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선생이 설파한 두익사상 나는 1964년 3월 고려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문선명 선생의 「원리해설(原理解說)」을 친척의 소개로 알게 되어 혼자서 읽고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 해 9월 서울 청파동에서의 청년학생집회에서 처음으로 문선명 선생을 대면하여 말씀을 들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된 그 날부터 그 어른의 가르침을 따라 오늘까지 그야말로 하루같이 내 생애의 54년을 걸어왔다. 그 동안 선생의 문하에서 부족한 사람이 학생운동지도자로부터 시작하여, 통일원리 전임강사, 대학교수지식인운동가, 대학교수, 사회단체책임자, 언론인 등등으로 점철된 50여년의 세월을 지내온 것이다. 선생의 통일사상을 학생과 교수 일반인들에게 교육하고 전파시키는 한축을 담당하는 한편 언론인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해왔다고 자평해본다.
그런데 세월은 살같이 흘렀고, 20세에 뵈었던 스승님은 당시 40대중반의 카리스마 넘치시고 원기충천하신 지도자이셨는데, 이제는 이 지상을 떠나 천상에 계신다. 그러나 스승이 지상에 남겨놓으신 통일사상과 그 실적, 하나님과 인류를 위하여 사신 삶의 전통만으로도 영원한 인류역사의 진로를 위한 빛을 밝히시고 남을 것이다. 스승님을 모시고 따르면서 내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들었던 그 가르침의 근본을 한마디로 요약해본다면 아래와 같다. 즉
“무신론, 유물론, 진화론이 변증법이란 모순 투쟁에 의한 사회·역사발전론과 습합하여 극단적인 분열과 당파성의 공산주의로 귀결되어 인류의 문명을 파괴시키고 있다. 이를 극복하여 소화시킬 수 있는 이념적 대안이 바로 ‘수수법적 유일론(授受法的 唯一論)’이다.”
위 언표에 나온 ‘수수법적 유일론’은 문선명 선생의 두익사상(통일원리, 통일사상, 승공사상을 통칭한다.)을 관통하는 존재론적 세계관이다. 문선명 선생의 사상을 총칭하여 두익사상으로 명명한 것은 80년대 한국의 대학가가 좌익학생운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였다. 필자는 당시 스승님의 뜻을 따라 대학가에서 좌익운동권학생들과 온몸으로 이념투쟁을 하던 통학련(남북통일 전국학생 총연합)학생들을 지도하는 책임을 지고 있었다. 그 시절 자민투(NL)니 민민투(PD)니 하는 좌익운동권들은 민주화투쟁이라는 위장된 가면을 쓰고 김일성주체사상과 마르크스주의로 일반학생들을 의식화시키며 대학사회를 폭력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무법공간으로 만들고 있었다. 여기에 문선명 선생의 두익사상으로 이념무장된 일군의 통학련 학생그룹이 등장한 것이다. 이 지면 위에서 그 당시 통학련이 좌익운동권과 대자보싸움, 몸싸움을 하면서 부딪쳤던 옛 얘기를 반복할 뜻은 없다. 많은 기록 자료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론과 사상전에서는 좌익학생들이 그 누구로부터도 견제를 받지 않고 무풍지대를 달리다가 통학련 학생들로부터 견제를 당하게 되자 총학생회를 장악했던 주사파운동권들은 통학련학생들의 동아리 서클인 -원리연구회(CARP)와 국제기독학생연합(ICSA)의 등록을 말소하는 압력을 가하는 등, 통학련이 주최하는 행사를 물리적으로 방해하기 일쑤였다. 그 시절 나는 매일 스승님에게 대학가의 좌익운동권학생들과 내가 지도하던 통학련 학생들의 움직임과 이념논쟁에 관하여 보고를 드렸다. 그 와중의 1986년 10월 5일 “통일교회의 자랑”이라는 제목의 일요일 예배말씀 중에 ‘통일교회는 좌우익을 하나 만들기 위한 두익’이라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다. 「두익」이란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문선명선생말씀선집, 148권72쪽)
“세계로 말하게 되면 세계는 간단해요. 2대사상, 2대노선, 민주주의 세계 혹은 공산주의 세계, 좌우로 갈라가지고 말하는데, 좌우로 갈라가지고 말하는 좌익(左翼)은 왼쪽, 우익(右翼)은 바른쪽이에요. 그럼 머리는 어디 있어요, 머리는? 머리가 없습니다. 좌우라는 말이 있고 우익과 좌익이라는 말이 있는데 두익(頭翼)이라고 할까, 두익은 어디 있어요? 요 팔, 팔만 가지고 야단이에요. 이게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무슨 익이라구요? 「두익」 ‘통일익(統一翼)’이에요, 통일익. 그 통일익을 사람으로 말하면 이게 뭐에요? 두익, 두익패. 이렇게 말하면 또 새로운 말이 생겨난다구요. 두익패라는 말이 또 뭣인고? ‘아, 1986년 10월 5일 첫주일에 청파동에서 통일교회의 자랑이라는 제목가운데 두익이라는 말을 했다. 그거 하나 먼저 아는 사람이 세계적 대학자다. 이거 모르는 사람 나한테 굴복해라’ 그럴 때가 온다구요. 통일교회는 무슨 패라구요? 「두익패」 (웃음).”
