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렘 1:5)
하나님께서 그 쓰실 자를 택하심이 언제부터인가. 예레미야의 경우를 본 절에서 보이시거니와 모든 하나님께서 택하신 원칙은 여기 있음이다. 흔히 만세 전에! 창세 전에! 이렇게도 말한다. 본 절에 보니 예레미야를 택하심이 그 어미의 복중에 생기기 전이라 하였으니 그 바로 전이라 함보다 만세 전에 창세 전에 그 아름다우신 뜻 가운데서 그를 택하심이라. 예레미야가 생기기 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아셨다 하심이다. 모세에게도 “나는 이름으로 너를 알고”(출 33:11) 시편에는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시 139:12) 이를 보아 하나님의 영원한 설계가 되어 계신지라 그 설계하신 대로 착착 진행중임을 알겠다. 건축에 있어서도 설계사가 설계하매 그대로 건축이 진행됨을 보니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 설계하시고 그 일이 모두 다 기록되어 있음이라. 그 기록된 대로 착착 실행하신다. 이사야 선지도 마찬가지 말씀을 하여 주시니 영으로 하시는 일이 어찌 어김이 있으리요 “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내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가 어미 복종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사 49:1) 하나님의 절대 예정하심이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바울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갈 1:15) 예레미야 바울만은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사람은 그 아름다우신 뜻 가운데서 미리 택하시되 그 태속에서부터 택정하심이다. 이사야도 “여호와께서 나를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사 40:1)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말하노라”(사 44;2) 모든 선택함 입은 자들은 다 이렇게 된 자들이다. 내가 무엇을 하여 그의 택하신 바 된 것이 아니요 내가 잘하여 그가 나를 성별하여 구별하신 바도 아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6)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그가 나기 전 복중에서 짓기 전에 아셨고 태에서 나오기 전에 구별하셨다 하심이니 하나님께서 사람을 택정하여 쓰심이 임기응변으로 하심이 아니요 그 영원하신 경륜가운데 선택하심도 그렇거니와 그의 대언자로 쓰심에 어찌 정중하시지 않으리요. 그 예정하신 가운데 그를 부르셔서 열방의 선지로 세우셨다 하심이다. 유다의 선지만이 아니라 열방의 선지로 세우셨으니 열방을 순회하면서 예언하셨다 함보다 그의 역사한 지역은 비록 제한되었다 하되 그 대언의 내용이 유대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실은 열국에 관여한 내용이라 할 것이다. 시간적으로도 그때의 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요 전세계에도 또 후세 대에도 다 적중하게 되어진 말씀인 것이다. 또 유대인에게 한 말이 당시의 열국에게도 오늘까지도 그 말씀은 유효한 말씀으로 되어졌음이다. 열방의 선지이었으니 예레미야 선지서에 또한 많은 나라들에게 그때 그때의 경고, 권면, 교훈이기도 한 것이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은 내 한사람이지만 하나님이 쓰심에 다양하시게 쓰심을 모든 역대의 역군을 쓰심에서 알만하며 또한 내 개인에게 있어서도 내 위치가 어떠하든 내 지위가 어떤 지위이건 하나님의 역사에 다양하게 발휘할 수 있음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그 누구든지 그 일함의 영역이 어느 곳이라 일한 시간이 어느 때라 그 지역 그때의 역군으로만은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경륜 속에 선택된 나인지라 시간적 공간적 광범위하게 내 역사의 영향이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산곡에 피었다 지는 한 포기 백합화는 보는 이 없었다 하되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에 그 한 포기 꽃도 빼지는 못한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경륜 속에서 나를 택하심을 감사할 뿐” “그의 택하심은 시공을 초월하신 선택이다”
첫댓글 조화라는 단어를 되새기게 되는 날이었습니다.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작품 안에서는 다 필요한데 우린 서로 쓸모없다 내가 더 똑똑하다 나는 못났다 하면서 살때가 얼마나 많았는지요. 순간순간 하나님 안에서 예민한 영각으로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게 하소서
내 어머니 복중에 짓기전에 나를 아신 주님! 오늘 하루도 주님의 은혜안에 하루를 보냅니다. 범사에 감사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