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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영광] 19
#.1 씬. 유원지 길.(낮)
18회 연결 상황에서.
단아 : 사랑하는 사람이 추운 데 있어요. 그래서 나 혼자 따뜻한 게 싫어요. 이젠 됐나요? (걸어가려는데)
강석 : (팔을 낚아채는)
단아 : (보고)
강석 : 당신도 병 있잖아?
단아 : ......
강석 : 사랑도 중독이라는데, 해독해야 하지 않나?
단아 : (손을 빼고 가려고 하는)
강석 : (끌어당겨 안는)
단아 : (굳어지는)
강석 : 날 해독제로 이용해보는 건 어때?
단아 : (확 밀쳐내며 떨어지면서 강석의 뺨을 때리려 손을 드는데)
강석 : (단아의 팔을 거칠게 잡는)
단아 : .....
강석 : 세 번 다 기습당한 거 같아?
단아 : .....
강석 : 당신 증조부님 장례 때는 그야말로 기습이었지만, 나머지 두 번은 맞아 준 거였어.
단아 : (팔을 빼내려고 하는데)
강석 : (더 거칠게 틀어쥐면서) 나 단 한번도 여자한테 뺨같은 거 맞은 적 없는 놈이야.
그런데도 당신한테는 맞아줬어. 왠거 같아?
단아 : 놔요.
강석 : (팔을 놓아주면서) 나도 그게 궁금해.
왜 저 여자한테는 맞아줘도 상관없겠다,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앞서 걸어가는)
단아 : (그런 강석을 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2 씬. 유원지 주차장.(낮)
강석, 차 문을 열어주면, 단아 보다가 차에 올라타는.
강석 : (차 앞을 돌아서 운전석에 올라타는) 이 연극 그만 하고 싶다, 그런 생각하죠?
단아 : .....
강석 : 앞으로 이 인간이 연극을 핑계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단아 : 그런 생각해요.
강석 : 그만 두고 싶습니까?
단아 : .....
강석 : 그거 압니까? 여기서 그 쪽이 그만두겠다고 하면, 난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어요.
아, 이 여자가 날 겁내는구나, 내가 수컷처럼 굴까봐 지레 겁먹고 내빼는구나.
단아 : (보면)
강석 : (시선 단아에게 던졌다가 앞을 보면서) 그럼 그건 혼란에 빠졌다는 걸 인정하는 게 되는 거구.
당신, 추운 데 있다는 그 사람 외엔 절대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구, 사랑하지 않겠다구,
이 악물고 다짐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 아닙니까?
단아 : .....(시선 앞으로 돌리면)
강석 : 그럼 나같은 놈이 무슨 짓을 어떻게 하든 당신은 아무 영향도 받지 않아야 하죠.
그래야 자신의 그 징그러운 사랑을 증명 할 수 있을 테니까.
단아 : 왜, 내 사랑을 시험하려고 하는 거죠?
강석 : 기막힌 반격술 하난 타고났군. 글쎄, 타고난 투쟁 본능에 또 발동이 걸린 걸까.
단아 : 내 사랑도 이강석씨에겐 놀이감에 지나지 않겠죠.
강석 : 과연 그런 게 있는지 궁금하긴 하죠. 추운 데 있는 연인 때문에
겨울에 코트조차 안 입겠다고 우기면서 살고 있는 저 여자의 사랑이라는 게
정말 그렇게 단단할까. 하단아씨?
단아 : (보면)
강석 : (보고) 좋은 기회 아닙니까? 자기 자신한테 자신의 사랑을 증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
당신 말대로 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느낌으로 당신의 사랑을 희롱 하려고 할 것 같은데,
당신이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지금의 그 사랑을 유지하면 이 게임의 패배자는 내가 되는 거죠.
단아 : .....
강석 : 평생 패배라는 게 뭔지 모르고 살아온 나같은 놈한테
그런 쓰디쓴 패배 한번 안겨주고 싶다는 투쟁 본능 같은 거 못 느낍니까?
단아 : 그런 거 못 느껴요. 왜 내가 이강석씨한테 내 사랑을 증명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구요. 다만.....
강석 : 다만?
단아 : 두 아이를 위해서 시작한 연극이지만,
그 상대가 이강석씨 같은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았겠구나, 그런 생각은 해요.
강석 : (미소 지으며) 그럼 좀 더 편하게 연극만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건가요?
단아 : .....
강석 : 왜 편하게 연극만 할 수 없을까? 태어나서 누군가의 뺨, 때린 적 있습니까?
단아 : (당황한 느낌으로 강석을 보는)
강석 : 아마 없었을 겁니다. 당신같은 여자, 함부로 그런 짓하면서 살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나한테는 그랬지, 그것도 세 번씩이나. 그래서 내가 편하지 않은 걸테구?
단아 : (시선을 돌리는)
강석 : 우리가 하는 이 연극,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는 생각 안합니까?
단아 : .....
강석 : (묘한 미소를 띤 채 차의 시동을 거는. 차 출발하고)
#.3 씬. 집 앞.(낮)
강석의 차 와서 서는. 강석, 단아 차에서 내리는.
강석 : 앞으로 더 긴장해요.
단아 : .....
강석 : 앞으로 더 그쪽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볼 생각이니까. 그래야 명승부가 되지 않겠습니까?
단아 : .....
강석 : 갑니다. (차에 타고 떠나는)
단아 : (바라보고 있는)
#.4 씬. 단아의 방.(낮)
단아, 들어와서 서는.
강석E : 태어나서 누군가의 뺨, 때린 적 있습니까?
단아 : (생각에 잠겨 앉는)
#.5 씬. 길.(낮)
운전하고 있는 강석, 그 위로.
단아E : 왜, 내 사랑을 시험하려고 하는 거죠?
#.6 씬. 병실.(밤)
말순, 밥 먹으면서 핸드폰 중.
말순 : 아니야. 비상이 걸려서 못 들어가고 있는 거니까 걱정하지마.
태영, 들어오는.
말순 : (입모양으로 왜 또 왔어요? 하는데)
태영 : 남이사.
말순 : 피곤하긴 하지. 그래도 별 수 있냐. 밥 벌어먹고 살려면 할 수 없지 뭐.
걱정하지 말고, 문단속 잘 하고 자. 그래, 끊는다. (전화 끊는데)
태영 : 누구랑 같이 사나 봐요?
말순 : 남이사. 왜 또 왔어요?
태영 : (식판 들여다보면서) 이거 가지고 되겠어요?
뼈에 금 갔는데, 사골 국 같은 거 먹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말순 : 그렇게 걱정 되면 사골 국 좀 사와 보던가.
태영 : 미쳤수. 내가 뭐 댁 애인이야?
말순 : 나는 미쳤나. 댁 같은 사람 애인으로 두게. 간통이나....
(하는데,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 일제히 두 사람을 보는)
태영 : (얼른 주위 살피면서) 이 여자가 무슨 간을 통째로 삶아오라고 그래?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 다시 식사하면.
태영 : 댁이 그러고도 친구야?
말순 : 내가 언제 친구 한다고 했어?
태영 : 아, 됐다, 됐어, 바쁜데도 불쌍해서 들여다보러 온 내가 미친놈이지.
말순 : 댁이 누구 동정할 처지나 돼? 간통해서..... (환자와 보호자들 또 보고)
태영 : (버럭) 간을 왜 통째로 먹겠다고 난리야?
#.7 씬. 수영의 사무실.(밤)
수영, 일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
수영 : 네.
진아, 문 열고.
진아 : 쓰레기통 비우러 왔는데요.
수영 : 들어와요.
진아 : (들어와서 쓰레기통 비워서 담는) 저기요?
수영 : (보면)
진아 : 저 오늘까지만 일 해요.
수영 : .....
진아 : 그래야 할 거 같아서요. 아저씨랑 같은 회사에서 자꾸 부딪치는 거 힘들어서 못하겠어요.
수영 : 다른 데 일자리 구했어요?
진아 : 아직요.
수영 : 그럼 그냥 있어요.
진아 : 아니요, 안할래요. 사람이 마음은 편하게 살아야 하는 거잖아요.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인사하고 나가려고 하는데)
수영 : 진아씨?
진아 : (보고)
수영 : 우리 이젠 못 보는 건가요?
