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의 교회 개척의 기본 원칙과 방향
들어가는 말
“그리스도의 교회 개척의 기본 원칙과 방향”을 풀어 놓으면 ‘그리스도의 교회’, ‘개척의 기본 원칙’, ‘교회 개척의 방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글은 내용을 세밀하게 분석할 수만 있다면 어느 정도는 답이 보이는 주제다. 교인 수 늘리기, 예배당 건축, 개척 전도자의 능력 등, 양적 성장과 경영 능력에 대한 지침보다는 “그리스도의 교회라면 마땅히 이렇게 시작해야 한다.”라고 기본 원칙을 제시하는 글이고, 개척의 방법론이기보다는 개척의 기본자세를 논하는 글이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교회’와 ‘개척의 기본 원칙’은 성서를 좀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말할 수 있는 주제다. 아는 것과 사역의 현장에서 실제로 적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겠지만, 신약성서에는 교회와 관련한 기본 원칙이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 주제에서 “교회 개척의 방향”은 여간 어려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현실의 교회는 획일화되지 않은 역동성과 다양성, 지역과 민족, 시대와 역사에 따라 각기 다른 문화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기에 교회 개척의 방향은 상황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성서에서 가르치는 원칙과 다양성을 현실에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가에 따라 성패가 달려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해서는 다른 연구자들의 훌륭한 연구물이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그 주요 연구 자료들을 간략한 소개로 대체하고, 이 글에서는 주로 ‘교회 개척의 기본 원칙’과 ‘교회 개척의 방향’을 중심으로 기술하려고 한다.
1. 그리스도의 교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예고하신 마태복음 16:16-18의 말씀과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고 이미 존재하는 교회들을 지칭한 로마서 16:16의 말씀처럼 교회는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교회였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해 있으면서도 정작 만나서 대화하다 보면 우리가 왜 ‘그리스도의 교회’여야 하는지 모르는 형제들을 종종 만난다.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미주에 있는 책들을 정독할 것을 권하면서 여기서는 간략하게만 적는다.
2. 교회 개척의 기본 원칙
1) 교회 개척의 이유를 분명히 하라.
모든 일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는 법이다. 교회 개척도 다르지 않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개척하려는 사람은 “왜 내가 교회를 개척해야 하는지?” 에 대한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사람마다 그 이유가 조금씩은 다를 수 있겠지만 교회 개척은 개척자에게 사회적인 명성이나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그러한 목적이라면 차라리 다른 일을 하는 편이 더 유익하다. 사람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재능이 다 다르기 때문에 방법과 목적이 선하다면 다른 일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비신앙적이지는 않다.
그러면 교회 개척의 이유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반드시 신앙을 우선해야 한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4-15)”고 한 말씀처럼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겠다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는 도구로서 교회 개척의 사명을 이행한다면 그 시도는 아름답고 위대하다.
2) 교회의 주체(主體)와 정체(正體)을 잊지 말라.
얼마 전에 이웃한 지인과 대화하던 중 서울 소재의 어느 중대형교회의 아픈 이야기를 들었다. 교회가 나뉘어 분열된 지 10년이 지난 채 아직도 한 공간에서 따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이유는 단 하나, 교회의 전임 목회자와 후임 목회자의 주도권 문제다. 이런 불행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교회의 주체를 망각하기 때문이다.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제한다면 그 순간 교회 개척이나 목회는 상업적인 종교사업으로 전락하고 만다. 슬프게도 이러한 분열의 문제는 이 교회만이 아니다.
