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완벽한 세상이라는데 / 최종호
추석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낮의 기온은 33도 안팎이다. 햇볕에 나가기가 무서우리만큼 뜨겁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흐른다. 일찍부터 시작된 열대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에어컨이 없으면 어떻게 살까 싶다.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30도만 넘어도 덥다고 큰 뉴스거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이런 열기가 너무 길게 이어져서 짜증스럽지만 하늘빛을 보면 금세 마음이 밝아진다. 너무 고와서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운전하고 가면서 하늘을 배경으로 산과 들판 위에 둥실 떠있는 흰구름을 보면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을 읽은 뒤로 하늘과 자연이 달리 보여서일까?
맑고 투명한 하늘이 한없이 우주로 이어져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대기권 밖은 광막한 어둠뿐이다. 지구를 둘러싼 공기 때문에 우리 눈에 맑고 푸르게 보인다. 태양 광선은 여러 색(빨, 주, 노, 초, 파, 남, 보)으로 되어 있다. 프리즘으로 실험해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빛의 파동이 대기 속에서 이리저리 튕긴다. 파장이 짧은 푸른빛이 많이 산란되기 때문에 하늘빛을 띄는 것이다.
달에서 보는 하늘은 어떨까? 한낮에도 검다고 한다. 달에 착륙한 우주인들이 직접 목격한 사실이란다. 알다시피 달은 중력이 약하기 때문에 공기를 붙잡아 둘 수가 없다. 그래서 진공 상태다. 햇빛이 공기를 만나 산란되거나 흡수되지 않고 땅에 직접 닿기에 표면은 밝지만 검은 하늘이 광막하게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상상만 해도 무섭다.
며칠 전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뉴스를 들었다. “지구는 정말 완벽한 세상처럼 보인다.” 억만장자인 사업가 재러드 아이작먼이 민간 우주선을 타고 730킬로미터 떨어진 상공에서 밖으로 나와 지구를 바라보며 밝힌 첫 소감이다. 그가 활동하는 장면이 생중계되었다고 해서 동영상을 찾아보니 정말로 광막한 어둠 속에서 지구는 밝게 빛나고 있다.
대기권 밖에서 찍은 지구 사진은 푸른 공처럼 보인다. 두껍고 투명한 대기층과 깊은 바닷물 때문이란다. 하지만 태양계 외곽에서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는 볼품없고 초라하다. 존재감이 없다. 볕이 잘 드는 방에서 밝은 쪽을 보면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를 볼 수 있는데 그 먼지와 다름없어 보인다. 물론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칼 세이건은 “아무리 깊이 뿌리박힌 국가주의라도 선회 궤도에서 잠시라도 지구의 앞날을 생각해 본다면 삭기 시작할 것이며, 이는 자두 알 위에서 싸우는 진드기처럼 하찮은 짓이다.”라고 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 6개월이 지났는데도 계속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가 더 차지하겠다고 벌인 짓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팔레스타인 자치구의 병원과 주택, 심지어 학교까지 공격하여 쑥대밭으로 만든다.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예 인종을 청소할 기세다. 이 볼품없는 행성에서 저토록 싸워야만 하는지 의문이다. 인간이 희미한 점 위에서 아귀다툼하며 산다고 생각하니 부끄럽고 숙연해진다.
그는 『코스모스』에서 인류를 가장 위협하는 요인으로 핵전쟁을 꼽았다. 그만큼 위험하고 무서운 것이리라. 그런데도 러시아는 틈만 나면 서방과 미국을 향해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처음에는 위협용일 것이라고 여겼지만 이제는 실제 사용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전 세계가 순식간에 파멸의 길로 들어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두렵기 그지없다. 아무리 역사적, 종교적 갈등이 켜켜이 쌓여 있다지만 칼 세이건의 말대로 우주적 시야에서 보면 하찮은 짓일 것이다.
오늘도 여전히 덥지만 하늘빛은 맑고 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