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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풍 감 상
손 수룡
시외를 벗어난 농촌길을 달리면 상괘하다. 옆에 누구라도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농장을 향하여 가는 승용차엔 혼자만의 시간이다. 음악에 맞추어 들어오는 시야는 앞만을 보고 있어야 하지만, 달리는 차량의 속도에 눈은 자연을 감상한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듯 종알 종알 대는 여인이 옆에 있다면 자연 감상은 더욱 좋겠지.
아침햇살이 동쪽에서 비추면 나무잎에 맺흰 이슬은 밤하늘의 별빛과도 같이 반짝인다. 바람이 불면 붉고 고운 나무잎의 움직임에 빛깔이 드러난다. 모습을 드러낸 나무잎은 단풍이다. 형형색색의 모습을 한 단풍, 한 세월을 살아온 마지막 모습으로 그림을 그려준다.
단풍의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하는 것은 느티나무다. 가로수로 길옆에 있으니 가을의 나무라 할만 하다. 단풍나무는 봄부터 빨간 노란 단풍으로 있었으니 아름다운 계절을 상징하는 가을의 단풍나무로 이름을 얻었다. 소녀가 소년에게 사랑을 전해준 노란잎의 은행나무, 산을 물드리는 참나무, 오월엔 꽃을 가을엔 단풍을 보여주는 벗나무 ,그래서 벗나무라 했던가?. 붉고 붉은 가죽나무, 가을의 채색에 벗어 날수 는 없다. 사시사철 푸르다고 말하는 소나무도 노란 단풍을 안고 있다.
직장생활로 인하여 20여년을 대구와 군위를 왕래하였다. 달리는 차창에 보이는 풍경을 좋아 한다. 봄이면 꽃이요,가을이면 단풍으로 아름다움을 주는 벗나무는 모든이의 사랑의 대상이다. 야생으로는 산에서 그림을 그리고 ,사계절의 가로수로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그래서 아름다운 나무로 벗나무를 으뜸으로 친다.
가을의 계절엔 태양이 넘어가는 석양을 보지않는다. 지평선에 걸려 있는 태양은 붉게 빛나고 애처롭다. 하늘도 구름도 붉게 물드리고 산도 강도 붉게 만든다. 주위의 나무도 물들어,석양의 서쪽하늘을 보고 있을 때면 가슴을 쥐어 짜는 듯한 매여옴을 느낀다. 석양의 마지막 빛일까? 황혼에 저항하는 태양의 빛일까? 그찬란한 석양의 빛을 볼 때면 가슴이 아픈 것을 어찌 할수가 없다.
단풍은 지난 과거을 한잎 한잎에 간직하고 나무줄기에 매달려 있다. 낙엽은 매달려 있지 못하고 떨 어져 아무곳이나 딩굴며 쓸려 간다. 떨어지면 낙엽이요 나무줄기에 매달려 있으면 단풍이다. 매달려 있는 한잎 단풍은 생명의 끈을 쥐고 살아가는 나와 같다. 바람에 팔랑이면도 떨어지지 않아야 낙엽으로 쓸려 가지 않는다.
아침 저녁의 변화와 비바람의 모진 구박에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임무를 다한 일생이다. 사계절의 요구에 의하여 결실을 맺어 주고 낙엽으로 돌아 간다. 이제 겨울의 휴식기를 가지려 한다.
농촌의 산간도로를 승용차로 달리면서 연도변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본다. 통근길에서 보는 산천의 변화, 자연이 사계절에 순응한다. 자연에 적응하며 살겠다하였으나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농장을 향하며 달리는 감상은 아름다운 단풍의 한잎으로 마지막에 떨어 지고 싶다. (2015. 10 . 19 .)
가 족 사 진 손 수룡 거실의자 뒤편에 대형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가슴에 녹조근정훈장을 단 모습의 우리부부가 있고, 소방관 정장의 아들 내외와 손자, 그리고 배가 불룩한 모습의 딸과 사위, 이렇게 일곱가족이 사진에 있다.
2013년 6월말로 정년 퇴직하면서 40년을 근무한 직장을 떠났다. 정부로 부터 녹조근정훈장은 받았다. 남매의 혼사도 마무리 됨으로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 갔다. 아웅다웅하면서 함께한 가정의 울타리가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그 빈곳을 지키는 실업자의 신세로 그래도 내가족이라도 영역의 범위안 두고 싶었다.
