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중간사 400년의 도표
1. 처음에 로마는 지중해 동쪽에는 깊은 관심을 갖지 않았으나, 제2차 포에니 전쟁(218∼201 BC) 당시 동쪽의 마케도니아왕 필립(Philip) 5세가 그리스의 세력을 규합하여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과 동맹을 맺고 로마에 대항하였는데, 이것이 제 1차 마케도니아 전쟁(215∼205 BC)이다. 이에 로마는 어쩔 수 없이 지중해 동부의 사태에 개입하게 되었다. 2. 그후 마케도니아의 필립 5세는 소아시아에 자리잡은 셀루쿠스 왕조인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3세(Antiochus Ⅲ)와 동맹을 맺고, 남쪽의 프톨레미 왕조가 다스리는 이집트와 전쟁을 일으키고, 소아시아의 로마 맹방(盟邦)인 버가모 왕국 등을 위협하자, 로마는 다시 제 2차 마케도니아 전쟁(200∼197 BC)을 일으켜, 키노스케팔라 전투에서 마케도니아를 패배시키고 그 세력을 꺾었다. 3. 그러나 필립 5세의 아들인 페르세우스(Perseus)는 또 다시 그리스까지 다스리려고 하자, 로마는 동맹국인 버가모 왕국의 요청에 따라, 로마의 용장(勇將) 파울루스(Paullus)를 출병(出兵)시켜 피드나(Pydna) 전투에서 대승하였는데, 이것이 제 3차 마케도니아 전쟁(171∼168 BC)이다. 이로서 알렉산더 대왕의 고국인 마케도니아 왕조의 공식적인 명맥이 기원전 168년에 끝나고 바야흐로 로마제국은 서 지중해에서와 마찬가지로 동 지중해의 여왕으로 발판을 굳히게 되었다. 헬레니즘 시대(333-63년) | (기원전) | 332년: 알렉산드로스 군대가 팔레스티 나 정복. | 323년: 알렉산드로스가 바빌론에서 병사하자 휘하 장수 들이 제국을 분할 통치, 이후 이집트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시리아와 바빌론은 셀레우코스 왕조가 다스림 | | | 이집트 | 시리아 | 연 대 | 유다 |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323-282년). |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311-281년). | | 320-200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팔 레스티나 통치. |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282-246년). | 안티오코스 1세 소테르(281-261년). | 300 | | | 안티오코스 2세 테오스(261-246년). | 250 | 알렉산드리아에서 토라가 그리스 말로 번역(‘오경’). | 프톨레마이오스 3세 에우에르게테스(246-222년). | 셀레우코스 2세 칼리니코스(246-225년). | | | 프톨레마이오스 4세 필로파토르(222-205년). | 안티오코스 3세 대제 (223-187년). | | | [218-210년: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인들이 한니발을 제압하고 에스파냐와 지중해 섬들 차지] | | | 프톨레마이오스 5세 에피파네스(204-180년). | 200년: 안티오코스 3세가 파 네이온에서 프톨레마이 오스 5세의 장군 스코파 스룰 패퇴시킴. | 200 | 200-142년: 셀레우코스 왕조가 팔레스 티나 통치. | 프톨레마이오스 6세 필로메나토르(180-145년). |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187-175년). | | 유다인들과 셀레우코스 왕조의 통치자 들 사이에 갈등 시작. 예루살렘의 수석 사제들 사이의 알력. | |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175-164년), 이집트 원정. | | 167년: 유다교의 경신례를 금하는 법령, 안티오코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을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에게 헌정, 사제 마타티아스의 주도로 유다인들 이 항전 전개(마타티아스의 조상 가 운데 한 사람이 하스몬이라 불림). | | | | 166년: 마카베오라 불리는 마타티아스 의 아들 유다가 항전 계승 (166-160년). | | 안티오코스 5세 에우파토르(164-162년). | | 164년: 성전을 되찾고 정화(성전봉헌 축 제 거행).‘다니엘서’ | | 데메트리오스 1세 소테르(162-150년). | | 셀레우코스 왕조에 대한 항전 계속, 시 리아 장수 니카노르 무찌름(‘니카노 르의 날’ 축제 거행). | | | | 160년: 유다 마카베오 죽음. | [150-146년: 제3차 포에니 전쟁으로 카르타고가 로마인들에게 멸망하고, 그리스는 로마 제국의 속주로 전락] | 150 | | | 알렉산드로스 발라스 (150-145년). | | 160-143년: 유다의 막내 형제 요나탄 (152년에 대사제로 임명)이 항전 계 승, 주변을 정복하여 유다인들의 영토 확장. | 프톨레마이오스 7세 피스콘(145-116년) | 데메트리오스 2세 (145-138년). | | 143-134년: 요나탄의 둘째 형 시몬이 항전 계승(142년에 대사제 겸 총독으 로 임명). | | 안티오코스 6세 (145-142년). 