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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야만인의 출현 이때 사당 밖에서 고함소리가 크게 진동했다. 수십 명이 일제히 고함을 질러대는데 짐승들이 울부짖는 것 같기도 하고 황소가 울부짖는 것 같 기도 했다. 도대체 무엇이라고 떠들어대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 가는 속으로 겁이 더럭 나서 위소보 쪽으로 몸을 기대어 왔다. 위소보는 팔을 뻗쳐 그녀를 안으며 나직이 말했다. [두려워할 것 없소. 아무래도 한 떼의 서장 라마들이 공격을 해온 것 같소.] 아가는 말했다. [이걸 어쩌죠?] 위소보는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살그머니 신감 뒤로 가서 숨었다. 벌안 간 불빚이 눈부시게 비춰지는 가운데 수십 명이 우르르 사당으로 몰려 들어왔다. 모두 횃불과 무기를 들고 있었다. 위소보와 아가는 그 모양을 바라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사람들은 얼굴에 알록달록한 칠을 했고 머리에는 새의 깃털을 꽂고 있었다. 그리고 상반신은 벌거숭이인데 허리께에는 짐승의 가죽을 두르 고 있었으며 가슴팍에도 꽃무늬를 문신해 넣고 있었다. 한 떼의 미개인들이었다. 아가는 이 한 떼의 오랑캐들이 사람 같지 않고 도깨비 같지도 않은데 하나같이 얼굴이 흉칙한 것을 보고 더욱더 무서워 위소보의 품속에 파 고들어 바들바들 떨기만 했다. 오랑캐들은 버럭버럭 고함을 질러댔다. 앞장 선 사람이 호통을 내질렀 다. [한나라 사람! 나쁘다. 모두 죽여야 한다. 오랑캐, 좋은 사람이다. 살 인을 하여야 한다. 고화토로 아파사리!] 그러자 오랑캐들은 오랑캐 말로 소리내어 크게 부르짖었다. 오랑캐 말들은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오립신은 운남성 오랑 캐의 말로 입을 열었다. [우리는 한나라 사람으로 좋은 사람이다. 서로 죽이지 않도록 하자.] 오랑캐의 수령은 말했다. [한나라 사람 좋지 않다. 모두 죽여라! 고화토로 아파사리!] 오랑캐들은 일제히 부르짖었다. [고화토로! 아파사리!] 그들은 칼과 창을 들고 공격을 해왔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무기를 들고 맞아 싸웠다. 수합을 싸우고 나서 오립신 등은 하나같이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유심 히 보니 오랑캐들은 무예에 정통하고 있었으며 무기로서 펼치는 초식도 매우 규칙적이어서 한편으로는 공격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수비를 하는 데 모두 법도에 들어맞았으며 결코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고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었다. 그들과 다시 몇 초를 더 교환하자 위소보와 아가도 알아볼 수가 있었 다. 오립신은 즉시 싸우면서 부르짖었다. [모두 조심해라! 이 오랑캐들은 우리 한나라의 무공에 익숙하다. 결코 경시할 수 없다!] 우두머리 오랑캐가 부르짖었다. [한나라 사람이 사람을 잘 죽이는데, 오랑캐도 살인을 할 줄 안다. 한 나라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화토로 아파사리!] 오랑캐들은 사람 수가 많았고 또 무공도 무척 뛰어난 편이었다. 목왕부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일 대 삼이나 혹은 일 대 사의 싸움을 벌 여야 했다. 순식간에 잇따라 위기를 맞았다. 오립신은 칼을 휘둘러 그 우두머리 오랑캐와 매서운 싸움을 벌였는데 놀랍게 털끝만치도 유리한 싸움을 펼칠 수가 없어 싸우면 싸울수록 놀 라게 되었다. 별안간 아악, 하는 고함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두 명의 제자가 상 처를 입고 쓰러졌다. 잠시 후 오표 역시 엽차에 다리를 찔려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자 세 명의 오랑캐들이 달려들어 그를 사로잡고 말았다. 얼마 되지 않아 십여 명의 목왕부 사람은 모조리 쓰러졌다. 정극상은 이미 온몸에 상처를 입고 있었는데 약간 저항하다가 사로잡혔 다. 오랑캐들은 몸에 지니고 있던 소의 힘줄로 만든 줄로 사람들을 묶었다. 오랑캐의 두목은 펄쩍펄쩍 뛰면서 큰소리로 오랑캐 말을 지껄이면서 오 립신과 싸움을 벌였다. 