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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혼불멸에 대한 범신론과 희랍철학과 기독교의 비교.
① 범신론
ⅰ. 인간은 사후에 그 개체성이 없어지고 우주 만물을 존재케 한 근원적인 그 무엇(신)으로 돌아간다. 이는 마치 분수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물이 뿜어져 나오다가 떨어지면 다시 원래의 물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에 비유된다.
ⅱ. 불교에서는 인간은 사후에 인과(因果)의 법칙에 따라 다른 형태의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윤회)
② 희랍철학
ⅰ. 영혼이란 인간의 출생 이전부터 존재한다. 모든 사람의 영혼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존재한다.
ⅱ. 죽음이란 영혼을 육체의 감옥에서 풀어서 그의 영원한 세계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ⅲ. 육체를 벗어난 영혼은 희로애락 없이 그저 그렇게 끝없이 존재한다. 영혼불멸은 영혼에만 해당된다.
③ 기독교
a. 영혼불멸의 개념.
ⅰ. 영혼불멸이란 본래 하나님 한 분에게만 해당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에게도 자기의 형상을 따라 이 불멸성(시작이 있는 불멸성)을 주셨다.
ⅱ. 인간의 영혼불멸은 영혼과 몸 모두에 적용된다.
ⅲ. 인간의 영혼불멸의 상태는 영생과 영벌의 삶으로 나뉜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2-3)
b. 죽음의 긍정적인 측면.
ⅰ. 신자들은 죽음에 대한 생각이나 죽음을 통한 이별이나 죽음이 접근해 오고 있다는 긴장을 통해 큰 영적인 유익을 얻게 된다. 곧, 죽음 이후에 있을 심판을 상기함으로서 죄를 회개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살고자 하며, 인간의 본분을 다하며 살고자 하게 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12:1-2)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7)
ⅱ. 신자들은 죽음의 순간에 영화에 이르게 된다. 곧, 그의 믿음과 인격의 성화가 죽음의 과정을 통과하면서 완성된다.
ⅲ. 신자들은 죽음 이후에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게 된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7-18)
ⅳ. 신자들의 죽음은 그리스도에게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관문이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1:21)
ⅴ. 이와 같이 죽음 그 자체는 형벌이며 악한 것이지만, 신자들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의 연단을 위해 규정하신 수단의 정점이며, 영광에 이르는 마지막 과정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신자는 죽음을 잘 이용함으로 자신의 영혼을 유익하게 할 수 있다. 만약 죄인된 인간에게 죽음이 없었다면 인간은 아마도 영원히 회개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성경은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시116:15)고 말씀한다.
(2) 죽음 이후의 신자의 거처.
① 부활 이전.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눅16:22)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그가 셋째 하늘…낙원에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고후12:2,4)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6)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마8:11)
“그리스도께서…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히 9:24)
a. 신자들의 영혼이 죽은 후에 가는 곳은 어디인가?
ⅰ. 하나님의 자녀들이 죽은 후에 가는 곳을 가리키는 말로써 여러 개의 명칭이 사용되고 있다. “아브라함의 품, 낙원, 천국, 셋째 하늘, 본향, 아버지의 집” 등의 단어들은 각각 다른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동일한 장소를 다양하게 표현했을 뿐이다.
ⅱ. 신자는 죽은 후에 그 영혼이 낙원이나 천국이나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간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곳에서 부활의 때까지 머물게 된다. 그곳은 모두 동일한 처소를 가리키며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곳이다.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었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1:23)
b. 중간 처소는 없다.
ⅰ. 성경은 결코 신자들이 천국도 지옥도 아닌 중간 처소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부활의 때까지 머문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또한 그러한 장소가 있어야 할 이유도 없다.
ⅱ. 주님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한 강도가 죽기 직전에 회개할 때 연옥이 아닌 천국(혹은 낙원)에 들어감을 밝히셨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ⅲ. 성경은 천국과 낙원이 동일한 장소임을 말씀한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고후12:2-4)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계2:7)
ⅳ. 성경은 천국과 아브라함의 품이 동일한 장소임을 말씀한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6)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마8:11)
ⅴ. 로마가톨릭교회는 인위적으로 연옥이나 낙원(선조림보, 유아림보)을 만들어서 진리를 왜곡시키고 있다.(천주교의 ‘사후 영혼의 처소’ 참조) 일부 개신교인들도 로마가톨릭교회의 영향을 받아 ‘천국과 지옥’ 외에 로마가톨릭교회의 ‘낙원’과 같은 중간 처소를 가르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ⅵ. 웨스트민스터대요리문답 86.
“무형교회 회원들이 죽음 직후에 그리스도로 더불어 누리게 되는 영광의 교통이란 무엇인가?
“무형교회 회원들이 죽은 직후에 그리스도로 더불어 누리게 되는 영광의 교통은 그들의 영혼이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가장 높은 하늘에 영접을 받아 그곳에서 빛과 영광중에 계신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몸의 완전한 구속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들의 몸은 비록 죽은 가운데 있어도 그리스도에게 계속 연합되어 마치 잠자리에서 잠자듯 무덤에서 쉬고 있다가 마지막 날에 그들의 영혼과 다시 연합하게 되는 것이다. 악인의 영혼들은 죽을 때 지옥에 던져져 거기서 고통과 흑암중에 있는 한편 그들의 몸은 부활과 큰 날의 심판 때까지 마치 감옥에 갇히듯 무덤에 보존되는 것이다.”
