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외
[ 韓無畏 ]
이칭별칭
호 용현진인(軵玄眞人), 득양자(得陽子)
1517년(중종 12) ~ 1610년(광해군 2)
성격
도교인, 도사(道士)
출신지
충청북도 청주시
저서(작품)
해동전도록
조선시대 『해동전도록』을 저술한 도교인. 도사(道士).
내용
청주 출생. 호는 용현진인(軵玄眞人)·득양자(得陽子). 사대부가의 선비로 18세 때 청주의 관기(官妓)와 가까이 지내다가 그 남편을 죽이고 관서(關西)의 영변으로 도피하였다.
거기서 희천교생(熙川校生) 곽치허(郭致虛)를 만나 연단비방(鍊丹祕方)을 배워 득도하였다. 『해동전도록(海東傳道錄)』에 의하면 그 연단계보는 중국의 전진교조(全眞敎祖) 종리권(鍾離權)으로부터 승(僧) 자혜(慈惠)·명법(明法)과 권청(權淸)·김시습(金時習)·윤군평(尹君平)·곽치허·한무외로 상전(相傳)되었다고 한다.
순안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한편, 허균(許筠)과 교제하여 신선되는 연단법을 전해주었다. 80평생에 병을 앓은 적이 없으며 눈동자가 빛나고 수염과 머리카락이 칠흑같이 검었다.
순안에서 좌화(坐化)하여 장사지냈는데, 5, 6년 뒤 그와 친한 사람이 묘향산에 가니 안색이 조금도 늙지 않은 채로 있었으며, 일설에는 오대산에서 연단해화(鍊丹解化)하였다고도 한다. 죽기 직전에 지은 『해동전도록』이 있어 우리나라 연단수련의 계보와 그 요체를 전해주고 있다.
참고문헌
『해동전도록(海東傳道錄)에 나타난 도교사상(道敎思想)』(김낙필, 『한국종교』9, 1984)
『한국도교사상연구(韓國道敎思想硏究)』(차주환,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1978)
「조선시대 내단 구결서」(김윤경, 『동양철학연구』7, 2012)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한무외 [韓無畏]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韓無畏
大凡爲仙之道 勿作陰謀秘計 勿刑殺無辜
勿斯誣人 勿營財
見窮困人勿惜財
常淸淨 勿近女色玩好.
경성당(敬聖堂) 일선(一禪)
1488년(성종 19)~1568년(선조 1)
부용(芙蓉) 영관(靈觀)
1485년(성종 16)~1572년(선조 1)
청허당(淸虛堂) 휴정(休靜)
1520년(중종 15) 3월~1604년(선조37) 1월
주천유고(舟川遺稿) 강유선(康惟善)생년1520년(중종 15)몰년1549년(명종 4)자원숙(元叔)호명암(明庵), 주천(舟川)본관신천(信川)특기사항탄수(灘叟) 이연경(李延慶)의 문인
주천유고(舟川遺稿)
강유선(康惟善) 1607년(선조 40)刊
1권 1책. 목판본. 1607년(선조 40) 김정남(金井南)·이심(李愖)·한준겸(韓浚謙)과 묘경(妙敬)·홍정(弘正)·나운(羅雲) 등 승려 9인이 편집, 간행하였다. 서문과 발문은 없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萬歷三十五年
宣川郡開刊
僧妙敬
僧弘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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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집(五峯集) 이호민(李好閔)생년1553년(명종 8)몰년1634년(인조 12)자효언(孝彥)호오봉(五峯), 남곽(南郭), 수와(睡窩)본관연안(延安)시호문희(文僖)특기사항유희춘(柳希春)의 문인.
五峯先生集卷之七 / 序 / 舟川集序
某少時於朋輩劄傳文字間。見有太學生請復趙靜菴官爵及論濁葬兩䟽。每整冠而讀之。樂其言論風槩。而不知誰某筆也。常祝已作文章如斯足矣。其步驟豪奕俊邁。必人年少時作。其格度有出壑昻霄之氣。其所成就。終必爲萬乘之器矣。洎余長而與今全尹康君友。君以其先君遺稿示之。向之兩䟽。皆在其中。始知爲舟川筆也。則舟川糸出信川之康。是某大夫人外家同出。而且居同善山。某自髫齕之年。聞先生風盖熟矣。及知兩䟽爲先生筆。則某之祝已如斯者。爲不失其宗。而先生作兩䟽。當在二十五六年間。則嘗意人年少時作者。亦不失矣。而先生生三十而死非其命。其不得爲萬乘之器。則誠有所不及矣。稿中所收拾詩,文,賦,辭,論,記,書,銘,序,說。緫三十餘篇。是其所作。視其年已多。而其失於禍患顚倒之間者。想又多矣。其格度已蒼然老成。倘假之年而盡其局量。