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경찰”Midnight Runners
한국영화, 장르:액션 개봉:2017.08.09
감독,각본:김주환, 제작:무비락,도서관옆스튜디오,베리굿스튜디오,
주연:박서준,강하늘, 관객:5,091,537명(2017.08.31.현재)
2주 14일동안 개최되는 “청람교육”은 경찰대학교 신입생을 위한 기초군사훈련이다. 청람교육은 함께하는 생활과 규범의 중요성, 그리고 목적지향의 학생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지덕체의 완성기간이다. 경찰대학에 합격한 “기준”(박서준역)과 “희열”(강하늘역)은 입학식을 보러온 부모와 어색한 이별을 고한다. “주희”(박하선역)는 경찰대학교 청람교육의 교관이다. 부모와의 작별을 선포하고 창람교육의 현장으로 인도하는 주희의 목소리와 눈빛에는 강렬한 인상이 남는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무상교육이기 때문에 경찰대에 입학한 기준은 소세지를 좋아한다. 반대로 카이스트 영재인 희열은 특별한 경험을 위해 경찰대에 입학했고 까다로운 식성으로 소세지를 먹지 않는다.
“경찰은 시민이 위험에 처했을때 가장 먼저 응답하는 사람이야 근데 니들은 동기가 다친걸 보고도 그냥가? 너네는 시간안에 들어왔어도 실패다.”
경찰대학교 “양교수”(성동일역)는 경찰계의 전설로서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준다. 무술을 가르치는 “하교수”(이준혁역)는 실전에서 사용 가능한 호신술을 가르쳐 주며 체력단련을 지도하고 있다. 청람교육의 현장은 군대 유격훈련과 맞먹는 실전훈련이 계속된다. 마지막 산행훈련에서 기준과 희열은 산악지대를 뛰어서 오르고 있다. 그때 앞서가던 희열이 발목부상을 입고 넘어지게 된다. 다른 동료학생들이 하나씩 지나쳐 갈 때 기준은 희열을 업고 산을 내려온다. 한시간내에 돌아와야 할 거리를 매우 지체된 가운데 희열을 업고 내려오는 기준을 발견한 주희는 불합격이 아닌 합격처리를 내린다. 희열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던 동료학생들을 꾸짖으며 그들에게 한바퀴 더 돌아올 것을 명령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기준과 희열은 한팀이 되고 두사람의 관계는 점점 가까워 진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두사람은 3학년생이 되었다. 어느날 외박을 나간 기준과 희열은 클럽으로 향한다. 클럽에서 여자들과 함께 데이트를 즐기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인근 시장통 술집에 앉아 넋두리를 하고 있다. 이렇게 시간은 가고 술집을 나온 기준과 희열의 눈앞에 미모의 아가씨가 지나가고 두사람은 물끄러미 바라보며 뒤돌아볼 것을 기대한다. 그 순간 옆에 있던 봉고차 하나가 아가씨쪽으로 가다가 갑자기 내린 사내 하나가 그녀의 뒷머리를 내리친뒤 그녀를 태워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목격자가 된 기준과 희열이 그들을 뒤쫓아 보지만 사람의 뛴걸음은 역부족이었다. 급하게 강남경찰서를 찾은 기준과 희열이 “김팀장”(김강현역)을 만났지만 앞서 있는 사건현장으로 출동하는 바람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모든 정황은 매우 위급하다. “크리티컬 아워”에 걸린 것이다. 사건발생 7시간이내에 해결하지 못했을 때 피해자의 생명은 위급하다는 수사의 기본이 되는 세가지 원칙, “현장, 물품, 피해”를 중심으로 두사람은 학생신분을 넘어 현장을 다시 찾는다. 기준과 희열에게는 “열정과 집념과 진심”이 있다. 거기서 발견한 하나의 단서는 떡볶이다. 20대 여성으로 추정되는 이름을 알수 없는 아가씨가 누군가에 의해 납치되었고, 이미 시간은 두시간 가량 흘러갔다. 그녀가 남긴 흔적은 아직 식지 않은 4인분의 떡볶이다. 분명 누군가에게 주려고 한 것이다.