이 말씀은 예배 중 교인들과 교감하시면서 하신 말씀을 구어체로 그대로 기록한 내용이다. 당시의 시대상황이 좌익과 우익의 이념갈등과 대결이 첨예해지는 것을 보시고 당신이 제창한 「통일원리」 「통일사상」 「승공사상」의 이념적 자리매김을 통칭(統稱)하여 두익이라고 하신 것이다. 보다 높은 차원에서 양자를 극복하거나 비판·보완하여 통합하는 이념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 두익사상이란 의미인 것이다. 이때부터 두익과 두익사상이라는 어휘를 자주 사용하면서 두익사상은 하나님주의(Godism), 통일사상이라고도 칭했다. 1987년에 들어오면서 한국사회의 이념적 혼란과 사회정치적 갈등이 더욱 심해지게 되자 선생님은 필자에게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을 창설할 준비를 서둘러야한다고 지시하시고 그해 5월15일 발표하신 창설메시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조금 길지만 남북통일과 두익사상에 관한 천명이기에 여기에 인용하고자 한다. (참고로 그날 창설대회의 MC를 필자가 맡아서 진행하였음을 부기해 둔다.)
“우리 국민연합은 이 시점에서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우리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향한 참다운 가치관을 정립하고, 그 가치관을 중심삼아 사상무장을 해야합니다.--- 공산주의를 군사적으로만 패배시킬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 사상을 능가하는 보다 우수한 사상이 아니고서는 공산주의를 패배시킬 수 없습니다. 그 사상이란 바로 진리에 입각한 사상을 말합니다.--- 그 사상이 바로 하나님주의입니다. 이제 자유세계가 하나님주의 곧 통일사상으로 무장하여 이념적 공세로 전환하지 않는 한 공산주의를 이길 수 없습니다.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은 범국민사상무장운동의 선봉장이 되어야합니다.--- 우리의 통일사상, 하나님주의는 또한 두익사상임을 천명하는 바입니다. 우익도 아니고 좌익도 아닌 두익입니다. 인류의 참평화는 우익으로도 좌익으로도 아니 됩니다. 그 이유는 우익도 좌익도 그 근본적 동기가 이기주의를 해탈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이기주의를 타파하는 새 세계주의가 나와야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남을 위해 사는 이타주의는 오직 하나님의 이상에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의 본체이시고, 사랑의 본질은 자기를 희생하여 남을 살리는 이타주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주의의 본질은 사랑이요, 그 사상은 사람의 사지백체를 움직이는 머리와도 같은 중심사상이요, 그래서 두익사상인 것입니다. 오른팔도 왼팔도 알고 보면 한 몸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머리가 없을 때 그들은 서로 남남이 되어서 싸우지만 머리가 중심에 자리잡고 들어서면 오른팔도 왼팔도 모두 머리의 명령에 따라 몸 전체를 위하여 일하는 하나의 협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북통일도 두익사상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은 북한이 남한을 적화하는 것도 아니며, 남한이 북한을 침략하는 것도 아닙니다. 공생·공영·공의의 두익사상으로 남과 북의 가치관을 통일함으로써 남북통일을 이룩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두익통일론은 자유통일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우리의 통일은 하나님과 자유와 민주주의를 기초로 하는 통일이어야만 합니다. 그 밖의 어떤 형태의 통일도 진정한 통일이 아닙니다. 자유는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부여한 신성불가침의 권리입니다. 이것은 나의 권리요 여러분의 권리요 북한 동포들의 권리입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통일, 그것만이 진정한 통일인 것입니다.” 이상으로 두익사상의 제창자이신 문선명 선생님의 언표를 통해 그 의미를 살펴보았다.
