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만원 짜리 돈 봉투
14살, 여중 입학하던 날 만났으니 친구하고 나의 세월은 반
백 년이 되였다. 내가 내 부모님하고 지낸 시간보다도, 내
딸하고 함께 한 시간보다도 오랜 세월을 함께 했으니 어찌 귀한 인연이 아니겠는가?
그런 친구가 집 앞 자동차 방지 턱에 걸려 넘어져 엉덩이
뼈가 부서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당장 뛰여 가고 싶었지만 수술을 하고는 몇 일 동안은
중환자 실에 있어야 하니까 병실로 옮긴 후에 가는 것이 좋다고 하여 10여 일을 참았다가 갔다.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서 갔지만 병원은 찾기가 쉬워 고생은 하지 않았다. 병문안을
가면서 빈손으로 가기도 그렇고 꽃을 들고 가는 것도 촌스럽다는 생각이라 메이커 케잌과 얇은 돈봉투를 준비했다.
요즘은 아기 돌집이나 집들이를 갈 때에도 봉투를 준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여 옛날처럼 아기 내복이나 옷 한 벌을 들고 갔다가는 무안해 지기도 한다. 결혼식에 갈 때는 당연히 돈봉투 없이는 밥도 얻어먹지 못하는 현실이
되였으니 사람을 탓해야 하는지 매정한 세월을 원망해야 할 런지 씁쓸하다.
요즘은 봉투 속의 금액이 정해져 있는데 , 그저 그런 관계는 5 만원, 좀
가까운 관계는 10 만원, 특별한 관계는 20만원, 많이 특별하면 30만원
이라고 한다. 나는 아직 한번도
받아 본 일이 없어서 나에게 누가 특별한지 그저 그런 사람인지는 모르겠는데 받아 보고, 줘 본 사람들이
하는 말을 종합해 봤을 뿐이다. 사실 50년 지기 친구라면 많이 특별한 관계겠지만, 친구는 집도 두 채나
있는 부자이고 병원비 정도는 은행에 보통예금이 된 형편이라 그냥 흉내만 낸다는 생각으로 오 만원 짜리 봉투를 마련했던 것이다.
만약 친구 형편이 어려웠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병원비에
보탬을 주려고 하였겠지만 준비해갔던
오 만원 짜리 봉투를 그냥 가지고 돌아와 버렸다
병실에 들어가니 방문객이 있었는데 친구의 시누와 동서라고
했다. 가벼운 인사를 나눈 후 그들은 봉투 두 개를 친구에게 주고 돌아 갔다. 친구와
둘이 남아 걱정 담긴 대화를 시작하려는데 친구는 남겨 놓고 간 돈 봉투에 관심을 모았다. 손님 배웅을
하고 돌아온 남편을 부르며 봉투 속의 돈이 적다며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봉투 속에서 나온 돈은 오
만원 씩 이였으니 두 개 합해서 10만원 이였는데 생각보다 적은 금액에 화가 난 것 같았다. 내가
50년 친구라서 감출 것이 없는 사이라고는 하지만 친구의 행동에 보고 있던 나는 많이 민망해졌다.
나는 그 상황에 멀쑥해져서 내 주머니 속의 오 만원 짜리
봉투를 생각하고 있었다.
학창시절이나 젊었을 때의 친구는 우리들 에게 밥 한번
사는 일은 없었지만 남에게 이유 없이 사 달라고도 하지 않는 사람 이였다. 우리는 다섯 명이 단짝 이였는데
버스를 타도 자기 차비만 내던 친구 였지만 성격이 그런 것을 알기에 미워하거나 탓하지는 않았었다.
그랬는데 언제인가 부터 친구 행동이 좋지 않게 변했다.
친구는 전화로 영업을 하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위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었다. 그것도 밥해먹을 쌀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고 자신의 곳간을
채우기 위해서 였다.
그런 친구였지만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도 할 수 없었다. 나에게도 대출이라도
받아서 투자 하라고 몃 번이나 말했지만 그것은 거절했다. 투자를 하지 않아서 돈을 벌지 못 하는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친구 사이에 다투기 싫어서 바보인척 했더니 이제는 투자하라는 말은 하지 않고 내 주위에 돈 있는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졸라서 속이
많이 상했다.
순수하고 착했던 친구가 욕심 많은 사람이 된 것을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
남에 것에는 욕심 한번 부릴 줄 모르던 내 친구의 옛날이
그립다. 오 만원 짜리 돈 봉투를 주고 간 친구의 동서와 시누이의 험담만 듣다가 병실에 함께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워 , 심심 할 때 먹으라며 케잌을 머릿장 위에 옮겨줬다. 친구는 평소에
빵을 좋아하는데 메이커 빵은 비싸서 사지 않고 시장에서 파는 싼 빵을 사 먹기에 특별히 비싼 빵을 사 가지고 갔던 것인데 친구는 달랑 빵만 내미는
내가 서운했는지 소화가 안 되서 안 먹겠다고 했다. 엉덩이 수술했으니 먹는 것하고는 상관 없는데 뭐가 잘못된 것일까?
50년 지기이니까 50만원 짜리 봉투를 내 놨어야 했을까?
집에 돌아 와 주머니에서 꺼내 놓은 오 만원 짜리 봉투를
뚫어져라 보다가 창문에 부딪치는 빗물처럼 서러워졌다.
첫댓글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과는
관계정리를 히는게 좋을 것 같아요.
오래 사귀었다 해서 친한건 아니라고
봐요.
제 생각엔 병문안 와준 것에 감사하는
그런 친구가 진실한 친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