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 시가 있는 논평 6, 12 일울산을 지나며
울산을 지나면 임진왜란 시기에 일본 군지 주둔하고 있던 지역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소임이라는 것은 역사를 바르게 고찰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해준 시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시평을 쓰러고 했다.
시를 창작하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소임이라는 것은 출가 수행자라고 해서 시를 창자하는 일에 소극적일 수 없다는 결사의 수행이기도 하다. 시를 창작하는 작업을 나에게 주어진 결사의 정진이라고 생각 한다.
그런데 울산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에게 있어서 울산은 아직도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는 듯이 보이는데 울산을 지키는 것은 호국불교의 정신을 바르게 실천해야 한다. 그 어떠한 것도 자기 자신을 버리고는 아니 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주어진 시를 창작하는 몸이 되어야 한다. 시를 창작하는 몸이라고 말이다. 서양의 시인중에서 괴테를 생각하라고 하지만 괴태는 8살 때 시를 창작했다고 한다. 열여덟살 때 회곡 여인의 변덕을 쓰고 23살 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
23세 파우스트 26세 회곡 스텔라 30 이피게니에 59파우스트 1부 나폴레옹과 두차례 회견 72세빌헬름 마이스터 편력 출간 80세 이탈리아 기행 82세 파우스트 2부 83세에 생애 마감.괴태의 시를 읽은다 괴테의 시는 울산을 지나며를 능가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울산을 지나며
울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날에는 일본군 진영
조선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저항했으니
피눈물로 태화강 물이 흘러내리던 날
산천도 울고 바다도 울고 울산은 울음의 도시
그래도 태어나는 아이들이 있을 것인데
울음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은 슬퍼할 것이냐
울음소리에 죽어간 이들을 위로할 것이냐
땅을 치며 통곡해도 울산은 피의 눈물
대나무처럼 살자고 맹서한 지조를 보이기도 했다.
저기 흐르는 물줄기를 지킨 백성들의 눈물이었다.
눈물을 닦는 손길이 떨리어 오고 있는 것은
아직도 그날에 아픔을 달래주지 않았음이다
대화강변에 서 있는 대나무를 바라보면
바람이 어디에서 온지 알 수 있겠네
일본군이 대나무 밭에 서서 가는 사람 오는 사람
심장을 오려내는 전과를 누리던 태화강가
밤이 깊으면 하늘로 올라간 별이 된다.
별아 눈물을 흘리지 말고 빚을 뿌려다오
태화강물에 온 몸을 씻고 또 씻으리라
진관 시인 2020년 9월 12일
출처: 불교평화연대 원문보기 글쓴이: 진관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