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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날리는 벚꽃과 함께했던 한달 간의 일본일주 스크랩 여행기 [y`s] 17.1 가나자와의 아침 - 가나자와 성
쩝~~ 추천 0 조회 213 09.06.28 01:2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도쿄에서 출발한 야간급행 노토를 타고 카나자와에 도착했습니다.

 

 카나자와는 일본 혼슈중앙에서 우리나라 동해에 맞닿아 있는 지역인 호쿠리쿠의 경제와 상업, 문화의 중심적 역할을 하는 도시인데요,,,

 시내의 중심지에는 나무를 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우산살처럼 묶어놓은 새끼줄인 「후유노 유키즈리」로 유명한 정원 겐로쿠엔이 있으며,

 이 정원은 이바라키 현 미토 시의 가이라쿠엔과 오카야마 현 오카야마 시의 고라쿠엔과 함께 일본 3대 정원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매화의 개화기를 맞아 도시 여기저기에서 가득 풍기는 매화 꽃내음이 무척이나 상쾌합니다.

 

 

  음,, 매화향기 사이로 어디선가 고소한 빵냄새가 솔솔 풍겨오네요~

 

  오늘 아침은 빵으로 결정~!!

  근처 제과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들고 카나자와 성을 방문합니다.

 

 

 

 

 

 

 

 

카나자와 성은 16세기 말엽에 무장 마에다 도시이에가 축조한 성으로

다음 백과사전(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127036 위키백과 참조)에 따르면,

 

가나자와 성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시카와 문
이시카와 문

가나자와 성 (일본어: 金?城, かなざわじょう)은 현재 이시카와 현 가나자와 시 마루노우치에 있는 제곽식 평산성이다. 가나자와 번주 마에다씨의 거성이다. 가나자와 평야의 중앙을 흐르는 사이가와 강아사노 강을 사이에 위치해있다. 또, 겐로쿠엔은 가나자와 성의 부속 다이묘 정원으로 일본 3대정원 중 하나이다.

[편집] 역사

  • 1546년 성의 전신인 사원 오야마고보가 건립되어, 가가 잇코잇키[1]가가 국의 지배권을 얻은 혼간지의 거점이 되었다.
  • 1580년 사쿠마 모리마사가 오야마고보를 공격해 수중에 넣었다. 그리고, 가나자와 성이라고 명명한다. 시즈가타케 전투후, 하시바 히데요시부터 가가지역을 얻은 마에다 도시이에1583년 6월14일에 입성하고 오야마 성이라고 명명한다.
  • 1587년 바테렌추방령[2]으로 영지를 잃은 다카야마 시데토모가 마에다 토시이에의 부름을 받아 오야마 성을 대대적으로 개수한다. 그리고, 오야마 성의 명칭도 원래 이름이었던 가나자와 성으로 불려진 것도 이 시기라고 전해진다.
  • 1592년 도시이에의 아들 마에다 도시나가가 또 다시 성을 손본다.
  • 1602년 천수가 낙뢰에 의해 소실되어, 천수 대신으로 삼층 망루가 지어졌다. 또, 이 무렵 가나자와 성이라는 명칭이 정착되었다.
  • 1632년 다쓰미 용수[3]를 성내로 끌어들였다.
  • 1759년 호레키 대화재로 소실될 위기를 넘긴다.
  • 1875년 육군 제7연대가 가나자와 성에 설치되었다.
  • 1881년 화재로 이시카와 문과 산짓켄 나가야[4]와 쓰루마루 창고만 남기고 나머지는 소실되었다.
  • 1898년 육군 제9사단 사령부가 가나자와 성에 설치되어 태평양 전쟁이 끝날 때까지 존속해 있었다.
  • 1949년 전후 신설된 가나자와 대학의 캠퍼스로 활용되었다.
  • 1995년 가나자와 대학이 성 외부로 이전되었다.
  • 2001년 성터에 히시 망루, 하지즈메 문, 하시즈메몬쓰즈키 망루, 고짓켄 나가야가 복원되어 가나자와조시 공원으로 정비되었지만, 곧 가나자와조 공원(金?城公園)으로 개명되었다.

[편집] 구조

하시즈메몬쓰즈키 망루(左), 고짓켄 나가야(中), 히시 망루(右)의 전경
하시즈메몬쓰즈키 망루(左), 고짓켄 나가야(中), 히시 망루(右)의 전경
산짓켄 나가야의 전경
산짓켄 나가야의 전경

전형적인 평산성으로, 성의 망루를 주 건물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또, 가벼운 기와를 사용해 겨울의 적설을 고려했다. 또, 유사시에는 총탄으로 사용할 수 있게 납을 함유한 기와를 사용했다. 혼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가 있지만, 천수와 삼층 망루의 소실된 후로 니노마루를 번주의 거처로 삼았다. 천수는 재건되지 않았다.

그다지 견고한 성이라 말할 수 없기때문에 유사시에 성하 마을까지 적을 맞이해 공격할수 있도록 많은 사찰을 건립했다. 사찰중 하나로 있는 묘류지의 우물에는 가나자와 성과 통하는 길이 있다.

성 주위에는 오테 해자, 이모리 해자, ?켄 해자, 하쿠조 해자가 존재 했었다. 현재 남아 있는 해자는 오테 해자뿐이다. 다른 세 개의 해자는 메이지 시대말기부터 다이쇼 시대에 걸쳐 매워져 도로등으로 변해 버렸다. 현재 이모리 해자는 복원중이다.

하쿠조 해자는 보행자, 자건거 전용의 도로로 활용되어 시민의 산책로가 되었다. ?켄 해자는 히로사카 사거리와 겐로쿠엔카 사거리를 연결하는 햐쿠만고쿠 도로의 일부가 되어 간선도로로 활용되고 있다. 이 햐쿠만고쿠 도로 위를 가로질러 가나자와 성과 겐로쿠엔을 연결하는 이시카와 다리는 당시는 ?겐 해자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 밖에도, 성 안에는 내측 해자가 있고, 성 밖에는 동서 내외 도합 4개의 소마에 해자가 있었다. 소마에 해자는 후에 용수로로 많은 부분이 전용되었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비록 오사카성이나 오카야마성처럼 철과 콘크리트로 최근에 복원이 진행중인 성이지만, 

여타 관광지와는 다른, 고요한 정취가 살아있는 곳인지라 제 마음에 쏙 들었답니다^^

 

 

 해자를 따라 죽~ 늘어선 벚나무들의 배웅을 받으며 성 안으로 들어섭니다.

 

 

 

 

 

 천수각의 복원이 안된지라 일본성 특유의 성곽모양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장대한 위용은 여전히 남아있어서 과거 이 지역을 지배했던 마에다 가문의 힘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나자와 성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흰빛이 감도는 기와를 들 수 있는데요,,,

 이는 유사시에 총탄으로 사용할 수 있게 납을 함유한 기와를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나자와 성 곳곳에 가꾸어놓은 정원을 둘러보며, 한가로이 아침의 고요를 만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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