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계단
최원혜
거울을 들여다보거나 사진을 찍어보면 세월의 흔적이 나타나 보이는 것이 제일 정직하다. 어느새 머리카락은 하얘지고, 얼굴에는 잔주름이 이마에 한 줄, 두 줄 등 계급장 달듯 새겨진다. 사람들은 그러한 모습 보고 노인이라 부른다. 나이 먹는 것은 누구나 공평하게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얻어지는 것으로 노인이 된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가는 일은 그저 나이를 먹는 것과 조금 다르다. 노인은 세월이 만들지만 어른은 삶이 만든다. 많은 시간을 살았다는 것만으로 모두가 어른 혹은어르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살아온 아집이나 고집보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화를 삼키며 용서를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 어른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진 것을 자랑하기보다, 나누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어른일 것이다. 어른이라는 이름은 나이가 아니라 인생의 삶 속에서 마음의 깊이가 붙여주는 훈장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어른이 되어 가는 계단이 있는가?
나는 노인 돌봄 일하며 많은 어르신을 만나기도 한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온 얼굴에는 저마다의 인생 스토리로 가득하다. 그중에는 이미 병을 얻어 몸은 쇠약하여졌어도 따뜻한 말 한마디로 주변을 밝히는 분이 있다. 그러한 분 뵐 때마다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분들은 아마도 어른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노년을 살아가고 있다. 마음만이라도 조금씩 사랑 가득 온유한 마음 가진 어른을 본받으며 살아간다.
이런저런 노인이 제각기 모두가 다 다르다. 살아온 아집이나 고집으로 평상시에 베풀 줄 모르며 욕심 많은 노인을 접할 때도 있다. 그런 노인을 뵐 때면 나는 저러한 노인이 아닌 사랑 많은 이러한 어른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 든다. 그때는 내 삶의 뒤 안을 한 번쯤 점검하여 돌아다보기도 한다.
내가 신앙생활을 하게 된 동기가 있다.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외당숙 집안은 모두 천주교를 믿는 집안이었다. 작은 외할머니댁에서 천주교 신앙에 영향을 받은듯하였다. 그 시절 친가는 집안의 우환으로 작은아버지가 모두 돌아가시어 형제 많았던 아버지는 외동아들이나 마찬가지이었다. 그런 이유로 같은 동네에서 살던 외가와 작은 외가댁의 왕래가 잦았다. 어머니는 작은 외할머니의 큰댁 큰 질녀이다. 그때 작은 외할머니는 큰 질녀가 고생한다며 늘 안쓰럽게 생각하였다. 그때는 같은 동네 살았기에 나를 키울 때 어머니는 농사일로 외가나 작은 외가에 나를 맡겨두어 일하러 나갔기 때문이다.
그 시절 작은 외할머니의 마당에는 성모마리아상을 세워두어 깊은 신앙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천주교 신앙이 낯설지 않았다. 나는 그 시절 늘 작은 외할머니의 신앙 자세를 보며 성장하였다. 내 눈에는 그 작은 외할머니가 노인이 아닌 자상하고 인자하신 성모님처럼 느껴졌다. 어른으로 삶을 살아가신 모습이 아직도 내 눈에 선할 때 있다. 늘 기도하는 모습으로 보이었으며, 돋보기 걸어 성경책 읽었다. 작은 외할머니댁에 갈 때면 늘 미소 지으며 따뜻하게 손잡아 반겨 주었던 모습이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그 시절 작은 외할머니가 화내는 모습, 용심부리는 모습 등을 보았던 기억이 아예 없다. 그때는 나도 나이 들면 그 할머니처럼 저러한 어른이 되어야지 생각하였다.
며칠 전 어르신 모시고 도시철도 3호선 용지역에서 성서동산병원 가는 중이었다. 탑승하여 자리에 앉았다. 반대편 좌석에 앉은 승객의 수를 헤아려 보았다. 열 명 남짓 앉아 있던 사람 모두가 머리카락 희끗희끗한 노인이나 젊은 사람 할 것 없이 제각기 스마트폰 보느라 삼매경이다. 내 옆자리에 앉은 젊은 사람은 독서 삼매경이다. 그나마 그러한 모습이 눈에 띄어 달리 보이는 듯하였다.
그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젊은 세대보다 내 눈에는 노인의 비율이 칠팔십 프로는 되는 듯하였다. 그때 한 노인이 승차하여 앉으려고 좌석을 두리번거리며 찾는 듯하였다. 눈치를 보았으나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앉은 좌석 편에서는 젊은 세대들이 모두 스마트폰 삼매경에 푹 빠져 꼼짝하지 아니하였다. 그 모습 지켜보면서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제야 앉을 자리 찾던 노인이 고맙다며 재바르게 앉았다. 그리고 나를 한번 쳐다보는 것이다. 그때 그 노인이 앉으며 젊은 세대 쪽으로 힐끗하는 듯하였다. 또 그 노인은 나를 노인으로 보았다. 하기야 칠순이 코앞인 나를 노인으로 보이는 것이 당연지사이다. 그때는 기분이 참 묘하다는 것을 느끼었다. 아직은 노인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의 진행에 자동으로 노인 되게 만드는 것을 어찌할 것인가?
며칠 전 일요일 성당 다녀와서 “OTT”“넷플릭스”에서“참교육”이라는 웹툰 드라마를 시청하였다. “참교육” 드라마 내용에는 학폭, 액션, 사회고발 장르, 복수, 성장, 블랙코미디 등을 다룬 드라마이다. 총 십 화로 다루어진 내용 중 팔 화에서 벌어진 내용은 너무도 흥미가 진지하여 기억에 남는다. 그 스토리는 지나친 교육열로 집착하는 학모가 기억에 좋은 약으로 현혹되어 그것을 사서 아들에게 먹이었다. 그 불법 약은 심지어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치사량 높은 마약류이다. 교권 교육국에서 학모들을 조사하였다. 그 뒤에 숨은 정치인들의 더 큰 음모를 밝혀내어 아이를 살려내는 소름 돋는 내용이다.
아들의 목숨을 걸고 수능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약까지 먹이어가며 사건 벌이는 학모 전체를 교권 교육국 감독관들이 해결하여 사이다 터뜨린 이야기이다. 그 내용을 보고 느끼었다. 나는 두 아들 키울 때 어떻게 하였는지, 어른으로 행동했는지 가만히 자문해 보았다. 드라마 내용의 중요 포인트는 “학생은 학생답게, 선생은 스승답게, 정치인은 정치인답게, 부모는 어른다운 행동하도록 사건처리 해나가야 한다.”라는 내용이다.
“예수님은 높은 자리에 서기보다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사람이 큰사람이라고 하였다.” 눈을 감고 조용히 상념 해보았다. 내가 노인이 되는 일은 시간의 일이고, 어른이 되어 가는 일은 선택에서 매우 심사숙고할 일이다.
사회생활에서 어른의 대접을 받고자 하려면 지나온 시간에서 강조할 것이 아니라 사고(思考)에서 찾아야 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윤에 눈멀면 결코 노인이지 어른이 될 수 없다. 노인은 누구나 나이 먹으면 된다. 그러나 어른 혹은 어르신이 되려면 표면의 호칭이 아니라 혜안을 가진 노년의 한 단계 높이어 살아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평생에 고운 마음 가다듬어 행복을 가득 안은 노인은 스스로 어른의 계단에 이른다.
(20260716.)(20260718.1차퇴고)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