오립신은 속으로 야단났다고 생각했다. 자기 혼자 도망을 치자니 위소보와 다른 제자가 걱정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있는 힘을 다해서 매섭게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 우두머리를 제압해서 오랑캐들을 협박해서 사람을 구출할 결심 이었다. 벌안간 그 우두머리는 오립신의 머리를 겨냥하여 칼을 내려쳤는데 오립 신도 칼을 들어 이를 막았다. 창, 하는 소리와 함께 오립신은 손과 팔 이 저려 오는 것을 느꼈다. 별안간 등 뒤에서 하나의 막대기가 후려쳐 오는지라 그는 급히 몸을 날 려 피하려고 했다. 그 순간 그 오랑캐 우두머리는 칼을 홱 뒤짚더니 어느덧 그의 목에 칼 을 갗다대고 부르짖었다. [한나라 사람 졌다. 오랑캐 사람 지지 않았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오랑캐 사람은 정말 아둔하군. 이겼다는 말을 할 줄 몰라서 그저 지지 않았다는 말만 하는구나.) 오립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길게 탄식을 하고 나서 칼을 던지고 포박 을 받았다. 오랑캐들은 횃불을 들고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위소보는 이제 몸을 숨겨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아가를 데리고 밖으로 달려나오며 부르짖었다. [오랑캐 좋은 사람, 우리 두 사람 모두 오랑캐다. 고화토로 아파사리!] 우두머리는 손을 뻗쳐서 아가의 뒷덜미를 잡았다. 다른 세 명의 오랑캐 가 달려들어 위소보를 얼싸안았다. 위소보는 그 바람에 겨우 오랑캐 말을 반쯤 흉내내다가 입을 다물지 않 을 수 없었다. 오랑캐 두목은 그를 발견하더니 갑자기 얼굴빛이 달라졌다. 그리고 손 을 뻗쳐서는 그를 얼싸안으며 말했다. [희호아포(希呼阿布), 기리온등(奇里溫登).] 그는 위소보를 안고 사당을 나왔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아가를 향해 부르짖었다. [낭자, 이 오랑캐가 나를 죽이려 하고 있소. 그대는 나를 위해 수절을 하면서 개가하지 마시오. 더군다나 저..]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는 오랑캐에게 안겨서는 이미 대문 밖 을 나서고 있었다. 오랑캐의 우두머리는 십여 장 밖으로 달려가더니 위소보를 내려놓고 말 했다. [계 공공, 계 공공이 어떻게 이곳에 계시오?] 그 어조에는 놀라고 기뻐하는 빚이 서려 있었다. 위소보는 놀람과 기쁨에 얽혀서 말했다. [그대는.. 그대라는 오랑캐는 나를 아시오?] 그 사람은 웃었다. [소인은 양일지입니다. 평서왕부의 양일지 말입니다. 계 공공은 몰라보 시겠죠? 하하하!] 위소보는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조용히 입을 열고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러자 양일지가 그의 손을 잡고서 말했다. [우리 좀더 멀찌감치 가서 이야기를 나누지요. 다른 사람들이 듣지 않 도록 말입니다.] 그는 다시 이십여 장을 나아가더니 그제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양일지는 말했다. [이곳에서 계 공공을 만나다니 정말 반갑기 짝이 없습니다.] 위소보는 물었다. [양형은 어떻게 이곳으로 왔소? 그리고 또 어째서 고화토로 아파사리로 변장을 했소?] 양일지는 물었다. [한 때의 녀석들이 하간부에서 모임을 갗고 우리 왕야에 대해서 불리한 행동을 하려고 했소이다. 왕야는 그와 같은 소문을 듣고 소인을 보내 알아보도록 한 것이외다.] 위소보는 놀라서는 재빨리 생각을 굴리며 말했다. [지난 번 목왕부의 그 한 몌의 사람들이 궁 안으로 들어가 황상을 찔러 죽이려고 했으며 평서왕을 모함했었는데..] 양일지는 재빨리 그 말을 받았다. [그때는 정말 공공께서 높으신 의리를 내세워 황상에게 상주하여서 평 서왕의 억울함을 씻어 주셨지요. 우리 왕야께서는 매우 감격해 하시며 종종 그때의 일을 들먹이면서 그저 공공께 친히 사의를 표할 날이 있기 를 바라고 있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고맙다는 말은 감당할 수가 없소. 왕야가 그토록 나를 높이 사주니 내 가 황상의 곁에 있는 이상 어떤 일이고 간에 왕야에게 조그만 도움이라 도 즐 수 있지 않겠소? 이번에 황상께서는 반적들이 하간부에서 모임을 갖고 평서왕을 해치려 한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는데 내 스스로 용감하 게 나서서 이 사실을 알아보러 나온 것이외다.] 