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9:7~23 /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 요셉
(창 39:19)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창 39: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창 39: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창 39: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창 39: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아멘.
* 보디발 처의 유혹(7)
6b,7절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그 후에 그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습니다. 요셉은 20세 전후쯤 된 꽃미남이었습니다.
요셉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기 때문에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기쁨과 밝음이 있었습니다.
이런 요셉에게 큰 시험이 왔습니다. 보디발 아내가 요셉을 유혹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시니 사탄이 요셉을 시험하여 넘어뜨리려고 하였습니다.
젊은 요셉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입니다. 당시 애굽은 성적으로 문란한 분위기였습니다.
그의 형들도 성 윤리가 무너졌습니다. 그의 큰형인 르우벤은 서모와 잠을 자는 죄를 지었습니다. 넷째 형 유다는 창녀촌에 들어가서 창녀들과 잠을 잤습니다. 여동생 디나도 겁탈당하였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요셉도 정욕의 죄를 범할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사람은 현실이 어려우면 더욱 방탕하고 정욕 적이 되기 쉽습니다. 더구나 요셉은 지금 한창인 스무 살 나이입니다. 요셉은 젊은 피가 끓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어떻게 했습니까?
* 유혹을 물리친 요셉(8~9)
그러나 요셉은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요셉이 주인의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제 주인께서는 이 집의 모든 일을 저에게 맡기셨습니다. 주인의 집에는 저보다 높은 사람이 없습니다. 주인께서는 마님만 빼놓고 모든 것을 저에게 맡기셨습니다. 마님께서는 주인의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그런 나쁜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입니다.”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분명히 물리쳤습니다. 여인이 지속적으로 날마다 동침하기를 청하였으나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동침하지 않을뿐더러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10).
음란의 죄는 불과 같습니다. 기름통을 들고 불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을 수 있는 환경을 근원적으로 없애야 합니다.
요셉은 어떻게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을까요?
요셉은 주인 보디발의 은혜를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보디발은 요셉에게 은혜를 베풀어 노예인 요셉에게 모든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로 삼았습니다. 오직 금한 것은 보디발의 아내였습니다. 이런 보디발의 아내를 범하면 보디발이 베푼 은혜를 저버리는 배은망덕한 것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 뿐 아니라 사람에게 받은 은혜도 알고 갚은 것도 중요합니다.
또 하나,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를 범하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간음하지 말라고 십계명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 한 생명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요셉과 하나님은 하나였습니다.
요셉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높여드렸습니다.
요셉이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려면 죄와 타협하지 말고 절대적으로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 환경을 피한 요셉(11~12)
그렇게 요셉이 유혹을 물리쳤지만, 유혹은 쉽게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번은 요셉이 일을 하러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 집 사람들이 하나도 그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의 옷을 붙잡고 말했습니다. “나와 동침하자”라고 유혹하였습니다.
말로 하는 유혹에서 이제는 행동으로 하는 유혹하였습니다.
남녀가 살이 부딪치고 터치되면 찌릿찌릿 전기가 옵니다. 드라마에서도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전기에 감전되지 않으려고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갔습니다. 요셉은 시험을 이기기 위해 적극적으로 도망가는 전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이성의 유혹에는 환경을 피하고 그런 환경에 놓였을 때는 도망가는 것이 최고입니다.
요즘은 더욱 정욕의 죄가 만연한 시대입니다. 간통죄까지 없애버려서 더욱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죄도 잘 짓는데 딱 한 번 죄짓는 것인데 어쩌랴 싶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한 번이라도 죄를 지으면 성령이 소멸되고 생명을 빼앗깁니다.
한 번 짓는 정욕의 죄는 꿀을 바른 양날 가진 칼과 같습니다.
잠시의 쾌락이 있지만 나중에는 칼이 혀를 자르고 목을 베어갑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성령님이 마음에 상처를 받고 근심하십니다.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엡4:30)
그 하나님의 마음을 풀어드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가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고 합시다.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 잘할게” 한다고 해서 금세 풀립니까?
조용기 목사님은 여의도 순복음 교회를 지을 때 너무 힘이 들어서 자녀에게 매를 댔다고 합니다. 아내에게도 험한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내가 자녀를 데리고 친정집으로 가버렸습니다.
