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6. 25 주일예배설교
참된 안식과 행복의 비결(룻기 3:1-5)
서론
이 시대는 과학문명의 발달로 굉장히 편리해진 시대가 되었다. 버튼 하나로, 심지어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아니러니 한 것은 현대인들이 굉장히 편리한 환경 속에서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 속에서 진정한 안식을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피 튀기는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즐거운 우리 집>이라는 노래를 기억하는가?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하여도 내 쉴 곳은 오직 내 집뿐일세...”
여러분! 요즈음 이러한 가사의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는 가정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의 가정을 보라. 가정에 정말 참된 안식과 기쁨이 있는가?
자녀 - 1점을 올리기 위한 몸부림
남편 - 실적을 올리기 위한 몸부림
주부 - 집을 늘리고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몸부림
여러분! 이러한 몸부림은 무엇을 보여줄까요? 안식의 보금자리인 가정마저도 안식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한 마디로 이 시대는 안식이 없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안식이 없는 이러한 시대 가운데서도 우리가 참된 안식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은 없을까? 있다. 본문을 통해 그 비결을 발견하고 이제이후로 참된 안식과 행복을 누리는 복된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본론
그러면 본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참된 안식과 행복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1. 남의 행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여러분!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남을 먼저 생각할 때, 공동체에 기쁨과 안식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기쁨과 안식이 내 것이 된다. 그러나 반대로 나를 먼저 생각하면 이권이 개입되어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공동체에 불화가 생긴다. 그리고 그 불똥이 나에게 튀게 되어 결국은 안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안식을 누리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남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라. 그러면 진정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오늘 본문은 남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곧 나의 행복임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며느리를 의지하며 살았던 시어머니 나오미가 이제는 며느리 룻의 행복을 생각하며 애쓰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것은 룻을 결혼시켜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오미의 입장에서 며느리 룻을 시집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며느리 룻을 시집보내는 것은 어쩌면 참으로 외로운 삶을 선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며느리 룻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녀는 어떤 외로움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며느리 룻을 시집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나오미는 자신이 지금까지 며느리 룻으로부터 받았던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며 참으로 후회없는 결정을 한다.
그래서 그녀는 룻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룻기 3:1 “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이 구절에서 ‘안식할 곳’이란 남편의 집을 뜻한다(룻기 1:9 참조). 여자는 남편을 떠나서 안식할 수 없다(**남편 있을 때 잘해?). 따라서 이 구절은 룻의 안식과 복을 위해서 시어머니 나오미가 룻을 시집보내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면 시어머니 나오미는 며느리 룻을 시집보내기 위한 철저한 준비라도 한 것일까? 한 마디로 혼수비용이라도 준비해 놓은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 그렇다면 나오미는 도대체 무엇으로 며느리 룻을 시집보내겠다는 것일까?
시어머니 나오미는 지금 돈 한 푼 없는 신세이다. 반대로 나오미가 룻의 결혼상대자로 생각한 보아스는 베들레헴지역에서도 아주 유력한(부유한) 사람이다. 따라서 룻을 그와 결혼시키자면 최소한의 격을 갖춘다하더라도 굉장히 많은 혼수비용이 들것임에 틀림없는 이치였다. 어떻게 보면 보아스는 올라가지 못할 나무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오미는 바로 그 순간 가난으로 인한 절망감을 절실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소망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나오미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룻을 위한 아주 특별한 결혼 이벤트를 준비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며느리 룻이 친족 보아스를 은밀하게 만날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다.