신약성서에는 ‘교회 개척’이라는 단어가 없다. 그렇다고 내용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 교회 ‘세움, 세우다.’ 같은 유사 용어는 몇 군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마태복음 16:18에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기록된 에베소서 4:12에서 ‘교회 세움’에 대한 말씀을 읽을 수 있다. ‘내 교회를 세우다’라는 말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다.’라는 두 구절 속에는 교회 개척의 기본 원칙이 들어 있다. 첫째, 교회를 개척하는 이들은 사람이지만 그 교회의 주체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점이다. 크든 작든 교회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개척자는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어느 정도의 위치에 이르면 마치 자신이 교회의 주인인 듯 착각한다. 이는 교회의 주체가 누구인지 망각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향한 ‘성도들의 신앙’이라는 반석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라고 하셨다. 이것이 교회의 정체성이다. 교회의 주체는 그리스도이시고, 교회의 정체는 성도들의 신앙이다. 개척자가 이 두 가지를 잊는다면 언제든지 다른 길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3) 교회의 사명에 충실하라.
교회는 분명하고 명확한 사명이 있는데, 참빛 392호(2022년 7-8월호)에 기고한 필자의 「교회의 사명 5+1」에서 요약한 글을 읽을 수 있다.
“참 그리스도의 교회라면 예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5(예배, 전도, 교육, 봉사, 교제) + 1(일치)의 사명’을 중단 없이 이행해야 한다. 신실한 교회는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교회’다. 성장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열정으로 ‘전도하는 교회’다. 튼튼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서 참 제자들을 키워내는 ‘교육하는 교회’다. 따뜻한 교회는 하나님과 이웃을 기쁨으로 섬기는 ‘봉사하는 교회’다. 행복한 교회는 위로는 하나님과 친교하고 아래로는 형제와 자매들의 사귐이 있는 ‘교제하는 교회’다. 그리고 주님의 몸된 거룩한 교회는 특정인의 인위적인 사상과 이권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하게 순종하여 ‘일치하는 교회’다. 이처럼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람들은 감동하게 된다.”
기왕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개척한(했)다면 최선을 다해 ‘교회의 5+1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개척 초기이기 때문에 힘이 약하여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핑계할 필요도 없다. 교회의 크기 또한 본질이 아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이가 다섯 달란트 남김이나, 두 달란트 받은 이가 두 달란트 남김을 수학으로 표현한다면 각각 5/5와 2/2인데 그 값은 모두 같은 수인 1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교회를 개척한다는 것은 교회의 5대 사명 외에 환원운동이라는 또 하나의 사명을 부여받았다는 뜻이다.
3. 그리스도의 교회 개척의 방향
1) 교회의 정체성과 지역의 상황을 조화롭게 조정하라.
그리스도의 교회는 지역사회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배고픈 이에게는 빵을, 헐벗은 이에게는 옷을, 억압이 있는 곳에서는 자유를, 외로운 이에게는 친구가 되어 주고, 슬픔에 잠긴 이에게는 위로를 주면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것은 초대교회부터 교회가 해 온 사역이다. 아니 예수께서 공생애를 사실 때부터 해 온 일이다.
한편 교회의 정체성과 지역의 상황이 배치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독교 초기에 교회는 로마 당국의 정책과 배치되고 지역사회의 오해로 어려움을 겪었다. 로마는 치하의 모든 백성에게 황제숭배를 명령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 명령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 유일 신앙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교회는 온갖 핍박과 고난을 겪었다. 또 당대의 지역사회는 그리스도인들을 식인종이라며 박해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주의 만찬’을 실제 사람의 살과 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이때 등장한 변증가들은 교회와 지역사회 사이의 이질 요소를 잘 설득하고 해명하여 교회를 올바로 이해하게 만드는 데 공헌하였다. 그런데 실상 변증가라는 직책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은 설교자이고 전도자들이었다. 변증가들은 주로 교회 밖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회를 설명했고, 설교자는 교회 안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다. 전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고 초월적이지만 교회는 세상에 존재한다. 그러기에 교회는 지역사회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살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지혜롭게 대처해 가야 한다.
2) 경천애인을 행하는 교회가 되게 하라.