② 부활 이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1-4)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 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21:1-2)
a. 신자들이 부활 이후에 거할 처소.
(a)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그 위에 세워진 거룩한 성인 새 예루살렘이다.
ⅰ. 새 예루살렘은 성경에 계시된 최후의 ‘완성된 낙원’의 모습이며, 신자들이 거할 최종적인 처소이다.
ⅱ. 새 예루살렘성은 이쪽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저쪽으로부터 선물로 주어진다.
ⅲ. 이 성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며,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 같으며, 모든 것이 질적으로 새로워진 곳이다(계21:5).
(b) 부활 이전의 처소와의 차이점
시간상 외형상의 구별은 있으나 개념상으로는 아무 차이가 없다. 두 곳 모두 하나님의 나라이며 주께서 다스리는 곳이다.
③ 성경의 영생의 의미.
“또 아는 것은…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요일5:20)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요6:47)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요17: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5:11-1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노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로다”(요3:16)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40)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요17:2)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일2:15)
a. 영생은 단지 시간적으로 오래 사는 것이 아니다.
영생이란 어떠한 상태에서 사느냐, 곧 그 삶의 질이 어떤 것이냐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단지 영구히 지속되는 생명이라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일 수 있다.(질병, 가난, 억압, 전쟁 등의 고통스러운 상태)
b. 영생은 하나님의 삶 혹은 그리스도의 삶에 참여하는 것이다.
영생을 누린다는 것은 하나님(또는 그리스도)의 생명에 동참하는 것임. 그것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는 삶이며,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영광과 은사를 누리며 사는 것임.
c. 영생은 나의 생명을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결시킴으로 누릴 수 있다.
예수님은 영생이시며, 또한 우리와의 연합을 통해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처럼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다.
d. 영생은 죽은 다음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ⅰ. 영생은 지금 여기서 시작됨 : 우리는 지금의 시간과 공간에서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사귐을 가질 수 있고,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음. 장래의 생이란 현재의 삶과 연속선상에 있음.
ⅱ. 영생은 무덤 너머로까지 영원히 계속됨 : 하나님은 무엇에든지 무한하시며 끝이 없으심.
e. 영생이란 결코 고정적일 수 없다.
영생은 장래의 생에 있어서도 부단히 성장하며, 최선에 가까이 접근해가는 것을 의미함. 왜냐하면 하늘에서조차도 인간은 아무도 하나님의 목표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f. 영생은 우리의 모든 상상을 초월하는 삶이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한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2:9)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13:12)
(2) 죽음 이후의 불신자의 거처.
① 부활 이전.
“부자는 죽어 장사되며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눅16:23)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 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벧전3:1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벧후2:9)
a. 음부(스올 또는 하데스).
(a) 불신자가 죽어서 가는 곳이다.
ⅰ. 스올은 구약에 60번 이상 나온다. 구약 헬라어 번역인 ‘70인 역’에는 스올을 하데스로 번역하고 있으며, 신약에서도 스올을 하데스로 번역한다.
ⅱ. 영어 성경에서는 스올과 하데스를 구덩이(pit) 지옥(hell) 무덤(glove)로 번역하였고, 한글 성경에서는 신구약 모두 음부로 번역한다.
(b) 악인들을 위한 형벌의 장소이다.
음부는 악인들을 위한 형벌의 장소임을 성경이 밝히고 있으며, 또한 최후의 심판 이전까지의 악인들의 영혼의 거처이다.
② 부활 이후.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2)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 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a. 지옥(게헨나).
(a) 최후의 심판 이후 불신자가 최종적으로 거하는 처소이다.
ⅰ. 게헨나라는 단어가 신약에서 12회 사용되었으며, 한글 성경에는 지옥으로 번역되었다. 영어성경에는 하데스와 게헨나를 모두 지옥(hell)으로 번역하였다.
ⅱ. ‘게헨나’는 ‘힌놈’의 땅이란 뜻이다. 예루살렘 서남쪽에 있는 ‘힌놈’과 그의 아들들에게 속했던 골짜기다(수15:8). 아주 아름다운 골짜기였으므로 산당이 들어섰으며, 우상에게 제사 드리는 곳으로 이용되었다.
ⅲ. 요시아 왕 때 이곳의 산당은 헐렸으며, 그 후부터 이곳은 예루살렘의 쓰레기를 태우는 곳이 되었다. 쓰레기를 태우는 불꽃과 연기가 항상 치솟아 올랐다고 한다.
(b) 하데스(음부)와 게헨나(지옥)의 차이점.
ⅰ. 외형상의 구별은 있으나 개념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둘 다 영원한 형벌의 장소를 의미한다.
ⅱ. 그러나 그 장소가 음부라고 불리는 때는 최후의 심판 이전까지의 불신자들의 영혼의 거처를 가리키는 말이며, 한편 지옥이라고 불리는 때는 심판 이후에 불신자들의 몸과 영혼이 함께 형벌 받는 처소를 가리킨다.
b. 지옥 형벌의 실상.
(a) 주님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곳이다.
“…성 밖에 있으리라”(계22:15)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1:7-9)
(b) 마귀와 그의 사자들이 함께 동거하는 곳이다.
“왼 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계20:10,15)
(c)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는 곳이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의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막9:43)
(d) 어두움ㆍ고뇌ㆍ절망ㆍ애곡ㆍ이를 갊이 있는 곳이다.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22:13)(유13)
(e) 죽지 아니하는 곳이다.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 하느니라”(막9:4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