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좋아서 / 조미숙
난 유아 숲 지도사다. 산림 교육 전문가라고도 한다. 노동부 일자리창출 사업으로 진행된 생태해설가 과정(197시간)을 민간 연구소에서 수료하고 숲과 인연을 맺었다. 그때는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다. 핑계 같지만 세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고 공부하기란 쉽지 않았다. 수업 시간이 주로 저녁이나 주말이어서 더 그랬다. 그래도 어릴 때 자연에서 뛰어논 덕인지 눈에 익은 식물들도 많았고 감으로 알아내기도 쉬었다. 아쉽게도 그 연구소 소장은 입으로만 장밋빛 미래를 그리기에 바빴다. 아주 가끔이나마 일감을 알선 해 주긴 했지만 연구소 일에 시간이 없어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나에게는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결국 그 연구소는 교육생을 2기까지 배출하고 문을 닫았다.
어찌됐건 그 수료증 덕분에 공공근로 자격이긴 하지만 시청에서 유아 숲 체험 지도사 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수료증으로 견디려고 했다. 어차피 공공근로이고 또 산림청 국가 자격을 따려면 광주까지 다니면서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 나에겐 벅찼기에 그랬다. 그렇지만 주변에서 하나 둘 자격증을 땄고 앞으로 계속 이 일을 하자면 아무래도 국가자격증이 있어야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숲 해설가와 유아 숲 지도사 둘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가 고민이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생각하면 유아숲지도사 자격증을 따야 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이기도 했고 쓰임새도 광범위한 숲 해설가가 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한 게 결국은 유아 숲 지도사까지 땄다.
왜 산림청은 자격증을 이렇게 세분화했는지 모르겠다. 이게 전문성을 키우는 일인지 알 수는 없지만 끝없이 비슷비슷한 것을 만들어 공부하게 하는 게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환경부에서는 자연 생태 해설사가 있어 생태나 경관이 우수한 지역이나 국립공원에서 일한다. 비슷한 일을 하는데도 숲 해설가는 갈 수 없다. 숲 해설가 공부는 숲만 아니라 수서 생물까지 전반적인 생태계를 아우르는데도 이래저래 분리해 놓는다. 자격증 하나를 따려면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한데 어쩔 수 없이 숲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은 기본이 3~4개의 자격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자격으로 일하게 될지 알 수 없기도 했고 또 그래야 경쟁력도 있어 업체에서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몇 년을 시청에서 기간제로 일하다 산림교육 전문 위탁업체로 자리를 옮겼다. 언제까지 시청에서 아이들과 함께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나름 미래를 대비해 전문성을 갖추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일자리를 얻었지만 코로나까지 겹쳐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시청에서는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과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그 운영안대로 수업만 하면 되었기에 크게 공부할 일도 없었고 편했다. 그렇지만 이직한 회사에서는 너무 많은 일들을 시켰다. 기본적으로 내 실력을 형편없이 봤다. 유아숲지도사들은 식물을 잘 알지 못한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사실 아이들에게 나무나 꽃 이름을 알려주거나 전문적인 생태적 지식을 가르치거나 할 필요는 없었기에 공부를 게을리 하기는 했다.
산에 가서 식물을 공부하는 일들은 마냥 즐거웠지만 끝없이 평가하려고 드는 질문이라든가 무시하는 말투가 정말 싫었다. 개인적 역량을 키우는 일은 좋은데 말끝마다 공부하라고 해 기분이 나빴다. 거기에다 새로운 업무 내용이라든가 컴퓨터로 하는 서류 작업만으로도 익숙지 않아서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는데 내 힘으로는 벅찼다. 젊은 대표는 끝없이 일감을 만들어 무조건 따라오게끔 했다. 마음 편히 자유롭게 일하자고 해놓고 너무 많은 규율을 내세우며 간섭했다. 대표라는 직책을 내가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여러모로 생각이 달라 애를 먹었다. 다른 지자체에서 일하는 직원들과는 이 업체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들과 끝없이 비교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나를 키우는 일이라고 스스로 다독인다.
숲해설이 단순히 식물 이름을 알려주는 직업은 아니기에 여기에 인문학적 소양이 있어야만 나름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 대상자들에게 만족을 주려면 그 사람들의 특성이나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물론 식물의 이름을 아는 일은 숲해설의 기초이긴 하다. 비슷비슷한 생김새의 같은 집안의 아이들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또 무엇이든 듣는 순간부터 잊어버리는 나이에 몇 번을 외워도 소용이 없고 설령 이름을 안다고 해도 입에서만 맴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힘에 부치기도 하다. 끝없이 도감을 들여다보고 눈으로 익혀야 한다. 책도 소설에서부터 식물학까지 광범위하게 읽어야 한다. 끝없이 공부해서 박학다식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들에 비해 하루 일당은 7만 원이 고작이다. 세금 제하고 나면 실 급여액은 150여 만 원이 된다. 또 매년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내일이 없는 직업이다.
끝없이 공부하고 어떤 환경에서 누구와 일할지 장담할 수 없는 직업이긴 하지만 숲에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는 즐겁고 행복하다. 비록 전문성을 요하는 용어들은 이해가 안 돼 골치가 아프기도 하지만 알아가는 기쁨이 크다. 우리끼리 ‘학교 다닐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에 갔겠다’고 자조하기도 한다. 그래도 가끔 작고 예쁜 꽃 한 송이 발견하는 기쁨과 푸르른 잎사귀 사이로 비치는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는 그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 더 없이 좋은 직업이다. 이 직업이 아니었으면 식물의 신비나 위대함을 평생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사람들은 일하면서 건강도 챙겨 좋겠다고 한다.
휴양림이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유아 숲 체험원 등은 대부분 사무실이 있어 일정 시간에 출퇴근을 하거나 수업이 없거나 비가 올 때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몇몇은 나처럼 있을 곳이 없다. 수업 장소에 가서 대기하다가 유아들이 오면 수업을 하면 된다. 가끔은 이게 뭔가 싶다가도 어느 곳,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로워 좋기도 하다. 작년까지 6명이 한곳에 모여 일했는데 올해는 혼자가 되다 보니 의지할 사람이 없어 외롭기도 했다.
숲 해설가나 유아 숲 지도사로서 교육관과 교육 방법은 나름 기준이 있어야 한다. 누가 옳고 그르다고 비교 평가할 수 없는데도 많은 사람들은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다. 난 숲에서 자연과 교감하고 느끼고 체험하는 활동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늘을 쳐다보고 바람소리를 들어 보는 일 같은 숲에서 할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어떤 결과물이나 보이는 것들이 중요한 지자체나 원들의 입맛에도 맞춰야 하기에 늘 고민이 된다. 그래도 난 아이들이 숲에서 산책만 하다 가더라도 좋다고 여기며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얼른 코로나가 잠잠해져 예전처럼 아이들과 숲에서 신나게 놀고 싶다.
주말에 또 시작한 산림치유 공부를 하고 왔다. 인체생리학이라는 과목을 하루 종일 졸음과 싸워가며 들었다. 담당 교수는 천차만별인 수강생들을 위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고 나름 열심인데 말이 너무 빨라 듣는 내내 내가 더 숨이 가빴다. 생물을 전공한 동료가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거나 더 전문적인 내용도 있다는데 도통 처음 듣는 말들이었다. 비록 간절한 바람으로 시작한 공부는 아니지만 이왕 발을 내디딘 숲 일을 멋지게 하려고 나를 다그친다. 숲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 판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