유엔 평화군 성전추모연합회 창설
다시 장면을 바꾸어서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장군동상 철거소동과 관련된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2003년 2월 25일 김대중의 후임에 노무현정권이 출범되었다. 노무현정권이 들어서자 국내의 주사파 종북세력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드디어 2004-5년부터 맥아더는 한국분단의 주범이라는 북한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우리민족끼리’가 선동하는 대로 인천자유공원에 서 있는 맥아더동상 철거소동을 벌인 것이다.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사태인가? 많은 우국인사들이 나서서 몸싸움으로 이들을 몰아내었지만 노정부는 수수방관만 했으니 이 분들의 놀란 가슴이 진정되기가 어려웠다. 나는 그 현장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평소 가까이 모시고 있던 국가원로 지도자인 소석(素石) 이철승 총재로부터 그 사태의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림 .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기 위해 죽창을 들고 모인 좌익단체들>
8.15해방 직후 좌우익의 갈등으로 인한 혼란시대로부터 반탁반공 운동의 선구자였고 우익 학생운동의 전설로서 대한민국건국의 일익을 담당하신 이철승 총재가 필자와 인연이 되어 문선명 선생님과 가까이 하시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8-90년대의 대학가가 온통 좌익주사파운동권에 의해 난장판이 되었을 때, 고려대가 그 중심이 되고 있었다. 주사파들의 지휘부인 전대협이 출범되어(1987) 그 제1기 의장이 당시 고대총학생회장이었던 이인영 군(현 더불어민주당의원, 헌법개정위원회 제2소위원장)이었다. 이들이 주동하여 캠퍼스에 건립되어 있는 설립자 김성수선생의 동상을 친일매국분자로 매도하면서 철거해버리겠다고 쇠줄로 동상의 목과 머리를 결박해놓고 연일 캠퍼스를 휘젓고 있었다. 그 때 나는 통학련을 지도하는 입장이었지만, 고대내부에서는 교수 직원 학생들 중 누구도 나서지 않고 있으니 통학련 학생들만의 힘으로는 분위기 전환에 역부족을 느끼면서 고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기가 오른 전대협본부에서 타블로이드 신문을 발행하였다. 머리기사가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이었다. 캠퍼스야 말로 주사파들의 해방공간이 된 것과 같았다. 나는 이 신문을 대량 복사하여 교우회 상임이사진 600명에게 우송하면서 고대캠퍼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위기상황을 알도록 하였다. 당시의 교우회장은 장덕진 선배였다. 너무나 충격을 받은 교우회 비상총회가 소집된 것이다. 350명 정도가 모였었다. 그 총회에서 선배교우들이 학교로 들어가서 김성수 선생의 동상에 걸쳐져 있던 쇠밧줄을 풀어내릴 것을 결의하고 맨 선두에 나서셨던 분이 이철승 총재였다. 내가 그 비상총회에서 발언기회를 얻어 고려대사태의 전말을 보고하는 것을 눈여겨본 이철승 총재가 나를 찾게 되어 자연스럽게 문선명 선생님과 인연이 된 것이다.