이름, 나이, 주소, 어느것 하나 남겨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떡볶이를 구매한 식당을 찾아야 했다. 이렇게 또다시 한시간이 지체되었다. 그러나 단서는 있다. 떡볶이를 구매한 집에서 키가 크고 날씬한 20대로 추정되어 보이는 아가씨의 직장을 알아낸 것이다. 그녀의 직장은 “귀파방”이다. 귀파방은 신종 불법 유사 성행위 업소로 귀를 파주는 것처럼 하지만 실상은 성행위 업소다. 희열이 귀파방에 들어가 납치된 아가씨에 대한 정보를 캐는 동안 기준은 건너편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소세지를 먹으며 망을 보고 있다. 때마침 지구대 경찰차가 귀파방 단속을 나왔고 기준은 희열을 위해 경찰을 “짭새”라고 놀리며 줄행랑을 친다. 기준을 쫓고 쫓는 사투를 벌이는 동안 희열은 귀파방에 손님으로 가장해 정보를 탐색하고 있다. 귀파방 “미지”(배효진역)로부터 그녀의 이름이 “윤정”(이호정역)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귀파방을 빠져 나와 기준과 함께 그녀의 집을 찾는다. 그녀의 집에는 또다른 두명의 여자가 갇혀 있었고, 이들을 감시하던 조선족이 기준과 희열을 보고 도주하지만 끝내 잡히고 만다. 그를 통해서 기준과 희열은 여자들이 갇혀 있는 곳까지 접근하지만 조선족 두목 “영춘”(고준역)에게 린치를 당하며 겨우 목숨을 건진다. 인근 지구대로 피신을 한 기준과 희열이 지금 여자들이 감금되어 있다고 알렸지만 절차를 강조하는 경찰에 의해 테이저건을 맞는 아이러니를 겪게 된다. 전화를 받고 달려온 양교수는 기준과 희열의 상태를 보고 아연실색하고 두사람을 따라 현장을 갔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기준과 희열은 경찰이 아니라 학생이다. 학생은 민간인이다. 그들이 돌아간 학교에서 그들은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는다. 몸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시간, 기준과 희열은 새로운 각오를 다지며 현장을 찾아 나선다. 이제 그들은 중무장체제를 갖추었다. 그들의 손에는 경찰봉과 테이저건과 각종 방어물이 장착되어 있다. 그들이 다시 접근한 곳에서 그들은 새로운 단서 하나를 잡았다. H산부인과와의 은밀한 관계다. 시내 한복판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는 H산부인과는 불임부부들의 로망과 같은 병원이다. 그러나 그 병원의 어두운 그림자에는 언제나 불법이 자행되고 있다. 중국 조선족과 연계된 범죄는 어린 여학생들의 납치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조선족 두목 영춘은 납치 여성들을 폭력으로 제압하고 그들에게 난자 생산주사를 놓아서 많은 난자를 채취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난자생산을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장기적출에 들어가는 등 그들의 포악성과 잔인성은 심각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러한 밀거래 움직임을 포착한 기준과 희열이 병원에 잠입하여 조선족 폭력조직을 일망타진하고 수술실로 접근하였다. 수술실 앞에는 천하무적과 같은 영춘이 막아서고 있다. 2대 1의 혈투전에서 결국 승리자는 기준과 희열이다. 수술실에는 “산부인과 원장”(남문철역)이 난자 적출을 위해 마취를 놓은 상태로 있고 대기실에는 수많은 여학생들이 수술을 대기하고 있다. 모든 것이 일망타진되는 순간이다.
경찰대학교 학생에 의해 일망타진된 조선족 여성 납치극과 불법 난자생산은 이렇게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지만 이 사건으로 기준과 희열은 학교로부터 퇴학조치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경찰대 “학장”(정원중역) 주재로 열린 징계위원회는 1년 유급과 500시간 봉사를 결정하고 사태를 종결하였다. 경찰대학교는 엘리트 경찰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 경찰청의 꽃이다. 비록 학생신분이지만 사회생활 현장에서 일어나는 불법적인 사고를 묵인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받게되는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실천하였다. 그들은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학생신분이라는 것을 망각하지 않았다. 학생신분으로서 할수 있는 최상의 행동을 선택하며 그들은 후회없는 길을 걸어갔다.
영화는 끝이 났다. 기준과 희열은 보통의 학생이다. 조금 다른 특별한 것이 있다면 생각하고 결정되면 바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절차와 승인과 과정을 지킬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 취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을 우리에게 전달하려 한다. 청년경찰은 패기와 용기와 정의에 충만한 우리시대의 로망 캐릭터다.
그리스도인은 이 영화에서 무엇을 생각할까? 비록 학생신분이지만 눈앞에서 일어나는 불법현장을 그냥 지나치거나 외면하지 않고 생명의 위협속에서도 결코 굴복하지 않는 정신은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그로 인해서 1년유급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법앞에 무너지지 않았다. 그들은 결과와 달리 경찰의 위상을 세우는 역할을 하였다. 한사람의 시민으로서도 올바른 리더자의 길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스도인도 이와같은 행적이 있었다. 어떤 유대인이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났을 때 였다. 그때 제사장과 레위인이 이 길을 지나가게 되었지만 한결같이 외면하였다. 이 사람을 구한 것은 결국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들은 유대인과 관계가 나빴지만 관계보다 먼저 사람이었던 것이다. 경찰대 학생들도 119에 신고하고 모든 것을 경찰들에게 맡길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제사장과 레위인보다는 나은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고 정의를 선택하였다. 강도만난 사람을 살려준 사마리아 사람도 그 사람을 구했을 때, 그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지체하게 하고 불필요한 비용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리아 사람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삶을 선택하고 결정했다. 오늘 우리앞에도 이러한 상황들은 자주 발생한다. 그럴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외면부터 한다. 그러나 그때 그리스도인은 쉬운 길보다 사마리아 사람이 걸어갔던 발자취를 따라 가야할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반 학생들도 정의를 위해 생명을 거는데 우리에게는 정의와 공평이 더욱더 당연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