양일지는 크게 기뻐서 말했다. [원래 황상께서도 이미 알고 계셨군요. 이제 반적들의 간계는 성사될 수 없게 되었으니 그거 정말 잘되었습니다. 소인은 왕야의 명을 받고 그 빌어먹을 구두대회(狗頭大會)인가 하는 모임에 끼어들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들이 각 성의 맹주를 추대하고 우리 왕야를 해치려고 하는 것 을 알았소이다. 솔직히 계 공공께 말씀드리자면 우리들은 속으로 여간 걱정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 들어오는 창날은 피하기 쉬워도 뒤 에서 날아오는 화살은 방비하기 어렵습니다. 반적들이 만약 감히 운남 으로 와서 손을 쓴다면 만 명이 오면 만 명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러 나 두려운 것은 그들이 지난 번 목씨 집안의 도적들처럼 못된 짓을 마 구 해서는 우리 왕야에게 화를 전가시키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 것은 그야말로 무한한 후환이 될 것입니다.] 위소보는 가슴을 한번 치고 나서 고개를 번쩍 쳐들고서 말했다. [양형은 왕야에게 조금도 근심할 것이 없다고 말씀을 드려 주시오. 내 가 북경으로 되돌아가면 바로 그 구두대회의 자초지종을 황상에게 상세 히 상주하겠소. 그들이 만약 평서왕과 맞선다면 그것은 바로 황상과 맞 서는 것이외다. 그들이 만약 평서왕을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더욱더 왕 야가 황상에 대해서 충성스럽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셈이조 황상께서 기 뻐하시게 된다면 평서왕은 말할 것도 없고 그대 양형에게도 중히 상을 내리게 될 것이며 벼슬을 올려 재물을 모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양일지는 기뻐서 말했다. [모두가 계 공공께서 애써 주신 덕택입니다. 소인은 벼슬이 오르거나 재물을 모으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왕야는 선친에게 커다란 은혜를 베풀었고 또 한때 소인의 전 가족 목숨을 살려 주었습니다. 선친께서 돌아가실 때 유언을 남기셨는데 소인더러 맹세코 죽을 때까지 왕야를 보호하여 드리라는 분부를 했습니다. 계 공공, 공공께서 이곳에 온 것 은 바로 목씨 집안 도적들의 음모를 엿보려는 것이었습니까?] 위소보는 무릎을 치며 말했다. [양형, 그대는 무공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정말 일을 귀신처럼 알아맞 추는구려. 정말 탄복했소이다. 탄복했소이다. 나와 사저는 변장을 하고 서 그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했는데 그만 그들에 게 들키고 말았구려. 그래서 나는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이게 되었는데 그들은 정말로 알고 오히려 나와 사저를 그 자리에서 당장 혼례를 올려 주는 것이 아니겠소. 하하하, 이것이야말로 전화위복이 된 셈이외다.] 양일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은 태감인데 무슨 혼례를 올린다는 것이지? 아, 그렇군. 그대와 그 소저는 한 쌍의 연인으로 변장을 했기 때문에 그들이 믿게하도록 속 인 것이로군.) 그리하여 그는 말했다. [그 요두사자는 무공이 뛰어나고 용기는 있으되 지략이 없는 사람입니 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들이 오랑캐로 가장한 것은 바로 그들을 잡기 위해서요?] 양일지는 말했다. [목씨 집안은 우리 왕부와 바다와 같이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번 그들에게 콘 화를 입게 되었으나 줄곧 밑천을 뽑지 못한 터였 지요. 그런데 이번 구두대회에서 다시 그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소 인은 속으로 헤아려 보았지요. 만약 그들이 경기 일대에서 사건을 일으 키게 되고 황상께서 아시게 된다면 아무래도 우리 왕야를 나무라실 것 이며 평서왕부의 사람이 서울 부근에서 왕법을 지키지 않고 사람을 죽 여서 일을 일으키려 한다고 할 것 같았습니다.] 위소보는 엄지손가락을 내밀고 칭찬의 말을 했다. [양형의 그와 같은 계책은 정말 고명하기 이를 데 없소이다. 