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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월의 시 _상실감을 달래 주는 겨레의 노래
◈ 저자 : 김소월(金素月) 본명은 정식(廷湜). 평북 구성(龜城)에서 태어났으며 오산학교 중학부와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대학교 상과대학을 중퇴했다. 오산학교 교사였던 안서(岸曙) 김억(金億)의 지도와 영향 아래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1920년 「낭인의 봄」, 「그리워」 등을 『창조』지에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했다. 1925년 시집 『진달래꽃』을 출간했다. 생애의 마지막 10년은 고향에서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며 실패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의 사인(死因)은 정확하지 않으나, 음독 자살인 것으로 추정된다.
◈ 해설자 : 이남호(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했고, 문학평론가 및 문예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해 왔다. 평론집으로는 『한심한 영혼아』, 『문학의 위족』, 『녹색을 위한 문학』, 『문자제국쇠망약사』 등이 있고, 편저로는 『오늘의 한국 소설』, 『옛 우물에서의 은어낚시』 등이 있다. 그 외 산문집과 저서가 다수 있다.
1. 서구풍 시의 유행과 김소월의 등장
김소월이 처음 시를 발표한 것은 1920년 『창조』라는 동인지를 통해서였다. 『창조』는 일본 유학생들이 모여서 만든 문학잡지였고, 대부분 일본에서 공부하는 이들이 글을 실었다. 비단 이 잡지뿐 아니라, 1920년 당시에 새로운 시를 쓰고 문학을 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서양의 근대문학을 접한 이들이었다. 평안북도 정주 오산학교에서 김소월에게 시를 가르친 김억도 마찬가지다. 김억은 한국에 처음으로 프랑스와 러시아의 시들을 번역·소개한 시인이었다.
일본을 통해 접한 서양 시의 영향이 크다 보니, 일본어를 비롯한 외래어의 어휘와 어투가 남발하고 구체성을 결여한 상징주의풍의 문장이 유행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김소월이 등장한 건 이러한 문화 풍토 속에서였다. 그는 정주에서 자라고 학교를 다닌 정주 토박이였다. 그가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십대 후반 무렵, 그는 일본에 가 본 적도 없었고 서울의 문화적 분위기를 직접 체험한 적도 없었다. 그를 시의 세계로 인도한 건 스승인 김억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가 상당수 발표되는 1922년 무렵, 당대의 시인과 문학평론가들은 김소월의 시가 보여 주는 리듬과 언어에 찬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무엇이 그때 그 사람들을 그렇게 놀라게 했을까? 그리고 80여 년이 흐른 현재까지 소월의 시가 매력을 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 친숙한 리듬, 친숙한 언어
김소월의 많은 시들은 7·5조의 음수율(音數律)을 지키고 있다. 7·5조는 원래 일본 시가(詩歌)의 율조(律調)다. 한국에서 7·5조가 유행하게 된 것은 창가(唱歌)가 유입되고 유행하면서부터이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7·5조 창가로는 "우렁차게 토하는 / 기적 소리에 / 남대문을 등지고 / 떠나 나가서"로 시작되는 최남선의 「경부철도가」가 있다. 당시 한국에서 7·5조 창가는 학교 교가나 찬송가 등에 많이 이용되었다. 김소월의 7·5조 시들은 외면적으로 창가와 똑같은 형태를 띠지만, 정조나 분위기에서 비슷한 면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우리 집 뒷산에는 풀이 푸르고
숲 사이의 시냇물, 모래 바닥은
파아란 풀 그림자, 떠서 흘러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날마다 피어나는 우리 님 생각.
날마다 뒷산에 홀로 앉아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져요.
- 「풀따기」 중에서
이 시는 7·5조의 글자수를 거의 정확하게 지키고 있고 또 어떤 가락을 따라 노래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우리가 이 시에서 떠올리게 되는 것은 일본에서 수입된 창가형 리듬이 아니라 옛 한국 시가들이 보여 주는 3음보(音步)의 전통 율조다. 맑고 투명한 감성과 친숙한 어휘들, 님에 대한 그리움은 이 시를 민족의 보편적 감성에 호소하는 것으로 읽게 만든다.