트리폰(142-138년). | | | | 안티오코스 7세 시데테스(138-129년). | | 142-63년: 유다 독립 쟁취(하스몬 왕 조). | | | | 시몬의 아들 요한 히르카노스(134-104 년), 사마리아 성전 파괴. | | 왕국이 쇠퇴하여 무정부 상 태. | | 요한 히르카노스의 아들 아리스토불로 스 1세(104-103년)가 왕이라는 칭호 사용. | | | | 아리스토불로스 1세의 동생 알렉산드로 스 얀내오스(103-76년). | | | 100 | 알렉산드로스의 아내 알렉산드라(76-67 년) | | | | 알렉산드라의 아들 히르카노스 2세와 아리스토불로스 2세가 왕직과 대사 제직을 놓고 다툼. | | 64년: 로마제국의 장수 폼페 이우스가 안티오키아에서 시리아를 로마제국의 속 주로 병합. | | 63년: 로마제국의 장수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 점령. |
연대(BC) | 유 대 사 | 세 계 사 | 424-331년
359-323년 338-323년
323-277년
198년
167-165년
| 구약 마지막 예언자. 말라기 페르시아 총독 지배하의 팔레스타인 소관구 팔레스타인은 다메섹 또는 사마리아에 수도를 둔 페르시아 제5관구 지경 내에 있었다.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대군주 치세하에 비교적 평화와 번영을 누렸다. 유대인들은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위협과 페르시아 대군주에 대한 충절로 분열되었다. '알렉산더'는 수리아를 점령하고 팔레스타인, 두로(BC 332년), 가사를 침공하였다. 유대인은 알렉산더 대왕에게 항복하여 환대를 받았다. 알렉산더는 애굽을 점령하였다(BC 332년). 알렉산드리아가 건설되었다. 알렉산더의 정복으로 그리스 언어.문화.철학이 유포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 통치하의 팔레스타인 (BC 323-198년)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유대인들에게 우호적이었고 알렉산드리아 도처에 안주시켰으며, 경제.문화의 수준을 고양시켰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유대인들에게 우호적이었다. 구약의 헬라어 번역Septuagint.. 70인역)작업이 시작되었다.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알렉산드리아 유대인들은 계속 헬라화 되어갔고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은 엄격한 전통주의를 고수했다. 셀류코스 통치하의 팔레스타인 (BC 198-165년) 대왕 '안티오쿠스 3세'는 팔레스타인에서 애굽인을 추방시켜 이를 셀류코스제국에 병합하였다. 집회서가 기록되었다(BC 180년경). 유대인들의 헬레니즘화가 강요되었다. '안티오쿠스 4세'는 예루살렘을 약탈하여 성전을 더럽혔으며 번제단 위에 올림피아 제우스의 제물을 바쳤다. 마카베오 반란이 노제사장 마따디아와 그의 다섯 아들에 의해 일어났다. | 페르시아제국 크세르크세스 2세(BC 424-423년) 다리우스 2세(BC 423-404년) 아닥사스다 2세(BC 404-358년) 아닥사스다 3세(BC 358-338년) 아르세스(BC 338-336년) 다리우스 3세(BC 336-331년) 마케도니아제국 필립(BC 359-336년)이 그리스 도시국가의 지배권을 획득하였다. 캐로네아(BC 338년)의 승리. 그리스의 도시국가 세력이 파괴되었다. 알렉산더 대왕(BC 336-323년)은 3차에 걸친 결정적인 전쟁, 즉 그라니코스(BC 334년), 잇소스(BC 333년), 가우가멜라(BC 331년) 전투를 통하여 페르시아제국을 점령하였다. 영토는 인도까지 이르렀다(BC 327년). 바벨론에서 죽었다(BC 323년) 알렉산더 휘하의 장군들은 권력다툼을 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와 셀류코스제국 | 프톨레마이오스 1세 (BC 323-285년) 프톨레마이오스 2세 (BC 285-246년) 프톨레마이오스 3세 (BC 246-221년)
프톨레마이오스 4세 (BC 221-203년) 프톨레마이오스 5세 (BC 203-181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애굽이 로마제국의 한 지방으로 편입(BC 30년)되기까지 로마 지배하에서 명맥을 유지했다. | 셀류코스 1세 (BC 312-280년) 안티오쿠스 1세 (BC 280-262년) 안티오쿠스 2세 (BC 261-246년) 셀류코스 2세 (BC 246-226년) 셀류코스 3세 (BC 226-223년) 안티오쿠스 3세 (BC 223-187년) 셀류코스 4세 (BC 187-175년)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 (BC 175-163년) 안티오쿠스 5세 (BC 163-162년) 데메트리우스 1세 (BC 162-150년) | 166-134년