그대들이 오랑캐로 변장을 하고서 고화토로 아파사리라고 지껄였으니 목씨 집안 의 한 패거리들을 모조리 죽인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그저 오랑캐 가 반란을 일으켰구나 하고 여길 뿐 그 누구도 평서왕을 의심하지는 않 을 것입니다.] 양일지는 웃었다. [바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와 같이 이상야릇한 모습으로 분장 을 하게 된 데 대해서 공공께서는 웃으실 것입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어찌 웃을 수 있겠소? 나는 마음속으로 그야말로 부러워서 죽을 지경 이었소. 나도 정말 옷을 벗고는 얼굴에 얼룩덜룩하게 그리고서 그대들 과 더불어 한바탕 크게 뛰어 놀았으면 좋겠소이다.] 양일지는 웃었다. [공공꼐서 흥미가 있으시다면 우리가 당장 분장을 시켜 드리죠.] 위소보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안 되겠소. 내 마누라가 나의 그와 같은 야릇한 모양을 본다 면 반드시 크게 성질을 부릴 것이외다.] 양일지는 말했다. [공공께서는 정말 부인을 맞아들이셨습니까? 그 도적들이 강요해서 가 장을 한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한두 마디 말로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위소보는 화제를 바꾸어 입을 열었다. [양형, 나는 그대와 퍽이나 인연이 깊다고 느껴지는구려. 그대가 만약 업신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는 것이 어떻겠소? 그렇게 된다면 공공이니 소인이니 하는 거북스러운 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 아니겠소.] 양일지는 크게 기뻐했다. 첫째로 평서왕은 그렇지 않아도 위소보에게 바라는 바가 있었고 앞으로 많은 일에 있어서 위소보가 황제 앞에서 평 서왕을 위해 변명을 해주어야 했다. 그리고 둘쩨로 위소보라는 계 공공 의 사람됨이 호방하고 너그러우며 매우 의리가 깊다고 생각된 것이다. 그날 강친왕부에서 자기에게 매우 깍듯이 대해 주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양일지는 말했다. [그것은 바라던 바이지만 분에 넘치는 일 같아서요.] 위소보는 말했다. [뭐가 분에 넘친다는 것이오? 우리 키를 한번 재 봅시다. 그대가 큰지 아니면 내가 큰지?] 양일지는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두 사람은 즉시 무릎을 꿇고서 흙을 모아 향을 삼고 여덟 번 큰절을 하 고 이때부터 형제로 칭호하게 되었다. 양일지는 말했다. [형제, 우리 두 사람은 금후 골육과 다름없는 비범한 관계이네. 그러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 형은 역시 그대를 공공이라 불러 다른 사람의 의심을 받지 않도록 하겠네.] [그야 물론이죠. 형님, 목씨 집안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작정입니 까?] 양일지는 말했다. [나는 그들을 운남으로 데리고 가 천천히 고문을 할 작정이네. 그리하 여 그들이 우리 왕야를 모함하려고 했다는 실토를 받아 낸 이후에 북경 으로 압송해서 황상으로 하여금 평서왕의 충성스러운 마음을 알도록 하 겠네. 그렇게 해야만 형제가 먼젓번에 평서왕을 애써 변명해 준 사실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 좋습니다. 매우 좋습니다. 형님, 그런데 요두사자가 실토를 할 것 같습니까?] 양일지는 말했다. [요두사자 오립신이란 사람은 강호에서 퍽이나 명망이 뛰어나며 또 소 문에 듣건대 사람됨이 매우 굳건하다고 하더군. 따라서 그는 아마 실토 를 하지 않을 것이네. 나는 그를 호걸로 높이 사기 때문에 그를 괴롭히 지 않을 작정이라네. 그러나 나머지의 사람들 가운데 몇 명은 형벌에 견디지 못해 실토를 하겠지.] 위소보는 말했다. [맞습니다. 그 계책은 훌륭하군요.] 양일지는 그의 어조가 얼렁뚱땅 얼버무리려는 점이 있는 것을 느끼고 말했다. [형제, 그대와 나는 이미 아닐세. 그대가 만약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 한다면 아무쪼록 솔직히 알려 주기 바라네.] 위소보는 말했다. [뭐 적절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은 없습니다만 소문에 듣자니까 목씨 집안에는 목검성이라 불리는 반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가 하면 경 배오룡(硬背,烏龍)인가 하는 유 무엇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도 하더 군요.] 