진아 : 네. 그럼. (다시 인사하고 나가는)
수영 : (자리에 앉아서 생각에 잠기는)
#.8 씬. 병원 복도.(밤)
말순, 의자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하면서 운동을 하고 있는.
태영, 음료수 마시면서.
태영 : 가만있어야 뼈가 빨리 붙지?
말순 : 난 가만 있으면 없던 병도 생기는 체질이라 이런 식으로라도 운동을 해줘야 뼈가 빨리 붙는단 말예요.
뭘 알지도 못하면서.
태영 : 아는 거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겠다.
말순 : 아, 옆에서 계속 주절거릴 거면 집에나 가요. 하긴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어야 빨리 집에 가지.
태영 : 이거 왜 이래. 내가 마누라만 없지, 식구가 몇인데.
말순 : 그러니까 식구들 기다리는데 어서 집에 가라구.
태영 : 간다, 가. 애가 어떻게 고마운 줄을 모르냐.
말순 : 복숭아 깡통이라도 하나 사들고 와서 고마운 줄 알라고 하든가.
다른 사람들이 사다놓은 음료수나 축내고 있으면서.
태영 : 야, 야. 이것 좀 먹는다고 아까워서 그러냐?
말순 : 말 자꾸 놓지 말랬지?
태영 : 그냥 놓고 좀 가자.
말순 : 댁이 그럼 나도 앞으로 쭉 깔고 간다.
태영 : 너 민증 까봐.
말순 : 민증은 왜?
태영 : 내가 제조연일이 더 돼 보이는데, 어린 애가 말 확 까고 들어오는 건 좀 그렇지 않냐?
말순 : 친구 먹자며?
태영 : 얜 왜 이랬다 저랬다 난리야. 친구 먹기 싫다면서?
말순 : 고민 중이야. 댁같은 인간하고 친구 먹어서 무슨 이득이 있을까.
태영 : 애가 넌 왜 그렇게 계산적으로 사냐? 친구 먹으면서 이득 따지는 거 너무 비인간적인 거 아니냐?
말순 : 간통한 거 몰랐으면 모를까 내가 제일 경멸하는 부류의 인간하고 친구를 먹는다는 게 영 캥겨서 그러잖아.
태영 : 얜, 뻑하면 간통을 들먹이고 난리야?
말순 : 그러게 왜 간통 같은 걸 하고 살아, 이 인간아?
태영 : 너 혹시, 날 남자로 보는 거냐?
말순 : 뭐?
태영 : 내 간통 사건에 너무 집착하는 거 같아서 말이야.
말순 : 얼어 죽을 집착은. 댁 얼굴만 보면 간통이라는 두 글자가 동시에 보이는 걸 어쩌냐.
태영 : 그 놈의 간통 소리 듣기 싫어서 내가 간다, 가. (주머니에서 엠피 쓰리 꺼내서 말순의 손에 탁 놔주는)
말순 : 이게 뭔데?
태영 : 병원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문화적으로 지내라고 내가 쓰던 거 가져왔다.
말순 : 이왕 뭘 가져올 거면 새 거를 사다주던가. 쓰던 걸 가져 오냐?
태영 : 아, 됐어. (뺐으려고 하면)
말순 : 줬다 뺐냐? 치사시럽게.
#.9 씬. 병원 주차장.(밤)
태영, 차 옆으로 다가오면서.
태영 : 무슨 애가 저렇게 사사건건 시비냐? 저런 것도 친구라구, 생돈 쓴 내가 미친놈이지.
(주머니에서 차키 꺼내다가 딸려 나온 카드 영수증 보면서) 싼 걸로나 사올 걸. 20만원도 넘게 줬구만.
어, 이거 왜 일시불이야. 3개월 무이자 되는 카드였는데, 미친다, 미쳐.
#.10 씬. 병실.(밤)
말순, 침대에 앉아서 엠피 쓰리 귀에 꽂고 버튼 누르는데. 노래, 흘러나오는.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 만화 주제가다.
말순 : 뭐야, 이거. (다음 곡 버튼 누르는데)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 인조인간 로봇 마징가 제트.
말순 : 참 노래들 문화적이다, 이 인간아.
#.11 씬. 길.(밤)
운전하고 있는 수영, 버스 정류장 앞을 지나는데, 진아처럼 생긴 젊은 여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수영, 차를 그 앞에 세우는데, 돌아서는 젊은 여자, 진아가 아니다.
수영 : (실망스러운 느낌으로, 내가 지금 왜 이러나 하는 느낌으로)
#.12 씬. 말순의 방.(밤)
진아, 쪼그리고 앉아 있는.
진아 : 다시 안보면 될 거야. 그럼 마음 아픈 일도 없을 거야. (눈물이 흘러내리는)
잘 한거야, 오진아. 잘 한 거라니까. 자꾸 보면 마음만 다칠 거잖아.
며칠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까 며칠만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지내보는 거야.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지는 거잖아.
#.13 씬. 수영의 방.(밤)
수영, 어두운 방, 이불 위에 누워있는. 잠을 자지 못하고 결국 일어나 앉는. 깊은 숨을 토해내고.
#.14 씬. 단아의 방.(밤)
단아, 생각에 잠겨 앉아있는. 그 위로.
집 앞에서 강석의 모습.
강석 : 앞으로 더 긴장해요.
단아 : .....
강석 : 앞으로 더 그쪽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볼 생각이니까. 그래야 명승부가 되지 않겠습니까?
단아 : (책상에 두 팔을 얹고 얼굴을 묻는)
#.15 씬. 강석의 방.(밤)
책상 앞에 앉아있는 강석, 인형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강석 : 너무 오만한 거 아니냐? 이강석. 이 게임 너한테 더 위험할 지도 모르는데.
#.16 씬. 집 전경.(아침)
#.17 씬. 만기의 방.(아침)
만기, 동동 일어나는.
만기 : 동동아. 밥 먹으러 나가자.
동동 : 네.
하는데, 문 열리고 영인, 삼월, 단아, 밥상 가지고 들어오는.
만기 : 뭐냐?
영인 : 아버님, 오늘 아침부터는 예전처럼 그냥 방에서 진지 드셔야겠어요.
만기 : 왜?
영인 : 남녀 차별이 문제라 개선을 해볼까 싶었는데, 마루에서 모두 모여 식사하는 게 화기애하긴 하지만,
음식 낭비도 좀 심하고 약간의 문제점이 발견돼서요.
새로운 개선책이 나오기 전까진 우선 예전 방식대로 해볼까 싶습니다.
만기 :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야. 동동아, 앉자.
영인 : 아니, 동동인 나와서 먹어.
동동 : 왜요?
영인 : 어린 너까지 남녀 차별 적인 분위기에 길들여질까 봐 그래.
동동 : 할아버지?
만기 : 할머님이 시키는 대로 하거라.
석호, 수영, 태영 들어오면서.
태영 : (의기양양한 느낌으로) 오늘부턴 예전처럼 먹는다면서요?
전 어머님께서 하시는 개혁이라 쌍수 들고 환영 했는데, 아쉽네요.
영인 : 하과장도 오늘부터는 마루에서 먹어.
태영 : 네?
영인 : 아버님?
만기 : 그래?
영인 : 오늘 아침부터는 고모님이 이 방에서 식사하시는 걸로 했으면 하는데요.
그렇게라도 남녀 차별적인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서요.
만기 : 네 생각대로 해 보거라.
#.18 씬. 마루.(아침)
삼월, 조만, 단아, 밥상 놓고 있는데, 태영, 동동 뿌루퉁해서 서있고.
영인, 주정 마주 서있는.
주정 : 싫어, 싫어, 조카댁. 내가 왜 오빠랑 같은 방에서 밥을 먹어? 난 그냥 여기가 편하다니까.
영인 : 도와주세요, 고모님. 어린 동동이한테도 교육적으로 이런 변화가 필요한 시긴 거 같아서
어렵게 짜낸 생각이에요.
주정 : 나 우리 오빠랑 밥 먹다가 체하면?
단아 : 고모 할머니? 어머니 말씀 좀 따라주세요.
태영 : 전 여기 앉으면 돼요?
영인 : 앉고 싶은데 앉아.
#.19 씬. 만기의 방.(아침)
만기, 석호, 수영, 주정 앉아서 식사하고 있는.
