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4.08.10. 02:00
수정 : 2024.08.10.14:19.
이병호 남북교육연구소장·교육학 박사
2024한국통일교육학회 하계 세미나 자료집 : 한국통일교육학회 - 공지사항 (kare2023.kr)
공주교대 입지관 월은홀에서 예정된 2024 한국통일교육학회 하계 세미나는 계획대로 잘 진행되었다. 특히 1회 세미나에서 8명이 발표하고 이에 대한 토론을 하는 세미나를 일년에 4번씩이나 진행하는 김상무 회장(동국대 WISE 캠퍼스 교직과 교수)의 열정은 놀랍다. 발표자 섭외부터 원고 수집 및 편집, 인쇄, 프로그램 제작 등 거의 모든 일을 혼자 하다시피한다.
학회 회원이자 부회장으로서 이번 세미나를 참관하며 느낀 몇 가지 소견을 피력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교육개발원에 근무하며 통일교육연구에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는 한만길 전 한국교육개발원 석좌연구위원의 평화통일과 평화통일교육의 활성화에 대한 열정과 노력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퇴임한지 10여 년이 넘었으면서도 "통일교육 목표로서의 민족공동체는 유효한가?" 라는 논문 발표를 했는데, 한 박사는 남북한 사람들이 민족공동체로서의 통일을 열망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봤다. 이런 한 박사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한국민들 대다수는 최근 교육부와 통일부 그리고 기타 통계조사에 의하면 북한과의 통일을 대체로 원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남북의 두 국가, 두 정권은 자기 체제로의 통일을 지향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좀더 좁혀 보면 자신의 권력 지배가 남북의 통일보다 우선시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2024년 현재도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나에게 가장 큰 관심사였고 자료집의 논문을 다시 철저히 봐야할 발표는 현재 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상무 동국대 WISE 캠퍼스 교직과 교수의 "동독의 2국가론과 2민족론의 통일정책의 변화에 대한 서독 통일정책과 통일교육의 대응 연구이다. 10여 년 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다녔던 김 교수는 동독과 서독의 통일관 또는 통일정책이 어떻게 변했는지 시대별로 자세히 제시했다. 특히 동독도 2국가 2민족론을 주창했다고 했는데, 이는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은 그동안 그리고 2024년 현재 북한의 통일관 또는 민족관과도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은 통일을 했는데 한반도의 남과 북은 왜 통일을 못했냐라는 질문은 2024년 현재 한반도 상황에서 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45년간의 독일의 통일 과정과 노력은 분단 80여 년을 맞이하고 있는 우리에게 여전히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할 수 있다 하겠다.
김상무 교수의 발제문에서 주목되는 몇 내용을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이상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의 통일정책과 통일교육에 주는 시사점을 제시해본다. 이때 동·서독과 남·북한의 상황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먼저 남한의 통일정책과 관련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사민당(SPD)의 현실에 기초한 통일정책 추진과 기민당/(CDU)기사련(CSU)의 통일정책의 연속성을 들 수 있다. 서독의 보수세력 기민당/기사련은 가까운 미래에 통일되기 어렵다는 점을 알면서, 동독 불인정과 서독의 단독 대표권, 폴란드와 소련에 넘어간 옛 독일제국 영토에 대한 소유권, 그리고 자유 선거를 통한 통일을 주장했다. (그러나) 브란트의 사민당은 기민당/기사련의 정책은 현실을 외면하는 정책이라 비판했다. 그들은 엄연히 존재하는 동독을 인정하고 평화공존을 통해 인간적인 고통을 완화면서 민족적 소속감을 유지는 가운데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통일을 강조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 보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독의 단독 대표권과 소련과 폴란드 영토가 된 옛 동부 독일 지역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1982년 다시 정권을 잡은 기민당은 이전 사민당 정부와는 달리 동독 체제를 비판하는 등 규범적인 차이를 강조했다. 그렇지만 사민당의 동독과의 교류와 협력 정책을 지속하고 확대했다. 그 결과 동독 경제의 서독 의존성과 동독인들의 서독에 대한 기대와 환상의 증대가 독일통일을 가져오는 중요한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남한의 통일정책도 이런 점을 본받아야 한다. 정말 통일을 원한다면,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이전 정부의 성과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현실에 기반한 실용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서독의 신동방정책은 동·서독 두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국가적 통일보다 민족통일을 염두에 두었다. 그래서 양국 국민이 독일 민족이라는 공동소속감을 계속해서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았고 이를 위한 실질적인 정책들을 추진했다는 점이다. 동독은 1970년부터 사회주의 민족이라는 테제로 자본주의 민족인 서독과는 다르다면서 두 민족 두 국가로 동·서독의 분단이 완결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동독인들의 자결권이 실현된 것으로 정당화하면서, 서독으로부터의 압박에 대응하고 있다(KMK, 1978; 20). 이것은 독일의 통일을 호소하던 1960년대까지의 동독의 통일정책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이었다.