양일지는 말했다. [철배창룡 유대홍일세. 그는 목검성의 사부라네.]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죠. 형님의 기억력은 무척 좋군요. 황상께서는 그들 두 사람의 동 정을 알아내라고 분부하셨는데 형님은 그들마저도 잡았습니까?] 양일지는 말했다. [목검성 역시 하간부에 갔있네. 우리들은 줄곧 뒤쫓아왔었는데 헌현(獻 縣)에 이르러 그를 놓치고 말아 그가 어디로 숨었는지 모르네.]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다민 난처하군요. 내가 조금 전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여 그 요 두사자를 속여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사자로 만들어서 나를 데리고 그들 의 소공야를 만나보도록 해주겠다고 말했거든요. 나는 본래 그들이 어 쩨서 음모를 꾸며 평서왕을 모함하려고 했는지 알아내어 황상에게 상주 하려고 하던 참입니다. 그러나 형님께서 자신이 있다면 그들의 음모를 고문으로 밝혀 내는 것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렇게 된다면 이 아우가 모 험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양일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별로 대단치 않은 몇 명의 인물들을 고문한다고 해서 참된 내막 을 알아낸다고 볼 수 없다. 설사 알고 있다 하더라도 목씨 집안의 그들 도적들은 뼈대가 매우 여무니 실토를 한다고는 볼 수가 없다. 더군다나 왕야 스스로 변명을 하는 것은 황상께서 친히 파견하여 조사토록 한 사 람이 진상을 알아내어 상주하는 것에 비해서 호소력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우리들이 모르는 척하고 있는데 계 형제가 스스로 황상에게 말씀을 드려 준다면 그것이야말로 훨씬 나은 일이지.) 그는 즉시 위소보의 손을 잡고 말했다. [형제, 그대의.방법이 훨썬 고명하군. 모든 점에 있어서 그대의 말을 따르겠네. 우리들이 어떻게 목씨 집안의 그 도적들을 놓아 주어야만이 그들로 하여금 의심을 일으키지 않겠는가?] 위소보는 말했다. [그거야 형님이 방법을 강구해야지요.] 양일지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이렇게 하세. 그대가 사당으로 도망쳐서는 일부러 용기 있게 나서서 그대의 사저를 구하는 척하게. 그러민 내가 뒤쫓아오면서 우리 두 사람 은 마구 오랑캐의 말을 지껄인단 말일세. 한참 동안 이야기를 하고 나 서 나는 그대에게 설복을 당해서 공손하게 절을 하고 따라가는 거지. 그렇게 된다면 전혀 흔적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 아니겠는가?] 위소보는 웃었다. [정말 묘합니다. 이 계 공공이 오랑캐의 말에 정통해야 되겠군요. 그런 데 그와 같은 일은 이야기로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당명황(唐明皇)의 아래에 이 무엇이라고 하는 학문 깊은 선생이 있어서 술을 마시기만 하 면 한 편의 문장을 지어내는데 그 문장을 보고 뭇 오랑캐들은 깜짝 놀 라서는 똥오줌을 바지 가랑이에 갈긴다고 하지 않습니까?] 양일지는 웃었다. [그것은 이태백이 술에 취해 초서를 써서 오랑캐를 놀라게 한 것이지.] 위소보는 손삑을 쳤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이 계 공공이 정신을 차려서 오랑캐를 놀라게 하 는 말을 한다면 참으로 대단한 것이죠. 형님, 그러나 우리들은 반드시 그럴싸하게 해내야 합니다. 형님은 나에게 거짓으로 주먹으로 치고 발 로 차는 척하십시오. 그러면 저는 조금도 상처를 입지 않게 됩니다. 아, 그렇군요. 나의 윗몸에는 몸을 보호하는 보의가 있으니 칼과 창에 도 찢어지거나 구멍이 뚫리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형님은 저에게 몇 번 칼질을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내력을 돋구지 않는다면 오장육부 에 상처를 입지 않을 테니까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양일지는 말했다. [형제에게 그와 같은 보의가 있다니 그것 참 잘되었네.] 