주정 : (밥 먹다가 끅하고 트림하는)
만기 : (보면)
주정 : 꾸역꾸역 밥만 먹고 있으려니까 속이 거북해서 그래요, 오빠.
난 밖에서 여자들하고 떠들어가면서 먹는 게 훨씬 편하다구요.
만기 : 종부가 하는 일이다, 암말 말고 먹거라.
주정 : (오바해서 트림하는) 아이고 답답해.
#.20 씬. 마루.(아침)
삼월, 영인, 단아. 조만, 태영, 동동 식사하고 있는.
태영 : 형은 왜 방에서 먹어도 돼요? 저랑 형이랑 10분 차이 쌍둥인데
저만 여기서 먹는 건 너무 차별적인 거 아닌가요?
영인 : 장손에 대한 대우니까 여러 말 말고 식사나 해.
태영 : (입 삐죽이며) 단아야, 나 물.
단아 : 응. (일어서려는데)
영인 : 하과장?
태영 : 네?
영인 : 자기가 먹을 물은 자기가 떠와야 하는 거 아냐?
태영 : 그럼 방에서 드시는 분들도 다 본인이 직접 떠다 먹어야 하는 겁니까?
영인 : 방에서 드시는 분들은 어른에 대한 예우로 가져다 드릴 거야.
태영 : 그럼 전 뭡니까? 남자 대우도 못 받고, 어른 대접도 못 받고.
영인 : 하과장?
태영 : 왜요?
영인 : 어머니 말에 너무 대꾸가 많네.
태영 : (안되겠다 싶어서, 단아와 삼월을 번갈아 보며) 물 좀.
단아 : 떠다 먹으라시잖아.
#.21 씬. 부엌.(아침)
태영, 물 벌컥 벌컥 마시면서.
태영 : 난 홍길동이 아니었던 거야. 콩쥐지, 콩쥐.
#.22 씬. 석호의 방.(아침)
영인, 석호 출근 준비하고 있는, 영인 킥킥거리고 있는.
석호 : 뭐가 그렇게 좋아?
영인 : 나 계모 티 하과장한테 너무 내고 있지?
석호 : (장난스럽게 흘겨보며) 태영이 녀석 물러터진 놈이야. 너무 심하게 다루지 마.
영인 : 결혼하면서 내가 이 악문 게 있어.
하과장 깐죽거리는 거 보면서 결혼만 해봐라, 내가 널 가만두냐 하구.
석호 : (미소 짓고 보면)
영인 : 왜? 너무 비열해 보여?
석호 : 이래서 남자는 여자 잘 만나야 하는가보다. 계모 등살에 시달리는 태영이 걱정보다,
우리 마누라 참 귀여운 짓도 한다 그래지는 거 보면.
영인 : (석호 팔짱 끼면서) 여봉, 우리 출근해요.
#.23 씬. 부엌.(아침)
태영, 보온병에 국 담고 있고, 삼월, 찬합 보자기에 싸고 있고. 조만, 설거지 하는.
삼월 :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져다준다면서, 이걸로 되겠어?
태영 : 돼요. 조금씩 나눠 먹으면 되는데요 뭐. 그리고 우리 날씨도 쌀쌀해졌는데, 사골 좀 고아 먹죠.
삼월 : 왜, 사골 국 먹고 싶어?
태영 : 새어머님한테 워낙 구박을 받다보니 속이 허해서요.
#.24 씬. 강석의 집 전경.(아침)
영자E : 나 안 해, 안 해.
#.25 씬. 천갑의 방.(아침)
천갑, 강석 밥상 앞에 놓고 앉아있는데, 영자 일어서는.
영자 : 다리 쑤셔서 죽어도 못하겠어.
천갑 : 좀 참고 먹어봐라.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됐구만.
영자 : 관절염 생기겠단 말이야.
강석 : 그래요, 아버지. 이건 좀 그래요. 우리는 우리 식의 가풍을 만들어야죠. 꼭 따라하는 거 같잖아요?
영자 : 그래, 여보. 유행도 나중에 따라 하는 애들은 촌스럽다고 손가락질 받는단 말이야.
#.26 씬. 강석의 집 거실.(아침)
천갑의 방에서 천갑, 영자, 강석 나오는.
영자 : 아줌마. 상 내가요. 우리 식당에서 먹을 거예요.
아줌마 식당에서 나오며.
아줌마 : 네.
혜주, 2층에서 내려오는.
천갑 : 웬일이냐? 네가 아직 학교를 안가고?
영자 : 어떻게 같은 집에 살면서 얼굴도 보기 힘드니. 이렇게 만났는데, 오늘은 밥 좀 같이 먹어보자.
혜주 : (나가려고 하면)
강석 : 혜주야, 밥 같이 먹고 학교 가라.
혜주 : .....
#.27 씬. 강석의 집 식당.(아침)
천갑, 영자, 강석, 혜주 식사하고 있는.
영자 : 혜주, 너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좀 내.
혜주 : .....
영자 : 너 선 볼거야.
천갑 : 선이라니?
영자 : 최선생이 괜찮은 신랑감 하나 물색해 왔어요.
천갑 : 역혼은 본데없는 집안에서나 하는 거라며?
영자 : 내년 봄에 강석이 보내고 혜주 시키면 되잖아요. 집안은 뭐 내세울 거 없지만, 신랑감이 의대 졸업한대요.
천갑 : 의사, 좋지.
영자 : 전문의 되려면 한참 남았지만, 머리 좋고, 성실해서
전문의만 따면 금방 유명해질 수 있는 재목감이라고 했어, 최선생이.
전공도 성형외과라서 강남에다 터만 잘 잡아서 시작하면 돈 버는 건 일도 아니라네.
전공의 딸 때까지 뒷바라지는 기본적으로 해줘야 하는 거구.
나중에 병원 개업만 시켜주면 된대, 그쪽에서.
천갑 : 잘됐네, 성형외과. 당신 주사도 거기 가서 맞으면 되구.
영자 : 내 말이. 금요일엔 학교 가지 말고 엄마랑 피부 관리 좀 받으러 가자.
혜주 : (일어나는)
영자 : 엄마 아빠가 얘기하는데 왜 일어서?
혜주 : (나가는)
천갑 : 저 놈의 자식.
영자 : 너 토요일에 무조건 시간 내는 거야.
강석 : 그런 자리 혜주 내보내지 마세요.
영자 : 너까지 왜 그러니?
강석 : 만나보기도 전에 병원 개업 얘기부터 하는 놈을 왜 혜주가 만나러 나가야 해요?
영자 : 그럼, 쟬 누가 데려갈 건데?
강석 : 어머니.
천갑 : 그렇게라도 하겠다고 하면, 보내는 거야. 내 새낀데도 내가 조마조마한 놈인데, 의사라니 좀 좋냐?
돈 좀 싸서 보내가지고 사람 만들어 살라고 해.
강석 : 그런 놈한테 가서 우리 혜주, 행복할 거 같으세요?
영자 : 그럼 어쩌자구? 혜주 쟤가 연애나 변변히 할 주제나 되냔 말이야?
천갑 : 보내, 보내. 봄에 너 식 올리고 바로 치워버리는 거야.
강석 : 혜주 그런 식으로 다루시면, 저도 결혼 생각 안할 겁니다.
영자 : 강석아?
천갑 : 너까지 왜 꼬장을 피냐?
강석 : 저 하나 어머니, 아버지 맞춤형 아들로 살아드리는 걸로 만족하세요.
혜주는 저 살고 싶은 대로 살게 놔 두시구요.
#.28 씬. 학교 전경.(낮)
#.29 씬. 남교수 사무실.(낮)
단아, 책상 앞에 앉아있으면, 그 앞에 서있는 현규.
현규 : (책상 위에 종이를 내놓는)
단아 : (종이 보고, 현규 보는)
현규 : 10대 기업 중에 하나예요. 요즘 같은 취업난에 대단하죠?
단아 : 대단하다.
현규 : 뻥친다고 할까봐 합격증까지 출력해서 가져온 거예요.
단아 : 이거 안 봐도 뻥 친다고 안 했을 거야.
현규 : 매일 전공 수업 빼먹고 사학과 청강 하러 다녔는데도 용하죠?
단아 : 그래, 용해.
현규 : 그러니까 다시 청강 들어갈 거예요.
단아 : 정현규?
