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0, 10 주일낮
창세기22:11-14 이제 알았노라 28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우는 아브라함은 순종의 사람입니다. 정말 순종을 잘한 사람입니다.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정말 정말 어려운 문제도 가감히 순종했습니다. 세상 말로하면 두눈 딱 감고 순종했습니다.
100세 낳은 아들을 하나님께서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드리라 할 때, 두말 안하고 그냥 바쳤습니다. 사실 제정신 갖고는 어려운 일입니다. 미친 사람아니고는 할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독자 아들을 바친 사건은 아브라함의 일생에 가장 자기를 빛나게 해준 사건이요. 하나님께 인정받는 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줄 안다. 고 했습니다. 안다.는 것은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아닙니다. 기나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2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많이 기다려왔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앞에 늘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이름의 능력을 알았습니다. 하나님 이름을 부르면 얼마나 좋다. 얼마나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창12:8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자기 이름을 부르고 또부르고 계속 부르기를 좋아하는 아브라함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습니다. 계시하셨습니다.
창세기14장에 보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네 왕에게 사로잡혀 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전쟁터에 나가 네 왕과 싸웠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도와주셔 이겼습니다. 전쟁을 마치고 돌아오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 제사장을 만났습니다. 제사장이 아브라함을 축복해 줍니다. 창14:18-20
아브라함음 제사장을 통해 배운 단어가 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하라. 하나님은 임금보다 높습니다. 대그룹 회장보다 높습니다. 부처보다 높습니다.
정말 높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멜기세덱을 통해 크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17장에보면 아브라함이 절망중에 있는데, 그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 나이가 99세였습니다. 아들이 없어 특히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전능자로 찾아오셨습니다. 정말 능치 못할일이 없는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아들을 주겠다. 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미 죽은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내도 경수가 끊어지고 나이가 89세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임신을 하겠습니까? 여러분! 상식으로 통합니까? 세상 말로하면 말같은 소리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능치 못할일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불가능한 일이 있습니까? 엄감생신이라. ‘감히 그런 맘을 품을 수 있겠냐? 말입니다. 아이고 꿈도 꾸지마라. 사람들은 시도도 안해 보고 안된다는 생각부터 합니다. 해봐야 고생만 하고 되지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 집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엘샤다이, 하나님-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찾아오셔서 아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한 그대로 되었습니다. 100살이 되어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아들을 낳게 됨으로 인해 날마다 웃게 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듣고 배운 하나님의 이름은 역시 엘샤다이 하나님이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런데 행복한 아브라함 집을 시험해 보려고 독자 아들을 번제로 모리아산에서 바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큰 충격이요. 태풍이 불어 닥친것입니다. 난리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에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아들을 낳자 하나님보다 아들을 더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우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온 정신이 아들한테만 있습니다. 아들을 주신 하나님보다 아들을 더사랑하고 더 예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보다 아들을 더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은 참다 참다 도저히 아브라함 하는 행동이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렀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
이것은 누가 더 경배의 대상인가? 하나님께서 시험해 본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혀 흔들림없이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가감히 아들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선택하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사실, 이 아들한테는 아브라함의 말년에 보장이 담겨있고, 대를 잇는 생명줄이고,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끊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셔 놓고, 왜 하나님께 바치라고 합니까?
아브라함은 그 말듣고 잠을 잘수가 없고, 밥이 안 넘어 갔을 것입니다. 기도도 많이 해봤을 것입니다. 하나님, 정말 이렇게 해야 됩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놓고 땀방울이 핏방울 되게 기도한 것처럼 했을 것입니다.
도저히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되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결정합니다. 순종하자.
그날밤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이 아들은 죽었습니다. 내일이면 너는 하나님께 번제로 드린다. 가슴이 터질것 같고, 기가 막힐 일입니다.
5절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이삭을 바친데 아무데서나 바치면 안됩니다. 내가 지시한 곳에서 드려야 합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데서나 드리면 안됩니다. 정한 곳에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 행동을 보고 엄청 기뻐, 두 번이나 거듭 칭찬하고 큰 복을 부어 주었습니다. 15-18 봅시다.
마르틴 루터 킹 목사님은 ‘헌신하는 한사람이 흥미만 가진 백사람보다 낫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찾는 사람은 바로 흥미 위주의 사람이 아니라, 헌신된 예배자를 찾습니다.
예배가 별것이냐? 예배 잘 안드려도, 헌금 잘하고, 기도 잘하면 되지.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먼저 예배를 잘 드리길 원합니다. 그래야 잡음이 없고, 불평이나 불만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주신 복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품이 큰 기둥처럼 두꺼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려면 성품이 강철처럼 견고해야 합니다.
성품이 금이가면 그것은 금방 무너집니다. 부자도 알거지가 됩니다. 존귀한 자가 천한 자로 전락합니다. 금이 안가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아들도, 딸도 하나님께 맡깁시다. 우리 남편도 하나님께 맡깁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이제 알았노라’ 너를 봤노라.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