다시 2004년의 맥아더동상 철거얘기로 돌아간다. 소석선생으로부터 들은 동상철거사태를 문선생님께 전해드렸을 때 선생님은 별다른 언급을 않으셨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 지도자 모임에 소석선생을 모시고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한국에서 약50명의 저명인사들이 참석하게 되었다. 2004년12월13일 워싱턴 메리어트 호텔에는 전 세계 100여 개국의 대표 3300여명이 운집했다. 초청연사로는 밥 도올(Bob Dole) 전 공화당 대통령지명자였다. 그런데 그 대회를 주재하신 문선명 선생님은 특별세션에서 한국의 6.25전쟁에 맥아더 유엔군사령관과 함께 참전한 16개국용사들의 희생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들이 공산침략군을 격퇴시켜 한국을 지켜준 6.25전쟁은 성전(聖戰)이었다고 설파하셨다.
<그림 .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방문해 추도식을 거행하는 이철승 총재와 렐로 장군>
그러면서 이번 세계대회에서 한국을 수호해준 유엔참전용사들을 기리기 위한 「유엔평화군성전추모연합회」(UPKMF, U.N.Peace Forces of the Korean War Memorial Federation)를 창설하자고 제의 하시고 그 초대 회장에 한국의 원로국가지도자인 이철승총 재를 지명하셨던 것이다. 이철승 총재는 그날 회장수락연설을 하면서 시종 감격어린 표정이셨다. 한국에서 벌어졌던 맥아더장군 동상 철거소동을 보고 당황하며 걱정하고 있었던 이 문제를 문총재님은 세계적 차원에서 이렇게 풀어내시는구나하는 소감을 그 이후 여러 번 얘기하였다. 이렇게 출범한 유엔평화군성전추모연합회는 그 후 두 차례에 걸친 16개국참전용사 초청 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한다. 제1차(2005년 7월 25일-30일, 참석자203명), 제2차(2007년 7월24일-29일, 참석자200명) 연인원 400여명이 참석하여 50여 년 전 그들이 생명을 걸고 지켜낸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보고 감격에 겨워하며, 한국의 발전상이야말로 자기들의 희생에 대한 충분한 보람이요 보상이라고 말했다. 문선명 선생님은 참전용사 전원을 청평 천정궁으로 초청하여 크게 환대하셨다. “하나님의 섭리사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전쟁은 단순한 한나라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완결하는 「북한해방 남북통일」의 성업에 결정적 역할을 해낸 역사적 성전(聖戰)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은 단순한 남한과 북한간의 내전이 아니고, 섭리의 중심조국을 보호하고 인류의 자유를 수호하기위한 세계적인 이념전쟁이었고, 그 주역들이 UN평화군 여러분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은 세계사에서 결코 잊혀서는 안 되는 섭리적 전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휴전 중인 한반도의 분단은 여러분들의 평화와 자유 수호정신을 이어받아 기필코 ‘북한해방 남북통일’로 이어질 것입니다.”라고 격려하셨다. 이 초청행사로는 부족하다고 느끼신 선생님은 다시 필자에게 16개국을 순방하면서 참전용사를 격려하고 감사의 뜻을 전하라고 지시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이철승 총재님과 지갑종 회장(UN참전용사기념사업회)님에게 문총재님의 뜻을 전하고 참전16개국 순방단을 조직하여 2006년11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방문을 시작으로하여 2007년 6월, 그리스방문을 마칠 때까지 8개월 동안 51일간의 ‘16개국 참전용사 순방행사’를 가졌다. 가는 곳마다 문총재님을 따르는 현지 제자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첫 방문국인 남아프리카에는 16개국의 한국참전용사회 세계회장인 렐로 장군이 계시기에 14000킬로의 먼 길을 고령의 이철승 총재님과 지갑종회장님을 모시고 갔다. 진심으로 두 분 어르신에게 감사를 올린다. 이 순방행사를 기록하여 출판한 책 (내가 기억하는 한국전쟁, 주우철, 맵씨터 2017)이 나와 있다.