녹조근정훈장은 젊음과 청춘을 다하여 보낸 40년의 세월을 집약하고 있다. 집안 어디엔가 두어야 하는데 둘곳이 없다. 농짝 밑에 두어봐야 누가 알아 주겠는가? 매일 달고 다닐수도 없는 일. 훈장을 달고 오라는 곳도 갈곳도 없다. 훈장을 가슴에 달고 있는 모습의 가족사진이 거실에 있다면 위로를 받을 것 같았다.
사진관 몇 곳에 알아본 결과 대형사진 1매의 가격이 1백만원 정도라 한다. 내 예상은 20만원 정도 였는데 ,예상과 엄청난 차이가 난다. 그러나 사진은 필요했다. 아이들 돍사진도 2~3백만원한다 던데....... . 또 2~30만원도 찍을수 있단다.
사촌동서가 운영하는 일마레 스튜디오에 갔다. 상상을 초월하는 공간에 직원도 11명이나 되는 큰 규모였다. 부족한 의상도 보완할수 있도록 갖추어져 있었다. 아기들 돍과 백일사진 작업으로 조용하면서도 붑비는 스튜디오였다. 65만원에 계약을 하고, 날자도 우리가족이 쉽게 올수 있는 날로 잡았다.
예정된 날 분위기에 맞은 복장으로 모였다. 여름날씨의 더위에 맞은 복장은 모두에게 부담감을 주었다. 정장에 훈장을 준비하였고, 소방관인 아들도 소방관정장을 가져왔다. 촬영에 들어 가기전에 긴장을 풀어야 했다. 스튜디오를 구경하면서 커피를 마셔가면서 1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후 촬영에 들어 갔다.
사람 배치가 몇번이나 이루어지고, 자세와 표정이 조정되었다. 이순간만은 나도 연기자였다. 마음 속으로는 모두의 표정이 좋게 나와야 사진을 걸어 놓고 만족할터인데 하는 심정이었다. 연기자가 된 기분에서 어떻게 촬영되었는지?, 시키는 데로 맡겨진 상태로 시간이 지나니 끝이 났다. 흥분과 긴장으로 몰고간 사진찰영은 몇번의 카메라 셔터로 끝이 났다. 한장의 사진 선택은 몇번의 셔터속에서 감추어 졌다.
2개월후 사진은 거실에 걸였다. 동양화 액자가 철거되고 ,가훈도 물러났다. 그 공간을 차지한 액자가 새로운 가족으로 찾아 왔다. 거실의자에서 T.V를 보고 있노라면 등 뒤에서 내가족이 늘 함께 있는것 같았다. 옷장 바닥에 숨어 있는 훈장도 사진 속에서 빛를 발했다.
외손녀가 말을 배울 때, 몇 개월간 함께 했었다. 엄마 아빠을 외치며, 할비 할미 할때는 사진을 가리키며 사람을 익혔다. 사람이 옆에 있을 때는 웃음을 띠고 재롱를 피우며 접근하였다. 없을 땐 쪼르륵 사진을 가르킨다. 외손녀의 성장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할아버지 할머니 라 부르더니, "유현이는?" 한다. 유현이는 엄마의 배속에 숨어 있었다.
그해 여름 우리가족은 더위를 무릅쓰고 가족사진을 완성했다. 각자의 현실을 반영하여 최선을 다였다. 그 시대에 맞추어 퇴직도 기념하면서 훈장도 빛냈다. 가족의 사진으로 거실을 차지하여 위로도 받았다. 시간의 흐름에 외손녀가 태어나니,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 얼굴이 있었다. 언젠가 액자를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는 세월이 야속하다.그러나 새로운 변화의 때를 점쳐 보는 희망은 크다. (2015.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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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엇습니다~~!
한국전쟁이야기와 단풍 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글을 읽어면서 그 옛날 전쟁 후로 돌아도 가보고 낙엽이 휘날리는 시골 가로수 길로 걸어도 보았습니다.
퇴직한 인생의 황혼의 접어든 사진도 상상해 보았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