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부작(述而不作) 사유
오래전 교양서도 함께 쓰는 선배 시인에게 글쓰기 팁을 물었다.
“술이부작(述而不作).”
실력도 안 되는데 억지로 지으려고 하지 말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자기가 배운 것을 있는 그대로 쓰면 그게 창작이 된다는 것이다. 이 말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당연 공자다. 성인이라 부르기도 하고, 그 어떤 말이나 글보다 오래 영향을 미치는 공자의 말들은 모두 ‘술이부작’이라는 것이다. 즉 그 위대한 공자도 창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술이부작이 들어간 논어의 구절을 보면 이렇다.
“자왈: 술이부작, 신이호고, 절비어아로팽. 子曰: 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 것을 서술할 뿐 창작하지 않으며, 옛 것을 믿고 좋아하기를 우리 노팽에게 가만히 비교하노라.”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힘을 빼라는 것이다. 뭔가 그럴듯한 튀는 세계를 만드는 게 글쓰기가 아니라 덤덤하게 진술하듯이 나를 적극 변호하기 위해 진술하듯이 참회를 위해 진실하게 진술하듯이 용서를 구하기 위해 절절하게 진술하듯이 흐르는 물처럼 부는 바람처럼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술술 써나가면 그게 좋은 글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글들이 쌓이고 쌓이면 글에 대한 저항감이 줄어들고, 글쓰기가 삶으로 하나로 연결되면서 삶을 살듯이 글을 써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것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술(述)’과 새롭게 만드는 ‘작(作)’은 엄연히 다르다고,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고, 진짜 다르기도 하겠지만, 마음을 드러내는 글쓰기에서는 ‘작(作)’보다 ‘술(述)’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그래야 자연스럽고 억지스럽지 않게 보인다. 덧칠하는 수사를 버리고 민낯을 드러내면 더 감동적이라는 것이다.
글쓰기 강의 처음 하던 시절 ‘술이부작’을 많이 이야기했다. 그런데 왜 사라졌고, 다시 떠올랐을까? 뭔가 수작을 부리려는 글쓰기가 내 안에서 나오는 것 같아서다. 경계해야 한다.
글쓰기 최고의 팁이자 최고의 정신인 ‘술이부작’, 늘 중심에 두고 글을 써나가야겠다. 쉽지 않은 경구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