<그림 . 추모회가 초청한 유엔16개국참전용사들이 부산유엔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우리들의 순방결과에 대한 종합적인 총괄 보고를 받으신 선생님께서는 거기서 멈추지 않으시고 이번에는 리틀엔젤스 어린이 무용단과 함께 대대적인 순방행사를 하라시며 거금의 비용까지 쾌척하셨다. 지금까지도 적지 않은 비용이 지출되었는데 이번에는 더 큰 결단을 내리시는 것이었다. 리틀엔젤스와 함께 했던 ‘6.25참전용사 보은순방행사’에 관한 얘기는 여러 매체에서도 보도가 되었음을 독자들이 잘 알고 있다고 보아, 위의 ‘내가 기억하는 한국전쟁’을 참조하면 좀 더 디테일한 내용을 접할 수 있다는 말로 여기서 그치기로 한다.
<그림 . 2017년 7월, 고려대에서 개최한 ‘맑시즘 2017’, 출처: 맑시즘 2017 홈페이지>
두익(頭翼)은 중립(中立)·중도(中道)가 아니다
요즘 대한민국의 집권세력이 좌편향으로 기울고 보니 피상적으로 두익사상 운운하는 사람들의 이념적 정체성이 새삼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그중에서 두익의 이념적 지향이 마치 중립이나 중도인 것처럼 떠들고 나서서 정권의 좌편향에 대해 애써 입을 닫거나 오히려 그쪽을 두둔하는 사람들이 적잖게 눈에 띄어 분명한 두익의 사상-이념적 정체성을 정립해두고자 한다.
두익을 중립인 것처럼 호도하는 사람들의 얘기인즉슨 “두익은 우익(右翼)과 좌익(左翼)의 중간인 불편부당(不偏不黨)의 입장에 서서 양자를 화해시키고 통합 조정해야한다”는 것이다. 일견 말은 그럴듯하고 뭐가 있는 것 같이 들리지만 실은 텅 빈 빈껍데기 소리다. 이는 우익과 좌익이 사상-이념적 세계관의 극명한 대립을 전제로 한 「진영(陣營)이데올로기」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두익을 단순 유치하게 문자풀이로 해석하는 잠꼬대일 뿐이다.
같은 이념진영내부에서 두 당파의 갈등과 대립이 있을 경우 중도통합이나 갈등해소를 위한 조정자 역할은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익과 좌익이라는 이념-세계관·인간관의 대립과 갈등의 영역은 중립입장에서 조정하거나 화해가 되는 게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기회주의가 중립·중도란 이름으로 둔갑한 경우가 바로 이 케이스다. 우익보수주의와 좌익진보주의를 중간에서 통합 비빔밥을 한다? 가능한가? 한 사람이 우익보수주의자인 동시에 좌익진보주의자가 될 수 있는가? 될 수 있다면 그런 인간은 반인반수(半人半獸)의 괴물이다. 사상-이념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기회주의자의 간사한 처세술에 불과한 것이다.
좌익사회주의자의 대표 격에 있는 공산주의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진보좌파들을 단순화시켜 요약하면 1)유물론자다. 2)무신론자다. 3)반종교(특히 반기독교)적이다. 4)원숭이가 노동을 통해 진화한 고등동물이 인간이라고 믿는다. 5)변증법적 유물론을 과학적 세계관이라고 맹신하고 모든 사상(事象)을 이 관점에서 해석한다. 6)역사적 유물론에 입각한 계급투쟁사를 신봉하면서 사유재산제도와 자유시장 경제제도를 타도하고 무계급사회를 이룰 때 이상사회가 실현된다고 확신한다. 7)하나님도 영계(靈界)도 없는 땅위의 ‘인간원숭이 동물왕국’ 건설이 그들의 목적지다. 이들은 위의 7개 항목 등을 결정론적으로 믿고 196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으로부터 최근의 성차별철폐운동(Gender Mainstreaming)에 이르기까지 ‘진보’와 ‘문화’란 미명으로 다양하게 세상을 미혹시킨다.
