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선비가 들려주는 흥미로운 전통예절이야기]
제36강 【제례】 제상차림[진설]의 기본원리
글·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전 성균관 청년유도회 대구광역시본부 사무국장)
프롤로그
“모든 벗님네들 과세(過歲)는 잘하셨는지요?”
어제가 설날이었고, 설날은 어제 하루 만에 끝이 났다. 예전에는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정월 대보름까지의 보름간이 몽땅 설날이었다. 하지만 잘나고 똑똑하며 현명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요즘 세상에서는 더 이상 이런 전통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하긴 이 바쁜 세상에 어느 누가 몇 날 며칠 동안 친지·지인들과 새해인사를 나누며 여유를 즐길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시대착오적이며 배부른 소리인 것 같다. 세상이 변하고 사람들도 변했는데 시속(時俗)인들 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제 설 명절 차례 상을 차리면서 친척들 간에 혹시라도 “감 놔라. 배 놔라” 한 일은 없었는지? 생각건대 명절 차례나 제사를 지내는 집들이라면 다들 한 번 쯤은 이런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명절 차례 상을 포함한 제상 상차림의 기본원칙에 대해 한 번 알아보기로 하자.
제상차림[진설]의 기본원리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말은 남의 집 제사 상차림에 대해 ‘이쪽에 감을 놓고 저쪽에 배를 놔라’는 식으로 간섭을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넓은 의미에서는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뜻이며, 좁은 의미에서는 남의 집 제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훈수두지 말라는 뜻이다.
세상에는 ‘가가례(家家禮)·가가예문(家家禮文)·가가이례(家家異禮)’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집집마다 그 예법이 서로 다르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우리의 예법 중 일부가 ‘가가례’로써 설명이 가능하다는 뜻이지, ‘가가례’로써 모든 예법을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어느 한 쪽이 다른 한쪽의 ‘충분조건’ 혹은 ‘필요조건’은 될 수 있지만, 서로가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란 뜻이다.
제상을 차린다는 말을 한자로 표현하면 ‘진설(陳設)’이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진설에는 특별한 원리 혹은 기준이 있다. 산 사람들이 먹는 양식·한식에도 그릇에 담긴 음식의 종류에 따라 그릇이 놓이는 위치가 달라지듯이 제상에도 이처럼 상차림의 기본 원리가 있다는 것이다. 유교에서는 죽은 자 섬기기를 산 자 섬기듯 하라는 ‘사사여사생(事死如事生)’이란 말이 있다. 따라서 산 자를 위한 상차림만큼이나 죽은 자를 위한 상차림도 있는 것이다.
제상은 기본적으로 한식이다. 그래서 제상차림을 잘 살펴보면 산 사람들의 한식 상차림과 별반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사람·귀신이 앉는 자리 바로 앞쪽에 가장 중요한 제수인 ‘밥·국·술잔·수저’ 등을 놓는다. 또한 자리 가까운 곳에 주메뉴를 놓고, 먼 곳에 기타 반찬류를 놓는다. 식어도 상관없는 음식은 미리 차려두지만 따뜻하게 먹어야하는 음식은 반드시 사람·귀신이 자리에 앉은 뒤에야 내어온다. 그리고 식사 후에 물을 내어오는 것까지 산 자와 죽은 자에 대한 상차림은 이런 식으로 유사한 점이 많다. 그러나 산 자와 죽은 자의 상차림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음양이 바뀐다는 사실이다.
동양의 방위개념에는 ‘자연방위’와 ‘예절방위’라는 것이 있다. 자연방위는 절대불변의 방위 곧 나침반 방위를 말하며, 예절방위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방위개념이다. 예절방위를 예로 들어보면 제상이든 산사람이 받는 상이든 간에 신위나 중요한 사람이 앉는 자리를 무조건 북쪽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예절방위는 실제 자연방위와는 상관없이 신위나 사람을 기준으로 그 왼편은 동쪽, 오른편은 서쪽, 앞은 남쪽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동양의 예절방위는 동양의 음양론을 만나 또 다른 새로운 개념을 하나 더 만들어 낸다. 바로 양은 동쪽을 높이고, 음은 서쪽을 높인다는 개념이다. 이에 따르면 산 사람의 세계는 양으로 보아 동쪽을 높이고(以東爲上), 신(神)의 세계는 음으로 보아 서쪽을 높인다(以西爲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이동위상’과 ‘이서위상’을 실제 상차림에는 어떻게 적용을 할까?