則不特文章成萬乘之器。而就蘇齋所爲碣銘幷序所錄者而觀之。則先生之學。得於灘叟之門。未弱冠遊太學。已爲宋圭菴所重。則其所學。絡亦未必不爲海東斯文之領袖。嗚呼惜哉。噫。天生一時人才。爲了一時事。旣生之。宜護持扶植。以遂始生之意。而從而摧折之椓喪之。又若偏於斬絶者。何意歟。豈大地氣漓。淸明純粹之氣。爲妖孼乖戾之所揉鑠。得其氣之淸者。或不得其位若壽若祿。而脩短得喪之不倫耶。夫然則顔回之夭。子路之醢。有一於斯。已足以搥後人之胷矣。又兼以夭且醢。而不但位祿之不暇言。則何其禍之偏且酷耶。抑禍之不至此。則使後人哀之惜之。不能至此之深耶云爾。則非惟毒舟川也酷。從而毒後人也酷矣。百歲在前。萬歲在後。蘇翁所謂千搥萬搥者。當不止於斯而已。全尹公名復誠。始以公冤擧。學行著稱。由銀臺。尹完山。以甘盤功。進階嘉善。令聞大播。天之與其後者。終不誣矣。又將其平日所著作者。入梓而壽其傳。使後之誦舟川者與哀舟川者同其久。世之人有朝死而夕不知其名者。則舟川其不夭矣。全尹公將印本一帙寄示。某受而嗚咽。讀不能卒業。題此以歸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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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絡亦未必不爲海東斯文之領袖->종終
*원문이미지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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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천유고(舟川遺稿) 강유선(康惟善)생년1520년(중종 15)몰년1549년(명종 4)자원숙(元叔)호명암(明庵), 주천(舟川)본관신천(信川)특기사항탄수(灘叟) 이연경(李延慶)의 문인
舟川遺稿 / 附錄 / 康上舍碣銘[蘇齋撰] *盧守愼 1515 1590 光州 寡悔 穌齋, 伊齋, 十靑亭, 暗室, 茹芝老人 文懿, 文簡
嗚呼。東國上舍生信川康元叔。幼而才氣超拔。宇量沈毅。作止語默。若合規度。識者咸指爲神兒。八歲。始讀書。已通文義。比十餘歲。能屬文。操紙立就。丁酉。選司馬。戊戌。甥于灘叟先生門。先生見而器之。循循提誨。聞儒者向方。不專爲擧子業。辛丑。服斬。廬開寧。葬祭以禮。泣血柴立。人稱善居喪。自是行益修。學益進。朋遊益附。華問播一時。時圭庵宋子爲祭酒。每講罷。邀君及一二聞人。評論義理。君之取重諸老。蓋如此。而禍亦始此云。嗚呼。當仁廟在位。多士拭目。以爲至治可期。於是。大學生上章。請復靜庵官爵。以明士趨。皆君筆也。忠憤激切。上動天心。批曰。汝等居首善之地。好古而論時。疏章三上。辭懇義直。所學之正。何以加此。我先王敎育之澤。於此亦可見矣。雖然。言是非則可矣。期於定是非。則自有朝廷。非諸生事也。汝等姑退而更思之。未幾。上賓而國空虛矣。君乃奉母南歸。庶自肆于山水間。以迸餘齡。學正黃俊良。受權臣旨。言君嘗在泮。好爲異論。將文致焉。賴有人力救得免。猶停赴擧。是冬。爲公西之志。旣盡誠信矣。仍擬築室。則爲親故止之而止。嗚呼。己酉。李洪男在配。上其弟不軌以媒進。乃大殺中原人。遂及君。蓋以彼輩心行悖妄。相避成隙。至是洪胤自首。且誣君草檄。訊之極其慘毒。而言貌如平日。但曰白日在上。寧有是哉。推官撫然變色。竟以書訣兄弟曰。平生忠孝自許。反負不忠名。泉下之目。殆不暝矣。伏願兄及弟。篤信好學。其不變不亂。有如是者。豈非天得學力。有以致之。嗚呼。君之立志遠矣。制行高矣。旣孝旣友。人無間然矣。顧性方嚴。疾惡如讐。不直視。非其人。未嘗借以辭色。故雖爲君子所敬。而人之忌之者亦衆。喜古訓。不一日去手。見忠臣義士不得其死者。輒嗚咽流涕。掩卷而起。爲文章。務出於奇。淸新發越。無世俗氣。嗚呼。以君淸粹明正。能少假之年。異日所造。豈可涯涘。而僅而立而死非命。嗚呼慟哉。康氏于麗。族大而繁。簪組相望。國朝有諱允釐。守咸陽。是君五世祖。高祖諱居禮。令盈德。曾祖諱惕。彰信校尉。祖諱仲珍。承文院判校。從舅佔畢齋學。大有令名。考諱顗。以武發身。爲昌原都護府使。聘東萊鄭氏。獻納士傑女。正德庚辰生君。君諱惟善。於倫爲第二。有二子。其一復誠。倜儻嗜學。中己卯進士。錄冤死人子。除禧陵參奉。謝恩便去。累除終不就。生男女幼。其一適忠義衛李用中。栗峯察訪。生男希天。業儒。女二幼。嗚呼。天將以是爲施耶。守愼同門婭也。常欲籲天而無從。按復誠狀。爲之略加點綴。而繼之銘。以洩吾哀曰。奚日之怪。而肆猘呀。影有奚異。乃中以沙。嗚呼叔也。遭世罔極。其悲奈何。天欲其死。何始生之耶。天欲其生。何遽死之耶。愛之篤也何意。惡之酷也何理。松柏之毅。瑚璉之貴。學問之事。經濟之志。天錫之。天㧻之。吾其問諸何地。每一念至。但仰而搥胸。復使後人搥之。至于百搥千搥萬搥而無已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