이에 비해 우익보수주의자를 대표하는 자유민주진영의 사람들은 위에 말한 7개 항목에 대해서는 압도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고 분명한 자기의 사상-이념적 세계관이 없는 사람들도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신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익보수주의자들은 일당독재정치를 실시하는 좌익공산주의자들과는 달리 다당제를 기반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시장경제와 언론의 자유, 종교·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데 있다. 이점에서 공산주의의 인민민주주의는 가인型이고, 자유민주주의는 아벨형(型)이라는 두익사상의 관점은 쉽게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이쯤해서 두익을 중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좌익공산주의의 인민민주주의와 우익자유민주주의의 양대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다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좌익진보공산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위의 7개 항목도 다 용납하자고 말할 수 있는가? 있다고 한다면 당신은 사상-이념적으로는 괴물이고 처세로는 자해적(自害的) 기회주의자다. 당신 내부의 모순으로 당신은 파멸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두익사상을 따른다고 하면서 이런 무신-유물론자들과 공산주의 주사파들까지 참사랑 운운 하면서 편들고 옹호하며 끌어안고 가야한다고 요설을 한다면 앞서 말한 반인반수 중 시쳇말로 두익좀비나 참사랑좀비족이 틀림없을 것이다. 두익은 위의 7개 항목 어디에도 해당사항이 없다. 주체사상으로 요새화 되어있는 북한에 대해서도 두익은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두익사상 주창자이신 문선명 선생님은 온갖 핍박을 감수하면서 승공이론과 통일사상에 입각하여 세계적으로 승공사상교육을 진두지휘하시는 한편 소련의 고르바초프를 만나, 공산주의 유물론을 포기하고 맑스와 레닌의 동상을 철거하고 소련에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라고 충고하셨다. 또한 북한의 김일성일당에게는 6·25남침을 인정하고 세계 앞에 사과하고 주체사상을 포기, 문총재의 두익-통일사상을 받아들이라고 조언한 것이다. 두익사상의 근본은 인간증오가 아닌 인류애임이 확인되었기에 정상(頂上)의 자리에서 이런 충고와 조언이 가능한 소통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따라서 두익은 좌익사상의 비진리성을 완전히 극복·폭로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하나님의 인류애를 근본으로 하여 좌익이 참소하는 「인간소외」를 해결하는 철학과 세계관, 인간론을 제시한다. 증오를 사랑으로 소화시키는 감화력을 발휘한다. 최근에 필자가 읽은 “오래된 새로운 비전-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서문(최 광, 성균관대 석좌교수, 9p. 2017.10. 기파랑)의 한 소절을 옮겨본다. “이념에는 절대 중도(中道)가 있을 수 없다. 보수와 진보를 동시에 받아들여 중도가 될 수 없는 것은 한 개인이 두 종교를 동시에 믿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만약 한 사람이 기독교와 불교를 동시에 믿는 경우 그는 사이비이고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배척받을 것이다. 물론 진보였던 사람이 보수로 전향할 수는 있다. 또한 젊었을 때 진보주의를 신봉했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 보수주의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한 사람이 한 시점에서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동시에 될 수 없다.”
