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우리가 묵었던 숙소를 카메라에 담는다....카멜롯은 전설의 아서왕이 살았던 궁전이름이다.
오늘 부하라에서 히바까지 거리는 452㎞로 6시간 반이 걸리는 장거리 일정이다. 가는 길에 점심 사먹을 휴게소도 없는 곳이기 때문에 점심은 히바에 가서 먹어야 하기 때문에 간식을 알아서 챙기라고 한다.
8시 반 정도에 출발을 하여 히바에 도착을 하니 오후 네 시이다.
이바..가운데 보이는 탑이 이슬람 호자 미나렛이다.
아무다리야 강 옆을 끼고 가는 길이다....
우리가 지나왔던 길이 트란스옥시아나라고 불렸던 땅이다.
우리의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인 히바(ХИВА/Khiva)는 우즈베키스탄의 서쪽 아무다리야 강가에 있는 도시로
이 도시도 실크로드 가운데 있는 도시이며 이곳 또한 실크로드의 꽃이라고 불리우는 히바 칸 국의 수도
이었던 곳이다.
부하라에서 히바로 출발하는데 도로는 포장이 오래 되어서 군데군데 갈라진 상태로 정비가 되지 않아서 먼지가 나지 않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덜컹거림이 심해서 속력이 나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이는 주변은 황무지와 아프리카의 초원 그리고 스텝 지역 등으로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못되어 보인다.
아마도 우리가 지나가는 곳이 아무다리야 강에서 약간 떨어진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히바로 가는 길의 이정표...호라즘은 히바가 속한 주(州) 이름이다.
퍼장도 아닌 비포장도 아닌 길...
우르겐치(히바)로 가는 기찻길?
앞에 가는 버스는 일본 관광객을 태우고 가는 버스이다.
아스팔트가 갈라져서 바닥에 큰 돌은 박아 놓은것처럼 생겼다.
우리가 달리는 이 길 주위만 보면 이런 땅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 수가 있을까 할 정도로 황무지처럼 보이지만 어느 땅이나 역사와 사연이 없는 땅이 없겠지만 이 곳도 어느 땅 못지않게 수많은 민족들이 거쳐 간 땅이다.
우리가 버스를 타고 가는 이 길은 아무다리야(Amu Dar'ya)강에서 약간 비켜난 길로 히바 근처에서 아무다리야 강을 끼고 가게 된다.
우리가 가는 이 길은 아니겠지만 아무다리야 강을 따라서 오랜 세월 동안 대상(隊商)들과 이 중앙아시아를 지배하려는 세력들이 2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갔을 것이다.
우리가 지나왔던 사마르칸트에서 부하라 그리고 지금 지나가는 히바까지의 이 길이 지나는 땅을 고대(古代)에는 옥시아나 너머의 땅이라는 의미의 트란스옥시아나(Transoxiana)라고 불리어졌던 땅이다.
지리적으로 중앙아시아의 동서남북의 중앙에 위치하는 곳이기 때문에 수많은 민족과 국가들이 이 땅 위에서 나라를 세우면서 명멸(明滅)해 갔던 땅이다.
고대의 중앙아아시아...트란스 옥시아나로 불렸던 시대의 지도
덜컹거리는 도로를 따라 두 시간 정도 가자 새로 포장된 고속도로가 나오는데 이 고속도로의 일부구간을 우리나라의 포스코가 건설한 고속도로라고 한다.
가는 도중에 갈가에 두 번을 쉬어 하는데 첫 번째는 포장된 고속도로에 들어서서 금방 있는 길가의 간이 음식점으로 이 길을 가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들러서 간다. 히바까지 가는 길에 화장실이 없기 때문이다.
포스코가 공사한 고속도로 구간
가는 길에 유일하게 쉴 수 있느 곳으로 이 길을 가는 관광객들은 반드시 이곳에서 쉬었다가 간다.