경천애인(敬天愛人)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기록된 누가복음 10:27의 말씀, 즉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요약한 사자성어다. 필자는 이 말씀이야 말로 예수께서 우리에게 강조하신 신앙의 최고정점이라고 믿고 있다. 경천애인은 레위기 19:18과 신명기 6:5에 기록된 하나님의 명령을 조합한 말씀이다. 전도를 받은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교회에 들어온다. 사마리아 여인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물을 얻기 위해, 간음하다 잡혔던 여인은 그 죄 때문에, 병자들은 치유를 받기 위해,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찾았다. 또한 욥바의 많은 시민들은 다비다(=도르가)의 선행을 보고 예수께 나와 제자가 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동기들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복음 전파를 위한 수단이 되어도 무방하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행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찾아 ‘디아코니아(διακονία, 행 6:4)’, 즉 ‘섬김’의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교회는 인력과 재정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고, 그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예루살렘 교회가 스데반과 빌립을 포함한 일곱 일꾼을 선출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였다”(행 6:7) 마태복음 25:34-36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먹을 것을 드리고, 옷을 입히고, 병을 간호해 준 사람들을 칭찬하셨는데 이런 일들의 실체는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고 예수께서 해석해 주셨다. 이처럼 교회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이웃을 섬기는 방법을 다양하게 실천해왔다. 지역 교회는 상황에 맞는 방법을 선택하여 실행해 갈 수 있도록 처음부터 이러한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3) 환원운동의 특성을 잘 살려 존경받는 교회가 되게 하라.
환원운동의 핵심 단어는 ‘일치, 자유, 사랑’이다. “본질에는 일치를”, “의견에는 자유를”, “매사에는 사랑으로”라고 외치던 환원운동의 선각자들이 정한 방향 설정은 지금의 교회가 나아갈 길이며 성서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다. 솔직히 한국의 그리스도의 교회는 다른 대형교회에 비교할 수가 없다. 교세도 약하고, 교리 이론가도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큰 세력을 형성한 교회들에게 예속되거나 기죽을 이유는 아니다. 덩치는 커도 미약한 존재가 있고 키는 작아도 커다란 포부와 용기에 의해 승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대표적인 예가 된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개척하면서 거대한 다른 교파교회에 눌려 용기를 잃을 필요가 없다. 성서의 근거로 보아 교회의 이름은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교회’였고, 교회 일치를 위한 환원운동은 분명하고도 정당하기에 자부심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나무통 속에 기거하고 있는 걸인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찾아가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오?” 물었더니 “그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주시오.”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권력과 힘의 상징인 알렉산더 대왕이 머리 둘 곳조차 없는 디오게네스를 오히려 부러워하였다. 마찬가지다.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공동체들이 오히려 신실한 그리스도의 교회 개척자들을 부러워하게 해야 한다. 성서의 말씀 안에서 자부심을 갖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 개척자를 귀하게 사용하실 것이다.
나오는 말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교회 개척의 기본 원칙과 방향”을 살펴보았다. 교회 개척이라는 동일한 일을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교회 개척자들은 어느 부분에서든 기본자세와 방향이 분명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개척의 기본 원칙이 바로 서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 개척의 이유를 분명히 하고, 교회의 주체와 정체를 잊지 않고, 교회의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 개척의 방향을 바르게 설정하여 교회의 정체성과 지역의 상황을 조화롭게 조정하고, 경천애인을 행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또한 환원운동의 특성을 잘 살려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고 다른 교회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필자는 목회 34년 차에 그리스도의 교회 개척을 시작하였는데 어느새 5년이 넘었다. 외형으로 보았을 때 너무나 미미해서 우선 개척을 동의해 준 가족들에게 미안할 때가 많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더욱 죄송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를 개척하는 전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원칙과 방향을 잊거나 이탈한 적은 없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고 기록한 성서의 가르침처럼 묵묵히 사명을 가슴에 담고 땀 흘려 걸어가면 주께서 은혜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해 주실 것을 굳게 믿는다.
임학균/ 서울 등대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으며, 강서대학교에서 실천신학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