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끈을 조이자
文 熙 鳳
‘나는 원래 귀한 사람이다.’라는 자부심을 가질 필요는 있다. 아침해의 찬란한 붉은 색조의 광채를 마음속으로 과시하는 것이야 좋다. 날개 달고 목소리 키우던 매미들의 합창소리가 유난히 내 귓전을 울리는 오늘이다.
돈 보따리 짊어지고 요양원 가봐야 아무 소용 없다. 경로당 가서 학력 자랑 해봐야 누가 알아 주지 않는다. 늙으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그 자가 그 자요,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거기서 거기다.
병원 가서 특실 입원, 독방이면 무슨 소용 있는가? 지하철 타고 경로석 앉아 폼 잡아 봐야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늙으면 잘 생긴 자나 못 생긴 자나 그 자가 그 자요, 모두가 도토리 키재기요, 거기서 거기다.
왕년에 회전의자 안 돌려 본 사람 없고, 소싯적 한 가락 안 해 본 사람 어디 있는가? 지난날의 영화는 다 필름처럼 지나간 옛일, 돈과 명예는 아침이슬처럼 사라지고 마는 허무한 것인데 그것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자식 자랑도 필요 없다. 팔불출이 되어 따돌림 받는다. 내 아들이 반에서 일등 했다고 자랑하고 나니, 바로 옆에 전교 일등 엄마가 있더라는 말 못 들어 봤는가?
돈 자랑도 할 짓이 못 된다. 돈 자랑 하고 나니 저축은행 비리 터져 골 때리고 있더란다. 세계적인 갑부 카네기, 포드, 록펠러, 진시황은 돈 없어 죽었는가? 건강만 허락된다면 대통령도 천하의 갑부도 부럽지 않다. 이런 것들은 모두 버릴 수 있다면 좋다.
전분세락(轉糞世樂)이란 말이 있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단 이승이 낫다는 말이다. 노년 인생 즐겁게 살려거든 친구, 건강 챙기는 게 좋다. 조련사의 손에 이끌리는 펭귄처럼 친구의 손에 이끌려서라도 산에 올라야 한다. 이승의 매듭 툭툭 끊어지는 소리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펼치면 구슬이 또르르 굴러가는 동화책 같은 세상에서 장수하려면 건강을 지키려는 의지가 있다면 좋다. 긍정적인 생각과 온몸으로 웃어보는 여유가 해결해 준다. 웃는 사람은 실제로 웃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오래 산다. 건강은 웃음의 양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웃음은 어떤 핵무기보다도 파괴력이 강하다 신도수가 수만 명을 능가하는 이름난 교회는 목사가 재미있게 설교하는 곳이다.
열여덟 여자 아이들은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배꼽을 잡고 웃는다. 여자가 오래 사는 이유다. 놀부는 심술보, 나는 웃음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자랑하자.
버스 지나간 뒤 손들면 태워줄 사람 아무도 없듯이 뒤늦게 건강 타령 해봐야 이미 버스는 지나간 뒤다.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 거무죽죽한 검버섯, 앙상하고 마른 손, 세월은 구슬을 꿰듯 촘촘히 흔적을 남겨 놓는다. 젊었을 적엔 앓으면서 큰다지만 나이 들어서 앓는 건 저승길로 다가서는 지름길이다. 흔들림 없을 것 같던 무쇠 몸에서도 나이 들면 바람소리가 난다. 숭숭 뚫린 고목을 관통하는 대책 없는 바람소리가. 나이를 모르는 푸른 이파리 하나 무심코 노인의 발등으로 몸을 던진다. 이미 고목이 되어 생산성을 잃은 감나무는 할 일이 없다. 일이 쌓이면 병부터 들어와 주인이 되고, 마음이 가난하면 깨진 소리를 낸다. 뼈마디가 쑤시는 것처럼 살아온 날이 몸살을 앓는다. 필 때의 모습이나 질 때의 모습이 동일한 무궁화 같은 삶은 어떤가? 연륜은 쇠도 녹게 한다 하지 않는가?
천하를 다 잃어도 뭐니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다. 석 달째 운동화 끈 한 번 조여보지 않았다는 걸 자랑할 필요는 없다. 건강을 잃으면 남은 세월을 절름거리며 살아가야 한다. 건강해야 참살이의 지수도 높아진다. 어느 날 몸 식었다는 소식을 전하기 전에 힘차게, 폼나게 살자. 구겨진 종이짝처럼 뿌드득대는 관절소리에 져서는 안 된다.
아픔과 이별은 연습해야 하는 것이라지만 가까이 할 것은 못 된다. 사랑하는 사람 청둥오리처럼 가버리고 나면 남는 건 외로움뿐이다. 삐걱거리던 관절도, 송곳질하던 편두통도 물거품으로 하얗게 부서질 날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성지를 찾은 구도자와 같은 엄숙함으로 이 계절 연보랏빛 구절초들이 잔칫상을 꾸미고 코스모스 덩달아 춤추고 있는 무대에 올라 청춘을 구가해 보자. 먼 길 가는 사람은 발걸음을 세지 않는다 했다. 콧대 높던 산꼭대기 산 그림자로 바짝 내려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