위소보는 큰소리를 쳤다. [황상께서는 나를 보내 반적들의 역모를 조사하도록 하시면서 그들에게 내가 발각되어 죽음을 당할까봐 특별히 당신 몸에서 그서양 홍모국(紅 毛國)에서 진공을 해온 보의를 벗어서는 나에게 내려 주셨지요. 형님, 나에게 상처를 입힐까 두려워하지 마시고 먼저 몇 번 칼질을 해서 시험 을 해 보십시오.] 양일지는 칼을 뽑아들고 그의 왼쪽 어깨를 가볍게 그어댔다. 과연 칼날 은 그저 그의 겉옷을 약간 찢어 놓았을 뿐이었고 살 속으로는 도저히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좀더 힘을 주어 다시 그의 왼쪽 어깨에 가볍게 칼질 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조금도 손상을 입힐 수가 없어서 칭찬의 말을 했다. [정말 훌륭한 보의로군. 훌륭한 보의야!] 위소보는 말했다. [형님, 안에 정가라는 녀석이 있습니다. 그 녀석은 옷차림만 화려하고 겉모습만 번지르르할 뿐 쓸모없는 공자 나리입니다. 이 녀석은 언제나 나의 사저에게 눈독을 들이고 히히덕거리지요. 이 형제는 그를 보기만 해도 화가 난답니다. 그러니 형님이 잡아가는 것이 정말 좋겠군요.] 양일지는 말했다. [내가 일장에 그를 쳐죽이도록 하겠네.] 위소보는 말했다. [죽여서는 안 됩니다. 죽여서는 안 됩니다. 이 사람은 황상께서 요구하 는 사람입니다. 장래에 큰일을 도모하는데 쓸모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 러니 형님께서 그를 잡아가시어 훌륭히 지키되 그를 괴롭히지 않도록 하시며 또한 그에게 어떤 일을 캐내려고도 하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이 삼십 년 후 내가 형님에게 요구할 때 형님이 사람을 보내 그를 북경으 로 보내 주시면 됩니다.] 양일지는 말했다. [좋아. 내 그대를 위해 적절하게 처리하지.] 그는 갑자기 언성을 높여서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호로회도(葫魯希都), 애리파랍(愛里巴拉)! 허로허로(噓老噓老).] 그는 나직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이 한동안 이야기를 했으니 아무래도 그들이 의심을 하게 될 것 같군.] 위소보 역시 날카롭고 뽀족한 음성으로 크게 소리내어 잇따라 오랑캐 말을 했다. 양일지는 웃었다. [형제의 오랑캐 말이 이 형보다 훨씬 유창하네 그려.] 위소보는 웃었다. [그야 물론이죠. 이 형제가 과거 오랑캐 나라에 떠돌게 되었을 때 오랑 캐의 공주가 저를 부마로 삼으려고 했으니 그 오랑캐의 말이 몸에 배었 지요.] 양일지는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위소보는 다시 말했다. [형님, 그런데 한 가지 매우 난처한 일이 있는데 형님이 저를 도와 방 법을 강구해 주셔야겠습니다.] 양일지는 자기 가슴을 치며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형제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이 형은 목숨을 버려서까지 도울 걸세. 그 대가 무슨 분부할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받들어 모시겠네.] 위소보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일은 말하자면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운 노 릇입니다.] 양일지는 말했다. [형제가 이야기를 해보게. 내가 그대를 도와 생각을 해보도록 하지. 만 약 이 형이 해결하지 못할 일이라면 내가 우리 왕야에게 청을 드리겠 네. 수만의 군사와 기백만 냥의 은자쯤은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고 끌 어낼 수 있다네.] 위소보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수만의 군사나 산더미처럼 쌓인 금은은 아마도 쓸모가 없을 것 같습니 다. 그것은 저의 사저 때문입니다. 그녀는 나와 더불어 혼례를 올리도 록 강요를 받게 되었는데 속으로는 지극히 싫어하고 있더군요. 그러니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형님에게 어떤 절묘한 방법이 있어 저를 도와 생 쌀을 익혀 익은 밥이 되도록 하고 나무를 깎아서 이미 배가 만들어지도 록 해 달라는 것입니다.] 양일지는 그만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알고 보니 그랬었구나. 