현규 : 할 건 다 하면서 청강 들어가는 거니까 걱정 붙들어 매달라는 뜻이에요.
단아 : 이젠 취직도 해서 바쁠 텐데, 무슨 청강을 들어오겠다고 이러니?
현규 : 누가 취직 했대요?
단아 : (보고)
현규 : 합격 했다고 했지 취직 했다고는 안했잖아요?
단아 : 무슨 말이야? 너?
현규 : 나 대학원 갈 거예요. 그래야, 4년 더 감시할 거 아니에요. 숀지 아닌지.
단아 : (일어서며) 너 정말 왜 그래? 요즘 같은 취업난에 이런 대기업에 합격이 됐는데,
왜 취직을 안 하겠다는 거냐구?
현규 : 이건 그냥 일반 사원이에요. 들어가서 영업부터 뺑이 돌아야 하는 일반 사원이요.
대학원 가서 공부 더 해가지고 연구실 쪽으로 다시 들어갈 거예요.
그래야 월급도 더 많이 받고 와이프 고생도 안 시킬 거 아니에요.
남교수, 들어오는.
현규 : (남교수에게) 저 취직 시험 합격 했어요.
남교수 : 어머, 그러니? 축하한다.
현규 : 근데, 회사로 안가고 대학원 가기로 했어요.
남교수 : 왜?
현규 : 왠지는 하교수님한테 물어봐주세요. (인사하고 나가는)
남교수 : (미소 지으며) 물어보나마나지 뭐. 불안해서 학교 못 떠나겠다는 거잖아? 정현규 쟤?
단아 : 정말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요.
남교수 : 실은 나도 불안해.
단아 : (보면)
남교수 : 너 그 싸가지 차타는 거 보면서, 쟤가 내가 아는 하단아 맞나, 그랬어.
너 뭐하는 거니? 그 싸가지랑?
단아 : .....
남교수 : 현규는 이용하기 싫다더니, 현규 떼어내려고 그 싸가지 이용하는 거야? 그거 너답지 않은 짓이잖아?
단아 : (일어서서 책 챙기며) 이용하는 거 아니에요.
남교수 : 그럼?
단아 : (시선 외면한 채) 연애 하는 거 같아요. 그 사람이랑.
남교수 : (굳어져서) 단아야?
단아 : 강의 들어가요. (남교수 앞으로 지나가려고 하는데)
남교수 : (단아 팔 잡으며) 너 왜 그래?
단아 : 뭘요?
남교수 : 네가 어떻게 그런 지저분한 싸가지랑? 현규 떼어내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면?
단아 : (O.L) 진하 오빠랑 너무 다른 사람이잖아요.
남교수 : .....
단아 : 그래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가는)
#.30 씬. 강석의 사무실.(낮)
강석 책상 앞에 앉아있고, 진호 그 앞에 서있는.
진호 : 주주들 주식 변동 사항입니다.
강석 : (서류 들여다보고)
진호 : 그런데....
강석 : (보고)
진호 : 윤삼월이라는 주주가 좀 특이합니다.
강석 : 윤삼월?
진호 : 주소가 하만기 회장님과 같은 곳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인척 관계는 아닙니다.
강석 : 보유수는?
진호 : 4.8프롭니다.
강석 : 꽤 크군.
진호 : 하석호 사장보다 불과 1프로 밖에 적지 않습니다.
더 이상한 건, 하수영 실장이나 하태영 과장이 전혀 주식을 증여 받은 적이 없다는 겁니다.
강석 : (미소 지으며) 그건 알고 있어.
진호 : 자식들한테 지분을 아직 안 넘기고 있다는 게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석 : 그게 하만기 회장님다우신 거겠지. 그래서 내 목표가 된 거구. 나가봐.
진호 : (인사하고 나가는)
강석 : 윤삼월이라....(하면서 종택에서 단아에게 따귀를 맞던 장면에서 뛰어들었던 삼월의 모습이 스친다.
고개를 저으면서) 설마...
#.31 씬. 석호의 사무실.(낮)
석호, 수영, 태영, 영인 앉아있는.
영인 : 골프장 오픈에 맞춰 제휴 기념 파티 겸 VIP초청 행사를 했으면 한다는 거예요?
석호 : 한번 계획을 세워 봐요. 이천갑 회장이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으니까.
회원권 판매는 어떻게 돼가고 있냐?
수영 : 일주일 사이에 15퍼센트 판매가 완료 됐습니다. 이천갑 회장의 인맥으로 성사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태영 : 대단하긴 대단하네, 그 양반. 부도설 나곤 한 장도 안 팔리던 회원권이
일주일 사이에 15퍼센트나 팔린 거 보면. 이강석 걔 어깨에 힘들어가는 걸 더 어떻게 보나.
석호 : 이젠 한 배를 탄 사람들이다. 고깝게 생각하지 말고, 예우는 철저히 하고,
고맙게 생각하는 마음도 잊지들 말고.
태영 : 그러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들이받고 싶은 거 꾹 꾹 참으면서 네네 서류 들고 굽실거리는 거잖아요.
인터폰.
석호 : (일어서서) 네.
비서E : 사장님. 박준식 지점장님 전화십니다.
석호 : 응. 연결해. 네, 하석홉니다. 네? 네? 아, 그래요. 결정이 됐습니까?
네, 네, 감사합니다, 여러 가지로 신경 써주셔서. 네? (듣는) 이강석 실장이요.
네, 알겠습니다, 오후에 뵙죠. (전화 끊는)
수영 : 대출 건 해결 된 건가요?
석호 : 그래, 조금 전에 은행장 사인이 떨어졌다는구나.
태영 : 근데, 이강석이 얘긴 왜 나오는 거예요?
석호 : 어제 이강석 실장이 은행장하고 만나서 모종의 담판을 지은 거 같다는구나.
수영 : ....
태영 : ....
#.32 씬. 회사 복도.(낮)
태영, 수영 걸어오는.
태영 : 대체 이강석 걔 어느 선까지 닿아있는 거야? 우리가 그렇게 대출 좀 해달라고 목을 맬 땐 차일피일 미루더니
그 어린애가 은행장하고 모종의 담판을 지었다는 건 또 뭐냐구.
수영 :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그 친구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거 같다.
태영 : 이천갑 돈이 무섭긴 무섭군. 그게 지 힘이야? 다 지 아버지 백 믿고 큰 소리 치며 사는 거지.
수영 : 글쎄. 과연 그렇기만 할까.
태영 : 왜 형도 할아버지처럼 괭이가 범을 낳아놨다고 감탄하고 싶은 거야?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강석, 진호.
태영 : (수영에게 귓속말로) 지 말 하면 나타나는 거 보니까 저 자식 고양이 새낀지도 몰라.
수영 : (흘겨보고)
태영 : 퇴근 하십니까?
강석 : 네.
태영 : 결재만 챙기시면 되니 오래 계실 필요도 없으시겠죠.
강석 : 아직 적응기라 적당히 자리를 지켜드리고 있는 게 편하실 거 같아서요.
수영 : 은행 대출 건으로 아버님께서 고맙게 생각하십니다.
강석 : 승인이 떨어졌나보죠?
수영 : 네, 조금 전에 연락 받았습니다.
강석 : 다행이군요. 최선을 다 해보자는 생각으로 은행장님을 만나 사정을 해보긴 했지만,
쉽게 승인이 떨어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수영 : 하시던 사업은 정리를 하신다고 들었는데요?
강석 : 네, 마무리 작업 중입니다. 마무리 작업이 끝나면 대성에 뿌리를 내려야죠.
그땐 불편하시더라도 근무 시간 꽉 꽉 채우면서 자리를 지켜볼까 합니다.
수영 : 네, 그러셔야죠.
엘리베이터 문 열리고.
강석 :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수영 : 들어가십쇼.
강석, 진호,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걸어가는 태영와 수영.
태영 : 대성에 뿌리를 내리겠다는 말이 뭔 거 같아?
수영 : 말 그대로지 뭐겠냐?
태영 : 난 저 자식이 하는 말이 왠지 곧이곧대로만 들리지 않아.
수영 : 좋게 생각하자. 은행 쪽 일 해결하는 거 보면 자기 나름으론 뿌리를 내리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 같은데.
#.33 씬. 학교 복도.(낮)
강의실에서 나오는 단아, 걸어오는 남교수.