아내에게 아무리 빌어도 아내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곁에 앉아서 밤새 눈물로 회개기도를 하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풀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푸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그 마음을 풀어드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성령을 근심하지 않게 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 성폭행범으로 누명을 쓴 요셉(13~19)
보디발 아내는 요셉이 자신의 요구를 뿌리치고 나가자 엄청나게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여자는 남편이 퇴근하여 들어올 때 요셉에게 자신을 겁탈하려고 들어왔는데 자신이 소리를 크게 질렀더니 옷을 버려두고 도망갔다고 거짓말을 하고 요셉에게 성폭행범으로 누명을 씌웠습니다. 보디발은 아내의 말을 듣고 심히 노하였습니다.
내가 은혜를 베풀었는데 너는 이럴 수 있느냐고 책망하였습니다.
* 감옥에 갇힌 요셉(20)
그래서 보디발은 요셉을 붙잡아 감옥에 넣었습니다. 그 감옥은 왕의 죄수들을 넣는 곳이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을 경외하자 사람들이 그를 버렸습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세상은 악하므로 경건하게 사는 자를 핍박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또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감옥에서는 보디발 처의 유혹을 받지 않습니다.
보디발이 요셉을 팔아버리거나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감옥에 가둔 것도 은혜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버림받고 노예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보디발과 그 아내에게 버림받고 죄수가 되었습니다. 겁탈했다는 누명을 쓰면 인격의 모독을 받아 참기 어렵습니다.
자살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우리를 괴롭힙니다.
여러분, 요셉의 죄가 무엇입니까?
요셉은 꿈을 꾸고 순결하게 산 것밖에는 죄가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렇게 순수하게 꿈을 꾸며 사는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 죄 없이 고난받을 때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꿈을 이루지 못하게 하고자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 온 것은 가나안의 좁은 세계에서 애굽의 넓은 세계로 나온 것입니다. 요셉이 감옥에 갇히는 것은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만남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죄수들을 섬기는 훈련을 통해서 섬기는 리더십을 배우는 때입니다.
정치범들을 접촉하면서 정치학 수업을 듣는 때입니다.
요셉은 누명 쓰는 훈련을 통하여 형들에게 누명을 씌워 깨닫게 가르쳐 줄 방법을 배웠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이 모든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한 발짝씩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이 점점 어렵게 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의 꿈을 이루시는 정확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어 드려야 합니다. 좋으신 하나님은 감옥에 있는 요셉을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 감옥에서까지 요셉과 함께하신 하나님(21~23)
21-2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창 39: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창 39: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하나님은 감옥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결했던 요셉과 함께하셨습니다.
요셉과 함께하셔서 감옥에서 즉시 나가도록 도우신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 성공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간수장의 사랑을 받게 하여 감옥의 총무가 되게 하셨습니다.
간수장은 요셉을 신뢰하여 옥중 죄수의 사무를 요셉에게 다 맡겼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감옥에서도 왜 요셉과 함께하셨을까요?
감옥에서도 요셉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결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감옥에서 보디발 아내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요셉과 함께 해주셨습니다.
* 예수님의 그림자 요셉
우리는 요셉의 생애를 보면서 누구와 많이 닮은 사람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인 유다에게 은 삼십에 팔렸습니다. 자신이 죄인이 아닌데 죄인 취급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반역자가 아닌데 반역자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셉을 예수님의 예표라고 합니다. 요셉은 예수님보다는 조금 싸게 은 이십에 팔렸습니다. 요셉은 예수님처럼 억울하게 누명을 썼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입니다. 요셉의 현재 상황도 예수님과 유사합니다.
요셉은 형들의 죄로 인하여 노예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간계로 인하여 죄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요셉에게 이렇게 노예가 되고 누명을 쓰고 죄수 생활하는 것이 왜 필요했을까요?
이는 지도자의 필수 요소입니다. 지도자는 백성들의 죄를 감당하는 자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왜 그렇게 무릎을 꿇고 경배를 드립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감당하시고 우리의 죄의 값을 대신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혹시 억울한 일 당하는 일이 있습니까? 애매하게 고난을 받고 계십니까?
아무 잘못도 없이 명예가 상할 때가 있습니까? 그때가 한 단계 더 성숙할 수 있는 때입니다.
우리나라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모두 민주화의 죄수 훈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국회의원 가운데 민주화운동 하다가 갇힌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연약함과 죄를 감당해 줄 때 나중에는 그들이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회개합니다.
죄를 감당해 준 사랑에 감동하게 됩니다. 그들이 변화되어 예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의 연약함을 대신 하여 내가 고난을 받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서 내가 책임을 질 줄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에게 전도하며 이유 없이 고난을 받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아무 이유 없이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변화될 것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