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난수기 -
극적사투18시
( 1989.6.4 현충일 3박4일 연휴를 이용 한바다에진입 )
서양화가 오 세 효
진 초록빛 사이로 황금색으로 무르익은 보리가
물결치듯 능선을 이룰 때 명성호를 타고 섬과섬 사이로
푸른 파도를 가르면서 스케치와 낚시여행을 떠났는데. |
해마다 6월이 오면 진 초록빛 사이로 황금색으로 무르익은 보리가 물결치듯 능선을 이룰 때 명성호를 타고 섬과 섬 사이로 푸른 파도를 가르면서 스케치와 낚시 여행을 떠나는 게 나의 연중 가장 보람을 만끽하는 날이다. 이날따라 3박 4일의 연가에다 일기예보처럼 날씨도 청명한데다 초여름의 진풍경들이 신록에 반영 되어 더욱 제각기 발산되는 형형색색의 율동미를 이루며 더러는 멀리수평선 너머로 안개에 가리어져 그리자일유 그림처럼 잿빛이 아닌 순진무구한 환상의 코발트빛으로 번져 지고 있다.
□ 저 멀리 매물도가 보이는 유월의 섬들을 지나다
그 순간을 놓칠새라 한순간 심취해있던 감정을 문득 캔버스에 온통 칠해 보고픈 충동을 억제할 수 없어 대자연의 신비에 얽혀있는 그들의 흔적들을 송두리째 빗발치듯 하얀 캔바스에 칠하고 던지고 마치 감당 할 수 없이 벅찬 형태의 교향악이 작열하듯 한 순간이 흐르는 동안 뱃고동 소리마저 푸른 파도에 부서지듯 진동 되어갔다. 마침 언제부터였는지 갑판저쪽 구석진 곳에서 나름대로 스케치에 열을 올리고 있던 김선생이 커피를 끓여서 내밀었다. 낚시광인 황선생이 먼저 받아지고 한 모금 꿀꺽 마시는 동안 나는 입에 대다말고 뱃전에 부딪혀오는 하얀 파도 거품에 내밀어 한 방울 섞어서 마치 도취나 된 듯 커피를 음미하고 있을 때 황선생은 콜라랑 비스켓을 마구 건네주곤 했다
좌사리 무인고도 들의 웅위한 모습들 장덕이 암초같은 섬도 보인다.
매물도 보다 더 남쪽 동해남부 좌사리 최남단 한바다 무인고도
항상 파도가 높았지만 오늘은 무척 잔잔한 편이어서
좌사리로 목적지를 정했다가 갑자기 폭풍 때는 위험하다는
조그마한 높이 약 10m가량 되는 검은 암초로 형성된
검둥여에 내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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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이기에 멋을 가늠하던 차에 벌써 욕지항에 도착하게
되었다.
분주히 장비를 챙겨 소형 선박에 싣고 드디어 부푼 꿈을 안고 망망대해를 향해 계속 남으로 좌사리 국도 매물도 갈도가 한눈에 보이는 곳으로 항해의 뱃길을 돌렸다.
보통 때 먼 바다는 항상 파도가 높았지만 오늘은 무척 잔잔한 편이어서 좌사리를 목적지로 정했다가 갑자기 폭풍 때는 위험하다는 조그마한 높이 약 10m가량 되는 검은 암초로 형성
된 검둥여에 내리기로 했다.
□ 대형어들이 자주 출몰하는 검둥여의 포인트를 노리다.
이곳은 온갖 해조류가 풍부하고 돌돔 참돔 농어 대형 혹돔 다금바리 등 주로 괴물 같은 대형어들 이 서식하는 곳이기도 하다. 도착하자마자 아름다운 절경에 도취된 김선생은 캔바스부터 펼치고는 무인도들의 마치 환상의 무지개빛에 감싸인 분위기를 마구 정신 나간 사람처럼 스케치에 열중하고 황선생은 낚시장비를 재빨리 펼쳐들고는 벌써 제법 큰 고기를 낚아 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좀 안전한 곳을 찾아 암벽 옆으로 텐트를 설치하고 하겐을 치고는 밧줄을 단단히 묶어 약간의 폭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보조끈을 메 달았다.
한 시간 동안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암벽의 안전도와 지형의 형태와 피신할 수 있는 만반의 대비책을 연구 검토하고 어두운 밤이라도 충분히 이동 가능하도록 자일과 하겐을 설치해 놓았다. 우리 일행이 있는 암벽의 높이는 약 8m이고 우리보다 하루 앞서 도착한 일행 4명이 저쪽 10m 높이의 암벽에 설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체로 안전한 요철부가 있는 곳이었다. 황선생이 고기를 제법 많이 잡았기 때문에 횟감은 충분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다음 늦게나마 낚시 장비를 펼쳤다.
