감동 깊은 장편 동화를 읽은 듯한 이 느낌은 뭘까? 권정생 선생님 동시 속 대상은 시 속이거나 동화 속이거나 모두 가난 속에서 한결같이 착하게 살면서 아픈 사연을 간직한 인물들이라서 그렇겠다. 구만이는 가난뱅이이지만 구만이의 사람 됨됨이를 알아볼 줄 아는 길례는 복 받을 처녀다. 그런 구만이를 애정 깊게 품고 살던, 생명을 귀히 여기던 권정생 선생님을 우리는 참 스승이라고 부른다. 오늘 따라 「구만이」 시 위에 겹쳐 보이는 권정생 선생님, 그 분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