「풀따기」와 같은 시들이 외형상으로 창가를 연상시킨다면, 좀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김소월의 시들은 적절한 행갈이와 변형을 통해 7·5조 율격(律格)을 창의적이면서도 친숙한 리듬으로 재창조해 낸 것들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 「진달래꽃」 중에서
한 행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은 7·5조가 이 시에서는 두 행으로 처리되었다. 또 "영변에 약산" 부분은 글자수가 적어서, 천천히 읽게 된다. 「진달래꽃」은 「풀따기」와 같은 리듬을 지니는 것으로 보이지만, 행의 처리가 달라지고 글자수가 변형됨으로써 좀 더 자유로우면서도 감정을 충분히 실은 리듬감을 독자에게 전해 준다.
글자수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전통 시가의 율조와 감성을 느끼게 하는 시들 역시 많다. "산에는 꽃 피네 / 꽃이 피네 / 갈 봄 여름 없이 / 꽃이 피네"(「산유화」)나 "비가 온다 / 오누나 / 오는 비는 /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왕십리」), "갈래갈래 갈린 길 / 길이라도"(「길」) 같은 구절들은 반복되는 한국어가 얼마나 리드미컬하게 들리는지를 보여 준다. "잔디 / 잔디 / 금잔디 / 심심(深深) 산천에 붙는 불은 /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금잔디」)나 "접동 / 접동 / 아우래비 접동 /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 진두강 앞마을에 / 와서 웁니다"(「접동새」) 같은 구절은 시를 읽는 사람을 소박한 민요의 세계에 연결해 준다.
한편 그가 사용하는 일상적이고 쉬운 언어들은 운율의 친숙함을 한층 강하게 만든다. 그는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친근한 우리말로 시를 지었다. 진달래꽃은 한국의 강산에 지천으로 널린 꽃이지만, 시 속에서는 별로 호명된 적이 없었다. 옛 사람들은 이 꽃을 두견화(杜鵑花)라고 불렀다. 두견화는 중국 촉나라 황제의 전설과 관련된 이름으로, 한시에 자주 나타나는 단어였다. 김소월은 같은 꽃을 지칭하면서도 두견화 대신 진달래꽃이라는 고유어를 사용함으로써, 시의 세계를 조선인의 현실에 밀착시켰다. 또 "엄마야 누나야" 같은 구절은 가장 일상적인 호칭을 시에 쓰는 것만으로도 따뜻하고 포근한 세계를 그려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는 구체적인 지명을 즐겨 쓰기도 했는데, "영변의 약산", "삭주 구성", "삼수갑산" 같은 어휘들은 고향에 대한 한국인 공통의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시가 소박하고 친근한 느낌을 주면서 민족적 보편 정서에 호소할 수 있게 된 데는 그 어휘의 힘이 크다. 앞 단락에 열거한 구절들만 보더라도, 가장 널리 사용되는 기초적인 어휘들만으로 율조가 형성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소월은 소박하고 친숙한 언어들로 울림이 큰 리듬을 만들어 냈다. 그의 시에서 만나는 운율의 아름다움과 호소력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으며, 시의 고향이 음악임을 새삼 일깨워 준다. 한국 현대시의 음악적 형식은 그의 시집 『진달래꽃』에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임과 집과 길을 잃은 상실감
김소월의 시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당대 조선인들의 고통을 그의 시가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시를 쓰고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3·1운동이 실패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식민지 상황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빼앗긴 조국인 '조선'에 대해 고뇌하고 있었다. 또 많은 민중들은 가난에 찌들어 유랑길에 올랐으며 제 살던 집과 고향을 간절히 그리워해야 했다. 나라를 빼앗기고 또 오랫동안 의지하고 살았던 삶의 터전과 방식도 빼앗기고 비참하게 방황했던 식민지 백성들에게 소월의 시는 그대로 자신들의 심정을 대신 노래한 것이 되었다.
불귀(不歸),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오 년 정분을 못 잊겠네.