남교수 : 강의 다 끝났지?
단아 : 네.
남교수 : 그럼 어디 가서 얘기 좀 하자. 차라도 마시면서.
단아 : (보고)
남교수 : 그 싸가지한테 갖고 있는 네 감정의 실체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해부 좀 해보자구.
#.34 씬. 학교 건물 앞 계단.(낮)
단아, 남교수 걸어 나오는데. 울리는 단아의 핸드폰.
단아 : (번호 보고 받는) 여보세요?
강석E : 내려와요.
단아 : (계단 아래를 보면, 강석 서있는)
강석 : (핸드폰을 끄고 있고)
단아 : (핸드폰 끄면서) 오늘은 안 되겠어요.
남교수 : (아래 서있는 강석과 단아를 번갈아 보면서) 단아야?
단아 : .....
남교수 : 네가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친구는 아닌 거 같아.
왜 하필이면 저런 싸가지하고 시작을 해보려는 지는 정말 모르겠는데.
단아 : 말씀 드렸잖아요? 진하 오빠하고 너무 다르다는 거,
그 한가지만으로도 의미는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에요. 내일 봬요. (계단을 내려가는)
남교수 : (불안한 시선으로 보는)
단아 : (강석 앞에 서는) 오늘 공부하러 가는 날 아니잖아요?
강석 : 긴장하라고 했잖아요?
단아 : .....
강석 : 진짜 그렇게 긴장한 표정 할 건 없구요. 그렇다면서요, 연애초기엔 제정신 아니라
매일 안보면 미칠거 같고 그렇다고 하던데. 우리도 흉내는 제대로 내보자구요.
#.35 씬. 교정. (낮)
단아, 앉아있으면 강석, 자판기 커피 들고 와서 내미는.
단아 : (받고)
강석 : (옆에 앉으며) 살면서 여자한테 커피 뽑아다 주는 짓까지 해보네.
단아 : (커피를 마시는)
강석 : 맛있습니까?
단아 : 네.
강석 : (커피 마시면서) 내 껀 왜 이렇게 써. 안하던 짓 하면 죽을 때 된 거라든데.
단아 : 단명 하실 얼굴론 안보여요.
강석 : 관상도 봅니까?
단아 : 아뇨. 저도 우리 과 애들한테 마귀할멈 짓 자주 해서 오래 살꺼거든요.
남들한테 원한사면 오래 산다고들 하잖아요?
강석 : 욕도 참 고상하게 하십니다.
멀리서 걸어오는 현규, 눈에 들어오는.
강석 : 바로 안가고 여기서 이러고 있은 보람 있네요.
일어나죠. 이 자리에서 얻을 건 다 얻은 거 같은데, 차타는 거 또 보여줘야죠.
단아, 강석 일어서는. 현규, 다가오는.
현규 : 말 좀 하죠.
강석 : 해.
현규 : 하교수님 데리고 어딜 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만 부탁 합시다.
강석 : (보면)
현규 : 운전 조심해주십쇼. 운전 거칠게 하면 겁먹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 분.
강석 : .....
현규 : (걸어가는)
강석 : (그런 현규를 보고 있다가) 저 자식 속여 넘기기 꽤 힘들 거 같군요.
#.36 씬. 커피숍.(낮)
현규, 들어오면, 혜주, 앞치마 하고 손님에게 물잔 놓아주고 있는.
손님 : 주문 조금 있다가 할게요, 일행 오면.
혜주 : 네. (돌아서는)
현규 : 뭐하는 겁니까?
혜주 : 아르바이트 해요.
현규 : 댁이 여기서 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혜주 : 돈 벌려구요.
손님, 들어오면.
혜주 : 어서 오세요.
현규 : (뭐야 쟤 하는 느낌으로 보는)
#.37 씬. 방송국 사무실.(낮)
국장, 주정, 병도 얘기하고 있는.
주정 : 지금 협박하세요?
국장 : 내는 국장 말 개무시하는 후배는 기운 딸리가 몬 델꼬 있거든. 카니까 짐 싸가꼬 강릉으로 내리가라.
주정 : 국장님?
병도 : 그럼 저는요?
국장 : 와? 니도 따라 갈래? 강릉에는 자리 하나빼 엄응께네 니도 내 말 안들을 끼모 고마 심의실 가삐라.
병도 : 제가 무슨 말을 안 들었다고 이러세요?
국장 : 니 자 쫓아다니모 내 속 무지하게 디비싯거든.
너그들이 몰라서 그렇지 내 뒤끝 무지하게 있는 사람이거든.
주정 : 알았어요, 가요, 간다구요. 왜 강릉 말고 더 먼데는 없어요? (하면서 화가 나서 나가는)
병도 : 선배, 선배, 울컥해서 그럴 게 아니라. 국장님한테 싹싹 빌면서...
주정 : 뒤끝 무지하게 있으시다는데 빌면 소용 있겠냐?
주정, 병도 나가고.
국장 : 내가 저 거 하는 짓 보모 독도에 방송국 없는 기 한시럽다, 한시러워.
#.38 씬. 마루.(낮)
주정, 화가 나서 걸어오는.
삼월, 빨래 개고 있다가 보고. 조만. 걸레질 하고 있는.
삼월 : 오늘은 빨리 들어오네. 좀 좋아, 술 안마시고 이렇게 일찍일찍 들어 오니.
주정 :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문 거칠게 닫는)
조만 : 술 못 드시니까 성질은 더 괴팍해지시는 거 같아요.
걸어 들어오는 병도.
병도 : 선배? 선배?
삼월 : (일어나며) 오늘도 집까지 데려다주셨네요.
병도 : 선배 어디로?
삼월 : 제 방에 들어갔는데.
주정E : 들어오면 너 죽어.
병도 : 선배, 그러지 말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강릉으론 가면 안 되잖아?
삼월 : 강릉이라니?
병도 : 선배 귀양 가게 생겼거든요.
#.39 씬. 만기의 방.(낮)
만기, 병도 찻상 앞에 놓고 앉아있는.
병도 : 종가 다큐 만들어보라고 그렇게 성화를 하시는데도 까딱 안하니까
국장님이 열 받으셔서 강릉으로 내려가라고 하신 거죠.
만기 : ......
#.40 씬. 레스토랑.(낮)
강석, 단아 앉아서 차 마시고 있는.
강석 : 본격적으로 진도 좀 나가보죠, 우리.
단아 : (보면)
강석 : 서로에 대해서 뭘 알아야 연극을 하든 말든 할 거 아닙니까?
단아 : .....
강석 : 남들 하는 것처럼 흉내는 제대로 내보자구요.
단아 : .....
강석 : 취미가 뭡니까?
단아 : ....
강석 : 그런 것부터 하는 거라면서요? 좋아하는 색은? 계절은 언제가 좋아요. 물론 겨울은 싫을 거구.
못 먹는 음식은?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단아 : (미소 짓는)
강석 : 왜요? 내가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겁니까?
단아 : 꼭 취조 당하는 거 같아서요.
강석 : (테이블 탁 치면서)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단아 : (당황해서 보면)
강석 : 취조 당하는 거 같다면서요?
#.41 씬. 병실.(밤)
말순, 찬합에서 부침 입에 넣는데.
말순 : 아, 차.
태영 : 일껏 생각하고 챙겨온 거니까 그냥 먹어두슈.
말순 : 환자한테 음식 챙겨오면서 꽁꽁 얼려오나?
태영 : 음식 상할까봐 차 트렁크에 넣어 놔서 그래.
말순 : 챙겨다 줄 거면 식기 전에 갖다 주던가.
태영 : 내가 노나? 놀아? 출근 하다 말고 음식 식을까봐 달려와야 해?
말순 : 친구를 위해서 그만 일도 못하나?
태영 : 얘는 정말 애가 왜 이러냐? 친구 하자고 하면 싫다고 난리다가
그럼 말자하면 또 친구 어쩌구 하고, 일관성이 없어. 일관성이.
말순 : 댁하고 친구 하자 말자 하는 걸로 실랑이 하는 거 지겨워서
그냥 해줘보자, 뭐 그러고 있는 중이야.
태영 : 눈물나게 고맙다. (보온병에서 국 따라주면서) 이건 안 식었으니까 어서 먹기나 하셔.
말순 : 사골 국 아니네.