134-104년
104-69년
63년
62-41년
40-4년 | 하스모네가 통치하의 팔레스타인 (BC 166-163년) '유다'(BC 166-160년)는 수리아 군대를 격퇴시킴으로 성전을 정결케 하여 재봉헌하였다(BC 166, 165년). '요나단'(BC 160-142년)은 외교적 군사적인 면에서 유대 독립을 위한 장족의 진보를 가져왔다. '시몬'(BC 142-134년)은 유대 독립(BC 142-63년)시대의 서장을 열었다. 예루살렘에서 수리아 주둔군을 축출시켰고 게셀과 욥바 지역을 점령하였다. 마카베오상서.토비트서.유딧서 70인역의 완성(BC 150년경) 시몬의 아들, '요한 히르카누스'(BC 134-104년)는 정복사업을 시작하여 갈릴리 하부에서 네겝에 이르고 지중해에서 나바테야에 이르는 소제국을 통치하면서 요단서편과 사마리아(그리심산 성전의 파괴), 에돔을 정복하였다. 필로.요세푸스.플리니우스와 사해 두루마리를 통해 알려진 에세네파와 유대교의 2대 교파(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발생 요한 히르카누스의 아들, '아리스토불루스 1세'(BC 104-103년)는 통치 직후 죽었다. 무자비한 정복자 '알렉산더 얀나이우스'(BC 103-6년)는 바리새파를 이간시킴으로써 하스모네가 왕조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알렉산더 얀나이우스의 처 '알렉산드라'(BC 76-67년)가 지배자가 되었다. 바리새파의 황금시대 솔로몬의 지혜서, 시빌 신탁서, 에녹서, 요벨서, 마카베오하서가 기록된 것으로 추측된다. 아리스토불루스 2세(BC 66-63년)는 폐위되어 로마로 송치되었으며 폼페이우스의 승리를 빛내어 주었다 '폼페이우스'는 팔레스타인을 로마 통치하에 두었고, 트랜스 요르단에 유다의 세력과 비등한 데가볼리(10도시)동맹을 조직하여 유다를 약화시켰다.
로마인 지배하의 팔레스타인 (BC 63-AD 135년) 이두매인 '안티파테르'가 로마 승인을 받아 팔레스타인을 통치하였다(BC 55-43년). 안티파테르의 아들 '헤롯과 파사엘'은 분봉왕이었다(BC 41년).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 '안티고누스'는 대제사장으로 바대인(BC 40-37년)의 도움을 받아 왕이 되었다. '헤롯 대왕'은 로마 원로원의 인준으로 유대 왕이 되었다(BC 37-4년). 세례 요한과 예수의 탄생(BC 6년 혹은 5년경) | 데메트리우스2세와 알렉산더 발라스의 왕위 투쟁
알렉산드리아 발라스(BC 150-145년) 데메트리우스 2세(BC 145-139년)는 시몬을 대제사장으로 인정하였으며, 실제로 유대인들의 완전 독립을 승인하였다(BC 143년).
안티오쿠스 7세(BC 139-134년)는 유다를 침략하고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과중한 공물을 강요하였으나 그가 죽음으로써(BC 134년) 사실상 셀류코스의 팔레스타인 지배는 그 종식을 고하였다. 폼페이우스가 이 지역을 로마의 한 지방으로 만들기까지 무력한 수리아 왕국의 통치는 계속되었다. 사해 북서 해안에 있는 에세네파의 본부 키르벳 쿰란이BC 110년경에 설립되어 대략 BC 37년까지 번성하였다. 대다수의 사해 두루마리의 연대는 이 시대나 그 이후로(BC 1년경-AD 70년) 추정된다. 알렉산드라의 장자, 히르카누스는 대제사장이었다. 알렉산드라 사후, 이두매 총독 안티파테르는 히르카누스를 설득하여 페트라로 달려가서 그의 동생 아리스토불루스의 경쟁을 물리치고 유다의 왕위를 계승하도록 나바테야 왕자 아레타스의 도움을 청하도록 하였다. 계속되는 투쟁가운데 로마에 원조가 요청되고, 로마가 개입함으로써 하스모네가 왕정은 몰락되었다. 카틸리네의 음모, 키케로의 부각, 카틸리네의 피살(BC 62년) 폼페이우스.카이사르와 크랏수스가 제1삼두정치를 형성했다(BC 60년), 카이사르의 갈리아전쟁(BC 58-51년). 내전(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은 카이사르의 암살로 종식되었다(BC 44년). 제2삼두정치 : 안토니우스·옥타비아누스·레피두스(BC 43년). 빌립보 대전(BC 42년)과 악티움해전(BC 31년)으로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가 유일한 통치자가 되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BC 27-AD 14년) 사해 근처 에세네파 본부인 키르벳 쿰란의 부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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