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하는 그녀 / 이정화
나는 해양경찰이라는 직업과는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바느질이라는 취미가 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손바느질이 아니라 미싱(Mishin, 재봉틀)으로 하는 바느질이다. 요즘은 소잉(Sewing)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소잉 문화가 대중화되어 도처에 소잉 공방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내가 소잉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셋째를 낳고 나서부터다. 첫째와 둘째를 키울 때는 직장 생활과 육아, 가사를 병행하다 보니 취미 생활이라는 호사스런 꿈은 감히 꾸지도 못했다. 셋째를 낳고 육아 휴직을 하면서 우연히 인터넷 블로그(Blog)와 유튜브(YouTube)에서 아이들 옷과 각종 소품을 엄마가 직접 만드는 것을 보고 나도 한 번 따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등바등 사느라 언니와 오빠는 아기때 예쁜 것도 제대로 만끽 못하고 시간이 지났는데 이젠 여유가 생겨서인지 셋째는 유독 예뻤다. 주변 엄마들이 골병들까봐 제발 아기 좀 눕히라고 할 정도로 잠시도 품에서 내려 놓질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예쁜 셋째를 위해 뭔가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맨 처음 시도한 것이 아기용 신발이었다. 블로그에 나와 있는 데로 손바느질로 신발을 만들었는데 예상보다 결과물이 예뻤다. 손바느질로 만든 것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기성 제품을 산 것이라고 믿을 정도였다. 기분이 좋아 신발을 만든 원단으로 망토도 만들어 보았다. 웬걸 망토도 너무 호응이 좋았다. 망토를 걸치고 신발을 신겨 밖에 나가면 어디서 샀냐는 질문도 종종 받았다. 밤새워 손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정성을 기울여 우리 아이에게 뭔가를 만들어 줄 수 있다라는 뿌듯함과 성취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신발과 망토를 만들고 나서 자신감이 넘쳐 덜컥 미싱을 샀다. 미싱으로 드르륵 뚝딱 박으면 밤새도록 손바느질 하지 않고 빠르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 당시 미싱 다룰 줄도 몰랐고, 내가 살던 완도에는 미싱 공방도 없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그냥 블로그와 유트브 보면서 배우면 되겠지 하고 무작정 샀는데 막상 미싱이 눈 앞에 턱 하니 있는데 실 끼우는 법도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오지만 그런 무대포 추진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특기를 가지게 된 것 같다. 미싱 사용설명서를 수십 번도 넘게 보고 또 보면서 점점 조작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미싱에 실을 끼우고 직선박기 만으로 아이들 내복과 원피스를 여러 벌 만들었다. 다행히 엄마표 옷을 아이들도 잘 입어 주었다. 옷 몇 벌 만든 것 뿐인데 내가 생각한 디자인대로 자유자재로 뭔가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한편으로는 기왕 시작한 취미를 제대로 배워 보고 싶었다. 그래서 완도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에 미싱 공방을 검색해 보니 목포에 마침 내가 원하는 소잉 공방이 있었다.
완도에서 목포까지 한 시간을 달려 찾아간 소잉 공방에서 첫 수업을 받고 너무나 황당했다. 나름 독학으로 옷 몇 벌 만들어 본 경험이 있었던 터라 쉽게 접근할 줄 알았는데 미싱 조작법도 바느질법도 너무나 생소하였고, 옷을 만들 때 제일 먼저 패턴 뜨는 단계가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소잉 공방을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3교대 근무를 하면서 비번인 날에는 항상 목포로 달려갔다. 소잉 공방에서 배우는 수업이 너무나 즐거웠고, 소잉 실력이 점점 나아지는 것을 느끼고 배우면 배울수록 더 배우고 싶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꾸준히 도전하고 결과물을 보며 성취감도 상당했다. 초급, 중급, 고급과정을 수료하고 드디어 올해 6월에는 사단법인 한국머신소잉협회(Korea Machine Sewing Assiciation, KMSA)에서 주최하는 소잉 마이스터(Sewing Meister) 전문강사 인증 자격증까지 취득 하였다. 소잉 공방 대리점도 운영할 수 있고 강사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증이다.
이제는 아이들 옷은 물론, 예쁜 린넨원단으로 원피스도 만들어 멋을 내고, 계절마다 코트도 만들어 입고 다닌다. 가끔 귀염둥이 셋째와 셋트로 원피스를 맞춰 입기도 한다. 첫째와 둘째와는 달리 엄마표 옷이 최고라며 너무 좋아해 주는 셋째가 고맙기도 하다. 몇 년 후면 이녀석도 안입는 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일하면서 전투적으로 취미생활을 한 지난 몇 년의 세월 덕분에 지금은 여유있는 바느질을 하고 있다. 취미로 시작한 소잉이 어느덧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냥 취미로 편하게 즐기면 될 것을 억척같이 자격증까지 도전하며 참 힘든 나날을 보낸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난다. 늦은 새벽까지 자격증 준비한다고 졸업 작품 만들면서 거실에서 드르륵 드르륵 미싱을 돌리던 나에게 “피곤한데 일찍 자지 고생을 사서 한다”며 핀잔을 주었던 남편에게 씨익 웃으며 “미안해 시끄럽게 해서, 근데 내가 좋아서 하는거라 피곤하지 않아 자기가 이해해 줘”하고 웃었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요즘은 잔소리를 하지 않는 남편을 보니 이제 포기를 한 듯하다. 남편의 잔소리가 듣기 싫지 않은 것은 혹여나 내가 일하면서 몸에 무리가 올까 봐 걱정을 하는 소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요즘은 지인들에게 가방과 각종 소품을 만들어 선물을 하곤 한다. 받는 사람의 즐거운 표정을 보면 내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그런 특기가 있는 내 자신이 뿌듯해진다. 고가의 명품 가방보다 내가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바느질로 만든 가방이라 더 소중하고 가치있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바느질을 한다. 퇴직 후 언젠가는 책이 있고 음악이 흐르고 커피향이 가득한 복합 미싱 공방을 차리고 싶은 꿈도 조심히 꿔 본다. 같은 취미와 감성을 지닌 사람이면 누구나 함께 바느질을 하며 소통할 수 있는 그런 멋진 공간 말이다. 먼 훗날 그곳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금쪽 같은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선물할 예쁜 모자와 가방, 옷가지를 만들며 바느질하는 나의 모습을 가만히 눈을 감고 그려 본다. 상상만 해도 너무 행복한 그림이다. 커피향과 음악에 취해 나지막히 콧노래를 부르며 바느질하는 그녀. 이보다 더 멋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