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호엔슈타우펜 왕가의 마지막 후손이 죽고 나자 더 큰 혼란에 빠졌다. 저마다 다른 사람을 왕으로 뽑으려 해서 그 누구도 왕이 될수 없었다. 나라가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합스부르크 가문 독일인들이 지혜와 의로움을 겸비한 군주를 꿈꾸는 동안(시칠리아에 머물던 프리드리히2세를 염두에 두고 프리드리히의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를 그리며) 마침내 세상의 질서를 다시 잡을 기사가 등장 (그의 성체는 합스부르크였고 그의 이름은 루돌프, 이 기사는 루돌프 폰 합스부르크라 불렸다)
* 영주들이 루돌프를 왕으로 선출했다 (이는 그가 가난하고 이름없는 기사이기에 자신들에 대항하지 못하리라 기대하고)
오스트리아
1282년
* 루돌프 폰 합스부르크는 가장 반항적인 영주 보헤미아의 오토카르와 전쟁을 벌여 승리를 거두었으며 그의 영지 일부를 몰수. 1282년 친자식들에게 봉토로 하사했다. 이지역이 오늘날이 오스트리아이다 (루돌프는 이런 방식으로 스위스의 성채 이름을 딴 합스부르크 가문에 거대한 권력을 마련해주었다. 또한 그의 가족들은 친척에게 봉토를 하사하거나 혼인 또는 상속의 방법으로 권력을 더욱 증대시켜 나갔다. 그 결과 합스부르크가는 유럽에서 가장 명망높고 영향력이 큰 영주 가문으로 단숨에 부상했다.)
* 이들은 독일의 왕이자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 가문이었지만 독일보다는 거대한 가족 영지 오스트리아에 더 자주 머물렀다. 그로인해 독일에서는 공작이나 주교, 백작같은 봉건 영주들이 각자의 영토에서 무제한의 권력을 휘둘렀다. 진정한 기사시대는 호엔슈타우펜 왕가의 종말과 함께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