태영 : 따지냐 지금?
말순 : 이왕 해 올 거면 사골국이 좋다 그거지 내 말은.
태영 : 지금 식당에서 주문 하냐?
말순 : 댁이 이러니까 뭘 해주고도 고맙다는 소리를 못 듣는 거야.
그리고 엠피 쓰리 그 음악은 또 뭔가? 그게 문화적인가? 순 만화 주제가 밖에 없드만.
태영 : 제발 좀 식기 전에 먹어라, 먹어. (하면서 입에 국물 대주는데)
말순 : 아 뜨거.
태영 : 댔냐? 댔어? (입 가져다 대면서 호호 해주는데)
말순 : (순간 눈 굳어져서 눈 커지는)
태영 : (순간 본인도 이상한 느낌으로 굳어지는데)
들어오는 장기. 손에 음료수 상자 정도 들고.
장기 : 허걱. 공공장소에서 이러시면들 곤란하신데.
말순 : (그 말에 놀라서) 뭐하는 거야? 지금?
(하면서 손사래 치다가 태영이 들고 있는 보온병 뚜껑의 국물 태영의 얼굴로 확 쏟는)
태영 : 아, 뜨거. 아, 뜨거.
#.42 씬. 편의점. (밤)
진아, 물건 진열하고 있는데, 창가에 서서 젊은 남녀 컵라면을 먹으며 웃으며 얘기하고 있다.
진아 : (물끄러미 두 사람을 보는)
편의점에서 컵라면 먹던 수영과의 장면들이 생각나고.
진아 : (얼른 생각을 떨쳐내며 고개를 젓고, 물건을 열심히 진열하는)
#.43 씬. 길.(밤)
수영, 운전하고 있는. 주유소 앞을 지나가는.
손 흔들던 진아의 모습. 아르바이트를 도와주던 모습들이 생각나고.
수영 : (주유소를 외면하고 운전하는)
#.44 씬. 병실.(밤)
말순, 침대에 앉아있고,
장기, 태영의 얼굴에 얼음주머니 문질러주는데.
태영 : 됐어요. (뺏어서 얼굴에 문지르는)
장기 : 아니, 어째 두 분이 만나시면 하루라도 사고를 안치시는 날이 없는 겁니까?
태영 : 전생의 원수가 만난거지. 밥 챙겨다주고 뜨거운 국물 뒤집어쓰는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다, 내가.
말순 : 그러니까 왜 얼굴은 드밀고 난리냐구.
태영 : 네가 디었다고 설쳤잖아?
장기 : 아니, 두 분 어느새 말도 놓는 그렇고 그런 사이?
말순, 태영 멀뚱거리며 눈만 꿈뻑이는.
장기 : 제가 왠지 두 분 인연이 예사롭지 않다 그랬어요.
태영 : 예사롭지 않긴, 이 양반아. 하도 악연으로 묶이길래, 악연의 고리를 풀자는 의미로 친구 먹기로 한 거야.
말순 : (끄덕이는)
장기 : 원래 남녀 관계는 오빠오빠 하다가 아빠 되고 그러는 건데.
말순, 태영, 동시에 버럭 친구라니까 하고 소리 지르는.
#.45 씬. 강석의 집 거실.(밤)
천갑, 오락 프로 켜놓고 앉아서 잠들어 있는.
영자, 옆으로 다가와 앉으며.
영자 : 갑이 오빠? 갑이 오빠?
천갑 : (잠결에) 미영아, 오빠 집에 가야 하는데.
영자 : (버럭) 여보?
천갑 : (놀라서 눈 뜨고) 왜? 왜?
영자 : 미영이 년이 누구야? 미영이가 누구냐구?
천갑 : 미영이? 미영이가 누군데?
영자 : (꼬집으며) 이실직고해, 청담동 그년이 미영이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거, 강석이가 당신 딴 짓하는 거 덮어준 거지? 그지? 그지?
천갑 : (일어나 도망치면서) 강석이 어딨어? 왜 아직 안 들어와?
영자 : (따라가면서) 왜 또 강석이한테 다 미루려구? 당신 이리 못 와? 오늘 아주 끝장을 보자구. 끝장을.
#.46 씬. 레스토랑.(밤)
식사하고 있는 강석과 단아.
단아 : (고개 들고 보는) 어떻게 아셨어요?
강석 : 장례 때 우연히 그쪽 어린 시절 사진을 봤어요.
구한말 때 사진 같아서 그 집에서 일하는 아가씨한테 물었더니 그러대요. 7살 때부터 청학동에서 자랐다구.
단아 : .....
강석 : 또 씹을 겁니까? 제대로 대답 한 거 한 가지도 없거든요.
단아 : 7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강석 : .....
단아 : 많이 아팠던 거 같아요.
강석 : .....
단아 : 할아버님하고 친한 한의사 어른께서 어린 게 큰일을 겪어서 그러니 환경을 바꿔주는 게 어떻겠냐구 하셔서.
마침 청학동에 먼친척 어른이 살고 계셔서 그리로 보낸 거예요.
강석 : 그렇다고 10년씩이나 있어요?
단아 : 있어보니 좋기도 했구, 집에 오면 엄마 생각 날까봐 오는 것도 무서웠구.
친척 아주머니께서 친딸처럼 정성스럽게 챙겨주셨거든요.
할아버님도 한학 공부하는 자손이 하나 있으셨으면 했던 차라 거기서 10년 동안 공부하게 된 거예요.
강석 : (물끄러미 보는)
단아 : 왜 그렇게 보세요?
강석 : 엄마 생각 날까봐 집으로 오는 게 무서웠단 말이죠?
단아 : ....
강석 : 처음 봤을 때부터 낯설지 않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제 알 거 같네요.
단아 : .....
강석 : 어린 시절에 우리 혜주 가위에 자주 눌렸었어요.
낮잠을 자다가도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하얗게 질리고.
그때마다 날 보던 그 겁에 질린 눈빛, 그 쪽하고 닮았던 거 같아요.
단아 : .....
#.47 씬. 커피숍.(밤)
혜주, 테이블 닦고 있는.
현규 : (카운터 안에 앉아서 책 보고 있다가) 그만 좀 닦아요.
혜주 : 손님도 없는데 할 일이 없잖아요.
현규 : 그럼 그냥 앉아서 책이라도 보던가.
혜주 : (얼른 가방에서 책 꺼내 앉는)
현규 : (그 앞으로 다가와 서는)
혜주 : (책만 보고 있는)
현규 : 노력하겠다고 한 거 아니었어요?
혜주 : .....
현규 : 나한테서 마음 떼어내기로?
혜주 : 노력하고 있는 거예요.
현규 : 나랑 같은 데서 알바 하는 게?
혜주 : 자꾸 보면 겁도 덜 날 거구. 그리고....
현규 : 그리고?
혜주 :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규 : 환상?
혜주 : (그제야 고개 들고) 거기한테 갖고 있는 내 마음이요.
가까이서 자주 보면 내가 보지 못했던 모습들도 보게 될 거구. 그럼....
현규 : 환상이 깨질지도 모른다?
혜주 : 네.
현규 : 작전은 괜찮은 거 같네요. 성공하길 빌어요. 내가 뭐 도와줘야 하는 거예요?
혜주 : 네?
현규 : 환상을 깨려면 뭔가 안 좋은 모습을 계속 보여줘야 하는 거잖아요?
혜주 : .....
현규 : 우선 하나. 나 성질나면 아무데나 주먹질 하는 버릇 있어요. 어쩌면 여자도 팰지 몰라요. 도움이 돼요?
혜주 : 네.
성민, 강하 들어오는.
성민 : 친구? 끝날 시간 안 됐나?
강하 : 도서관에서 엎드려 잤더니 얼굴이 돌아갈 것 같네. 어디 가서 생맥 한잔씩 하세나.
현규 : 아직 1시간 남았는데, 아니다, 가자.
(앞치마 벗어서 혜주 앞에 놓으며) 나 땡땡이도 잘 쳐요. 오늘 매상 정리도 그쪽이 좀 해줘요.
혜주 : 네.
현규 : (친구들과 나가면서) 청소도 하고 가구요.
혜주 : (일어서며) 네.
성민 : 쟤가 왜 여기서 알바 하냐?
현규 : 환상 특급이란다.