- 「산」 중에서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 곽산
차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 「길」 중에서
위의 시들은 "삼수갑산"과 "정주 곽산"으로 표상되는 '집'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이 시들의 집과 고향은, 아늑한 안식처라든가 도피처 같은 상징적 의미를 띠지 않은 채 그 자체의 집과 고향으로 육박해 온다. 어쩔 수 없이 집과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정처 없이 떠돌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내 집이 있던 곳은 향수에 아련하게 젖어 생각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처절하고 고단한 현재의 삶을 되새기도록 만드는 곳이다. 그리고 집을 잃은 상실감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저 한스럽고 처연한 율조다. 김소월은 3음보의 율격을 공통적으로 사용하면서도 때로는 맑고 투명한 감성의 세계를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민중의 서러운 심경을 대변하기도 했다. '임'을 노래하는 그의 시들이 깊은 공감대를 불러일으킨 것도, 그 시들의 기저에 쓰라린 상실감과 그리움이 면면히 흘러 식민지 시대 조선 민중들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소월은 몇 편의 시에서 농경 사회의 풍경을 이미지로 형상화하며 이 세계에 대한 그리움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들에서는 대부분 김소월 시 특유의 정형에 가까운 율격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꿈꾸었노라, 동무들과 내가 가지런히
벌가의 하루 일을 다 마치고
석양에 마을로 돌아오는 꿈을,
즐거이, 꿈 가운데.
그러나 집 잃은 내 몸이여,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중에서
그의 꿈은 "동무들과 내가 가지런히 벌가의 하루 일을 다 마치고" 즐거이 돌아오는 것이며, "키 높이 가득 자란 보리밭, 밭고랑 위에" 앉아 "일을 마치고 쉬는 동안의 기쁨"(「밭고랑 위에서」)을 맛보는 것이다. 이 세계에 대한 향수가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없다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서, 고즈넉한 농촌 풍경의 상실은 조선의 땅이 "남의 나라 땅"인 것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인다.
그러나 김소월의 예민한 시적 감성이 궁핍한 현실과 만난 지점은, 풍요로웠던 농경 사회의 이미지를 그려 냄으로써 결핍으로 가득한 현실을 상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찌해 볼 수 없는 현실 자체에 대한 한스러움을 전래의 리듬을 빌려 토로하는 것이었다. 조형적 이미지를 언어화하는 것보다 호흡과 리듬을 언어화하는 것에 훨씬 능했던 김소월에게 이러한 시적 양상은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김소월은 끊임없이 떠나간 임을 그리워하고 돌아갈 집을 그리워한 시인이다.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길에서 서성이던 시인이다. 그의 시 속에는 임도 없고 집도 없고 가야 할 길도 없다. 임과 집과 길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의 대상이다. 그래서 예부터 시인들은 임과 집에 대한 그리움을 애타게 노래했으며, 길 잃은 자의 번민을 노래하여 뭇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임과 집과 길에 대한 그리움은 어느 시대라도 간절한 것이지만, 특히 소월이 살았던 시대에는 너무나 절실한 것이었다.
4. 격렬한 감정과 죽음의 그림자
김소월은 1925년 126편이라는 방대한 양의 시를 묶어 『진달래꽃』을 펴냈다. 시집 속의 많은 시들은 친숙한 리듬을 통해 임과 집과 길을 잃은 상실감을 노래하고 있고, 이 상실감은 당대 조선인들과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26편의 시들이 모두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읽히는 것은 아니다. 『진달래꽃』을 읽다 보면 의외로 개인의 열렬한 감정이 강하게 느껴지는 시들이 많으며, 우리 전통 시가에서는 잘 만날 수 없었던 감각과 육체의 구체성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그는 보편화된 감성과 형식으로 그 자신의 상실감을 당대 민중의 것으로 확장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선인의 상실감을 지극히 개인화된 표현이나 감성으로 응축하기도 했다.
「여수(旅愁)」라는 짧은 시에서 김소월은 6월 어둑어둑한 때에 내리는 빗줄기를 "암황색의 시골(屍骨)"에 비유했다. 시골(屍骨)이란 사전에 나오지 않는 조어(造語)로, '시신의 뼈'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6월의 비'란 원래 풍요의 상징을 지니기 마련이다. 6월은 논밭의 식물들이 한참 자라야 할 때이니, 6월에 내리는 빗줄기는, 활기차게 땅을 적시며 무럭무럭 곡식을 키워 가을의 풍요로움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이 시 속에서 빗줄기는 견고한 죽음의 형상을 띠며, 더 이상 농경 사회의 풍요로움이 조선에 가능하지 않을 것임을 예견한다. 더군다나 뼈만 남은 시체에 비유된 무서운 빗줄기란,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읊조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소월은 지극히 특이한 비유를 통해 그 자신의 황폐화된 내면을 보여 주고, 이 개인적인 황폐함 속에 조선의 황폐함을 응축해서 보여 준다.