우즈베키스탄 특유의 무늬로 장식된 식탁과 의자
한 자리에 모여 있는 일본 관광객
길가에 나무그늘이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지금부터 우르겐치까지는 포장된 고속도로이다....고속도로 주변은 황무지이다.
왼쪽에 아무다리야 강이 보이고..그 건너는 투르크메니스탄이다.
이런 메먀른 곳에서도 가축을 기른다.
나무 한 그루가 없는 땅..강이 있는 곳에는 푸른 빛이 보이지만 강 유역을 벗어 나면
이런 땅들이다.
강의 유역들이 보이고...
스텝지역을 가로 지르는 고속도로...이런 땅이니 더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 한 번 서는 곳이 있는데 아무다리야 강변이다. 아무다리야 강변의 반대편에 차를 세우고 고속도로를 가로 질러서 가면 아무다리야 강 언덕이 있어서 그곳에서 아무다리야 강과 강이 만든 평야를 보게 된다.
그 강을 경계로 하여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이 구분된다는 것에 대해서 신기해하면서 건물 뒤편 같은 곳에서 눈치껏 볼일을 보기도 한다.
이상한 전망대를 지나게 되면 아무다리야 강을 끼고 가기 때문에 강과 비록 크지 않지만 초원을 보면서 가게 되고 우르겐치라 큰 도시를 지나서 히바(Khiva)로 들어가게 된다.
아무다리야 강이 넓어지고 ...유역에 초지도 형성되어 있다..
바로 앞에 보이는 땅과 대조적으로 보인다....앞에 땅은 불에 탄 것처럼 메말라 있는데....
강가에 서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건물...사람이 없다.
길 가에 차를 세우고 고속도로를 횡단하여 아무다리야 강을 보러 간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화장실??...강을 보다 가까이 보기 위해서 가까이 가는 사람도 있고....
고속도로 중앙분리대...차가 많이 다니지 않아서 건너는데 위험하지 않다.
우르겐치 근처로 들어오면서 보이는 길가의 과일가게...수박이 무지하게 싸다.
우르겐치에서 히바로 들어오는 길에 보이는 들판...사막같은 곳만 보면서 왔는데 푸른 들을 보니 눈이 시원하다.
히바 성문 앞에 있는 호텔..이 호텔에서 2일을 묵는다.
호텔에서 보이는 히바성
히바로 가는 380번 도로..포장된 곳이다.
아무다리야 강가에서
트란스 옥시아나(Transoxiana)에 대하여
1개요(槪要)
중앙아시아 서쪽의 아무다리야(Amu Dar'ya) 강과 시르다리야 강(Syr Dar'ya) 사이에 있는 땅.
아무다리야 강을 고대 그리스어로 옥소스(Ὦξος, Oxos) 강이라고 불렀으므로 라틴어로 '옥수스(Oxus)
너머의 땅'이라는 뜻의 트란스옥시아나라는 이름이 붙었다.
•서쪽으로는 호라즘(Khwarazm),
•남쪽으로는 호라산(Khorasan)과 접하며,
•동쪽으로 가면 파미르 고원을 넘어 히말라야 산맥이 나오고
•북쪽에는 스텝 지대가 펼쳐져 있다.
지금의 우즈베키스탄과 그 인근 영토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즈벡인들은 여기에 정착한 시기가 늦기 때문에 고대(古代)시대의 이 땅을 말할 때 주로 쓰는 말이다.
이름이 길고 복잡해서 익숙해지지 않으면 좀 헷갈린다. 영어로 Transoxiana, 한글로 트란스옥시아나라고 쓰는 경우가 가장 많으나, 발음을 줄여서 트란속시아나라고 쓰기도 하고, 트란속사니아(Transoxania) 라고 쓰는 경우도 있다.