원래 나는 초대형 괴물고기들만 노리는 성품이라서 다른 잡고기는 신경을 쓰지 않기에 마리수가 적었다.
왕볼락 망사에다 60㎝되는 혹돔 한 마리를 올려놓고는 밤12시까지 참돔을 노렸지만 별 조과 없이 지나고 말았다.
6월4일 먼동이 틀 무렵에 일어나 다시 참돔을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었다. 마지못해 게를 잡아 돌돔바늘 18호에 케브랏줄 6호를 달아 바로 발밑 수심 15m 아래로 넣었는데 받침대에 묶어 놓고 햇살이 떠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느라 한눈파는 사이에 갑자기 릴대와 받침대에 묶어 놓은 것이 모조리 우지직 하고 빠져 3초 이내에 바다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들고 말았다. 아마도 1m나 되는 고기가 아닌가 싶었다. 하도 어처구니없어 앉아 있다가 다시 초대형릴에다 14호 줄에 역시 게를 달아 재차 시도한 끝에 약30분이 지나자 사정없이 대형릴이 처박히면서 스폴이 순식간에 다 풀어져 버리고 하겐에 박아둔 노끈과 함께 받침대하며 모조리 뚜둑 끊어지면서 도저히 내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여서 그냥 장대를 놓아버렸다. 작년 이맘 때 백도에서 80㎝나 되는 참돔도 걸어 올린 적이 있는데 이번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을 정도로 가슴이 뛰고 공포감마저 감도는 이상한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몇 시간을 멍하니 지내다가 마음을 잡고 그림이나 그리자 싶어 붓을 들고 스케치를 해 봤으나 만족한 작품이 나오질 않았다. 싱싱한 회를 곁들여 저녁 식사를 충분히 하고 휴식하는 동안 일기예보를 들었다. 6시에 서해바다 폭풍주의보가 내려지고 남해 동부지역 내일 약간의 비정도 후 개임, 오늘은 북서풍
에다 남서풍 약간 정도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남해 동부지역은 안심이라고 판단하고 밤낚시에 임하기로 했다.
밤8시경에 일기예보 상에는 북서풍이라는데 갑자기 남풍이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잔잔했던 바다가 노도와 같이 일렁
이기 시작하면서 1시간여 만에 폭풍으로 바뀌면서 휘몰아친
파도가 텐트 쪽으로 밀어 닥치기 시작했다. |
그런데 밤 8시경에 일기 예보 상에는 북서풍이라는데 갑자기 남풍이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잔잔했던 바다가 노도와 같이 일렁이기 시작하면서 1시간여 만에 폭풍우로 바뀌면서 휘 몰
아친 파도가 텐트 쪽으로 밀어 닥치기 시작했다. 황급히 텐트를 꼭대기 쪽으로 이동 하고 다시 자일로 하겐을 바위에 단단히 묶고 상황을 살펴보니 아무래도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이미 암초와 암초 사이는 거센 파도에 점령당했고 더욱 밤이라서 다른 안전한 암벽으로는 이동이 불가능했다. 쏟아 내리는 폭우와 더불어 태풍 같은 바람을 안고 밀려오고 파도는 순식간에 텐트를 쓸어버리고 말았다. 가까스로 자일을 몸에 묶고 하겐과 바위틈에 줄을 단단히 엮어 매고 쓰러진 텐트를 몸에 감아 파도를 맞기로 했으나 그것마저도 힘겨워 바위틈에 머리를 대고 엎드려 직격탄처럼 넘어오는 파도의 중력을 막아 내기로 했다.
밤 11시부터였다. 점점 파도는 중력을 가해오면서 엎드린 등 너머로 1m나 되는 두께의 물이 박차고 나갔다. 완전히 물 속
으로 잠겨버린 셈인데 다행히 30초 만에 한 번씩 낮아지는 틈을 이용해서 호흡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장비와 카메라, 라디오, 화구, 배낭일체는 모조리 떠내려가 버렸다.