강하 : 뭐? (어쩌고 하면서 셋이 몰려 나가는)
혜주 : (현규가 풀어놓은 앞치마 접으면서) 겁이 나요, 환상이 아니면 어쩌나 해서.....
#.48 씬. 노래방 앞.(밤)
단아, 강석 서있는.
단아 : 저 정말 싫은데요.
강석 : 학생들하고 회식이나 엠티 같은 거 갔을 때 노래 할 일 있잖아요?
단아 : 안 하는데요.
강석 : 노래 시키는데 빼는 사람들 얼마나 재수 없는 줄 알아요?
단아 : .....
강석 : 이 연극에서 그쪽도 뭔가 남는 게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단아 : 저, 연습해서 될 수준 아니거든요.
강석 : 알긴 압니까?
단아 : 조교 때 엠티 가서 애들한테 노래 안한다고 벌주 마신 적 있어요.
강석 : 술은 잘 마십니까?
단아 : 모르겠어요, 많이 마셔본 적이 없어서.
강석 : 얼마나 마셔봤는데요?
단아 : 소주 두 병.
강석 : (기가 막히고) 그게 많이 안 마셔본 겁니까?
단아 : 엠티 때 벌주로 마신 거예요.
강석 : 아니, 사람 죽일 일 있나, 무슨 벌주로 소주를 두 병 씩이나 먹여. 그거 마시고 멀쩡했어요?
단아 : 네.
강석 : 대체 정체가 뭡니까?
#.49 씬. 주정의 방.(밤)
주정 : (누워서 천정 보며) 간다, 가. 강릉이든 어디든 간다구.
만기E : 주정아?
주정 : (일어나 앉으며) 네, 오빠.
만기, 문 열고 들어오는. 삼월, 술상 들고 서있는.
만기 : (앉으며) 거기다 놔줘요.
삼월 : 네, (술상 놓고 나가는)
주정 : (놀라서 보는) 이, 이거 술이에요? 오빠?
만기 : 한잔씩만 하자꾸나.
주정 : 오빠가 웬일이래요?
만기 : (술병 들면)
주정 : 제가 먼저 따라 드릴게요.
만기 : 받거라.
주정 : 그래도 주도가 있는데.
만기 : 받아.
주정 : (얼른 두 손으로 잔 잡고)
만기 : (술을 따라주고)
주정 : (만기의 잔에 술 따라주고) 살다 살다 별 일을 다보네요. 제삿날도 술 먹는 것도 못마땅해 하시면서.
만기 : 주정아?
주정 : 네?
만기 : 너한테는 이 집안이 말이다.
주정 : .....
만기 : 버겁기만 한 거 안다. 그런데 말이다, 주정아.
주정 : 네.
만기 : 버겁다고 벗어버릴 수 없는 게 있지 않냐? 사람 사이엔 미운 정이라는 게 있다는 거, 너도 알지?
주정 : .....
만기 : 너한테 이 집안이 그런 거 아니겠니?
그럼 말이다. 치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는 눈도 있는 걸게다. 네가 하는 일도 그런 거 아니냐?
주정 : .....
#.50 씬. 천갑의 방.(밤)
천갑, 런닝이 찢긴 채 무릎 꿇고 침대 밑에 앉아있는.
천갑 : (핸드폰 누르는) 아니, 이 자식은 왜 핸드폰은 꺼놓고 그래.
문 열고 들어오는 영자. 물 컵 들고 들어오는.
영자 : 다시 시작해보자, 우리.
천갑 : 아니, 그만큼 볶았으면 됐지 뭘 또 다시 시작해?
영자 : 미영이년하고 어디까지 갔어?
천갑 : 가긴 어디까지 가? 나 몰라? 당신? 내가 당신한테 순정 바치며 사는 거 모르냐구?
영자 : 순정을 바친 인간이 잠결에도 미영아 나 집에 가야 해 그러니?
천갑 : 아, 강석이 이 놈은 왜 이렇게 안 들어오는 거야?
#.51 씬. 노래방.(밤)
단아, 마이크 잡고 서서 어색한 표정으로 재즈 바에서 불렀던 노래 부르고 있는.
강석 : (앉아서 정지 버튼 누르는) 그게 지금 댁하고 맞는 노래라고 생각합니까?
단아 : 이 노래 좋아해요.
강석 : 좋아하는 노래를 그런 식으로 부르나?
단아 : (마이크 내려놓으면서) 그러니까 오기 싫다고 했잖아요.
강석 : 다른 노래 해봅시다. 쉬운 노래를 해요, 쉬운 노래를. 이리 와서 앉아 봐요.
단아 : 저 정말 그만하고 싶어요.
강석 : 돈 낸 건 채우고 나가야 할 거 아닙니까?
단아 : (하는 수 없이 앉고)
강석 : (노래 책 앞으로 놔주고) 찾아봐요. 쉬운 걸로.
단아 : 저한테 그런 노래 없어요.
강석 : 해보기나 했어요?
단아 : 해봤어요.
강석 : (보면)
단아 : 엠티 때 벌주 마시고 나서, 다음날부터 혼자서 노래방 몇 번 가봤어요.
강석 : 혼자 가서 연습한 노래가 지금 그겁니까?
단아 : 아무리 해도 안 늘길래 그냥 벌주 마시자 그랬어요.
강석 : 남의 집 족보 챙기는 오기는 어디다 두고, 포기가 그렇게 빠릅니까? 찾아봐요, 어서.
단아 : .....
강석 : 시간 가잖아요.
단아 : (하는 수 없이 책 들춰보는)
인서트 씬들. 어이없는 노래 부르는 단아.
강석 : (정지 버튼 누르고) 제대로 좀 찾아봐요.
단아 : (이 악무는 느낌으로 다시 책 보고)
강석 : (번호 단추 누르면서) 이 노래로 해봐요.
노래 부르는 단아.
강석 : (정지 버튼 누르고) 이건 안 되겠구.
단아 : 저 목 아파요.
강석 : 그럼 명창 되겠네.
#.52 씬. 병원 복도.(밤)
말순, 의자에 앉아 엠피 쓰리 이어폰 끼고.
말순 :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 인조인간 로보트, 마징가 제트.
태영 : (앞에 서며) 딱이다 딱이야.
말순 : (이어폰 빼면서) 집에 안 갔어?
태영 : (만화책 봉투 옆에 내려놓으며) 공포의 외인구단 봤어?
말순 : 만화 아냐?
태영 : 봤냐구?
말순 : 내가 한가하게 그런 거 볼 시간이 어디 있어?
태영 : 그럼 이참에 보면 되겠네. 병원에 입원을 해선 기본적으로 만화 스무질 정도는 떼 줘야 하는 거거든.
말순 : 왜?
태영 : 그게 환자의 기본 도리라는 거야.
말순 : 그 도리는 누가 만든 건데?
태영 : 따지지 말고 보라면 봐라 좀.
내가 고등학교 때 옆 학교 애들하고 20대 1로 붙어가지고 팔하고 다리 부러진 적이 있었거든.
말순 : 댁이 20이었지?
태영 : 얘가 또 사람 만만하게 본다. 그때 내가 한 달간 입원을 하면서 이현세님의 만화를 모두 섭렵 했다 그거야.
그 이후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거지.
말순 : 이현세님이 간통하라고 하셨나보지?
태영 : (벌떡 일어서며) 됐다, 됐어. 널 우정으로 대하는 내가 미친놈이다. (만화책 봉투 드는데)
말순 : (봉투 잡으며) 이건 놓고 가지?
#.53 씬. 노래방 앞.(밤)
강석, 단아 걸어 나오는.
강석 : 아니, 맞는 노래가 그렇게 없나.
단아 : 안될 거라고 했잖아요.
강석 : 그게 자랑이에요?
단아 : 안되는 걸 어떡해요.
강석 : 우리 이 연극 끝나기 전에 성공 시켜야 하는 목표를 정합시다.
단아 : (보면)
강석 : 난 그 인형 자력으로 따내는 거. 그 쪽은 맞는 노래 찾는 거. 이의 없죠?
단아 : 그걸 왜 꼭 찾아야 하는데요?
강석 : 사람이 목표가 있어야 노력을 할 거 아닙니까?
#.54 씬. 종가집 앞.(밤)
강석, 단아 차에서 내리는.
