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 100m인 상지,50m인 중지,30m인 하지;이 셋으로 구성된 황지연못은 상지 남쪽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수굴이 있어 수원이 된다.가뭄이나 장마에도 변함 없는 수량은 1일 약 500톤이 용출되며,또한 수온은 15°C를 유지하는 해발 700m 태백시 주민들의 상수도 취수장이다.
고지도를 비롯한 동국여지승람.택리지 등 옛 문헌에 의하면.낙동강의 발원지로서 엿 신라와 가야의 번영을 이룩해 우리 민족과 숨결을 함께한 젖줄인 1300리의 낙동강으로 오늘도 쉼없이 흘러보내고 있다.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낙동강의 근원으로서 관아에서 제전을 두어 가물 때는 기우제를 올렸다.'
라고 기록된 이 못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많은 재산을 가진 황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았다.하지만 그는 돈쓰기에 인색했다.어느 봄날 황부자는 외양간에서 쇠똥을 쳐내고 있었는데;옷차림이 남루한 노승이 시주를 청했다.그는 시주를 거절했으나 노승은 물러나지 않고 계속 염불을 외며 시주를 청했다;이에 화가 난 황부자는 쇠똥을 한가래 퍼서 시주바랑에 넣어주며,
"이것이나 받아가라."
라고 했다.노승은 조금도 노하지 않고 공손히 인사하고 돌아갔다.때마침 아기를 업고 방아를 찧던 며느리가 이를 보고 부끄러히여겨 시아버지 몰래 자기가 찧던 쌀 한바가지를 퍼내어 노승에게 시주해드리며 시아버지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말했다.노승은 며느리에게 말하기를,
"이 집은 이미 운이 다하였으니 아기를 업고 속히 노승의 뒤를 따르시오.어떤 일이 일어나도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마시오."
라고 했다.이에 며느리는 바로 짐을 싸서 송이재를 넘어 구사리(지금의 도계읍) 산마루에 이르렀다.그런데 갑자기 뇌성벽력과 땅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에 깜작 놀라 노승의 당부를 잊고 그만 뒤를 돌아봤다. 순간 며느리는 그 자리에서 돌이되어버렸고,황부자 집은 땅밑으로 꺼져 내려가 간 곳 없고 집터는 큰 연못으로 변했다.
지금도 삼척 도계읍 구사리 산마루에는 황지쪽을 뒤돌아보며 아기를 업은 채 서 있는 돌미륵이 있다.함께 떠난 강아지도 돌이 되어 그 앞에 있다;그 때 집터는 지금의 상지이고,방아간 자리가 중지,화장실 터는 하지로 변했다고 한다.뇌성벽력과 함께 변해버린 연못(집터)에서 유래된 지명이 바로 황지다.
ㅡ참고ㅡ
■'황지연못에 대한 전설'은 '황부자 며느리상 밑 비문'참고.
■주소:강원도 태백시 황지연못길 12 (황지공원 황지연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