이것은 다음과 같이 하면 된다. 제상의 첫줄에 놓인 ‘밥과 국’, 둘째 줄에 놓인 ‘육류와 어류’, ‘면류와 떡류’, 셋째 줄에 놓인 ‘포(脯)와 채소’ 등을 놓고 각각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볼 것인지를 결정하면 된다. 그래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 산자의 경우는 ‘이동위상’, 망자의 경우는 ‘이서위상’의 원리를 적용하면 되는 것이다.
제상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밥·육류·육고기·면류’등은 서쪽[신위를 기준으로 오른쪽]에, ‘국·채소·어류·떡류’ 등은 동쪽에 놓으면 되는 것이다. 잠깐 여기에서 밥과 국의 위치를 한 번 보라. ‘서반동갱(西飯東羹·서쪽에 밥 동쪽에 국)·우반좌갱(右飯左羹·신위를 기준으로 우측에 밥 좌측에 국)’이니 산 자의 ‘동반서갱(東飯西羹)’·‘좌반우갱(左飯右羹)’과는 반대가 된다. 제상에서 밥과 국의 위치를 산자와는 달리 ‘서반동갱·우반좌갱’으로 하는 데는 바로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외 진설에 있어 염두에 둘만한 기본원리로는 천생(天生)의 품수(品數)는 홀수, 지생(地生)의 품수는 짝수라는 것이 있다. 이 말은 양기를 품은 고기류의 그릇 수는 홀수, 음기를 품은 식물류의 그릇 수는 짝수로 하라는 말이다. 여기에서 ‘품수’라는 것은 그릇의 수를 말하는 것이지 종류 또는 그릇에 담기는 제수의 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복숭아를 비롯해 멸치·갈치·꽁치처럼 ‘치’자가 붙는 물고기와 고춧가루·후춧가루·마늘·파 등의 자극성 재료도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바로 위에서 예를 든 몇 가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예로부터 제수의 종류에 대해서는 크게 제한을 두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시피 제상의 제일 바깥 줄에 놓이는 과일은 그 종류에 따라 위치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옛 선현들의 예서를 보면 어느 한 곳에도 ‘대추·밤·감·배···’하는 식으로 과일의 위치를 정한 예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 모든 예서에는 오직 ‘과(果)·과(果)·과(果)·과(果)·과(果)·과(果)···’ 라는 식으로만 표기되어 있을 뿐이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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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상을 차릴 때 과일은 조(棗)·율(栗)·시(枾)·이(梨) 순으로 진설한다. 이는 까닭이 있으니 대추는 씨가 1개이니 임금을 상징한 것이요, 밤은 씨가 3개이니 삼정승을 상징하며, 감은 씨가 6개이니 육조판서를, 배는 씨가 8개이니 팔도관찰사를 상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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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이 주장은 옛 예서에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는 내용이다. 추측컨대 이 주장은 근세에 와서 생겨난 것이며, 전통예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 근거를 찾아볼 수가 없는 주장이라 할 수 있겠다.
이쯤에서 제상차림의 기본원리를 한 번 요약하는 것으로써 오늘 이야기를 모두 마치도록 하자. 다시 한 번 더 말하지만 ‘사사여사생(事死如事生)’이라고 했다. 산 자의 상차림이나 죽은 자의 상차림은 음양의 뒤바뀜에 따른 좌우 높고 낮음의 차이만 있을 뿐, 그 기본원리는 같다.
▪중요한 것은 서쪽, 덜 중요한 것은 동쪽
▪중요한 것은 신위 가까운 곳, 덜 중요한 것은 신위에서 먼 곳
▪육류는 그릇 수를 홀수, 식물류는 그릇 수를 짝수
2017년 1월 30일 새벽...
대구 砧山下 風鏡山房에서
訥齋 송은석
☎018-525-8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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