두익이 중도나 중립이 될 수 없다는 의미와 통하는 사유다. 두익이 우익을 용인하는 동시에 좌익도 용납한다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아벨형(型)인생관인 우익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가인형(型) 인생관인 좌익의 비진리 독단을 폭로·극복하여 두 진영의 사람들이 공생(共生)공영(共榮)공의(共義)주의 세계로 함께 살게 해 주는 보다 큰 이념이 두익인 것이다. 공산주의자인 인간은 인정하되 그들의 사상-이념은 폭로·비판·극복의 대상이지 인정과 용납의 대상이 전혀 아닌 것이다. 우익보수자유주의는 그 사상-이념의 취약성을 보완해주고 그 장점은 보유해나가게 하는 것이 두익이다. 여기서 두익통일론을 주창하신 문선명선생님의 남북통일운동 국민연합 창설메시지(1987.5.15.)를 다시 한 번 인용한다. “우리의 통일은 하나님과 자유와 민주주의를 기초로 하는 통일이어야만 합니다. 그 밖의 어떤 형태의 통일도 진정한 통일이 아닙니다. 자유는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부여한 신성불가침의 권리입니다. 이것은 나의 권리요 여러분의 권리요 북한동포들의 권리입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통일, 그것만이 진정한 통일인 것입니다.”
두익이 중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는 대한민국을 중립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중립국이란 「약소국」이 자국의 생존을 최고의 목표로 하는 것이므로, 인류와 세계의 안전과 평화와 행복,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무책임하게 소극적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런 불의의 세력에 대해서도 아무런 적극적 능동적 역할을 하지 못하는 약소국의 반열에 끼어들어 중립국이 되기를 자청하여 자기 방어와 자기생존에만 연연해서야 어찌 세계섭리의 “중심지도국으로서의 통일대한민국”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두익사상의 창시자이신 문선명 선생님은 「북한을 해방시켜 남북이 자유통일 된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조국, 세계만민의 당당한 조국이라 설파하시지 않으셨던가! 더욱이 남북한을 통일시켜 세계평화를 향도(嚮導)할 두익사상의 조국, 해 돋는 동방나라 대한민국을 굳이 중립국이라고 지레 궁상을 떨며 좌우익의 눈치나 살피고 비위를 맞추어야 할 이유가 나변에 있는가. 2018년 새해에는 두익사상의 이념적 지향과 두익운동이 떨쳐 일으켜야할 소망찬 겨레의 기풍을 천의(天意)에 맞게 올바로 세워드리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글 마무리
문선명 선생님의 두익사상에 관한 해설 중에 위에 예를 든 필자와 관계된 이러저러한 이벤트스토리는 두익사상이 단순한 지상(紙上)의 사변적 논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님을 독자제위에게 알려드리고 싶어서다. 두익사상은 통일원리, 통일사상, 승공사상이라는 3대가치관을 가지고 역사와 사회 속에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임을 그 사상의 창시자이신 문선명선생님의 삶과 연결하여 설명해야 하고, 그 스승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한 치의 착오나 뒤틀림이 없이 스승님이 남겨놓으신 사상과 전통을 올바로 계승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은 스승님이 지상을 떠나신지 몇 년이 되지 않은 시점이다.
초창기부터 스승님과 뜻을 함께 해오던 분들도 유명을 달리하신 분 들이 많고 지금은 모든 면에서 인적인 세대교체와 전통의 전수가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노장청(老壯靑) 3대는 스승님의 사상과 전통의 올바른 전수와 확충발전을 위해 3인4각(三人四脚)의 심정과 자세로 겸손하게 서로 묻고 대답하면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스승님 문하 제1세대의 말석에 있는 사람으로서 승공통일·두익사상 포럼운동을 통하여 스승님의 뜻을 올바로 전수하는 학습의 기풍을 진작하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스승님의 가르침과 행적이 많은 사람들에게 왜곡되어 전달되는 것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두익사상에 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한 학습을 권장한다. 두익이 마치 공산주의나 김일성주체사상 류를 신념화하여 대한민국을 파괴하기 위해 백방으로 움직이는 자들까지도 참사랑으로 품고 가야한다는 요설을 주저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두익좀비, 참사랑좀비로 부르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산색은 고금동(山色古今同)이요, 인심은 조석변(人心朝夕變)이라 하지만, 스승님을 따르는 두익사상의 형제들이 스승님의 이름과 사상을 이용하면서까지 권력에 추파를 던지며, 기회주의자들이 되어 시류에 나부끼고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풍전세류(風前細柳)들이 될 수는 없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