강석 : 그래도 시간은 잘 흘러가죠?
단아 : (보면)
강석 : 할머니 되는 게 꿈이라면서요?
단아 : .....
강석 : 가끔 그 쪽 보면 사는 게 참 무료하다, 하는 얼굴인 거 압니까?
단아 : .....
#.55 씬. 마루.(밤)
단아, 걸어오면, 영인 커피 잔 들고 부엌에서 나오는.
영인 : 늦었네.
단아 : 네. 커피 드세요? 밤인데.
영인 : 카페인 없는 거라서 괜찮아. 내일 브리핑 할 자료 검토해야 하는데,
밤에 커피 마시던 습관이 있어서 물 가지곤 안 되겠드라구. 들어가서 쉬어.
단아 : 네, 쉬세요. 참, (가방에서 포장된 선물 꾸러미 꺼내며) 이거..
영인 : 이게 뭐야?
단아 : 두 분 결혼하시는데 제대로 축하도 못 드린 거 같아서.
영인 : (보는)
#.56 씬. 단아의 방.(밤)
단아, 들어와 서는.
강석E : 그래도 시간은 잘 흘러가죠?
단아, 앉아서 책을 꺼내 진하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단아 :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줘.
가끔은 그 사람 말대로 시간이 너무 천천히 흘러가는 거 같아서 힘이 들어, 오빠.
#.57 씬. 석호의 방.(밤)
영인, 커피 마시면서 자료 보고 있는.
석호 : (영인의 어깨를 주무르는) 그만 하고 자. 홀몸도 아닌데 왜 이렇게 무리를 해?
영인 : 몸 무거워지면 지금처럼 일 못할 거잖아. 그 전에 처리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라도 더 해두고 싶어서 그래.
(하다 옆에 놓인 선물 꾸러미 보는) 참, 선물.
영인, 단아가 준 선물 꾸러미 풀어본다.
안에서 나오는 액자, 석호와 영인의 결혼식 모습이 담긴 사진들.
영인 : (끼워져 있던 쪽지 읽는) 엄마가 돼주셔서 감사해요. 딸 단아가. 정말 내가 엄마가 되긴 된 건가.
석호 : 딴에 많이 생각하고 준비한 걸거야.
영인 : (사진 보며) 그러게, 만감이 교차하네. 여보?
석호 : 응?
영인 : 단아 애인 없어?
석호 : .....
영인 : 올해 서른인데 공부만 하면서 좋은 시절 다 보내게 할 거야? 결혼 시켜야 하잖아?
석호 : 단아.....결혼 했었어.
영인 : (굳어져서 보는)
#.58 씬. 천갑의 방.(밤)
천갑, 찢겨진 런닝 바람으로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는.
천갑 : 넌 왜 핸드폰도 꺼놓고 그러냐?
강석, 문 앞에 서서 어이없는 표정으로 보는.
영자 : (침대에 걸터앉아서) 올라가. 엄마랑 아버지랑 해결할 일 있으니까.
천갑 : 올라가긴 어딜 올라가.
(강석 방 안으로 끌어당기는) 내가 잠꼬대 좀 했다고 네 엄마가 날 아주 고문을 한다, 고문을.
영자 : 내가 괜히 고문 했어? 미영아, 나 집에 가야 하는데, 그게 그냥 잠꼬대야?
강석 : (천갑을 보는)
천갑 : 네 엄마 고단수에 걸린 거야, 자는 사람 귀에 대고 갑이 오빠, 갑이 오빠 하니까 나도 모르게.
강석 : 어머니?
영자 : 넌 끼어들지 마, 얘. 이건 부부 사이에 문제야.
강석 : 삼자 대면 시켜드릴까요?
천갑 : 야, 야. 너까지 왜 이러냐?
강석 : 제가 만나봤어요. 아버지랑 이상한 사이였으면, 걔 그냥 뒀을 거 같아요, 제가?
영자 : 네 아버지가 잠꼬대로....
강석 : 집에 가야 한다고 하셨다면서요?
그건 꿈에서도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계셨다는 거잖아요?
천갑 : 그렇지. 난 꿈에서도 네 엄마 외에 다른 여자 생각은 절대 안하는 사람이다.
영자 : 그런 사람이 꿈에서도 미영아 어쩌고 하니?
강석 : 계속 이러실 거면 걔 직접 만나보세요. 그런데요, 어머니. 이건 아셔야 해요.
그런 아무 것도 아닌 애, 어머니가 직접 만나보시는 거,
첩 대우하는 걸 수도 있다는 거요. 그거 하시고 싶으세요?
영자 : (눈만 꿈뻑이는) 내가 그런 앨 뭐 하러 만나니?
강석 : 그럼, 이쯤에서 그만하세요. 사랑싸움도 너무 길면 지치잖아요. 올라갈게요. (나가는)
천갑 : 잘 자라, 아들.
영자 : (노려보는)
천갑 : 나 런닝 갈아입어도 돼?
#.59 씬. 강석의 방.(밤)
강석, 들어와서 웃옷을 벗고 책상 앞에 앉는. 못하는 노래하던 단아의 모습이 스치고.
강석 : (피식 웃다가, 책상 위에 놓여있는 인형을 보는) 네 주인의 정체가 진짜 궁금해지려고 한다.
#.60 씬. 단아의 방.(밤)
진하의 사진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단아.
단아 : 우린 왜 그런 거 해볼 생각을 안했을까?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유원지도 가고, 노래방도 가고,
마주 앉아서 차도 마시면서 무슨 영화 좋아하냐구, 그런 것도 물어보고.
(사진을 어루만지면서) 말도 안 되는 투정이다, 그지?
나 고등학생이었는데, 오빠가 그런데 어떻게 데려갔을 거라구.
#.61 씬. 석호의 방.(밤)
영인, 멍하니 앉아있는, 눈물이 글썽하고.
석호 : (착잡한 표정으로) 저 녀석 어쩌면 평생 저러고 살지도 몰라.
영인 : 어떻게 그런 일이....(눈물을 닦는)
석호 : 저 녀석 보면 어린 정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결혼만 정해져 있었지, 자주 만나지도 못했던 아이들이야.
가끔 죽은 아이가 집에 와도 가까이 앉지도 못하고 멀리서 서로 눈빛만 주고받던 아이들인데.
그래서 몇 년 지나면 잊겠거니 했는데.
영인 : 아직도 못 잊어 하는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벌써 10년째라면서?
석호 : 떠난 아이, 중앙선을 넘어서 달려오는 트럭을 향해서 핸들을 틀었다는구만.
영인 : .....
석호 : 트럭이 단아 쪽으로 다가오니까 핸들을 제 쪽으로 틀었대.
영인 : .....
석호 : 그래서 겨우 단아는 살아남은 거구.
#.62 씬. 수영의 방.(밤)
수영, 우두커니 앉아있는. 일어서는.
#.63 씬. 종가 마당.(밤)
수영,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64 씬. 말순의 옥탑방 옥상.(밤)
진아, 핸드폰을 하는.
진아 : 오늘도 못 들어와요? 정말 힘들어서 어떡해요?
옷도 갈아입어야 하잖아요? 내가 내일 경찰서로 옷 가져다줄게요.
말순E : 아냐, 아냐. 여기 사물함에 가져다 둔 거 있어.
진아 : 뭐 필요한 거 없어요?
말순E : 없어, 없어, 문단속 잘하고 자라.
진아 : 네. 언니. (핸드폰 끊으면서 무심히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수영의 차처럼 보이는 차가 눈에 들어온다.
양미간 모으고 내려다보는데. 차 앞창으로 수영의 얼굴이 조금 보이는.
뭔가에 끌리듯 정신없이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65 씬. 말순의 집 앞 길.(밤)
수영, 차 안에 앉아서 물끄러미 앞 쪽을 바라보고 있다가.
수영 : 이러지 말자, 하수영.
하고 시동 걸어서 차 출발 시키는데. 집 안에서 뛰어나와 달려오는 진아.
무심하게 룸미러를 보던 수영, 굳어지는.
진아, 달려오고. 수영, 브레이크를 밟는데.
진아 : (뛰어와서 수영의 옆 창을 두 손으로 두드리는)
수영 : (멍하니 바라보는)
진아 : (안타까운 심정으로 창을 두드리는)
수영 : (바라보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서.