셋째, 동독인들이 강한 통일 의지를 갖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12항/ KMK, 1978: 22). 이에 대해 수업에서는 동독 통일정책의 주요 단계를 설명하고, 그 과정에서 차단과 분리 정책과 조약정책의 상관관계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동독인들의 정치적 의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주요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함을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동독 지도부의 정당성 문제의 핵심은 동독 주민들의 정치적 결정 과정에서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동독인들 상당수가 서독에 정치적·인도주의적 기대를 하고 있는 한, 이런 요구를 뿌리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KMK, 1978: 22- 23). 즉, 동독인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정치적·인도주의적 교류와 지원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동독인들을 정당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이뤄낸 성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13항/ KMK, 1978: 23-24). 동독은 서독보다 훨씬 어려웠던 패전 이후 재건과정을 거쳐 동구 공산권 최고의 생활 수준에 도달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그들은 이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더욱이 이를 사회주의 시스템과 연결하지 않고, 사회주의에도 불구하고 성취해냈다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지도부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동독의 실상에 대한 수업은 양국의 상황을 신중하게 고려하여 수행되어야 한다. 동독의 학문적, 기술적, 스포츠적 성과는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따라서 부유한 서독과 가난한 동독이라는 전형적인 모형은 오류라는 통찰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동독인들에 대해 부유한 사촌이 거만한 자세로 대하는 것은 무례하고 부적절하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KMK, 1978: 24). 눈에 띄는 것은 동독인들의 업적에 대한 인정, 부자 서독과 가난한 동독이라는 틀에 박힌 인식의 탈피, 동독의 실상을 이해하더라도 양국의 상황을 고려해서 수업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양국의 실상을 비교하더라도 전형화된 인식을 심화시키는 접근 방식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독의 인권 문제
서독 통일교육지침은 양국 비교에서 서독의 기본법을 가치 척도로 삼은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동독인들의 인권이 어느 정도 보장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모든 독일인의 인권보장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며 인도주의적 의무이다. 또한 헌법이 요구하는 중요한 국가적 목표이다(9항/ KMK, 1978; 17). 주목할만한 것은, 청소년들에게 인권이 누구에게나 보장된 소유물이 아니라 정치적 투쟁의 산물이고, 국가적·사회적 삶을 형성해나가면서 보장받아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높은 수준의 인권 의식 육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독은 이러한 보편적인 인권을 부정하고, 그 대신 이를 계급권으로 재정의함으로써 주민들의 인권개선 요구를 억압하고 있다(KMK, 1978: 20). 수업에서는 양국의 대립을 즉각적으로 해소할 수는 없지만, 갈등의 지양이 아니라 통제함으로서 긴장 완화가 동독의 인권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통행 협정에서 볼 수 있듯이, 동·서독 이해관계 조정의 구체적인 단계에서 인권 확대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KMK, 1978; 18). 즉, 동독의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서는 교류·협력하면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가운데 인권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효과적임을 밝히고 있다.(참고: KMK(1978). Die deutsche Frage im Unterricht. Beschluß der Kultusmonisterkonfe- renz vom 23. November 1978. München.
※ 위글 Die deutsche Frage im Unterricht. Beschluß der Kultusmonisterkonfe- renz vom 23. November 1978. München는 에서 KMK(1978)는 1978년 서독의 각주 교육부장관회의를, 1978년 11월 23일 서독 뮌헨에서 협의 결정한 "독일에 대한 수업(교육) 지침"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서독 교육에서는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서 "통일"이란 말을 쓸 수 없거나 쓰지 않았습니다. 위 글에 제시되는 KMK의 (수업) 조항을 보면 첫째, 한국과 같이 집권정부가 집권정부의 북한관, 통일관을 바탕으로 1987년 이후 남북 및 국제관계의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는 헌법에 기초하여 기계적으로 통일교육 지침을 제시하는 우리와 많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분단 서·동독 시민 및 정치인들의 높은 시민성과 의식이 나타납니다. 정치 그리고 삶의 목적과 목표를 눈 앞에 이익과 명성, 부유함과 편안함에 두지 않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병호
※ 김상무 교수 논문의 전문과 다른 발표자들의 논문은 붙임 파일을 참조하면 됩니다. 김교수 외 주목되는 논문으로 김상범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의 "만민법과 자유민주주의 통일교육", 김병연 공주교대 윤리교육과 교수의 "인지발달 이론이 통일교육 교수 학습에 주는 함의"를 추천하고, 통일선도대학이 되기 위해 "통일안보교육"이란 용어를 선정한 것으로 추정되는 박찬석 공주교대 윤리교육과 교수의 발제에 대한 안승대 객원교수의 솔직한 토론문이 주목됩니다.
이병호 남북교육연구소장·한국통일교육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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