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안전이 또다시 무너졌습니다.' 언젠가부터 너무 익숙해져버린 이 멘트.. 멀리에선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붕괴되고 가까운 바다엔 세월호가 수장되어 있는 이 나라. 거기에 다시 터널 하나가 붕괴되었다. 물론 가상의 공간이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 지극한 현실성은 이미 학습한 재난을 상기시키는 장치로서 충분히 현실 그 자체로 다가온다.
너무 큰 비극을 겪어버린 사람들은 놀람보다는 분노를, 분노보다는 무력증을 느꼈을 것 같지만, 영화는 재난영화의 고답적인 형식을 벗어나 지극히 사실적인 공간과 거북하지 않은 표현력으로 차별화하는데 성공한 듯하다. 사실 기대를 갖고 본 영화가 아니었다. 1인 재난영화라는 설정 자체가 한계를 담고 있는 것 같았고, 제한된 구역에서 그려나갈 생존극이 왠지 뻔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1인이 사회와 대치하게 되면서부터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살아나고, 거대한 재난 속에 억지스럽지 않은 웃음의 코드를 적절히 심은 힘 빼기 전략이 오히려 압도적 몰입감을 느끼게 한 것 같다.
재난이 닥쳤을 때 가장 먼저 달려와 사회에 전파하는 언론의 역할은 텍스트를 확보하려는 것으로 제 치부를 드러내고, 정부의 대응이란 메뉴얼이 따로 있는 듯 특색 없이 같은 말이다. 영혼 없는 정부의 말투와 생명보다 특종을 위해 달려드는 언론의 말투가 지극히 닮은 것에서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이것이 사회라는 것에는 웃음조차 거두게 만든다.
붕괴된 사고 현장을 배경으로 카메라 앞에 일렬 횡으로 인증 샷을 남기는 행위는 또 어떤가. 그곳에 참석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눈물겨운 참여정신에 웃지 않을 재간이 없다. 감독은 사회에 전달하고픈 메시지가 강렬할수록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능청스러움으로, 마치 사회에서 배운 것을 영상으로 담았을 뿐이라는 듯 천연덕스럽게 재현해낸다. 재난영화라고 하면서도 엄밀히 재난 밖의 사회를 다룬다는 것에서 사회재난 영화라고 이름붙이고 싶은 이유이다. 우리 사회의 부실이 습성이 돼버린 사회에서 언론이 먹고 자란 독이 특종이라는 이름으로 보도되고, 그것이 고착화되면 결국 생명이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도 '하루만 더 버티면 기록'이라고 말하는 사회, 이것이야말로 재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사회적 재난을 진두지휘하는 여성 장관의 차분하고 낮은 음성에서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 지당하신 멘트는 어디에나 한결같이 적용되는 대본이었음을 힘들게 지켜보게 한다. 그럼에도 영화는 아프게 물어오는 것이 많다. 한 사람의 구조가 장기화 될 때 우리 누군들 경제적으로 타격이 크다는 사회의 압박 앞에 버텨낼 수 있을까를 자문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의 냉혹함이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우리 모두가 소중한 하나의 생명이라는 명제를 놓치지 않는다. 냉정한 사회를 다루되 인간적 따스함까지 겸비한 영화라는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면서도, 질문하고 생각하도록 이끄는 힘을 간과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였다.
하정우라는 배우가 그려낸 낙관연기는 폐쇄된 공간에서 혼자 몸으로 열배우 이상 해내는 신묘한 지점을 찾아낸 것 같다. 그가 왜 배우 오브 배우로 불리는지, 무너진 터널을 꽉 채울 만큼의 연기는 근래 보기 드문 사회적 메시지와 훌륭한 조화를 이루었다. 어디서부터 연기이고 어디까지가 애드립인지... 아마도 지나치게 과잉된 연기였다면 평범한 시민이 흔한 재난영웅으로 둔갑했을 것이지만, 그의 디테일한 연기는 그 모든 흔함을 대체하고도 남는다. 더욱이 오달수와의 합작품일 때 유독 서로의 태연함이 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무엇보다 압권은 사회를 향해 내던지는 그들의 일갈. 그것만으로도 그들이 말미에 내민 엄지손가락 척, 할만 하단 생각이었다.
한 사람의 생명조차 우습게 여길 수 없음을 상업적으로 잘 보여준 영화. 그냥 재난영화가 아니라 사회에 불만이었던 많은 사람들이 가장 통쾌하게 환호할 수 있도록 여럿을 위한 사회재난영화란 것이 개인적 생각이다. 죽어가는 여성이 아저씨를 부르며, 물 한 모금에 미안해 할 때,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살았을 때의 희망을 남길 때, 우리는 모두 하나의 사건, 다양한 내 가족의 모습으로 울먹였으리라.
그래서 우리는 극장문을 나서며 1인 재난영화 앞에서 세월호를 겪었다고 말하는 것이리라. 우리에게 재난이란 곧 세월호이고, 타인의 상처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한 국민의 대다수는 터널 붕괴를 보면서도 슬픈 바다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다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어떤 사회에 오랫동안 불편한 영화로 남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 하나 겨우 간직하는 것이다.
첫댓글 삶에 절망과 희망과 진실과 거짓을 나름 표현한 영화였다고 생각이 드네요. 어떤 것이 소중한 것인지, 억압된 형식의 터널에 갇혀서 통증마저도 마비된 우리네 삶을 그린 영화라고 잠시 상념을 빌어 탈출 해봅니다.
올해 유난히 더운 관계로 극장 갈 일이 조금 늘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못 본 영화 두어 편이 남았네요. 터널은 우리의 굳어진 관행을 돌아보게 하였고, 여러 곳에서 사회가 묵인한 재난(비리에 의한 인재)에 약자들이 어이없이 희생된 것에 화도 나고 생각할 거리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쓰면서도 많이 더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