나는 또 무슨 큰일이라구? 그저 계집애를 상대 하는 것이었구나. 그러나 그대는 태감인데 어찌하여 처를 맞아들이려고 하지? 그렇군. 다른 사람의 말을 듣건대 명나라 때의 태감들은 종종 및 명의 마누라를 거느렸다고 하지 않던가? 형제도 아마 그와 같은 수작을 부려서 그저 재미를 좀 보려고 하는 모양이로군.) 그는 위소보가 어릴 적부터 정신을 엉뚱한 데에 빼앗겼다는 사실에 대 해서 속으로 무척 안타깝게 생각했다. [형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 모든 일이 다 순조롭게 되라는 법은 없다네. 옛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대영웅이고 대호걸인 사람들도 몸에 결함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네. 그러나 너무나 개의치 않도록 하게. 자, 이제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 보세.] 위소보는 말했다. [좋습니다.] 위소보는 다시 큰소리로 오랑캐 말을 했다. 그리고는 달음질을 쳐 사당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양일지는 칼을 들고 달려오며 역시 큰소리로 오랑캐 말을 했다. 대청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는 위소보를 덮쳐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호로희도, 애리파랍, 허로허로, 어쩌구저쩌구 씨부렁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오립신을 가리키며 또 한편으로는 아가를 손가락질 했다. 오립신과 아가 등은 놀람과 기쁨의 감정이 서로 교차되었으며 마 음속으로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가 오랑캐 말을 알고 있다니 다행이구나. 오랑캐들이 손을 거두고 돌아가도록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양일지는 칼을 쳐들고 아가의 머리를 겨냥하고 말했다. [여인, 좋지 않다. 죽여야 한다.] 위소보는 재빨리 말했다. [마누라다. 나의 것이야! 죽이면 안돼!] 양일지는 말했다. [마누라? 너의 것? 죽이지 말라고?] 위소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누라, 나의 것! 죽이지 마라!] 양일지는 대노해서 호통을 내질렀다. [마누라, 너의 것? 죽이지 말라? 그럼 너를 죽인다.] 위소보는 말했다. [좋다. 마누라 나의 것, 죽으면 안 된다. 나를 죽여라!] 양일지는 휙, 하니 칼을 들어서는 위소보의 가슴팍을 내려쳤다. 이 칼을 내려치는 힘은 대단해서 주위에는 칼바람이 획획 일었다. 그러나 칼날이 위소보의 몸에 닿는 순간 즉시 거두어들였고 위소보가 손목을 떨치자 그 칼은 오히려 되튕겨 나갔다. 그는 일부러 깜짝 놀란 듯 가장하고는 펄쩍 뛰어오르며 잇따라 세 번 칼질을 해서는 의소보의 옷자락에 세 개의 구멍을 내놓고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너.. 보살이지, 죽일 수 없지?]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보살이다. 죽일 수 없다.] 양일지는 엄지손가락을 내밀고 말했다. [그대, 보살, 아니다. 대 영웅이다.] 그는 오립신 등을 손가락질하며 물었다. [한인, 죽일까?] 위소보는 손을 흔들었다. [친구, 나의 것이다. 죽이지 마라!] 양일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가에게 물었다. [너, 마누라, 대영웅의 것이지?] 아가는 부인을 하고 싶었으나 그의 손에 들린 시퍼런 강철 칼을 보고 감히 부인할 수가 없었다. 양일지는 칼을 벼락같이 내려쳐서는 공탁을 두 쪽으로 쪼개 놓고는 호 통을 쳤다. [지아비, 너의 것?] 그러면서 위소보를 가리켰다. 아가는 어쩔 수 없이 나직이 말했다. [지아비 나의 것!] 양일지는 껄껄 소리내어 웃더니 아가를 들어서 위소보의 앞으로 건네주 었다. [마누라, 너의 것! 안아라!] 위소보는 두 팔을 벌리고 아가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마누라, 나의 것! 안았다.] 양일지는 정극상을 손가락질하며 물었다. [아들, 너의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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