2. 역사
전체적으로 지대가 낮고 평탄하며, 건조하지만 강이 흐르는 곳은 토지가 비옥했다. 또한 비단길의 주요 통로 중 하나였으므로 고대부터 농업과 상업이 발달했다.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에 페르시아에 편입되어 옆 동네 박트리아와 함께 번영을 누렸으며, 이 때는 소그디아나라고 불렸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후에는 헬레니즘 세계의 최전방이 되어 셀레우코스 왕조와 박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헬레니즘 왕조들은 거의 단명하였지만 트란스옥시아나는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 스텝 유목민들, 중국 등의 문화가 한데 모이는 교역과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후 이란 지역에 들어선 강대국 파르티아와 사산 왕조의 지배를 받으며 번영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트란스옥시아나는 북방 스텝 지대, 혹은 더 멀리 동쪽의 몽골 쪽에서 쳐들어오는 유목민들이 서방으로 진출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교두보이기도 했으므로 그 침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5~6세기 사산 왕조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에프탈이나 돌궐 제국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일대를 페르시아어로 투르키스탄이라고 부르게 된 것도 그만큼 튀르크인들의 영향력이 점점 강해졌기 때문이다.
이후 트란스옥시아나는 8세기 들어 사산 왕조를 멸망시킨 아랍 무슬림 세력에 의해 정복되었고, 압바스 왕조가 탈라스 전투에서 당(唐)을 격파하면서 확고한 이슬람 세계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이 지역의 주도세력은 칼리파들이 통치하는 아랍 중심지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문(文)에서는 페르시아인들이, 무(武)에서는 튀르크인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독자적인 발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사만 왕조, 카라한 왕조, 가즈니 왕조, 셀주크 왕조 등 여러 강국들이 출현하였는데, 특히 셀주크 왕조는 이란은 물론 이라크, 아나톨리아, 힌두스탄까지 세력을 뻗치는 강대국이 되었다.
셀주크 왕조가 약화된 후에는 동쪽의 서하와 서쪽의 호라즘 왕조에 의해 번갈아 지배를 받았으나, 이슬람의 재앙 칭기즈 칸이도래한 이후에는 모두 사이좋게 몽골 제국의 말발굽 아래 깡그리 짓밟혀 버렸다.
몽골 제국이 엄청나게 거대해지면서 비단길의 주요 통로라는 입지는 더욱 강화되었지만, 워낙 심하게 파괴
되었던 데다 일한국이나 원나라의 지배층과 달리 이곳을 차지한 차가타이 한국의 지배층은 옛날 습성을
버리지 못하여 과거와 같은 번영은 누리지 못했다.
그러나 14세기 정복자 티무르에 의해 티무르 제국의 중심지가 되고 트란스옥시아나는 마지막 황금기를 맞는다. 흔히 티무르는 무자비한 파괴자였으며 그가 죽은 뒤 티무르 제국은 금세 막장이 되었다고들 생각하지만, 사실 티무르는 적들에게 무자비했을지언정 자기 중심지 발전에는 관심이 많았고, 그 후계자들도 나름 안정기를 유지했다. 그러나 역시 오래 가지는 못하고 16세기경우즈베크족의 침공에 의해 무너졌다.
하지만 트란스옥시아나를 차지한 우즈베크 족의 지배 역시 순탄치 않았는데, 북쪽에서는 몽골이나 카자흐 같은 유목민들의 위협이 끊이지 않았던 데다 그걸로 모자라 자기들끼리도 박이 터지게 싸워서 도저히 안정이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남쪽의 이란과도 관계가 거의 단절되어 이슬람 세계에서 고립되었고, 지리상의 발견과 대항해시대의 시작으로 비단길의 영향력이 결정적으로 쇠퇴한 것 역시 중요한 요인이다. 이후 19세기 들어 러시아 제국이 중앙아시아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러시아 영향권으로 편입되었고, 이후 소련 내의 사회주의 공화국이었다가 소련 붕괴 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키르기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으로 독립했다.
(나무 위키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