해일에잠겨 암벽에 매달려 있는 모습 12시가 지나서는 30초에 한번씩 낮아지던 것이 이젠 1분정도에 한번 낮아지는 격이 되고 보니 도저히 호흡을 맞출 수가 없었다. 체력과 체온은 떨어지고 손발이 저려오고 그런 차중에 졸리기 시작했고 잠이 와서 졸리는 게 아니고 호흡곤란과 체온 저하로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여서 겁이 난다든지 두려움이란 아예 없고 오직 ‘버틸 때까지 버텨보면 죽어도 밧줄에는 메 달려 있겠지’ 하는 마음뿐이었다. 옆 사람과 같이 죽더라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수 밖에 없다는 위안 때문인지 밤새도록 머리를 올렸다 내렸다 호흡하는 데 부지런했으며 그 덕에 격렬한 운동 탓인지 사지가 저려오는 것쯤은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새벽 2시10분이 흘렀을 때부터 30초만에 한번씩 낮아지는 파도에 호흡하는 데 휠씬 쉬워진 셈이 되었다. 무릎과 팔꿈치는 온통 찍히고 상처투성이였고 얼마나 밧줄을 손으로 꼭 쥐어 잡았는지 손바닥은 불어 터졌다. 드디어 날이 밝아왔다. 저 쪽 암초에서 신호가 왔으나 대답할 겨를도 없고 다만 엎드렸다 숙였다 할 수 밖에 없었다.
6월5일 아침 7시경 조금 더 낮아져 사람이 일어설 수 있을 정도라서 주위를 살폈으나 도저히 탈출할 사정이 못 되었다.
그때서야 바다를 쳐다보니 보통 폭풍주의보 때는 먼 바다 4-5m인데 이번의 경우는 파도라기 보단 아주 극심한 폭풍우를 동반한 바다 전체가 뒤집혀진 10-15m 높이의 암초 정도는 어김없이 삼켜 버릴 수밖에 없었다. 8시부터 또 다시 거세지다가 11시부터 조금 수그러지고 오후 2시가 되니 겨우 조금 낮아지기 시작했다. 3시30분에 상당히 낮아진 상태라서 그 길로 일어나서 탈출을 시도했다.
암초와 암초 사이에 약7m나 되는 파도가 덮치면서 5초정도의 간격을 두고 낮아지는 틈을 이용해서 필사의 탈출을 시도했다. 다행히 성공하여 옆의 4사람이 피신해 있는 곳으로 합세하였다. 그때부터 추위와 허기와 갈증 때문에 실신하고 말았다. 다행히 그들 중에 가스랜턴이 있어서 열을 올리고 비닐로 몸을 에워싸서 응급처치를 계속 시도한 결과 큰 사고는 없어 견뎌내면서 남은 식량이라고는 생라면 1개와 김 몇 조각을 3사람이 나눠먹고 갈증과 허기를 이겨 내기로 했다.
물론 이쪽 사람들도 밤새 조난당하여 텐트고 뭐고 아무 것도 진닌 게 없었다. 4시30분에 폭풍이 남서풍으로 바뀌면서 파도가 상당히 낮아지는 틈을 이용해서 배가 두 척 도착했으나 도저히 접안이 어려워 큰 배에서 밧줄을 던져 몸을 묶어 파도 속으로 몸을 날려서 끌어 올리는 방법으로 한 사람씩 구조 되었다.
돌아오는 동안 들리는 소식은 매물도 등에서 열두 명 실종 되고 다른 섬에서도 등록되지 않고 진입한 사람들이 약 30명이상 실종되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로부터 바다가 너무 무서워서 다시는 나가지 않을려고 결심을 했는데 이상하게 자신도 모르게 체 1주일도 못되어서 또다시 한바다로 재 도전 하기 되엇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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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미있기도 하고요 신비스럽기도 하고요 즐감합니다! 그림도 멋있고요...
18년전 추억을 한페이지를 꺼내놓으셨네요..사진과 그림을 함께대하니 한층 실감납니다..페이지를 엮어모아모아 책으로 발간하심도 좋을듯 한데요ㅎㅎ..암튼 여러모로 대단하십니다^^
그때 그 사건 ... 아는 분 몇몇도 휩쓸렸다지요... 아무튼 유월은 알고 모르는 모든이에게 삼가 명복을 빕니다.
여러 선생님들 격려 고맙습니다. 캐캐묵은 사연이나 함께했던 고인들이 생각 나서 올려보았읍니다.
꼬~ 옥 소설책을 읽는것 같아요.....선생님...^^...앞으로도 종종...기억속의 여행 부탹드립니다....
아! 이번 6월사건인줄알고 간이조마조마 살아계시니 글을쓰셨겠지 위안하며 읽었는데 옛추억.... 선생님도 우리회의보물입니다
참 오랜만에 오셨군요. 당시에 같은 직장 벗들이한꺼번에 3명을 잃고나니 지금도 오늘처럼 느껴저요!그때가 6월5일 저녁 11시 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