보편적으로 확산되는 감정 대신 폐부를 깊게 찌르는 개인의 격정으로 큰 호소력을 불러일으키는 절창(絶唱)에는 「초혼(招魂)」이 있다. '초혼'이란 원래 상례(喪禮) 절차의 하나로, 시신이 망가지기 전 죽은 이의 혼이 다시 몸에 합쳐지기를 기원하며 집 위에 올라가 죽은 자의 이름을 부르는 의식이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초혼」 중에서
이 시를 온통 휩싸는 것은 죽은 자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부르는 사람의 격렬한 심정이다. 이 시에는 그의 다른 시들에서 자주 발견되는 한스러운 체념이 없다.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끝내 죽은 사람의 혼을 살려 내거나, 아니면 "부르다가 내가 죽"거나, 둘 중의 하나만이 가능하다는 듯이 화자는 "사랑하던 그 사람"을 부른다.
『진달래꽃』의 많은 시들에는 그리운 님, 혹은 사랑하던 애인이 나온다. 이들은 시인의 곁에, 혹은 화자의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 김소월의 시들은 부재하는 님을 그리워하고, 그 때문에 애타하고, 때로는 체념한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만,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못 잊어」)라는 역설적인 구절처럼, 그의 시들은 임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과 한스런 체념과 인종(忍從)을 동시에 보여 준다. 그리고 이러한 님에 대한 마음은, 김소월의 '님'을 넘어 우리들의 '님'에게로, 또 종교적이며 사회적인 의미의 '님'에게로 확대되고 보편화된다.
그러나 「초혼」의 "사랑하던 그 사람"은 보편적인 의미로 쉽게 확대되지 않는다. 시 속의 감정이 너무도 강렬하기 때문에, 독자는 시 속의 감정을 사랑의 보편적 감정이나 면면히 흐르는 민족적 정서로 받아들이는 대신, 상실감으로 울부짖는 격렬한 개인의 목소리 안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쉽게 보편화되지 않는 감각과 감정을 보여 주는 김소월의 시편들은 유독 죽음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시들을 통해, 한국 시가의 전통을 근대 시의 형식으로 계승한 한 천재 시인의 고통스런 내면을 만나게 된다.
5. 불행한 삶 위에 핀 진달래꽃
성인이 된 후 김소월의 삶은 평탄하지 못했다. 그는 타고난 천재성을 바탕으로, 정주·서울·일본·구성 등지를 방황하며 그 번민과 한스런 마음을 시로 썼다. 시집 『진달래꽃』의 시들은 스무 살 전후의 불행한 젊은이가 토해 낸 울음과 같은 것이었으며, 한국인의 서러움과 공명하는 것이었다. 소월 시는 전통 시가의 정서와 형식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현대 시의 물꼬를 텄으며, 이로써 이후 한국 서정시의 전범이 되었다. 시집 『진달래꽃』은 한국 서정시의 신화요,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진달래꽃』을 출간한 이후 김소월은 서서히 시에서 멀어져 갔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동아일보》 지국을 경영하는 등 이런저런 사업을 벌이며 생계를 도모했으나 어느 것도 성공적이지 못했으며, 결국 1934년 서른두 살의 젊은 나이에 자살에 가깝게 삶을 마감했다. 시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돈벌이에도 실패한 자신에 대한 쓰라린 절망감이, 소월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소월의 시들은 몸과 마음을 둘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시인이 피워 낸 붉은 꽃들이다. 어딘가에 있을 그의 무덤 위엔, 봄마다 진달래꽃이 무성할지도 모른다.
6. 더 생각해볼 문제들
1) 김소월의 시들은 최근까지도 계속해서 노래로 만들어지고 있다. 때로는 가곡의 가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대중음악에 이용되기도 한다. 그의 시들이 현재까지 노래화되며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2) 김소월의 시들은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되찾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에 대한 상실감으로 괴로워하거나 체념하는 정조를 보여 준다. 이러한 소극성은 김소월의 한계로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식민지 시대에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3) 「진달래꽃」과 「초혼」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아픔을 노래한 시이다. 그 아픔을 노래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자료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이남호/재편집: 오솔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