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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장례식장에서인가 유난히 맛있는 홍어무침을 먹은 적이 있다. 젓가락이 겨우 닿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어서 겨우겨우 집어다 먹고는 있었지만 옆손님도 있고 해서 계속 그리로 팔을 뻗는 것이 민망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가까이 있는 다른 반찬들을 먹다가 조금 시간을 두고 나서야 그쪽으로 다시 젓가락을 내밀었다. 그런데 조준을 잘못해서인지 김치만 한 무더기가 올라왔다. 아쉬웠지만 다시 다른 반찬들을 먹다가 또 다시 시간을 두고 그 쪽을 조준했다. 이번엔 반찬으로 먹기도 힘든 오렌지가 올라왔다.
장례식장에서 이 음식 저 음식 가려가면서 물어보는 것도 조금 그렇고 해서 더 묻지도 않고 먹다 보니 결국 첫 번째 젓가락질에 걸렸던 홍어무침은 한 젓가락도 더 먹지를 못하였다. 뒤늦게 안 일이지만 내 앞에 게셨던 어느 친절한 분께서 홍어무침을 너무 맛나게 먹는 내 모습을 보고 반찬그릇을 내 앞으로 바꾸어놓으셨었단다. 그 다음엔 김치를 한 무더기 집어가니까 김치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다시 반찬그릇을 옮기시고 내가 무언가 먹을 때마다 매번 반찬그릇의 위치가 바뀌었던 것이었다.
사실 그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낯선 사람들과 고깃집에 가면 구운고기를 양파더미 위에 올려주고는 하시는데 고기를 잘 찾지 못해서 양파만 열심히도 먹다 보면 어느 순간 당황스럽게도 양파를 한 무더기 리필해 주시고는 한다. 양파부터 다 해치우고 고기를 찾으려고 했던 것이 양파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였던가 보다. 그런 분들의 대부분은 교회를 열심히도 다니시는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셔서 누가 언제 그랬는지도 모르고 당할 수밖에는 없다.
어릴 적 부모님께서는 비싸고 멋진 장난감을 많이도 사 주셨다. 다른 집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문학서적이나 어학교재들도 우리집 책꽂이에는 칸이 못자랄 정도로 꽂혀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실 그것들은 내가 간절히 원했던 것들과는 그다지 관련 없었던 적이 많다. 동네의 조그만 문방구에서나 파는 싸구려 조립식 장난감에 눈이 돌아가는 나에게 어머니께서는 "집에 좋은 장난감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걸 또 사니?"라고 하셨지만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진정 필요했던 건 그런 것들이었다.
수두룩하게 꽂혀있던 서적들도 나와의 맞지 않는 궁합 때문에 내게 독서도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라는 훈장만을 남겨주었다. 물론 나름의 작은 생각으로 '효도'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나의 행동들도 부모님께서 원하시는 것과는 방향이나 모양이 많이 다를 것이다.
한 시각장애인 친구는 시련의 아픔을 달래고자 지팡이를 짚고 추적추적 비를 맞으면서 걷고 있는데 속 모르는 누군가가 어느 때부턴가 우산을 씌워주면서 따라오더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눈물이라도 펑펑 쏟으면서 슬픈 감정을 토하고 싶던 그 친구는 괜찮다는 이야기를 되풀이했지만 친절고집을 부리던 그 분도 끝내 우산을 거두지 않으셨다고 한다.
맘에 드는 이성을 만났을 때 혹은 사랑하는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입이 닳도록 묻고 또 확인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도움을 주고 싶은 대상이 나보다 어리거나 약한 상대라고 느끼는 순간 그것의 모양은 내 고집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이들의 소박한 꿈들도 부모님의 욕심 속에 묻히고 어느 장애인의 일상은 나쁜 친절들 속에 큰 상처로 남겨질 수도 있다.
사람은 하나하나가 소중히 창조된 소우주라고 한다. 어떤 누구의 세상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맘대로 판단되어지거나 움직여져서는 안된다. 그것이 설령 호의에서 출발한 진심 어린 희생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겐 받아들이기 싫은 폭력일 수도 있다. 진정 함께 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언어로부터 생각할 때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무리 작은 상대라도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상대라도 존중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라고 확신한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 그것은 의외로 거만한 생각일 수도 있다. 홍어무침과 고기 몇 점, 나에게 그것은 작지만 소중한 욕구이자 권리였다.
한빛맹학교 수학교사, 안승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