룻기 3:3-4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
여러분! 이 구절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거기 누우라”는 요구는 어떻게 보면 참으로 부도덕한 행동이요 저속한 행동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오미의 계획은 어디까지나 율법에 입각한 것이었다. 율법은 자식이 없이 죽어버린 남편의 미망인에 대하여 수혼제도를 허용하고 있다(신명기 25:5-10). 또한 그 사람의 이름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땅을 그대로 지속하도록 형제 중 한 사람이나 가까운 친척 중에서 그 기업을 대신 사고, 또 미망인과 결혼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나오미의 결혼 계획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불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입각한 것이며, 더 나아가 그것은 친족 보아스로 하여금 기업을 무를 것에 대한 의무를 행할 것인지 어떤지에 대한 의중을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잘못하면 두 남녀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간음죄를 저지르게 할 수도 있는 아주 큰 위험이 따르는 모험적인 시도였다. 따라서 자기 며느리의 참된 행복을 기원하며 결혼을 시키려고 했던 시어머니 나오미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이러한 계획을 추진했을 리 없다. 그녀는 아마 그 동안의 보아스의 호의를 통해 그가 참으로 자신의 가문의 기업을 무를 자라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이런 모험스러운 계획을 추진했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 사실을 4절 마지막 부분에 있는 나오미의 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보아스)가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
이처럼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용기를 내어 모험하게 한다. 그리고 나오미의 이러한 신앙의 용기(룻에게 안식과 행복을 주기 위한 행동)는 결국 자신도 보상받게 된다. 나중에 보아스와 룻 두 사람이 결혼하여 자식을 낳으므로 나오미도 인생의 참된 안식을 얻게 되는 복을 받게 된다(룻기 4:14-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안식과 행복을 원하는가? 그러면 다른 사람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라. 그리고 깊이 생각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창조적인 모험을 하라. 그러면 다른 사람도 복 받고 여러분도 복 받는 은총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 우리는 인생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그들이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결혼하도록 중매하라. 그러면 그들이 참된 안식과 행복을 누리며 나 자신도 행복해지는 은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은혜가 여러분의 삶에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신뢰와 순종이 있어야 한다.
룻기 3:5 “룻이 시모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룻은 시어머니의 제안에 반대하지 않고 다 순종하겠다고 대답하였다. 어쩌면 나오미의 제안은 룻의 마음에 선뜻 내키지 않는 제안이었을 지도 모른다. 또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제안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은 다 순종하였다. 여러분! 이것이 참된 순종이 아닐까?
여러분! 우리의 머리로 이해되는 것에 순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에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순종이다. 왜냐하면 이해되지 않는 것에 순종하려면 이해득실에 대한 계산을 떠나 오직 믿음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룻이 이렇게 순종하게 된 데에는 나오미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 되었을 것이다. 최소한 시어머니가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을 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 여태까지 시어머니의 삶을 볼 때, 최소한 자신에게 낭패되는 일을 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고 순종하게 했음이 틀림없다. 그 제안은 믿음 있는 시어머니요, 자기를 사랑하는 시어머니가 많은 기도 끝에 말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룻은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다 순종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참된 순종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참된 순종이란 때로는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을 때에도 오직 말씀하는 자를 신뢰함으로 순종하는 것이다(*창세기 22장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린 아브라함).
시어머니 나오미의 말에 순종한 룻은 훗날 보아스와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으며, 메시야의 조상이 되는 영광도 얻게 되었다. 한 마디로 영육간의 엄청난 복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복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자에게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진다.
예)
1. 누가복음 5:1-11 베드로에게 있던 빈 배의 허탈함이 만선의 기쁨으로 바뀜
2. 열왕기상 17:8-16 엘리야 선지자 요구와 사르밧 과부의 순종
3. 역대하 20:20-24 여호와와 선지자를 신뢰하며 찬양대를 앞세운 유다왕 여호사밧의 군대
➝ 하나님께서 복병을 두어 연합적군(모압, 암몬, 세일산 거민)을 물리치고 승리케 하심
결론
여러분! 참된 행복과 안식을 누리기 원하는가? 그러면 먼저 남의 행복을 생각하라. 그러면 그 행복이 나에게 메아리쳐 되돌아 올 것이다. 또한 주님과 선지자를 신뢰함으로 순종하라. 그러면 참된 행복과 기쁨과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은총이 이제 이후로 여러분의 삶에 충만하게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